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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목요일 맑음.
우리는 지금 타직의 후잔에 들어와 있다. 후잔은 북부 타직의 중심지로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또한 타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2300년 이상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곳이다. 대왕이 그리스인들을 데려다가 이곳에 기원전 329년에 식민지 도시를 건설했단다. 페르가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13세기 초에 몽골이 후잔을 망각의 도시로 밀어버리기 전에 이곳은 크게 번성하였으며 그 풍요로움으로 궁전과 모스크, 사원, 성당 등을 짓게 된다. 후잔 같은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상당기간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되어 있었으며 현재 숱한 유물들도 페르시아 왕조 즉 이란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왕조 내내 유명한 과학자, 시인 등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1939년까지 후잔으로 불리다가 레니나바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1992년 유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기분 좋게 아침을 맞는다. 기온도 적당하고 공기도 좋다. 태양도 밝게 뜬다. 맑은 날이다. 아침 일직 6시에 후잔 시내를 구경하러 나왔다. 5분정도 걸어가니 Kamoli 극장이 나온다. 주변은 거목으로 이루어진 가로수와 잔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 오래된 가로수는 도시의 역사를 말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광장 중앙에는 세워진 동상과 함께 분수대도 있다. 꼭 불상 같은 느낌의 동상이다. 극장의 기둥과 정면에 붙은 부조가 인상적이다. 타직의 모자이크 부조는 볼 만 하다. 정치적 의도는 보이지만 그 섬세함과 짜임새가 예술적이다. 맞은편에는 성채가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원 이름은 소그드 주 역사박물관이다.
타직 사람들은 카작 사람들과 좀 달라 보인다. 카작인들은 몽골계와 튀르크계가 섞인 민족이라 한국 사람과 비슷해 보였는데, 타직인들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과 함께 페르시아계(이란계)이다. 물론 1500여년을 지나오며 튀르크계 와 혼혈이 되긴 했지만 확실히 카작 사람들과는 다른 서양 느낌이 나는 사람들이다. 타직족의 조상은 박트리아인과 소그드인으로 본다. ‘타지크’란 본래 아랍의 일부 부족을 일컫는 중세 페르시아어다. 7~8세기경 아시아 튀르크 인들이 이들을 타지크라고 불렀다. 타직에는 2개의 주와 1개의 자치주가 있는데 북쪽 소그드주의 중심도시가 바로 후잔이다. 소그드는 이 지역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아 강 상류의 중간을 동서로 흐르는 제르파산 강 유역의 옛 이름이다. 10세기 아라비아의 지리학자 무가디스는 소그드를 ‘신이 만들어 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불렀다. 현재 우즈벡에 대부분 속해 있고 일부 지역이 타직에 속해 있다. 다리우스 대제 때에 새겨진 비문(기원전 519년)에도 언급되는 소그드인들은 파미르 산맥 서쪽 건조지대, 즉 북쪽의 시르다리아 강과 남쪽의 아무다리아 강 사이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들에 살던 정착민들로 농사를 짓기도 하고 수공업, 상업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멀리 중국이나 인도 혹은 서 아시아 각지로 나가서 국제무역에 종사했다. 1세기 당시에는 소그드인들은 쿠샨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에 들어오면서 주변 정세가 혼란스러움을 틈타 국제무역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소그드 상인들이다. 장사라고 하면 다른 민족에 뒤지지 않는 중국인의 눈에도 이 소그드인의 상술은 거의 천부적으로 보였다. ‘신당서’라는 역사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소그드인을 표현하고 있단다. ‘아이가 태어나면 사탕을 물리고 손에는 아교를 잡게 하는데, 이유인즉 그가 커서 달콤한 말을 하게하고 돈을 손에 쥐면 딱 달라붙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법을 익히고 장사에 능하며 이익을 추구한다. 남자가 나이 스물이면 이웃나라로 가는데,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아니 가는 곳이 없다.’ 그러다보니 소그드어는 7~8세기, 중앙아시아의 국제 통용어가 되었다. 소그드는 타직 민족의 조상들이다. 소그드라는 단어를 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은 새로 만들어져 깔끔하다. 안에는 연대기적 순서로 이 부근의 역사적 사건이나 지배형태가 지도를 들어서 유적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지역을 살던 소그드인들을 비롯해 알렉산더의 침입에 의한 변화를 보여준다. 1층에 알렉산더의 벽화로 가득차 있다. 알렉산더의 출생, 후잔을 공격하는 장면, 알렉산더의 죽음을 담고 있다. 그가 죽은 후 이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국(기원전 312~64)의 통치하에 들어가고, 고대 이란족 유목민들의 국가인 파르티야 왕국(기원전 247~226)이 또 이어진다. 그 후에는 이란계 쿠샨 왕조에 의해, 간다라 미술로 유명한 쿠샨 왕조 이후에는 돌궐족 즉 아랍 이슬람이 들어온다. 이런 흐름들을 잘 보관해 두었다. 그 후 사만 왕조, 카라한조, 셀주크, 카라키타이, 몽골, 티무르, 부하라한국, 러시아 와 소련의 지배를 거쳐 왔다는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안에서 사진 촬영은 조심해야한다. 1997년 후잔에서 우즈벡과 타직 정부 간에 교전이 있었다. 그 당시 이성에서 300명이 살해당했고 현재 당시 사건 발생 장소인 후잔 성채에는 군사시설이 들어가 있어 군사 시설을 촬영할 경우 카메라를 압수당할 수 있단다. 소그드 주 역사박물관 입구 옆의 우체국 건물 쪽에는 늑대 젖을 먹고 있는 쌍둥이 아이의 조형물이 있다. 로마 건국 신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왜 이곳에 만들어져 있을까? 로마와 후잔의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으나 알 수가 없다. 강 방향으로 걸어간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데 어린이는 없고 놀이기구를 정리하는 어른만 보인다. 강에서니 6명의 영웅들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다. 차림새로 보아 남자가 5명, 여자가 1명인데 더 이상 알 수 없다. 5세기, 7세기, 8세기, 근대 인물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중에 루다키라는 인물과 이븐 시노는 알 것 같다. 자연과학자 이자 철학자인 이븐시노는 중세 이슬람에서 매우 유명한 학자다. 중앙아시아 태생으로 워낙 많은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란에서도, 우즈벡에이나 키르키즈에서도 자기네 위인이라고 하고 있단다.
뜻밖에 강을 보니 놀랍다. 이렇게 건조한 지역에 이런 강이 흐르다니, 후잔의 도시의 가치를 강을 보니 알 것 같다. 이 강은 시르다리오 강인데 넓고 수량이 많다. 시르다리오라는 말은 ‘잔잔히 흐르는, 유유히 흘러가는‘ 뜻이란다. 정말 소리 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다리가 하나 있고 건너편에는 초록색 나무들과 건물들이 보인다. 뒤에는 벌거숭이 날카로운 산이 명품처럼 버티고 있다. 말 탄 동상도 어렴풋이 보인다. 이 말탄 동상이 바로 ’테무르 말리크‘라는 12세기 초 후잔의 통치자였다. 아미르 티무르와는 상관이 없다. 테무르 말리크는 징기스칸의 몽골군대가 쳐들어오자 열심히 저항했다. 그러나 수적으로 몽골군대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결국 1000여명에 가까운 전사들을 이끌고 시르다리오 강에 있는 섬에 들어가 항전했다. 그러나 섬에 정착한 후 보급의 문제와 전사자의 발생으로 항전을 계속하기 어려워지자 호라즘으로 이동해 전투를 계속 이어갔다. 그들은 호라즘에서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까지 가서 몽골군과 전투를 치뤘다. 1231년 그의 사랑하던 장수 잘롤릿딘이 살해당하자 말리크는 자신의 국가로 돌아가 몽골군과의 전투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거지 옷을 입고 많은 국가들을 돌아다녀 후잔에 왔다. 후잔에 돌아온 말리크는 잔인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자신은 평생을 바쳐 몽골군에 대항했는데, 자신의 아들들은 몽골인들 아래서 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들이 매국노로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한 말리크는 분노하여 사람들을 모아 저항하려 했으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발칸 유럽에서 오스만 튀르크라면 이를 가는 것처럼 중앙아시아에서 징기스칸이라면 치를 떤단다. 동상이 도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도시 구석 언덕에 있어서 그의 일대기를 생각하면 좀 쓸쓸해 보인다. 어제 우리가 묵으려 했던 호텔 Leninabad 도 그런대로 멋있어 보이는 것이 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기 대문 인 것 같다. 강 위에 놓인 다리 아래로 계속 걸어가니 대통령 사진이 크게 걸려있는 주정부청사가 나온다. 그 앞에는 넓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청소하는 아주머니만 보인다. 금빛으로 장식된 휘장 타워가 있다. 오른쪽 방향을 틀어 큰 길을 따라 걸어간다. 건너편에는 삼성전자 매장 간판이 있다. 스마트폰 글씨가 보이니 반갑다. 이곳에도 스마트 폰이 사용되나보다. 그 옆에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를 타려는 중년 남자들 14명 정도가 제비처럼 앉아있다. 노란색 건물을 배경으로 뭔가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출근하는 사람들 인가보다. 이 큰 거리가 이 도시의 중심이 되는 레닌 스트리트다. 우리 왼편으로는 예술적인 건물이 장미정원을 앞두고 있다. 시 도서관 건물이다. 작은 공원에는 유명인사들의 흉상이 양 옆에 10여 명 씩 2줄을 만들고 있다.
좀 더 걸어가니 책을 들고 있는 앉아있는 동상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다. Kamal Khojandi 라는 인물이다. 페르시아의 14세기에 활약한자연과학자이자 시인으로 이 곳 후잔에서 출생하여 이란 Tabriz에서 살다 죽어 그의 무덤은 이란 Tabriz에 있다. 그래서 이란에서도 위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워낙 이 곳 저 곳을 유랑해서 모두 자기네 사람이라고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커다란 사거리가 나온다. 건너편 건물에는 이곳 대통령 얼굴이 건물 전체를 가릴 정도로 크게 붙어있다. 대통령은 1952년 생으로 1990년도에 당선되어 장기 집권하는 Rahmon이다. 길가에는 난(빵)을 파는 아주머니 서 너 명이 줄지어 앉아있다. 우리는 지도를 보고 재래시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루타키 거리를 다라 계속 걸어가니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길 건너편에는 전쟁 기념비가 두 기둥 세워져 있다. 광장 오른편은 시장이고 왼편은 모스크가 몇 개 있다. 쉐이크 마살 아드딘 묘소도 있다. 소박하고 비교적 현대적인 21m 높이의 귀여운 미나레와 모스크는 귀엽고 예쁜 메드라사(이슬람 학교), 규모는 작지만 예쁘다. 공사 중 인 모스크도 있다. 모스크는 별 관심이 없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판치샨베 시장이다. 우리말로는 목요시장이다. 두산베는 월요일이라는 뜻이란다. 도시 이름이 좀 특이하다. 목요일에 가장 크게 열려 붙여진 이름이란다. 마침 오늘이 목요일이다. 시장 입구는 핑크빛과 흰색으로 예쁘다. 시장 건물에 들어서니 질서정연하게 장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들도 많다. 건과류 와 과일이 많다. 포도, 사과, 복숭아, 빵, 꿀, 바나나, 토마토, 그리고 다양한 채소 종류다. 시장 아줌마들의 옷차림이 특색이 있고 인상적이다. 화려한 무늬의 원피스와 머리에 수건을 모두 했다. 주요 시장 건물을 통과해 뒤로 가니 포도와 토마토가 종류별로 크기별로 철철 넘친다. 우리는 꿀도 사고 견과류도 종류별로 사고 토마토, 포도를 샀다.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꼬치구이를 먹기로 했다. 아침 식사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꼬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먼저 먹던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반겨준다. 먹고 있던 빵과 차를 나누어 준다. 튀김도 주신다. 하얀 쨈 같은 것을 찍어 먹는데 달콤하고 맛있다. 하얀 엿을 녹인 것 같다. 니쇼르란다. 시장에서 커다란 다라이에 가득 담아 팔고 있다. 주문한 꼬치구이를 먹는데 너무 맛있다. 홍차와 남기고 가신 빵과 더불어 배불리 먹었다. 아주머니와 꼬치를 굽는 아저씨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다. 볼거리 들을 거리와 냄새로 다가 오는 전형적인 중앙아시아의 전통시장이다. 1층은 바닥 전체가 1차 산업 시장이고 시장 밖에서 올라가는 2층은 전자제품 공산품등 2차 산업 생산품이다. 2cm에서 내려다보며 직은 사진이 멋있다는데 놓치고 말았다. 타직의 영화 Sokout(소쿠드)- The Silence에서 나오는시장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란다.
다시 시장 광장에 나오니 모르수라는 레몬차 파는 통이 보인다(터키의 크바스). 유리잔 한 컵에 0.25를 주고 마시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배탈이 날까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 어깨가 무겁도록 물건을 사서 서둘러 숙소로 걸어왔다. 짐을 정리하고 메론을 깎아먹고 토마토와 포도를 씻어서 넣고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숙소를 나왔다. 이제는 두산베를 향해서 간다.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간다. 버스정류장이라기보다는 두산베나 인근으로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택시 영업을 하는 조그만 공간이다. 이곳은 승용차보다 지프스타일의 차량이 더 많다. 도착하니 삐끼들이 달라붙는다. 손님을 차지하려는 기사들이 많다. 이럴 때는 손님들이 유리하다. 가격흥정에 차량도 선택할 수 있다. 보통 두산베까지 150소마니를 부른다. (두당 37500원이다)나이가 좀 지긋한 인상 좋은 아저씨와 흥정을 해서 130소마니에 가기로 하고 차량을 구경하러갔다. 영어가 안 되니 수첩에 금액을 써서 흥정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청년들이 영어로 흥정을 해 온다. 자기들은 120소마니에 가는데 함께 가잔다. (약 3만원) 결국 함께 가게 되었다. 차는 우리나라 쌍룡의 무쏘 7인승이다.
아내와 나는 맨 뒤 짐칸을 개조해 만든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가기로 했다. 총각들 4명과 기사를 포함해 7명이 간다. 짐은 지붕위에 방수천을 씌워 튼튼하게 올려져 있다. 우리 짐은 작아서 그냥 옆에 놓아도 넓었다. 그나마 영어가 좀 통하는 젊은이가 있어서 답답하지 않았다. 출발시간이 오전 10시였다. 차량 무쏘를 칭찬하며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후잔 시내를 벗어나니 뜻밖에 논이 나온다. 벼농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이번 여행 중 처음 보는 광경이다. 사르다리오 강물을 끌어들여 쉽게 지을 수 있단다. 30분 정도를 달리니 넓고 건조한 땅이 펼쳐지는데 주로 목화밭이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춘다. 길가에서 파는 꿀을 사기위해서다. 이곳 꿀이 품질이 좋고 값도 저렴하단다. 총각들이 벌집 채 잘려진 꿀을 맛보라고 갖다 준다. 밀랍과 함께 꿀을 먹으니 맛이 깨끗하고 무척 달다. 우리도 씻어온 포도를 꺼내 듬뿍 앞으로 전달했다. 소풍가는 기분이다.
11시 정도 되었는데 또 차를 세운다. 이번에는 길옆에 천막을 치고 많은 사람들이 메론과 수박을 잔뜩 쌓아 놓고 팔고 있다. 일종에 소매도 하지만 도매상 같다. 이것이 두산베에 가면 여기보다 가격이 2~3배 뛴단다. 총각들을 따라 차에서 내려 구경을 했다. 메론을 거의 10통을 사서 자루에 담는다. 메론 1통은 선물이라며 우리에게 준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메론 자루를 차 지붕위에 조심스럽게 단단히 줄로 묶는다. 그때부터 내 자리에는 메론 하나가 차가 흔들리는 대로 왔다 갔다 한다. 차는 황량하고 건조하고 뜨거운 벌판을 달린다. 꼭 미국의 데쓰벨리 같은 뜨거움과 황량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두 번째 톨게이트가 나오는데 경찰 둘이 그냥 조폭같이 돈을 뜯는 분위기다. 이리 뜯기고 저리 경비가 들고 기사아저씨는 도대체 얼마가 남을까? 낡은 공장도 보인다. 조금 달리다가 길에서 단속하는 경찰 서 너 명이 또 차를 세운다. 기사는 또 돈을 챙겨서 갖다 주고 온다. 불쌍해 보인다. 저절로 입에서 욕이 나온다. 두 갈레 길이 나와 급하게 커브를 튼다. 흙벽돌로 지은 집이 몇 채 나온다. 두산베 까지 22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12시 10분에 처음 만나는 주유소에서 섰다. 산악지역이라 추운지 주유소 총각은 털옷을 입고 있다. 멀리 산에는 눈이 보인다. 이제 산을 넘어가기 시작한다. 톨게이트가 또 있다. 밀 수확기인지 주변 밀밭에서는 한창 밀을 수확하고 있다. 산으로 접어드니 시원한 계곡물이 흐른다. 작은 식당에서 차가 멈추었다. 세차하는 차들이 보인다. 우리 차는 물건만 건네주고 다시 달려간다. 가방에서 토마토를 하나씩 꺼내 씹으니 갈증도 나지 않고 좋다. 두산베까지 168kmfksms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부터는 비포장 도로다. 도로가 험하지만 우리차는 4륜구동이라 걱정이 없단다. 잠시 포장도로가 나오더니 이제 평지로 내려간다. 검문소가 또 있다. 모두 내려서 신분증을 보여주란다. 여권을 들고 내린다. 차량도 세밀하게 검사하고 신분증검사도 한다. 동족지역 내전으로 검열이 심해졌단다. 별 탈 없이 검문이 끝나고 또 달려간다. 두산베가지 130km 남았다. 또 차는 힘겹게 산을 올라간다.
험한 산길을 꾸역꾸역 올라간다. 차 사고가 나서 차들이 엉켜있다. 겨우 비켜서 빠져나온다. 석탄채굴 작업장도 있다. 초록색 주변 언덕위로 흰 눈이 보인다. 먼지 나고 울퉁불퉁한 고갯길이 참 힘들게 한다. 엄청 높이 올라간다. 엔진 과열로 본넷 뚜껑을 열고 물을 부으며 열을 식히는 차량도 있다. 벼랑길을 비틀비틀 꾸역꾸역 올라가는데, 내려가는 차는 참 위험해 보인다. 벼랑길 아래를 보니 끝없는 급경사의 벼랑이다. 겨울에는 어떻게 이 길을 넘어 다닐까? 바짝 말라 먼지가 퍽퍽 일어나는 흙속에 바퀴들이 빠진다.
이제는 터널이 앞에 버티고 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55분이다. 터널은 최악이다. 컴컴해서 라이트를 켜고 간다. 공사 중이다. 가끔 백열전구가 켜있는 열악한 공사 현장이 터널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둠속에서 무언가 공사를 하는데 바닥이 온통 물바다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샌다. 작은 폭포같이 떨어진다. 막힌 샘이 터진 것 같다. 공사로 일어나는 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뿌리는 물이라고 하는데, 지하수가 터져 쏟아지는 물같다. 바닥은 물바다인데 깊이를 알 수 없으니 차들도 조심조심 기우뚱거리며 헤져간다. 차가 마주치면 비켜가기도 힘겹다. 4륜구동이 아니면 힘겹다. 왜 4륜구동 차량이 많이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험하고 높은 산을 넘어가려면 4륜구동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터널 길이가 5km 정도 되는 것 같다. 속도도 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어둠속에서 물을 헤치며 힘겹게 빠져나간다. 금방 무너져 버릴 것 같고, 차가 멈춰 설 것 같은 불안 속에 생명이 위협당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기다. 원래 이란이 뚫기를 시작했는데 워낙 난공사라 포기하고 중국이 다시 시도하고 있는 중이란다. 공사 중이라 중장비도 보이고 물을 퍼내는 모터 소리도 요란하다. 환풍구도 없이 공사 중이다. 교통체증에 비포장에 물 수렁에 엉망이다. 모든 공사를 완벽히 끝내서 도로를 개통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차가 다닐 수 있도록 해놓고 계속 공사 중이다. 터널을 겨우 빠져나왔다. 엄청 지루하고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나오니 오후 3시 25분이다. 터널에서의 30분 동안 멈추지 않고 빠져나오려고 사투를 벌인 것이다.
이제 길은 내려간다. 비록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찔한 벼랑길이지만 그래도 내려간다니 좀 마음이 놓인다. 경치는 멋있어 진다. 또 검문소가 나온다. 계곡물이 점점 많아진다. 작은 터널을 쉽게 통과한다. 차가 흙먼지로 엉망이다. 세차를 한다고 차를 세웠다. 계곡의 물을 끌어다가 길가에서 세차를 해주고 돈을 벌고 있다. 차를 세차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내려 냇가로 내려갔다. 아내는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길 건너편 민가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없다. 낯선 집 대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양만 몇 마리 보인다. 대문 옆에 화장실이 보여 급한 대로 들어가 해결을 한다. 사람들이 모두 일하러 가고 가축들만 남아있나 보다. 냇가로 다시 갔다. 사진도 찍고 경치도 구경하며 잠시 쉬었다. 우리 차는 다시 깨끗한 차가 되었다. 왜 4륜 무쏘 차량이 인기가 있는지 이 산맥을 넘어보니 알 것 같다. 기사는 도로가에 임시로 만들어진 기도처에서 두 손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다. 아마도 회교도인 것 같다. 차는 출발해서 힘 있게 내려간다. 돌 비석에 두산베 64km라고 적혀 있다. 탁하던 계곡물도 점점 깨끗해지고 초록색 나무도 보인다. 별장 같은 예쁜 집들과 휴양시설도 보인다. 리조트들이 보인다. 호수가 나타나더니 수영하는 꼬마들도 보인다. 톨게이트가 또 나온다. 이제는 제법 큰 나무들도 보인다. 아직 시내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작은 공터에서 차는 멈추었다. 여기가 두산베 정류장이란다. 공터에는 무쏘 차량들이 7~8대 서 있다. 다시 후잔으로 가려는 차들이다. 기사는 매일 이일을 반복한단다. 한 번 넘어오는데도 이렇게 오금이 저리고 무서운 길을 매일 다닌다니 대단하다.
일단 차에서 내리니 영어가 통하는 총각이 함께 두산베로 들어가잔다. 두산베에 있는 호텔 poytath를 가려고 말하니 그 호텔을 지나간단다. 예약이 되어있지 않으면 자기 아파트를 사용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해 온다. 하루에 30$로 아파트를 사용하라는 제안이 좋아 보여 일단 구경해 보고 결정하기로 승낙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아미르존이고 그의 형 알렉스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온단다. 형은 이곳 고등학교의 과학 선생이고 자기는 대학생이란다. 오후 5시다.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 7시간을 타고 넘어온 것이다.
잠시 후에 승용차가 한 대 들어온다. 형이란다. 인상이 귀공자 같이 생긴 형제간이다.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중요한 건물이 있을 때마다 설명을 해준다. 소모니에 동상, 대학, 도서관 병원 등, 드디어 아파트에 도착했다. 소련시정 지어진듯 한 아파트인데 시내 중심에 있어 좋았다. 키를 받고 가전제품 사용방법을 대충 알려준다. 천장이 높고 좀 낡은듯한데 모든 게 잘 갖추어져 있다. 금방 살다가 비운듯 한 온기가 있다. 2일을 머물기로 하고 300소모니(75,000원)를 주었다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간다.
드디어 타직의 수도 두산베에 도착한 것이다. 숙소도 보내주신 천사들 덕분에 쉽게 구해졌다.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해 보기로 했다. 시내로 걸어 나오니 깨끗한 건물이라기보다 좀 낡은듯 한 인상이고 거리에 사람도 적어 썰렁한 느낌이다. 새로 색칠한 관공서 앞에서는 경찰이 사진을 찍지 말란다. 오른쪽에 공원이 있고 공원 끝나는 건너편에는 소모니에 동상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그 뒤로 걸어가니 커다란 도서관 건물이 있는데 생각보다 크고 현대식 건물이다. 최근에 조성된 주변시설이다. 광장에 서니 그림자가 키보다 훨씬 길다. 공원 쪽에는 대통령궁이 보이고 엄청 높은 국기 대에 국기가 힘겹게 매달려있다. 바람이 좀 세게 불어야 제대로 문양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가 상징 형상이 있는 광장까지 갔다가 공원으로 돌아오니 분수가 나오고 루타키 동상이 있다.
해가 막 넘어가는 시간에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공원으로 나오는 것 같다. 모두 낯선 사람들이라 사람 같지도 않고 그냥 도시의 나무 같은 느낌이다. 오직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둘 뿐인 것 같은 이상한 도시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페스트 푸드점에 들어갔다. 썰렁한 분위기다. 준비는 완벽한데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햄버거 가게다. 상표는 영국 브랜드 같다. 통닭과 샤오르마 라는 샌드위치 종류를 사서 숙소로 왔다. 사온 것과 토마토에 꿀을 잔뜩 쳐서 식탁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넓은 아파트에 둘이 있으려니 좀 썰렁하고 무섭다. 심심해서 거실에 있는 TV를 켰다. 채널 20 방송에서 한국의 이재록 목사의 설교가 방송되고 있다. 참 신기했다. 회교도 사회에서 성경과 설교가 방송된다는 것이 뜻밖이다. 무척 피곤하다. 우즈벡 넘어갈 방법을 걱정하다가 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