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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81회>
견훤은 목숨을 걸고 출사표를 던지지만 때아닌 태풍과 비바람으로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고려의 왕건 역시 겨울비로 대군의 발목이 잡히는 사태가 벌어진다. 책사 최지몽이 예언한 남쪽의 귀인은 나타나지 않고 상황은 양쪽 모두에게 점점 꼬여만 가는데... 계속 운주로 향할것인지를 놓고 백제의 제장회의에서는 설전이 벌어지고 최승우와 금강, 박영규는 회군을 강력히 주장하지만 이번 기회에 후계문제를 마무리지으려는 신검은 결국 운주행을 결심한다. 한편, 남천호족 서목의 도움으로 고려는 물난리를 모면하고 나주전투당시의 전의성 성주 이치장군을 만나 금강을 무사히 건넌다. 운주로의 출병날, 견훤은 마차에 옮겨지고 오로지 옥좌만을 탐하는 신검형제들을 원망하는데...
씬 길
황톳길이다. 견훤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다. 장수들의 면면이 모두 보여진다. 바람은 극악스럽다. 수북한 낙엽무리들이 쉬임없이 밀려온다. 천둥 번개가 계속된다. 먹구름이 하늘 가득히 밀려가고 있다. 그런 하늘을 보며 뭔가 우울한 표정으로 지나쳐 가는 견훤들의 표정에서....
최승우 폐하, 날이 저물어 가고 있사옵니다. 오늘은 이만 군막을 세우고 군영에 드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래야겠네 그려. 아무래도 비가 쏟아질 모양일세. 날씨가 영 좋지를 않아.
종훈 그런 것 같사옵니다, 폐하. 아무래도 폭풍이 오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폭풍이라...? 이런.... 길을 떠나자마자 이게 무슨 난리인고...?
훈겸 폐하, 이런 습한 기운은 폐하의 병증에 참으로 나쁘옵니다. 어서 군영으로 드시어 온기를 쏘이시오소서.
견훤 허허... 아직 괜찮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게.
애술 폐하, 날이 저물고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군영을 세워야겠사옵니다.
신덕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해가 지면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사옵니다.
견훤 제장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리 하도록 하세.
신검 예, 폐하. 부장들은 들으라. 군막을 세워라.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할 것이다. 군막을 세워라.
최필 군막을 세워라. 부장들은 서둘러라.
김총 서둘러라.
그 부산함 모습들에서 디졸브되면...
씬 동 산야 (밤)
수많은 군막들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횃불들이 밝고 비가 쏟아지고 있다. 천둥 번개와 바람은 계속되고 있다. 엄청난 폭풍이다. 군막 사이 계곡으로 엄청난 물이 급류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가고 있다.
씬 동 견훤의 군막 안
견훤이 화롯불을 쪼이며 심하게 떨고 있다. 병이 중해 보인다. 훈겸이 약그릇을 올리고 있다.
훈겸 한기가 많이 드신 것 같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렇구먼... 이상한 일이야. 낮에는 멀쩡했는데.... 왜 이리... 춥고... 떨리고 한다는 말인가?
훈겸 이 부스럼 병이 본래 습기와는 상극이옵니다. 아무래도 운주까지는 무리일 것이옵니다, 폐하.
견훤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하였어. 참으로 초겨울비가 청승맞게도.... 쏟아지고 있구먼. 9월에 군사를 준비하였는데... 벌써 11월도 다 갔어. 이 추운 날에 비가 오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는가? 자.. (인상을 쓰며) 등쪽에 또 고름이 들어찬 것 같구먼. 좀 보아주겠는가?
훈겸 예, 폐하. (눈치보며) 폐하, 아무래도 신의 생각으로는 이번 전투를 수행하시는 것은 힘들어 보이시옵니다. 제발 신의 청을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견훤 너무도.... 중요한 전투야. 절대로.... 내가 돌아갈 수는 없어. 내일이면 좋아지겠지. 오늘은 내가 좀 고뿔이 든 것 같아.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라. 어서... 상처나 보게.
훈겸 예, 폐하. 하오나....
훈겸이 등을 보이는 견훤의 옷을 헤치고 상처를 들여보기 시작한다. 안타까워하는 훈겸의 표정에서 더욱 힘들어하는 견훤...
씬 동 다른 군막
신검 형제들은 빼고 제장들이 다 모여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애술 아무래도 황도를 떠나실 때부터 폐하께오서 어딘가 몹시 불편해 보이셨사옵니다.
최승우 ................. (댓구가 없다)
종훈 파진찬 어른, 폐하께서 어딘가 편치 않으신 것은 사실이옵니다. 이미 등에 종기가 있으시다고 들 알고 있습니다마는... 파진찬 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최승우 그런 종기 쯤이야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신덕 허나 의원이 황도에서부터 특별히 따라 붙은 것으로 보아서..... 그리고 모두의 눈을 피해 은밀히 치료하는 것으로 보아 가벼운 종기는 아닌 듯 싶어 보이옵니다마는...
금강 허나 본래 강건하신 폐하이십니다. 그까짓 종기야 뭐 대단하겠소이까? 그것이 큰 문제가 된다면 이 전투에 나오셨겠습니까?
박영규 그렇소이다. 폐하께서 그까짓 부스럼 따위로 걱정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문제는 이 날씨올시다. 계속해 쏟아질 모양인데.. 어허, 이것 참...
씬 또 다른 곳 신검의 군막 안
신검과 형제들이 모여 있다. 신검이 무언가를 갸웃하며 생각이 많다. 그리고 형제들을 본다.
신검 아버님께서 지금 전의의 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양검 예, 형님. 황궁에서도 내내 전의가 대전을 들락거렸다 하옵니다. 그리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전의가 아버님께서 이번 전투에 나오시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들었사옵니다.
용검 전의가 만류를 할 정도라면 예삿일을 아니지 않사옵니까?
신검 그러게 말이다. 아직도 운주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걱정이로구나.
양검 어떻게든 아버님을 모시고 가야 하옵니다. 그리하여 운주에서 한번 더 형님의 진면목을 보여 드려야 하옵니다. 그리만 되면 아버님께서도 더 이상 다음 보위에 대해 다른 말씀이 없으실 것이옵니다.
신검 ................
용검 이번 기회에 다 끝내셔야 하옵니다, 형님. 확실하게 매듭을 지으셔야 하옵니다.
양검 금강이도 왔고 매부 박영규 장군도 왔고 파진찬도 함께 있사옵니다. 이들 앞에서 우리가 불안해하는 모든 것들을 다 지워야 하옵니다. 그러자면 아버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 좋사옵니다. 다들 보는 데에서 고려왕의 목을 치는 것이옵니다.
신검은 끄덕인다. 빗소리와 어우러져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바람소리가 높다.
씬 왕건의 진영 어느 강변 (낮)
벌건 황톳물이 강을 범람하며 지나쳐가고 있다. 비는 이 곳에서도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씬 그곳 어느 군막 안
바람소리가 여전히 들려 오고 있다. 왕건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두들 표정이 무겁다.
왕건 이야말로 복병중에 복병을 만났소이다. 강물이 불어 꼼작을 못하고 있소이다.
유금필 이번 전투는 누가 먼저 운주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느냐가 관건이옵니다. 참으로 안타깝사옵니다.
배현경 길이 끊긴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옵니다. 벌서 사흘 째 비는 계속해 쏟아지다가 멈추고 또 쏟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사옵니다. 마치 장마철 같지 않사옵니까?
왕건 그러게 말이오. 이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올시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 되오?
염상 남천현이라 하옵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를 막고 있는 저 남천이 있어서 그리 붙여진 이름 같사옵니다.
왕건 허허 참.....
홍유 지금쯤 백제군도 한참 운주로 밀려가고 있을 것인데.... (한숨) 지리적으로 보아서 백제가 우리 아군보다도 훨씬 운주와는 가깝지 않소이까?
배현경 그렇소이다.
왕건 비라.....겨울비라.... 이렇게 엄청난 겨울비는 내 생전에 보다보다 처음 경험하는구먼... 이를 어찌 한다...이를 어찌해.....?
모두들 그렇게 표정이 어둡다. 바람과 빗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씬 송악 황도 외경
씬 동 황후전
오씨와 유씨, 그리고 정윤 무가 함께 해 있다.
오씨 폐하께서 먼길을 떠나셨는데 이렇게 날씨가 계속하여 심술을 부리고 있습니다.
무 그러게 말이옵니다 어마마마.
유씨 신료들을 맡기셔도 되실 일을 굳이 그렇게 몸소 가시는 이유를 모르겠사옵니다.
오씨 저 쪽에서도 백제의 왕이 나오는 전장이라네. 지난 전투들이 모두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 쪽에서 태자가 나오면 이 쪽에서도 태자들이 나가고 그 쪽에서 왕이 나오면 우리 쪽에서도 폐하께서 나가시고...
무 사실이 그러하기도 하였지만 이번 운주 전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폐하께서 친히 가신 것이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지난 고창 전투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전투가 될 것이옵니다.
오씨 그런데 난데없이 저렇게 비가 계속되고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타실꼬....?
유씨 그러게 말이옵니다. 마마.
씬 왕건의 군영(밤)
비는 멎었으나 강한 바람이 모든 것을 날릴 듯이 불어 치고 있다. 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고.....
씬 동 왕건의 군막 안
여전히 왕건이 시름에 잠겨서 서성거리고 있다. 유금필과 박술희가 함께 해 있다. 최지몽도 옆에서 시립 해 있다.
왕건 이보아라 내의성령.
최지몽 예, 폐하.
왕건 너는 복술에도 밝고 천문도 밝다고 들었다. 도대체 이 비가 언제가지 내리겠느냐?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할일 없이 발이 묶여 있는데 과연 뒤늦게 운주에 도착해서 승리를 거둘 수가 있겠느냐?
최지몽 천문을 보니 비는 한 이틀 더 내릴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떠나오실 때부터 신은 계속하여 우리 군의 앞날을 점쳐오고 있사옵니다. 분명한 것은 폐하께오서 남쪽의 두 귀인을 만나 큰 도움을 얻으실 것이며 그로 인하여 대승을 거두실 것이라고 점쾌는 말해주고 있사옵니다.
왕건 허허, 그래...귀인이라..... 거기에다 대승까지 얻는다...? 그리 되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상황이 너무 비관적일세.
유금필 사흘째 우리 대군이 이렇게 강가에 발이 묶여 있네. 운주에 늦게 도착을 하면 먼저 도착한 백제군에게 당할 확률이 아주 높아. 백제의 왕은 또한 우리보다도 운주와 가까운 곳에 있고.... 승리를 장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네.
박술희 사실일세. 모든 것이 다 악조건으로 변해가고 있네. 이런 상황에서 대승은 그만두고 서로 비길 수만 있었으면 좋겠네 그려.
최지몽 분명 잘 될 것이옵니다. 두고 보시오소서. 귀인이 나타나 폐하를 도울 것이옵니다
박술희 그 귀인이 누구인지 오려면 벌서 왔어야 할 것이 아니가...이런.....
그렇게 미심쩍어 하는 박술희의 표정에서 들려오는 말 발굽소리........
씬 다시 왕건의 군영 일각
그 한쪽으로 서목이 말을 타고 홀로 들어서고 있다. 경계병들과 군관이 제지한다.
군관 서라, (다가오자) 어디서 오는 뉘시오...?
서목 이 사람은 이 강가에 사는 서목이라는 사람이올시다. 폐하께서는 어디에 계시오이까?
군관 감히 폐하를 함부로 뵙고자 하다니 무례하기 그지없구려, 무엇 때문에 그러시오?
서목 금강에 사는 내 동무가 있는데 폐하께서 지금쯤 상당히 곤경에 처해 계실 것이라 하여 찾아뵈라 하기에 왔소이다.
군관 금강에 산다는 친구는 이름이 어찌 되시오?
서목 성은 이씨요, 이름은 치라고 하는 사람이올시다. 금강 어귀에 있는 전의성의 성주이지요.
군관 전의성주요? 혹시 이치 장군 말씀이십니까? 그 옛날 나주 전투에서 큰공을 세웠던 전의현의 이치장군 말씀이십니까?
서목 허허허, 그런 것 같소이다.
군관 허, 이런...기...기다리시오소서... 얘들아 어서 내군에 알려라. 폐하께 알현할 분이 있다고 알려라. 어서....
군사 예, 장군.. (달려가면)
군관 나주 전투 때 이놈이 그분을 뫼신 적이 있었습지요. 그야말로 물을 다루는 전략에 있어서는 귀신같은 분이 아니셨사옵니까? 기다리시오소서. 곧 허락이 있으실 것이옵니다.
서목은 그저 묵묵히 끄떡이며 조용히 웃고 있다.
씬 왕건의 군막 안
왕건이 놀라서 복지겸을 보고 있다.
왕건 누구라고 하였소이까? 전의성주요? 이치 장군 그 사람이 누구를 보냈다구요?
복재겸 그렇다 하옵니다. 만나 보시겠사옵니까?
왕건 만나다 마다... 그 옛날 나주 전투 때 이치장군은 짐과 더불어 아주 열심히 싸운 백전의 노장이올시다. 금강 일대를 오래 다스려 온 대 호족이기도 하고....허허...짐에게 사람을 보냈다? 어서 들라 하시오. 어서요.
복지겸 서목이란 사람을 들라 하라.
부장 예, 장군.
부장이 나가고 곧 이어서 서목이 들어선다. 그리고 정중하게 예를 올린다.
서목 신 서목 알현이옵니다.
왕건 오, 어서 오시구려. 이치 장군의 청을 받고 왔다면 분명 짐을 도울 일이겠구려. 경은 이 강가에 산다고 하였소이까?
서목 그러하옵니다. 이치 장군이 조상 대대로 금강을 다스려 온 것처럼 신 또한 이 남천을 운영하여 왔사옵니다. 폐하께서 큰 곤경에 처해 계심을 알고 있사옵니다. 신이 도와 드리겠사옵니다.
최지몽 ..... (빙긋이 웃고 있고)
박술희 이야말로 귀인이 온 것이 아니옵니까?
유금필 그런 모양일세.
서목 오늘밤 신이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폐하의 군대는 모두 물귀신이 되었을 것이옵니다.
모두들 .............
서목 비가 이대로 새벽까지 내리면 이 일대는 순식간에 물이 차서 모든 것을 휩쓸어가게 되어 있사옵니다.
왕건 오오, 이런......
서목 이 밤 안으로 이 곳을 벗어나셔야 하옵니다. 신은 이 강에 관한 사정을 손바닥 보듯 아옵니다. 신이 얕은 물길로 인도하여 드릴 것이니 서두시오소서.
왕건 허허...... 하마터면 이 곳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다가 남천의 물고기 밥이 될 뻔하였네 그려. 자, 서두르세. 이거야말로 귀인이 아니라 은인을 만났네 그려 은인을 만났어. 금필 아우는 어서 서둘라... 곧 새벽이야.
유금필 예, 폐하...부장들은 어서 전 군에 알려라, 새벽 안으로 강을 넘을 것이다. 전 군에 알려라.
부장들 예, 장군.
부산하다. 모두들 그렇게 부산하게 돌아가고 있다. 서목을 보며 웃는 왕건의 기쁜 표정에서...
씬 그 밤의 강
서목의 인도 하에 고려군이 비바람 속에서 강을 넘고 있다.
해설 구사일생, 왕건은 남천현 고을 호족인 서목의 인도 하에 무사히 강을 건너고 목숨까지 구하게 된다. 이 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훗날 왕건은 송악으로 돌아가 이곳 남천현을 이천이라는 지명으로 바꾸게 하니 지금의 이천시가 된다. 이천이란 주역에 나오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의 약자라 한다. 주역이 말하는 이섭대천이란 인간이 학문과 덕을 쌓고 인격을 수양하면 험난한 장애물인 대천을 건너서 천하를 이롭게 하는 공을 새운다 하는 뜻이다. 왕건이 이때 얼마나 다급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서목의 일을 크게 기억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 강을 건넌 왕건군이 서목과 헤어져 가고 있다. 서목이 예를 올리고 왕건이 손을 흔들며 지나쳐 간다.
씬 어느 길(낮)
왕건군이 가고 어느 산길을 돌아와 지나쳐 가고 있다. 여유를 찾은 왕건은 최지몽에게 말한다.
왕건 이보아라, 내의성령
최지몽 예, 폐하.
왕건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너의 그 점쾌가 신묘하구나. 서목이란 귀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큰일날 뻔하지 않았느냐? 허면 이제 나머지 한사람의 귀인은 누구인고?
최지몽 그것은 신도 알 수 없사옵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디에 있지 않겠사옵니까?
박술희 하여간에 또 기다려 보시오소서. 점쾌가 신통하니 이번에도 믿어 보시오소서, 폐하. 허허허...
왕건이 고개를 끄떡이는데 바로 그때, 저만큼 앞에서 일단의 군사들이 바람을 맞으며 달려오고 있다. 가까이 이르면 그는 전의 성주 이치와 그 부장들과 군사들이다. 왕건이 반가워한다.
왕건 허허, 이런...이 사람이 누구인가, 이치 장군이 아닌가?
이치 예, 폐하. 전의성주 이치이옵니다. 운주로 남정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사옵니다. 출발하시면서부터 날씨가 거듭 좋지 않아 걱정이 많았사옵니다.
왕건 그렇지 않아도 남천현에서는 아주 큰 곤경에 처했었다네. 다행히도 자네가 청을 넣은 그 서목이라는 호족의 도움을 아주 크게 받았다네.
이치 서목이라는 사람은 대대로 명문 호족출신으로서 강 일대를 다스려온 사람이옵니다. 살아오는 것이 서로 비슷하여 교분이 두터웠사옵니다.
왕건 그렇지 않아도 내의성령 최지몽이가 귀인이 나타나 우리를 도울 것이라 하였으나 우리는 아무도 믿지를 않았다네. 그만큼 절박하고 어려웠다네.
이치 지금 이 곳 금강 일대의 형편도 그리 밝지는 못하옵니다. 계속된 비로하여 강 곳곳이 범람하였고 길이 끊겼사옵니다. 하오나 안심하시오소서. 이제부터는 신이 앞서 금강을 넘고 운주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사옵니다.
왕건 고맙네. 이번 우리군의 총사는 유금필 장군일세.
이치 허허허, 잘해보십시다 장군. 우리는 구면이 아닙니까?
유금필 왜 아니겠소이까, 반갑소이다. 아무래도 운주 쪽은 이장군의 관내에서 보다 가까운 곳이니 우리보다 형편에 밝을 것이외다. 많이 도와주시구려.
이치 이를 말이오이까, 이 사람 또한 나라와 폐하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이올시다. 기꺼이 운주전투에 참여하기 위하여 날랜 군사 백여 명을 이끌고 왔소이다.
홍유 말씀을 들으니 아주 든든하외다.
배현경 이 사람 역시 그렇소이다. 어려운 싸움에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오시니 과연 장군의 평소 마음을 알 것 같소이다.
이치 어인 말씀을....자, 폐하, 이제부터는 신이 앞서겠사옵니다.
왕건 총사와 의논하도록 하게.
이치 예, 페하. 자, 유장군 함께 가십시다. 그 동안 운주 일대를 아주 면밀히 관찰하여 왔소이다. 아직 백제의 주력군은 운주에 이르지 못하고 있소이다.
유금필 그럴리가요? 우리는 이 비 때문에 며칠씩이나 움직이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금강을 지나고 있는 길이올시다. 헌데 백제군이 아직까지 운주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구려.
이치 그러게 말이올시다. 소장도 그것이 믿기지 않아 계속해 세작들을 띄워 알아보고 있소이다마는 사실이올시다.
유금필 허허....이제 운주가 얼마 아니 남았는데 아직도 백제군이 아니보인다...무슨 일일고?
이치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올시다. 분명해요. 아런 모든 것들이 고려에는 모두 나쁠 게 없는 일입니다. 가면서 더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허, 이것 참 아주 날씨가 계속해서 볼만 하오이다. 태풍이예요, 태풍..
거센 바람을 보며 이치는 신명이 나서 중얼거린다.
해설 이치, 훗날 왕건에 의해 새로운 이름을 받아 이도로 불리우는 사람으로서 전의 예안 이씨의 시조가 된다. 대대로 금강 일대를 다스리며 살았고 과거에도 나주전투에 왕건과 함께 참여한 바 있었다. 왕건이 이때 어려운 가운데 운주전투를 수행하러가니 그의 도움과 공이 매우 컸다. 특히나 그는 유금필과 더불어 이번 운주전투에 있어서 백제군을 무찌르는 핵심적인 역할을 맞게 된다.
씬 백제군영
바람소리가 높다. 아직도 백제군은 군막을 걷지 못하고 영채를 늘어트려 놓고 있다. 그 일각에서 신검이 형제들과 종훈, 애술, 신덕, 최필, 김총, 상귀, 파달장군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다. 신검이 답답한 표정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먼 시야를 보고 있다.
신덕 비는 그친 것 같은데 바람이 심하옵니다. 갑자기 겨울이 와버렸사옵니다. 이 바람 좀 보시오소서.
종훈 새벽에는 얼음까지 얼었습니다. 날씨가 급변하고 있어요. 좋은 조짐이 아닙니다.
애술 총사, 도대체 왜 아무 영도 없이 여기서 몇 날 며칠을 이러고 있사옵니까?
신검 ...............
애술 벌써 며칠 째 운주를 눈 앞에 두고도 가지를 못하고 있사옵니다. 병사들과 제장들이 모두 궁금해하고 있사옵니다.
신덕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오, 아니면 알면서 물으시는 것이오? 폐하께서 환후가 중해서 그러시는 것 아니오이까?
애술 이러다가는 싸우지도 못하고 사기가 땅에 떨어지게 생겼소이다. 폐하는 별도로 모시고 속히 운주로 가야 하오이다.
종훈 애술 장군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는 있사옵니다. 폐하를 뫼시고 운주로 가든 아니 가든 여기서 계속해 머뭇거림은 옳지 않사옵니다. 고려군이 지금 온 속력을 다하여 운주로 가고 있을 것이옵니다. 모든 전쟁에 있어서 먼저 도착하여 지형을 숙지하는 것이 유리하게 되어 있사옵니다.
최필 종훈 군사의 말이 맞사옵니다. 대책을 주시오소서, 총사. 이대로는 아니 되옵니다. 벌써 나흘이 넘어가고 있사옵니다.
양검 장수들의 말이 합당하옵니다. 무슨 대책을 세우기는 세워야 하옵니다.
신검 전의의 말이 며칠 더 요양을 요하신다고 하신다. 나라고 무슨 대책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이냐?
용검 형님께오서는 총사이시옵니다. 최종적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사옵니다.
신검 최종 결정은 폐하께서만이 내리시는 것이다. 총사는 그저 싸우는데 앞을 서는 것일 뿐이야. 최종 명령은 폐하께서 내리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주전투는 아버님께서 분부하신 것이다. 따라서 아버님께서 모든 것을 총괄하신다. 기왕에 나왔으니 뫼시고 가야지. 가서 고려군과 싸워야지. 그래야 되지 않겠느냐?
용검 물론 그렇사옵니다마는...
신검 아버님께서는 이번 운주전투에 모든 사활을 다 거셨다. 그만큼 백제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이란 뜻이다.
종훈 그러하옵니다. 이번 운주전투는 우리가 서쪽으로 해서 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옵니다. 동쪽의 고창전투에서 패한 이래로 모든 전선이 다 막혀있고, 오로지 이곳 서쪽으로 운주의 길목만이 우리 앞에 놓여있사옵니다. 폐하께서도 그것을 아시기에 그토록 강하게 주장을 하셨던 것이옵니다.
김총 그렇다면 파진찬 어른이 함께 왔는데 그 분은 아직까지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지 모르겠사옵니다.
상귀 그러게 말이옵니다.
파달 파진찬 어른은 지난 예성강 전투에서 그야말로 눈부신 전략을 보여주셨사옵니다. 헌데 이번에는 출발할 때부터 아무 말씀도 없으시옵니다.
신덕 소장도 그것이 좀 마음에 걸리옵니다. 파진찬은 처음부터 이 전투를 반대해 왔사옵니다.
신검 그래요.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뭔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는 사람이지요. 아마 지금 생각이 많은 것 같소이다. 생각일 많을 거예요.
양검 아무래도 형님께서 총사이시니 제장회의를 한번 열어야 할 것 같사옵니다.
신검 ................. (끄덕인다)
씬 견훤의 군막 안
견훤이 고열에 허덕이고 있다. 인사불성이다. 훈겸이 젖은 헝겊을 입술에 적셔준다. 그 옆에서 최승우와 금강이 보고 있다.
최승우 등창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는 몰랐구려.
훈겸 이것으로 목숨을 잃는 예가 허다하옵니다. 무서운 병이지요. 특히나 요 며칠을 비가 쏟아지는 습한 곳에 계셨습니다. 그토록 만류를 드렸지만 소용이 없었사옵니다.
금강 도대체 왜 일찍 만류를 해 드리지 못했다는 말이오?
훈겸 수없이 말씀을 올렸사옵니다. 하오나 폐하께오서는 소인의 입을 막으셨사옵니다. 어찌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금강 허면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시오? 이대로 여기에 몇 날 며칠을 있을 참이오? 아니면 아버님을 황도로 되돌려 모셔야 될 것이 아니오?
훈겸 물론 지금이라도 그리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옵니다, 태자마마.
금강 (안타깝다) 허, 이것 참.... 얼음이 얼기 시작했습니다. 군사들은 겨울 준비가 별로 되어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폐하께오서 환후가 중하시다는 것이 진중에 은연 중 다 알려져 있습니다.
최승우 그렇습니다, 태자마마. 이번 전투는 처음부터가 무리였사옵니다.
금강 허면 돌아가시지요. 아직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전면전을 피하고 훗날을 기약하여 다시 운주로 오면 될 것이 아닙니까?
최승우 ..............?
그때다.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던 견훤이 필사적으로 말한다.
견훤 금강아......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돌아가다니.....
금강 아바마마.....?
견훤 내가 깜박... 정신을 놓았던.. 모양이구나. 도대체.. 며칠을 이러고 있었다는 말이냐?
최승우 오늘로써 나흘 째이옵니다, 폐하.
견훤 나흘.....? 나흘이라....?
그렇게 벌떡 일어나려다가 다시 고통스러운 듯 무너져 내린다. 금강이 부축한다.
최승우 금강 태자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환도를 명하시오소서. 이 전투는 어렵사옵니다.
견훤 고창이 무너진 이후... 나는... 절치부심을 했어... 어떻게 저 고려의 무서운 남하를 저지하느냐? 다행히 파진찬과 신검이가... 예성강을 들어감으로써.. 그 기세를 어렵게 열었어. 연이어 뚫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주저앉을 게야... 운주로 가야해.
최승우 다음에도 갈 수 있는 일이옵니다. 지금은 돌아가시어 환후를 돌보셔야 하옵니다.
견훤 가야한다고 했어... 가야한다고...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내 나이 지금 예순 일곱이야. 이제 곧 칠십이 돼. 다음에...? 다음에 언제....? 다음에 언제....? 고려는 자꾸 내려오는데 다음에 언제.....? 다음에 언제..........
하다가 견훤은 또 정신을 놓는다. 금강이 소리치며 달려간다.
금강 아바마마...?
견훤 가야한다고 일러라... 여기서 그만 머뭇거리고... 가라하라. 황제의 명령이니라... 이대로 황도에 돌아갈 수는 없어.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백제 황도 외경
씬 동 황후전
이곳에서도 바람소리는 크게 들리고 있다. 홀로 서성거리며 박씨가 답답해한다.
박씨 웬 바람이 저리도 극성인고.....?
이상궁 그러게 말이옵니다, 황후마마. 며칠 내내 비가 내리더니 그만 갑자기 겨울이 되어 버렸사옵니다. 전투에 나간 장졸들이 걱정이 되옵니다.
박씨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날이 추워지면 싸우기가 어려워지지. 이번에는 뭔가 우리 신검이가 해 내어야 할 터인데... 날씨가 또 이 모양이니..
이상궁 예성강에서도 잘 싸우셨사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겠사옵니까? 쇤네는 폐하의 그 부종이 더 걱정되옵니다.
박씨 하긴 그것도 그렇다. 처음에 아무 것도 아닌 척 숨기신 것이 더 큰 병을 부르신 것이야. 별 일 없으셔야 할 것인데... 전장터에서 환후가 커지면 결국 우리 신검 태자가 난처하게 되는 일일세. 별 일은 없으셔야지....
씬 다시 신검의 군영 군막 밖 (밤)
엄청난 바람이다. 그 바람은 모든 것을 휩쓸어 가고 있다. 이미 낙엽은 없고 나뭇가지들이 앙상하게 울고 있다. 경계를 선 초병들이 추워서 귀를 감싸고 발을 구르고 있다. 춥다. 그리고 그 바람소리가 모든 것을 날리고 있다.
씬 신검의 군막 안
제장회의가 열리고 있다. 견훤을 뺀 모든 장수가 참석해 있다.
신검 아버님께서 고뿔이 드시어 갑자기 환후가 심해지셨다 합니다. 하루만 더 가면 운주에 닿을 수 있소이다.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애술 싸우러 온 것이니 싸워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운주가 하룻길이옵니다. 폐하께오서도 계속 진군하라고 영을 내리셨다 들었사옵니다.
박영규 그러나 비록 신검 태자마마께서 총사이시기는 하지만 모든 군령을 다스리시는 폐하께서 함께 하시는 전투올시다. 그런데 그 폐하께서 환후가 중하시오. 이런 상태로 큰 적을 맞아 싸운다는 것은 불리할 줄로 아옵니다.
최승우 박장군의 말에 공감을 하는 바이옵니다. 악천후에 이어서 날씨가 급격히 겨울로 접어들었사옵니다. 운주는 산악지대이고 골이 좁아서 늦게 가는 쪽이 공격을 당하기 십상이옵니다. 한번 더 제고를 하심이 옳은 것 같사옵니다, 총사.
양검 폐하께오서는 이번 운주전투에 나라의 사활을 건다고 하셨사옵니다. 더불어 예성강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신검 태자마마를 다시 총사에 봉하시고 이 전투를 수행하신다 하셨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투가 끝나면 신검 태자마마께 다음 보위를 약속하신다 천명하셨사옵니다.
모두들 ...................?
신검 어허.... 아우는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양검 아니옵니다. 이번 운주전투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옵니다. 운주전투를 승리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후에 백제국의 장래를 생각하신다는 것이 폐하의 뜻이라는 것이옵니다. 그 때문에 힘드신 옥체로서 이곳까지 오신 것이 아니옵니까? 물러날 수 없사옵니다.
용검 이미 아바마마께서 계속해 전투를 수행하라고 영을 내리셨다 하옵니다. 하루면 운주에 도착하옵니다. 행군을 명하시오소서.
신덕 폐하께서 위중하시옵니다. 그러나 전투를 계속해야 한다는 영을 내리셨사옵니다. 그 영을 따름이 가한 줄 아옵니다.
상귀 소장 또한 그리 생각하옵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사옵니다.
파달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상애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신검 허면 김총 장군은 어찌 생각하시오?
김총 태자마마께서 비록 총사를 맡으셨사오나 그 위에 폐하께서 계시옵니다. 그분께서 잘못되시면 모든 것이 허사이옵니다. 소장은 돌아가는 것이 가하다고 사료되옵니다.
금강 전투는 늘 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옵니다. 김총 장군과 박영규 장군과 파진찬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운주로 가서 전투를 하는 것은 이미 아군에게 불리하옵니다. 회군을 청하옵니다, 총사.
양검 회군이라.......? 그 용감하던 금강이가 오늘 왜 이리 겁쟁이가 되었는가? 아버님이 편찮으시면 한쪽으로 모시면 될 것이다. 적이 눈 앞에 있는데 도망을 가자는 것인가?
용검 더구나 아버님께서 특별히 명을 내리시는 일이다. 싸우라고 말이다. 자식이 그 부모의 말을 거역하자는 것이냐? 부모가 주신 것이라 하여 눈알까지 삼킨 금강이 답지 않구나.
금강 그 일과 이 일은 다르옵니다. 공명심을 앞세워 어려운 전투를 수행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옵니다.
양검 공명심이라니.......? 지금 누구보고 공명심이라 하였느냐?
신검 어허..... 왜들 이리 소란스러운가? 누구 앞에서 이렇게 멋대로 시끄러운 게야? 파진찬..?
최승우 예, 총사
신검 어찌하면 좋겠어요? 다들 싸우자 하는데...
최승우 결론은 총사께서 내리시는 것이옵니다.
신검 아버님께서도 원하시는 일이고... 총사인 나도 이번 운주전투에서 뭔가 매듭을 짖고 싶습니다. 싸우십시다.
모두들 .....................
신검 싸우십시다. 운주로 가십시다. 운주로 갈 것이오. 운주로......!
씬 동 군영 밖
군사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다. 부장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부장 모든 병사들은 대오를 갖추어라. 운주로 갈 것이다. 폐하와 총사의 영이시다. 운주로 갈 것이다. 서둘러라... 운주로 갈 것이다...
씬 동 견훤의 군영 군막
훈겸이 치료를 거듭하고 있다. 군막 밖의 어지러운 소리들이 가깝게 들려오고 있다. 견훤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채 헐떡이고 있다. 옷매무새를 마감해주며 훈겸이 다시 말한다.
훈겸 폐하, 신 훈겸이 다시 아뢰옵니다. 운주로 가시는 것은 아니 되옵니다. 이미 부종의 근이 뼈 가까이 이르고 있사옵니다. 요양 만이 유일한 길이옵니다. 헤아리시오소서, 폐하.
견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 그러한 것이다... 시간이...
그때, 군막 문이 열리면서 신검과 형제들이 들어선다. 군례를 올린다.
신검 폐하, 운주로 갈 것이옵니다. 폐하를 그리 뫼시겠사옵니다.
견훤 ............. (끄덕인다)
신검 뫼시어라.
그러자 대답과 함께 군사들이 우 달려와 마련된 들것에 견훤을 옮겨 싣는다. 견훤이 고통으로 얼그러진다. 들것에 옮겨지자 가다말고 신검을 손짓해 부른다. 신검이 가까이 온다.
신검 하실 말씀이 계시옵니까?
견훤 그래....
신검 말씀하시오소서.
견훤 (사이, 한참 보다가) 누구 누구가.... 돌아가자 하였느냐...?
신검 예......?
견훤 누가 싸우자 하였고... 누가 돌아가자 하였느냐....?
신검 금강이와 박영규 장군, 파진찬이 돌아가자 하였사옵니다. 하오나 소자는 폐하의 영을 받드는 것이 더 중하다 생각되어 운주 공격을 명했사옵니다. 운주로 뫼시겠사옵니다.
견훤 (끄덕이다가) 그렇겠지.... 운주의 일이... 곧 너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니까 말이다.... 네 소원을 이루려면.. 꼭 내게 승리를 해 보이거라... 승리 말이다.... 가자....
그렇게 견훤이 옮겨지고 밖으로 나간다. 신검이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생각하고 있다. 견훤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씬 밤길
엄청난 겨울 바람 속으로 견훤의 대군이 밀려가고 있다. 신검과 제장들이 앞을 섰고 그 중간에 견훤을 모신 마차와 금강, 박영규들이 호위해 가고 있다. 또 그 뒤로 끝도 없는 군사들이 따르고 있고... 서두르라는 부장들의 재촉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씬 동 마차 안
견훤이 마차에 실려 가고 있다. 밖의 바람 소리와 군사들의 소란 소리가 계속해 들려오고 있다.
견훤 (소리) 그래.... 역시 금강이로구나... 그리고 내 사위 박영규와 파진찬만 나를 생각하고 있어.... 내가 아무리 고집을 부린다 하여도... 그래도 맏이라면 한번쯤은 만류를 해볼 일이다. 헌데 죽어 가는 나를.... 그예 전장터로 끌고 가는 이 자식들이... 과연 자식들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놈들의 눈에는 옥좌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 것이야. 그런 것이야.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표정 위로....
씬 다시 그 길
신검이 요란하게 재촉하고 있다.
신검 지금쯤 고려군이 벌써 운주에 와 있을 것이다. 모두 힘을 다하여 걸음을 빨리 하라. 이번 운주전투는 우리 백제의 것이다. 모두 서둘러라. 내일까지는 운주에 닿아야 한다. 서둘러라....
신덕 총사께서 서둘랍신다. 파달 장군을 부장들을 재촉하라. 서둘랍신다.
파달 서둘랍신다... 총사의 영이시다... 행군을 빨리 하라... 행군을 빨리 하라.
요란스럽다. 온 행군 대열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신검의 표정도 급해 보인다. 신검은 흘깃 견훤이 타고 있는 마차 쪽을 본다.
신검 (소리) 아바마마... 아바마마께서도 이번 운주에서 뭔가를 찾고 계시듯이 소자도 같사옵니다. 소자는 이번에 반드시 보다 확실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사옵니다. 그리고 아바마마께서 약속하신 그 옥좌를 받고 싶사옵니다. 그 옥좌 말이옵니다. 이번에는 꼭 보여드리겠사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오소서. 반드시 보여드리겠사옵니다. 그리고 옥좌를 받을 것이옵니다. 옥좌 말이옵니다.
<18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