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 측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군에게도 새로운 무기를 직접 시험해 볼 수 있는 전장이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측은 적(러시아군)이 사용하는 새 무기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편. 미국 등 서방 측에 대응 가능한 첨단 무기를 신속하게 지원받기 위해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5일 러시아군이 1,500kg 무게의 새 공대지 유도 미사일 UPAB-1500VE(러시아 표기로는 УПАБ-1500Б-Э)을 우크라이나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미사일의 사용은 유리 이그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에 의해 확인됐다고 했다.
러시아의 새 공대지 미사일 UPAB-1500VE/사진출처:위키피디아
스트라나.ua에 따르면 UPAB-1500VE는 몇 주전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고프주(州, 체르니히브 Черниговская область)에서 처음 사용됐다. 현지에서 발견된 미사일 잔해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 미사일은 유럽 최대 에어쇼로 꼽히는 모스크바 에어쇼인 '막스-2019'(Московском авиационно-космическом салоне МАКС-2019, 2년에 한번씩 열린다)에서 처음 시연됐는데, 3년만에 실전에 나온 것이다.
UPAB-1500VE 미사일은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만든 방공호나 군사 지휘소, 철교, 군함, 수송선 등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폭탄이다. 낙하 지점에서 최대 50km의 거리를 날아 목표물을 정확하게 때릴 수 있도록 위성 항법 시스템을 갖췄다. 무게는 1,500Kg, 탄두 무게만도 1,010kg에 이를 정도로 강력하다.
이그나트 대변인은 "UPAB-1500VE 미사일과 이 미사일의 투하 전폭기를 요격하기 위해서는 현대식 전투기, 특히 미국의 F-16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다양한 이유를 들며 미국에 F-16 전투기의 제공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F-16 전투기의 제공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러시아 전폭기 Su-30SM/사진출처:러시아군 SNS
미국의 F-16 전투기/사진출처:위키피디아
이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 조종사 2명이 미국에서 기량을 점검받고 있다고 미 NBC 방송은 4일 보도했다. 미 애리조나주 남동부 투손의 한 미군 기지에서 우크라이나군 조종사 2명을 상대로 비행능력 평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조종사 2명이 F-16 전투기를 실제로 조종하는 게 아니라 시뮬레이션을 통해 간접 조종 체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트라나.ua는 NBC 방송 뉴스를 소개하면서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은 조종사의 기술을 향상시키고, F-16 비행 훈련에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예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이번 달에 10명의 우크라이나 조종사를 추가로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F-16 비행 훈련은 공식적으로 18개월간 진행된다. 콜린 칼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F-16 훈련을 시작하지 않았다"면서 "설사 F-16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더라도, 인도에 필요한 시간과 훈련에 걸리는 시간이 18개월로 서로 같기 때문에 훈련을 먼저 시작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F-16 전투기 제공을 결정한 뒤, 조종사 훈련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미 국방부 관리들은 F-16 훈련이 전투기에 대한 조종사의 지식과 훈련 방식에 따라 6~9개월로 단축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 당국의 판단에 따르면, F-16 훈련을 위해 미국 등으로 갈 준비가 된 조종사가 20명 미만이며, 가까운 장래에 훈련받을 수 있는 조종사는 약 30명 정도"라며 "워싱턴은 우크라이나로의 전투기 제공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칼 국방 정책차관도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미국은 물론 동맹국과 협력국 중 어느 곳도 우크라이나에 F-16을 제공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F-16 전투기의 제공 여부를 놓고 우크라이나와 미국간에 엇박자가 심하다면, 독일산 레오파드 전차(탱크)의 우크라이나 제공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을까?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은 독일이 레오파드-1 탱크의 예비 부품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것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독일에는 예비 부품이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스위스 측에 부품 제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부품을 확보하지 못한 탱크는 적진을 향해 돌진하다가 한번 멈춰서면 그걸로 끝이다.
서방측이 지원하기로 약속한 레오파드 탱크들로 우크라이나에서 2개 기갑 대대를 편성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무산됐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당초 약속과는 달리,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방위 전략과 실제 운영 가능한 레오파드 탱크의 수를 확인한 결과, 약속을 지키기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엊그제(3일) 워싱턴을 방문한 숄츠 독일총리와 바이든 미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도 달리 나오고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독일 잡지 Stern은 바이든 미 대통령이 '작은' 숄츠 총리의 손을 잡고 끄는 듯한 표지에 "미국의 '빅 브라더'가 유럽으로 돌아왔으며,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잡지 스테른의 표지/캡처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베를린과 워싱턴이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를 너무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동유럽 국가들의 태도에 우려하고 있다고 썼다. 바이든 대통령이 키예프(키이우) '깜짝 방문'에 이어 찾아간 폴란드에서 이 문제에 대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동유럽국가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헸다고 한다.
양측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한 지점은 '러시아와의 협상' 여부로 보인다. 폴란드와 발트 3국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번 기회에 러시아가 자국에 대해 더이상 안보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철저하게 파괴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축국가들은 현실적으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패배시키기는 너무 어렵고, 자칫하면 제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반격을 가한 뒤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에 나설 수 있기를 원한다. 동유럽 국가들은 이같은 군사전략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대러 협상 테이블로 떠미는 서방 측의 '통일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진단이다.
숄츠 독일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 모습
여기에 숄츠 총리의 CNN 인터뷰가 불을 붙였다. 그는 "우리는 평화가 찾아온 뒤에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정한 안전보장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아직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우크라이나가 대러 협상에 나설 경우, 특정한 안보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빨리 전쟁을 끝내야, 우크라이나에 안보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스트라나.ua가 숄츠 총리의 워싱턴 방문과 CNN 인터뷰를 소개한 이유인지 모른다.
◇ 오늘(5일)의 주요 뉴스 요약
- 국제 사회의 대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이 생산하는 핵심 반도체와 첨단 기술제품들이 러시아에 대량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4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익명의 EU 고위급 외교관을 인용, 러시아의 제품 수입 규모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을 대체로 회복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외교관은 각국의 교역 현황을 분석해 보면 EU 및 동맹국이 생산한 반도체와 집적회로가 튀르키예(터키)와 아랍에미리트(UAE), 카자흐스탄 등 제3국을 거쳐 러시아에 반입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의 대러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