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먹거리 여행도 있고 역사탐방도 있고 단순히 관광지 여행도 있습니다. 오래 전 베트남 패키지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몇 번 해외여행을 한 중에 유독 베트남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은 유별난 관광지 여행도 좋았지만 현지 안내자를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관광지보다 오히려 안내자의 방문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저의 선입관도 바꿀 수 있었고 모르고 있던 사실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낯선 곳을 무작정 여행한다는 것이 더구나 해외일 경우 안전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그럴 때 몇 사람이 모여 패키지 여행을 하면 한결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여행 안내자가 따릅니다. 그리고 그의 사전설명이 여행에 매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건성으로 풍경에 탄성만 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유익한 정보를 얻게 되며 보는 대상에 대한 지식도 얻게 됩니다. 단순 구경이 아니라 교양도 쌓게 됩니다. 관광도 하고 지식도 얻습니다. 일석이조지요. 그 때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여행 안내자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참으로 비용이 아깝지 않도록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음을 기억합니다. 물론 안내해주는 사람도 각양각색인 줄 압니다. 그만한 현지 지식을 갖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단순히 길 안내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안내자는 풍경에 역사를 담아줍니다.
폴란드, 잘 아는 대로 2차세계대전 때 초기부터 고난을 당했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습니다. 소위 홀로코스트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처형을 당했던 곳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고 그곳까지 끌려들 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을 마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얼마나 기막혔을까요? 그 탄식과 고통의 소리들이 벽마다 새겨져 있을 듯합니다. 더구나 쌓여있는 신발들이 여전히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야 깨끗이 정돈해두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어수선했을까 싶습니다. 그곳을 관광한다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죄스럽습니다.
그래서 ‘벤지’는 생각합니다. 그 때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미안해 합니다. 너무 불공평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어쩌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일행들의 마음을 불편하게도 합니다. 안내자의 역할이 대단합니다. 불편한 분위기를 빨리 정리해줍니다. 벤지의 마음도 읽어주면서 일행들의 마음도 품어줍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경우 감정도 여러 가지로 생깁니다. 그것을 일일이 상대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내자는 일단 그 모임을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며칠의 동행하는 여행이지만 모두가 시간과 돈을 투자한 일입니다. 불쾌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분 좋은 여행을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데이비드’와 벤지는 동갑내기 사촌지간입니다.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니 자랄 때와 달라집니다. 각자의 삶과 인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가족이 달리게 되면 또 달라지지요. 직업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그래서 만나는 시간도 드물어집니다. 만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일도 있고 가족도 있고 그래서 자연히 좀 멀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있다 해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남겨놓은 고향방문 경비로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의 유언이기도 하니 지켜야지요. 어렵게 두 사촌이 시간을 만들어 함께 할머니 사시던 곳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아마도 경비절감을 위해서 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패키지 여행으로 몇 사람의 일행이 있습니다. 흔히 하듯 폴란드 공항에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노부부와 중년의 이혼녀, 휴식기간의 여행자 그리고 안내자가 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와 벤지는 중간에 할머니 댁으로 가야 하니 일행에서 빠지기로 하였습니다. 사전 모임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게 된 것입니다. 모여서 잠간의 소개도 있었지만 아직 모두가 서먹합니다. 그 일행의 목적은 하나, 여행입니다. 소형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가까이 앉아 이야기도 나눕니다. 말이나 행동들이 때로는 서로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안내자는 그런 것도 조절해야 합니다.
데이비드와 벤지, 친구처럼 자란 사촌지간입니다. 어른이 되어 뜸하기는 했어도 그 친분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아주 딴판입니다. 벤지는 소위 다혈질 기질인 모양입니다. 중구난방에 말도 나오는 대로 쏟아붓습니다. 꺼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반면 데이비드는 비교적 소심하고 다른 사람을 챙겨주며 조용한 편입니다. 데이비드는 결혼하여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벤지는 뚜렷하게 직업도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둘이 만나기 반년 전에 벤지가 자살까지 기도했었다니 의아합니다. 왜? 겉은 활달한 듯하지만 숨겨진 아픔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람의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 상처를 여전히 지니고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두 사람의 짧은 여행기입니다. 영화 ‘리얼 페인’(A REAL PAIN)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