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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풍수의 귀문
귀문이라는 의미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산해경』이지만 귀문이라는 용어나 개념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여러 문헌에서 귀문의 출처를 『산해경』이라 한다. 아래의 『논형』을 보면 『산해경』에 이러한 개념이 나온다고 되어있다. 즉 귀문이란 동북쪽을 의미하며 이 방위로 귀신들이 출입하기 때문에 흉한 방위가 된다는 것이다.
『산해경』에 말하기를 창해 가운데 있는 도삭산 위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그 가지가 3천리에 달한다. 그 가지 사이의 동북쪽을 귀문이라고 하는데 모든 귀신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그 위에는 두 신인이 있는데 하나는 ‘신도’라고 하고 하나는 ‘울루’라고 하는데 모든 귀신들을 검열하고 거느리는 일을 주로 한다. 악하고 해로운 귀신은 갈대끈으로 묶어 호랑이 먹이로 주었다. 그래서 황제가 의식을 행하면서 귀신을 내몰기 위해 큰 복숭아 인형을 세우고 문 앞에는 신도와 울루 및 호랑이를 그려놓고 갈대끈으로 묶어 악귀를 막았다.
이러한 귀문에 대한 기사는 후위의 가사협의 『제민요술』, 송대 왕관국의 『학림』, 송대 이석의 『속박물지』, 원대 도종의의 『설부』, 『태평어람』 등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저술을 종합하면, 도삭산에 큰 복숭아나무 가지가 뻗어 있어 그 가지의 동북쪽을 귀문이라고 하는데 귀문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이유는 귀신이 출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신이 출입하기 때문에 흉한 방위가 되는 것이고 이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북 방위에 대해 『주역』에서는 팔괘 가운데 “간(艮) 은 동북의 괘이다. 만물의 끝을 이루는 곳이고 다시 시작하는 곳이다. 그래서 간에서 이룬다고 한다.” 고 하였다. 이는 간 방위는 만물의 기능이 성취하면서 끝을 맞이하나 또 만물이 새로이 시작하는 방위라는 것으로 죽음과 새로운 삶을 주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남자』에서는 “동북을 변천이라고 하는 것은… 양기가 시작하여 만물이 싹이 트게 하는 것으로 변천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는 동북 방향은 음양의 경계로 기가 변화하는 위치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가 정확하게 귀문 방위가 된다는 것이다.
귀문은 동북 간괘에 위치하여 겨울과 봄, 즉 음양 2개의 기운이 포함되어 만물의 끝과 시작이 되는 곳이다. 축은 12월로 1년의 마지막이고, 인은 정월을 뜻하며 1년의 시작이다. 귀문은 음양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경계이다.
정월 1일은 인방(寅方)에서 시작하는데 만물은 동쪽의 춘양(春陽)에서 자라고, 남의 하양(夏陽)에서 무성해지고, 서의 추음(秋陰)에서 수확하고, 북의 동음(冬陰)에서 숨어 1년을 마치게 된다. 마지막 달 30일에 축에서 그쳐 귀문에 들어가 멸하게 된다. 이 귀문이라고 이름 지어진 방위는 동북 모서리, 축인 사이인데 이 축인은 12개월에는 입춘 전이며 대한 후이다.
이러한 귀문의 개념은 중국의 민속에서 연연히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설날에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고 집 위에 올라가면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설날 봄의 행사에 사용된 버드나무는 봄에 청록의 싹을 피워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는데 동쪽에 버드나무를 심어 봄을 연출한 것이다.
풍수와 관련해서는 『황제택경』에 귀문이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귀문 방위는 집안의 기운을 막는 곳이니 부족한듯 얇게 텅 비워 두든지 버리는 것이 길하다. 귀문 방위를 범하면 반신불구가 되거나 종기가 나는 등 재앙이 있다” 라고 하여 귀문에 해당하는 간방은 북동쪽인데 이 방위는 집안의 기운이 막힌 곳이기 때문에 비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문방은 24방위에서 축인(丑寅)방위이기도 하다. 『황제택경』에서는 축방과 인방 역시 금기시 하는 방위이다. “축방위는 관옥인데 소자와 부인의 명좌이다. 이곳을 범하면 도깨비, 도적, 화재, 괴이한 일들이 생긴다.” “인방위는 천형으로 용의 등이며 현무인데 서자와 양자, 그의 부인과 장녀의 명좌이다. 이 방위를 범하면 태아가 상하고 감옥에 가거나 도둑을 맞거나 패망하는 등의 재앙이 있다”고 하였다. 그림과 같이 『황제택경』에서는 음택도와 양택도를 막론하고 북동쪽이 귀문 방위임을 표시하고 있다.
일본에서 문헌상 귀문에 대한 개념이 등장한 것은 『작정기』다. 이 책은 헤이안 시대에 쓰여진 일본 최고의 정원서로 극락정토의 사상을 바탕으로 침전조형식 건축물의 정원을 만드는 디자인과 시공방법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정원의 공간분할, 연못, 섬, 폭포, 물의 흐름, 석조의 조합과 배치기법 및 작정시 금기사항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작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다치바나 도시쓰나가 가장 유력하다. 『작정기』에는 풍수와 관련한 내용이 다수 있어 일본의 정원건축 사상에 풍수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정기』에 “5척 이상의 돌을 북동쪽에 세우지 말라. 귀문에서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높이가 4~5척 되는 돌을 북동 방향에 세우지 말라. 이는 유령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악귀들이 들어오는 것을 재촉하여 사람들이 오래 거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라고 하여 북동 방위에 돌을 세우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나 “남서쪽에 삼존불석을 세운다면 재앙이 없고 귀신들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귀문방위에 대한 방책도 제시한다.
일본의 풍수는 백제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이코천황 10년 “백제승려 관륵이 왔다. 이에 역본과 천문지리서 및 둔갑방술서를 바쳤다. 이때 서생 3~4명을 선발하여 관륵에게 배우도록 하였다.” 백제 관륵이 일본에 천문지리서를 전달하였는데 이를 일본인이 배웠다는 기사이다. 여기서 천문지리서는 풍수와 관련된 서적임을 추측할 수 있다.
또 스이코천황 20년 “그해 백제에서 귀화하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얼굴과 몸에 모두 얼룩 반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를 섬에 버리려고 하는데 자신에게 산악의 모형을 잘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다고 하자 남쪽 뜰에 수미산의 모형와 오교를 만들 것을 명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 사람을 노자공이라 불렀다. 다른 이름은 ‘지기마려’라 한다. “
백제의 귀화인 노자공이 산악을 잘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다고 하자 천황이 수미산 모형과 중국 오나라풍 다리를 남쪽 정원에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이다. 일본에 풍수서가 전해진 시기가 564년경이고 『작정기』의 편찬 년대가 11세기경이라고 본다면 백제에서 전해진 풍수서가 『작정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에도시대에 저술된 일련의 저작 들에는 주택 내외의 다양한 상황에 따른 방위별 길흉판단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저작은 대체로 『황제택경』과 『영조택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일련의 저작 등의 공통점은 길한 방위는 일정한 법칙이 없지만 나쁜 방위는 어느 문헌에서도 간(북동), 곤(남서) 두 방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간(북동)방위는 헤이안 후기부터 절대적으로 기피하는 방위이다. 가상이라고 하면 우선 귀문이 거론되지만 귀문의 기피는 에도시대의 가상설이 아니라 헤이안 후기부터 나타나는 방위의 금기이다. 귀문, 표귀문에 해당하는 간-곤의 축은 불길한 방위로 간주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흉한 표현은 길한 표현의 약 2배 정도이며 내용이 구체적이고 종류도 많다.
여기에서 절대적으로 기피한 방위는 간(북동), 곤(남서)의 2방위이다. 이 귀문, 표귀문이라 칭하는 2방위는 흉한 절대적 방위이다. 반대로 비교적 길하다고 하는 방위는 묘(동), 손(남동)방위라 한다.
도야 마나부는 일본풍수의 독자성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귀문인데 귀문이라는 말이 동북(축인)의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은 일본인의 상식이라고 하였다. 또한 귀문은 일본인들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지며 천년 이상 특별시 하였던 것으로 그 때문에 많은 속신과 미신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런데 가상(양택)판단을 중시하는 것은 일본의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중국의 풍수설과는 가상 판단의 내용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귀문 방위를 두가지로 다시 나누고 있다.
일본에서의 가상에 대한 길흉 판단은 중국처럼 남북축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간(북동, 귀문)-곤(남서, 다른 쪽의 귀문)을 기준으로 한다. 북동 방위와 남서 방위를 연결하여 북동쪽을 표귀문, 남서쪽을 이귀문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축선에 화장실 등의 부정한 공간, 혹은 문과 헛간 등이 있으면 주인에게 불행과 병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양택론에는 없는 부엌과 신단 등 가옥 내 일정 공간의 위치, 방향의 지정은 일본이 독특한 풍수설을 발달시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도 일본에서 귀문은 간방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속언으로 가장 기피하고 혐오하는 금기된 방위이다. 고대의 궁도계획부터 현재의 자정에 이르기까지 귀문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고 이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