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9주년 특별영상 : 행동하는 지성, 저항시인 이육사 이야기
낭만을 담아 독립을 노래한 민족시인 이육사.
그는 사실 시인이기 이전에 17번이나 옥고를 치른 독립 투사였습니다.
이육사는 최초의 항일 의병 발상지 경북 안동 태생이고, 조선 선비의 상징인 퇴계 이황의 자손이기도 합니다.
이육사와 형제들은 그 의병 정신과 선비 정신으로부터 ‘행동과 실천’이란 독립 정신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대구 조선은행 폭파 의거가 발생한 1927년, 아무 관련이 없던 그는 형제들과 함께 일제에 체포되었습니다.
모진 고문에 시달린 옥중생활 동안 불린 ‘수인번호 264’를 이름으로 쓰며 그는 본격적인 항일투쟁의 시작을 알립니다.
1930년대 이봉창, 윤봉길 의거가 잇달아 벌어지며 독립운동은 무장투쟁의 노선으로 접어들게 됐고 이육사는 이 흐름에 합류했습니다.
의열단이 운영하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한 이육사는 사격, 변장, 암살법 등을 배워
국내외를 잠입하며 목숨 건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집요한 감시로 체포와 수감생활이 반복됐고, 무력 투쟁의 한계를 깨달은 그는 민족의 영혼을 사로잡아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행동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시’였습니다.
서른을 넘겨 등단한 이육사는 아름다운 서정과 강인한 의지가 담긴 시를 통해 암울한 현실 속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랜 옥고를 치르며 건강이 악화된 와중에도 국내 무력 투쟁을 준비하다 또다시 체포된 이육사는 중국으로 압송되어 결국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는 생전 시집 한 권을 내지 못한 시인이었습니다.
많은 문학가들이 친일로 돌아선 현실에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끝까지 펜으로 저항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다던 이육사, 그가 옥중에서 남긴 마지막 시를 읽어보며
이육사가 꿈꾼 독립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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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s://youtu.be/gCcfvA4fGKY?si=A0Qun4yi1JemJ6n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