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기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 : 8-10)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휴대폰, 지갑, 중요한 서류... 처음엔 당황하고, 그러다 필사적으로 찾게 됩니다. 어떤 것은 찾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어떨까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여인은 ‘잃어버린 드라크마 한 닢’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집습니다. 이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1. 드라크마는 누구인가?
드라크마는 단순한 동전이 아닙니다. 당시 결혼 예물로 사용되었으며, 남편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그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관계의 상실을 뜻했습니다.
드라크마는 동전입니다. 영어 성경은 coin으로 번역합니다.
드라크마는 현재로 환산하면 한 개에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
지금은 결혼할 때 결혼 예물로 반지를 교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는 결혼 예물로 드라크마라는 동전 10개를 묶어 한 꾸러미로 만들어서 예물로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크마 묶음은 잘 팔지 않았고 늘 소중히 여겼습니다.
- 10개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그것은 남편에 대한 불경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 어떤 경우는 10개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이혼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던 것이 10드라크마 묶음입니다.
- 또한 빚을 갚을 때도 열 드라크마만큼은 차압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묶여있던 드라크마를 보는데 그 순간 드라크마 묶음이 풀리면서 드라크마가 흩어졌습니다.
당시의 방들은 창이 없었습니다.
부자들은 창이 있는 집에 살았지만, 서민들은 창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작은 창이 있는 그래서 대낮에도 어두운 집에 살았습니다.
대낮에도 등불이 없으면 입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어두운 토굴 같은 곳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드라크마 묶음의 끈이 끊어졌고 드라크마가 흩어졌습니다.
기름도 귀했던 시대에 여인은 등불을 켜고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한 개 두 개 찾아가며 또 찾아서 9개는 찾았는데 마지막 10개째 드라크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 어딘가 있을 테니 중에 찾지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 드라크마는 곧 죽은 남편이었고, 사랑이고 삶의 의미이었습니다. 당장 찾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이 드라크마는 누구를 의미할까요? 교회를 떠난 가족, 신앙을 잃은 친구, 그리고 어쩌면 방황하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찾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2. 끈질기게 찾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본문에서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등불을 켠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비춥니다. (시 119:105)
집을 쓴다 → 죄와 불순종의 먼지를 털어내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는다 →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으십니다.
우리는 때로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찾으실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한 사람, 바로 나에게 향해 있습니다.
이 여인은 계속 찾았고 마침내 찾았습니다.
그런 후에 이 여인은 친구들을 초대합니다.
너무 기뻐서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릴
뻔했던 드라크마를 찾은 것에 대하여 기뻐하며 친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삽니다. 차를 삽니다. 수다를 떱니다. 행복해하면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돈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여인입니다.
드라크마 한 개 찾았다고 더 많은 돈을 들여 이웃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돈 가치를 가지고 풀어나가고 있지 않으십니다.
잃었다는 것, 찾도록 찾았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찾았고 그게 기뻐서 이웃을
불러 잔치했다는 것으로 이어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눅 15: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에 나오는 벗과 이웃은 모두 여성 명사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다시 표현하면 9절의 잔치는 여자들만의 잔치라는 뜻입니다.
자, 당시에 여자만의 잔치가 가능했을까?
그런데 설교자 누가는 여자들만의 잔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다른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여인의 복음’입니다.
당시 소외되었던, 사람 취급 안 하던 여자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여자들만의 잔치!’를 누가복음 15장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뿐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에는 유독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1장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2장에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여자 예언자 안나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7장에 나인성 과부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8장에 혈루증 앓던 여인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 오늘 15장에 여인들의 잔치를 적고
- 18장에 불의한 재판관을 설득하는 과부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 21장에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여인의 이야기는 물론
- 23장에는 예수님 돌아가신 후에 비겁한 남자들이 다 물러간 다음에
그 흉악한 십자가를 지키고 있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인하여 누가복음은 ‘여인의 복음’ 이라고 일컬어집니다.
3.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삶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삶에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 안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 찾기
혹시 우리 가족 중 믿음에서 멀어진 사람은 없습니까?
가정 예배, 기도 모임을 통해 다시 신앙의 자리로 초대합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 찾기
신앙이 식어진 지체를 찾아 따뜻한 관심을 보입시다.
연락 한 통, 함께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인도합시다.
내 안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 찾기
신앙의 첫사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성경 읽기와 기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은 친구들을 불러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올 때,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때 기쁨의 잔치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도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하나님의 사명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누구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나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가요?
한 영혼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하고 있습니다.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이 그 드라크마를 찾고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돌아와 함께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기뻐하시는데 그 돌아와야 할 죄인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
그렇다면 돌아와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요? 회개해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자들입니다.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들! 여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전통적인 유대인입니다.
[눅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기득권을 가지고 여자들을 무시하고, 약자를 무시하며 살던 사람들이 누구예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싫은 사람들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조차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여자들만의 잔치를
언급하십니다. 여자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니 무시하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하시지만, 동시에 너희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오늘 나는 죄인이 맞습니다.
내가 소외시키고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자들, 죄인들, 세리들, 약한 자들, 믿음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
내가 무시하려는 그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계시고, 동시에 무시하며 사는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심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