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일파티
# 한 사람을 위하여
“너희 집에서 고기 좀 구원도 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급작스런 *국이형의 제안이 부담스럽다. 난데없이 고기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카니, *철이 넘이 내 생일에 술, 고기를 싸들고 온다는 기야. 기래서 안된다 했디! 기랬더니 그 넘이 내일 하자고 안한? 긴데, 아우도 알잖니 우리집에 오케 다 들어올 수 있넌? 기래서 너희 집을 생각 했디. 제수하고 토론하고 알려주라!
놀랍다. 단톡방에 누구의 생일이라고 소식이 올라오면 댓글로 축하하고, 기껏해야 온라인으로 선물 전달을 하는 것 정도가 아닌가? 요즘시대에 생파라니, 그것도 형제도 가족도 아닌 이웃들과? 그런데 내가 생일자에 대한 소식을 알렸고, 또 우리집이 고만고만한 집들 중 크다고 우리집에서 고기를 굽자고 한다.
*국이형은 3년 전 우리집에서 열렸던 생파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듯 했다. 그 느낌을 오늘 친구들인 최사장과 *철이형에게 나눠주고 싶었나 보다. *국이형이 한국에 입국하고 다음해에 맞는 생일, 정착도우미였던 나는 그를 환대하고 싶었다. 한 사람을 위해서 동네 지인들인 가정교회 가족들과 우리집에서 만찬을 연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나이로 이제 한 살 되엇디! 간난쟁이가 뭐 알간? 아무것도 모르니 동상들이 잘 알려도! 오늘 이케 나를 위해 집두 초대해서, 잔치도 열어주니 너무 기뻐서 어케 표현할 수가 없다. 나넌 남한사람의 집에두 처음 와 봐서. 다른 사람들도 남한에 수태 살아도 집에 들어와 보진 못했을기야! ”
그 때의 인상 때문일까? 오늘 최사장도 *철이형이 오는 자리에 가정교회 가족들도 같이 부르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한 사람을 위하여 또 다시 윗동네, 아랫동네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 이팝에 고깃국
“이거이 말로만 듣던 남조선의 생일상이로구나”
“북한에서는 생일상을 안 차려요?”
“생일상? 우리 아바이수령님두 현지 지도하시느라 생일을 안 챙기는데, 우리 같은 인민이 생일상을 차련?”
“옴마야, *국이 지놈아는 그게 말이라고 지껄이니? 생일상을 안차리긴 왜 안차려! 저 눔 농담하는 기다.”
“우리는 말이디, 인민을 위해서 복무하는데 생일이 있간? 동갑이 말해 보라.”
“그티, 우리는 그딴게 업서. 헤헤 그거이 넝이구, 생일이 없긴 왜 없간? 있디. 긴데 이거보라. 팝이 좀 다르지 안난?”
아내가 *국이형 생일이라고 찰밥을 했다. 팥을 넣어서 밥의 색도 붉으스름하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거창에서는 이렇게 생일밥을 한다고 아내는 말한다. 그 형제들도 이렇게 어릴때 먹었다고 하니, 적어도 거창 처가 식구들의 생일문화임은 틀림없다.
신기해 하는 윗동네 분들을 보며 결혼 후 첫 생일날이 떠올랐다. 찰지고 윤기가 나는 붉으스름한 팥밥을 생일밥이라고 처음으로 받은 날. 나 또한 저런 반응을 했겠지! 맛은 또 어떤가? 짭조름한 소금기가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접한 나, 그리고 오늘 그들! 그 표정은 새로운 것에 대한 당황함도, 황당함도 아니다. 내 기억으로는 신기함이었던 것 같다.
“저는 서울사람이라 생일날이면 할머니가 하얀 쌀밥에 미역국, 잡채, 불고기 이렇게 해 주셨는데, 결혼하고 생일문화가 바뀌었습니다. 형님들은 북한에서 생일날 어떻게 드셨어요?”
“우리넌 생일날 이팝에 고깃국을 차리디! 이케 미역국 있디 안난? 미역국언 수유하는 산모들이 먹는 것이디!”
“우리도 출산하면 산모들이 먹는데, 생일날 미역국을 안 먹어요?”
“개네가 출산했넌? 지들이 뭐 고생한게 있다고 미역국을 먹넌?”
“생일날엔 기냥 모여서 밥 한끼 하넌 것이디! 이팝에 고깃국, 이거이 수령님이 인민들에게 약속한 것 아넌? 긴데 북한이 어떤? 형편없디! 북한의 가족들 생각하먼 맘이 힘들어! 나는 이케 와서 잘 먹는데, 내 안해와 딸얼 생각하먼 눈물이 나! 기래서 북한이 망해야 하는 기야. 기래야 딸을 데려오디!”
*국이 형의 급발진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김일성이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말, 이팝에 고깃국! 항일투쟁과 해방, 그리고 전쟁이 지난 후 북한의 재건시기, 1962년에 김일성이 인민들에게 약속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 일가 3대에 걸쳐 선대의 유언이라 생각하고 국가적 목표로 삼았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풍요로움을 맛 보지 못했다.
풍요로움은 커녕 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 호명될 정도의 혹독한 시절을 지나 왔고, UN산하 5개 국제기구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19년의 북한 주민의 47.6%가 만성적인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 수치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국이형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적막이 흐를때면 느껴지는 고향의 가족을 향한 마음. 어쩌다 보니 오늘 *국이형의 생일파티를 하듯, 그 어쩌다가 *국이형의 가족들과 생일상을 같이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 와서 이팝에 고깃국을 먹던, 거창식 팥찰밥에 미역국을 먹던, 그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 설겆이는 누가?
오늘의 특별요리는 굴보쌈이다. 11월 초, 굴도 제철이라 마침 보쌈집에서 판매가 시작되었다. 굴철에 태어나서 그럴까? 생굴은 *국이형의 최애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초기정착기간이 끝나갈 무렵 여름의 시기에 들어설때 *국이형은 생굴이 먹고 싶어 마트에서 봉지굴을 샀다. 그리고 노로바이러스로 죽다 살아났다고 한다. 나중에 이 말을 들었을때, 언젠가는 꼭 굴파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최사장, 정목사 보라! 어케 내가 굴을 돟아하는 것을 알아가디구! 오늘 이케 준비했지 안난? 좀 배워 보라!”
“최사장의 생일이 5월, 날 좋을때지요? 내년 생일때도 이렇게 만납시다.”
“좋슴다.”
최사장도 기분이 좋은가보다. 어려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모인 아랫동네 사람들에게 술술 해 주고 있다. 평소때의 최사장이 아니다. 그녀의 어려웠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론 깜짝 놀라기도 하고, 정말 사실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위로하기도 한다. 한참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또 먹으며, 이야기하며, 상이 몇 번을 치우고, 차리고.
“제가 중간 설거지 좀 할께요. 그릇 좀 내와요!”
“정목사, 세대주가 앉아야지 쟤들도 편한. 부엌에 오는건 아니지”
“최사장,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집에서 가정교회를 하면 주로 남자들이 설거지를 해요!”
“아우님, 설거지는 최사장에게 맡기구 이리 오라! 제수씨 세대주가 부엌에 있으면 오캅니까?”
“우린 남자들이 설거지를 해요?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지 않나요?”
“안하디! 기래두 요즘 새세대들은 돔 할기야! 하디만, 우리 세대는 안했디! 북한은 여성이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라고 말은 하디만, 실디로는 그렇티 않아! 가부장적이디! 기업소에서 일 끝나고 내가 집에 와야 안해하고 자석이 숟가락을 들디!”
*철이형의 설명을 한참 듣고 있는데, 최사장이 내손의 수세미를 낙아채 간다. 내가 없어도 이야기꽃이 피었다고 말해도 최사장을 한사코 자신이 설거지를 한다고 한다. 그녀의 빠른 손놀림은 그렇게 하는것이 자신에게 편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럼, 내가 그릇 놔둘 자리를 아니, 행구는 것은 제가 할께요!”
“오마, 행구는 솜씨가 제법이네!”
“자주 한다니까요! 둘이 하니까 확실히 빠르죠?”
“자, 여러분! 최사장이 설거지 다 했습니다. 수고한 최사장에게 박수!” 짝짝짝.
“내가 뭐 한게 있간! 목사님이 다 했지! 목사님에게도 박수!”짝짝짝.
설겆이도 같이 하면 이렇게 좋은데, 남여가 무엇이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무엇이냐! 그냥 같이 하면 박수도 받을텐데!
# 짜개바지 친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오랜만에 아우님덜을 만나니 시간이 이케 가는둘도 몰랐네! 내일을 위해 이데 일나야디! 정목사, 제수씨, 오늘 고생 많았서. 갑자기 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준비도 해두구. 오늘 너무 고마워!”
“형님, 어쩌다가 생일파티를 했지만 저희도 즐거웠어요. 이렇게라도 해야 모이지! 다음 생일 누구야! 그때도 이 멤버, 리멤버?” 하하하
“리멤버가 뭐간?”
“*철이형 다음에도 이렇게 같이 보자는 거예요!”
“기래? 거 됴은 말이구나!”
“아우님덜, 나중 통일이 되먼 내 핑앙에서 거하게 살게! 있디, 내 짜개바디 틴구가 옥류관 부지배인이야, 옥류관 알디? 내 죽마고우디!”
짜개바지 친구는 우리말로 베프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말로는 *알친구, 소꿉친구이다.
“좋습니다. 형님, 오늘 모인 우리가 다 기억할 거예요. 꼭 통일이 되면 가족들 모두 같이 옥류관에 가자요!”
“그러자요!”하하하
앞에 앉은 이들이 짜개바지 친구를 만나는 날이 과연 올 수나 있을까? 통일이 언제 올런지는 기약이 없다. 남북교류라도 되면 좋으련만, 이 땅에 많은 이산가족들이 서로의 짜개바지 친구를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한국에 들어온 나이로 영살, 네살, 일곱살인, *철이 형, *국이형, 최사장, 그때까지 우리가 짜개바지 친구가 되어 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