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 한날개
안선모
꼬끼오!
수탉 두날개가 목을 길게 빼고 울었다. 두날개의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놀던 암탉들이 서둘러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날개도 서둘러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암탉들이 요란한 날갯짓 소리를 내며 횃대로 날아올랐다. 닭들이 모두 횃대에 올라 자리를 잡자 맨 마지막으로 두날개가 날개를 촤르륵 펼치며 날아올랐다.
“우와!”
한날개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러곤 입을 벌린 채 하염없이 두날개를 쳐다보았다. 같은 날 태어났고 털 색깔도 비슷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한날개는 무리에서 늘 떨어져 지냈지만 두날개는 무리를 이끄는 대장이 되었다.
‘나도 저 위로 올라가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날개는 횃대 위에 앉아 있는 암탉들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살구빛 암탉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살구빛 암탉은 몸집이 작은 탓인지 덩치 큰 암탉들에게 밀려 어렵게 찾은 먹이를 빼앗기곤 했다. 한날개는 땅을 파헤쳐 찾은 싱싱한 먹이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살구빛 암탉 눈앞에 살짝 두기도 했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아직도 부러운 게냐?”
바닥에 놓인 노란 플라스틱 상자 속에서 잠을 청하던 늙은암탉이 말했다.
“부럽고말고요. 단 한 번이라도 저렇게 날아오를 수 있다면 원이 없겠어요.”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너는 영원히 날아오를 수 없어.”
“나도 알아요, 안다고요!”
한날개는 끅끅 소리를 질렀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쪽 날개를 잃었는데 왜 목소리까지 이상해지지? 날아오를 수 없다는 말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얘야, 화 풀고 어서 이리 오렴.”
늙은암탉이 다정하게 말했다. 한날개는 플라스틱 상자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늙은암탉을 바라보았다. 늙은암탉은 언제부터인가 횃대에 올라가지 않았다. 자신은 이제 너무 늙어서 날개 힘이 약해졌고 그래서 횃대에 오르지 못한다고 했지만 한날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늙은암탉은 홀로 있는 한날개를 위해 횃대에 오르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한날개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늙은암탉 덕분일 거다.
“늙은암탉이 할 일이 뭐 있겠어? 알을 낳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육질이 보드라운 것도 아니고. 사는 날 동안 어리고 약한 새끼들을 보살펴주는 게 내 도리지.”
늙은암탉은 그렇게 말했다.
한날개는 늙은암탉 옆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그 일만 없었다면…….’
날갯죽지를 잃어버렸던 그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눈이 아득해져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삐약거리고 돌아다니던 병아리 시절이었다.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져 눈을 떴을 땐 이미 한쪽 날개가 거의 사라진 뒤였다.
“어떻게 그렇게 둔할 수가 있지? 쥐새끼가 날개를 갉아먹을 때까지 그걸 몰랐단 말이야?” 닭들은 가끔 그때 얘기를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하지만 몰랐던 게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무서워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공포는 그렇게 몸을 굳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곧 죽을 거라던 한날개는 다른 닭들과 똑같이 쑥쑥 자랐다. 다른 닭들이 모두 횃대에 오를 때, 한날개도 올라가고 싶었다. 한 날개에 힘을 주고 힘차게 발돋움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날개 한 짝으로 어떻게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쟤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것 같아.”
“그러니까 쥐새끼가 날개를 갉아먹는데도 가만히 있었겠지.”
횃대 위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끝까지 해볼 거야. 횃대에 오를 때까지.’
한날개는 날아오르기를 수십 번 시도한 끝에 마침내 깨달았다. 날개 한 짝으로는 도저히 횃대에 날아오를 수 없다는 것을. 결국 포기했지만 마음속엔 미련이 도사리고 있었다.
꼬끼오!
새벽을 여는 두날개의 목소리가 평화나무 농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두날개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횃대에 앉은 닭들이 하나 둘 땅으로 내려왔다.
“얘들아, 잘 잤니?”
평화나무 농장주인 아저씨가 닭장 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아침이면 닭장 문을 열어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했다. 또 저녁이면 닭들이 모두 닭장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매일매일 그렇게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지만 주인아저씨는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커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저씨의 딸 연두가 졸래졸래 닭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계란이 다섯 개나 돼요. 하루에 다섯 개씩 낳으면 한 달이면 150개. 일 년이면? 아, 그건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부자 되겠어요.”
“허허허. 닭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개도 있고. 우린 이미 엄청난 부자인데 더 부자가 된다고?”
아저씨가 행복하게 웃었다.
“근데 옆마을 최씨 아저씨네 닭장에 족제비가 들어와 야금야금 닭을 잡아간다고 하더라. 그 놈이 고기 맛을 알았으니 곧 우리 농장에도 쳐들어 올 거야.”
그 말에 연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날개와 늙은암탉을 바라보았다.
“그럼, 족제비가 제일 먼저 얘네들을 공격할 텐데…. 아빠, 얘네들도 횃대 위로 올라가 잠을 자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보다시피 이 녀석은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날지를 못하잖아. 그런데 이 늙은암탉은 왜 횃대로 안 올라가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주인아저씨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한날개와 늙은암탉을 바라보았다.
“아빠, 좋은 수가 있어요.”
연두가 손뼉을 짝 쳤다. 닭장 밖으로 달려 나간 연두는 긴 막대기를 질질 끌고 왔다.
“아하! 계단을 만들어주자는 소리구나. 역시 우리 연두는 아이디어 왕이야!”
주인아저씨가 긴 막대기를 땅에서부터 횃대까지 길게 사선으로 걸쳐놓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날개가 한 날개를 파닥이며 투덜거렸다.
“뭐야, 저게? 어쩌라는 거야?”
“기다려봐. 어쩐지 징조가 좋아.”
늙은암탉이 차분하게 말했다.
연두가 두 팔을 다리 삼아 기울여놓은 막대기를 걸어서 횃대까지 오르는 시늉을 했다.
잠시 어리둥절 표정으로 있던 한날개와 늙은암탉은 연두의 행동을 보고 재빨리 알아차렸다.
“아하, 역시 이 사람들은 남달라. 뭐든지 동물 입장에서 생각한다니까!”
늙은암탉이 먼저 막대기로 올라가 찬찬히 횃대까지 걸어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한날개도 막대기로 올라가 또박또박 걸어서 횃대에 도착했다.
“아, 이제부터 나도 횃대 위에서 잘 수 있겠다.”
그렇게 한날개는 처음으로 횃대에서 잠을 청했다. 그것도 바로 살구빛암탉 옆에서. 횃대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 한날개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너무 들떠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늙은암탉은 그런 한날개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바닥 플라스틱 상자 속에서 잠을 잤다.
‘만약 족제비가 온다면 나를 먼저 공격하겠지.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까 이제 죽어도 억울할 게 하나도 없어.’
늙은암탉은 한날개가 횃대로 올라간 것이 마냥 기뻤다.
꼬끼오!
동쪽 새벽빛이 희붐히 번지는 시각이 되자, 두날개가 목을 길게 빼며 목청 높여 울었다. 그 소리를 신호로 닭들이 땅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두날개가 날개를 촤르륵 펼쳤다.
“우와, 멋지다!”
한날개는 넋을 잃고 두날개가 땅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올라가는 건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한날개는 날개 한 쪽을 펼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와, 날아올랐다. 바람이 느껴진다. 이제 두 발로 멋지게 내려앉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한날개는 땅바닥에 거꾸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본 두날개와 암탉들이 꼬꼬댁꼬꼬, 사정없이 웃어댔다. 땅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한날개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늙은암탉이 다가와 한날개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렸다.
“먹이 찾으러 모두 나갔어. 이제 일어나라.”
“죽고 싶어요. 죽었으면 좋겠어요.”
한날개가 울부짖었다. 부끄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를 봐라. 늙어서 털은 다 빠지고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나를! 볼품없이 되었어도 끝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죽는 날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지. 나는 새로 태어나는 병아리를 돌보는 일을 아주 잘 하지. 젊고 팔팔한 암탉들은 저 늙은암탉에게 배울 게 뭐가 있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방법 등등 가르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지.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야.”
“나는 알을 낳지도 못하고 암탉들을 가르칠 지혜도 없고 식량만 축내고 있잖아요. 살아야할 의미가 없잖아요!”
고개 숙인 한날개의 발밑에 익숙한 발이 보였다. 눈을 들어보니 살구빛 암탉이었다.
“모두 죽을 거라고 했지만 넌 살아남았잖아. 그게 너의 의미야.”
살구빛 암탉이었다. 그 말을 거들 듯 늙은 암탉이 말했다.
“산다는 건 축복이지.”
“이렇게 구차하게 사는 게 축복이라고요?”
그러면서 한날개는 닭장 밖 먼 곳을 바라보았다. 주인아저씨의 딸 연두가 산딸기를 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앗, 저건?”
한날개의 눈에 연두의 뒤쪽에서 스르륵 기어오고 있는 형체가 보였다. 분명 뱀이었다. 뱀이 나타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꽤 보았기에 한날개는 잽싸게 뱀을 향해 달려갔다. 한날개가 달려오는 소리에 연두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으악!”
연두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바들바들 떨었다. 그 모습을 보자 한날개는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쥐에게 공격당했을 때 온 몸이 굳어버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 멀리서 먹이를 찾던 닭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날개는 온몸의 깃털을 세우고 뱀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독 있는 뱀이야. 도망치는 게 좋을 걸!”
두날개의 말에 닭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졌다. 늙은암탉과 살구빛 암탉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서워하지 말고 침착하게 눈을 공격해.”
늙은암탉이 먼저 말했고, 살구빛 암탉이 뒤이어 응원의 말을 건넸다.
“단번에 해치워야 해. 넌 할 수 있어!”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저씨가 연두를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
“한날개, 파이팅!”
아저씨의 품에서 연두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동안 소리 없이 다가온 뱀이 한날개의 다리를 휘감았다. 두 다리를 시작으로 천천히 몸으로 올라와 한날개의 몸을 옥죄기 시작하는 뱀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날개는 숨이 콱 막혔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때 자신을 쳐다보는 늙은암탉과 살구빛 암탉 그리고 연두와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한날개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뱀의 머리가 한날개의 가슴 언저리쯤 올라왔을 때, 한날개는 죽을힘을 다해 뱀의 눈을 향해 부리를 꽂았다. 뱀이 놀라 몸뚱이를 비틀거릴 때, 한날개는 다시 다른 쪽 눈을 향해 부리를 꽂았다. 뱀의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자, 한날개는 재빨리 자세를 갖추고 또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다. 뱀은 풀숲으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뱀을 물리치다니 용감한 수탉이군.”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연두는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손뼉을 쳤다.
그때 살구빛 암탉이 다가와 말했다.
“한날개, 네가 좋아.”
그 한 마디에 온 세상이 환하게 보였다. 한날개의 가슴이 하루종일 콩닥콩닥 뛰었다.
한날개는 저녁이면 기다란 막대기를 타고 횃대에 올라가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이면 멋지게 내려오고 싶어 날개를 펼치지만 여전히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렇지만 이제 죽고 싶다거나 수탉대장 두날개가 부럽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