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논점 1028호-20150630)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역별 비례제: 제도적 특징 및 장ㆍ단점 분석.pdf
1. 들어가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가 20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틀을 정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지금과 같이 전국단위로 선출하는 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권역단위로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할 것인지, 또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한 다면 현재의 병립형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제안한 독일식으로 변경할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국회 정개특위의 선거제도 개혁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정당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관위가 제안한 ‘파격적인’ 선거제도 개혁안에 대해 심도있는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도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 제가 현행 선거제도에서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또 어떤 제도적 특징과 장․단점을 보이는지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선관위 안의 주요 내용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국을 6개 권역(서울, 인천 경기 강원,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광주 전남 북 제주, 대전 세종 충남 북)으로 구분하고, 총 의원정수 300명을 권역별로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비율은 2:1의 범위에서 정한다.
둘째, 의석배분은 개별 권역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의석(지역구와 비례의석)을 정당별로 배분하여 배분의석을 먼저 정하고, 이배분의석에서 지역구의석을 먼저 채운 후, 잔여의석은 비례의석으로 채운다. 이 때 배분의석보다 지역구의석이 많을 경우 그 초과의석(overhang seats)은 그대로 인정한다.
셋째, 권역별 비례제 하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동시입후보제를 허용하고, 지역구낙선자 중 평균득표율(후보자 득표수/해당지역구의 평균득표수)이 높은 후보자를 비례대표로 구제한다. 단, 동시입후보자의 득표수가 지역구 유효투표 총수의 3% 미만인 경우, 그리고 동시입후보자의 소속 정당이 해당 시․도에서 얻은 지역구의석이 전체 지역구의석의 1/5미만일 경우에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지 못한다.
3. 선관위 안의 쟁점
(1) 비례성 제고 효과
선관위 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이 비례성(proportionality)이 높다는 것인데,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선관위안은 모든 정당이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가져가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례성이 높은 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순수비례제와 동일한 수준의 높은 비례성을 보이지만, 초과의석이 발생할 경우 그만큼 비례성이 저하된다.
예컨대, 현행 지역구의석 대비 비례의석의비율(4.5:1)5)을 그대로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 적용할 경우 27석의 초과의석(새누리18, 민주통합 9)이 발생해 비례성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
이처럼 선관위 안의 가장 큰 장점으로 지목되는 비례성은 초과의석 때문에 역으로 가장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과의석을 차단하거나 통제해야 하는데, 초과의석의 발생이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쉽지 않다. 초과의석의 발생과 그 규모는 ‘지역구의석 대비 비례의석의 비율’, ‘권역의 범위’, ‘분할투표율’, ‘유효정당의 수’, ‘정당지지의 지역적 밀집도’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2) 초과의석 발생가능성과 의원정수의 유동성
이처럼 선관위 안의 경우 초과의석의 발생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례의석의 비율로만 본다면 독일과 같이 지역구와 비례의석의 비율이 1:1인 경우에도 초과의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사실로 볼 때, 선관위 안은 그보다 낮은 2:1이므로 초과의석의 발생가능성이 독일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 선관위 안을 적용했을때 전체 300석 중 인구수에 따라 대구․경북권에 30석, 호남 제주권에 34석이 할당된다. 이 중 배분의석은 대구․경북의 경우 새누리당 22석, 민주통합당 5석이 되고, 호남제주의 경우, 새누리당 4석, 민주통합당 24석이 된다[표 1] 참조.
지역구의석은 대구․경북권과 호남․제주권에 각각 21석, 23석이 돌아간다. 실제 19대 총선의 대구․경북권 지역구의석은 27석, 호남․제주권의 지역구의석은 33석으로 선관위 안과는 차이를 보인다. [표 1]은 대구․경북권과 호남․제주권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19대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 지역구의석을 독점했다고 가정한 시뮬레이션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대구․경북권과 호남 제주권에서 지역구의석이 배분의석에 근접하지만, 초과의석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만약 대구․경북권에서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이 감소하여 배분의석이 22석에서 20석으로 줄어들 경우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호남 제주권에서도 민주통합당의 정당득표율이 감소하여 배분의석이 24석에서 22석으로 줄어들 경우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 있다.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총의석이 300석을 넘게 된다.
선관위는 초과의석의 발생 자체에 따른 위헌논란은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독일에서 초과의석이 위헌결정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초과의석이 위헌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선거 때마다 초과의석으로 인해 나타나는 의원정수의 유동성 문제는 단점으로 지적될 수 밖에 없다.
(3) 비례의석 배분의 불평등
초과의석은 의원정수의 유동성 문제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배분의석이 동일한 정당간에는 지역구의석을 많이 얻으면 그만큼 비례의석을 적게 가져가고, 지역구의석을 적게 얻으면 그만큼 비례의석을 많이 가져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표 2]와 같이 A정당과 B정당의 득표율에 따른 배분의석이 9석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지역구의석이 A정당: 5석, B정당: 9석일 때 A정당에 돌아가는 비례의석은4석이지만 B정당은 단 1석의 비례의석도 얻지 못한다.
현재 우리의 병립형 같으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 외에도 별도의 비례의석이 합산되지만, 선관위 안에서는 정당득표율로 총의석을 정하고, 그 안에서 지역구의석과 비례의석을 채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역구의석을 많이 얻으면 그만큼 비례의석을 손해 보는 것이다.
(4) 보궐선거의 제한적 실시
선관위 안에서는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는 한 보궐선거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 선관위 안이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제에서는 지역구의석의 결원이 발생했을때 해당 지역구가 속한 권역의 비례대표가그 자리를 승계할 수 있다.
독일식에서 비례대표가 지역구의원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독일식만의 독특한 의석배분방식 때문이다. 독일식은 정당득표의 결과로총의석을 정하고, 지역구의석을 먼저 채운 후 잔여의석을 비례의석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지역구의석이 몇 석이든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정당득표에 따른 배분의석수 안에 포함된다. 즉, 지역구의석은 항상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비례의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관위 안을 도입하면 초과의석이 발생한 경우에만 보궐선거를 실시하면 된다.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 규모가 제한적이라면 그만큼 보궐선거의 횟수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5) 지역주의 완화 효과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의석을 독점하는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선관위 안을 19대 총선에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 대구․경북권에서 실제 19대 총선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던 민주통합당은 5석을 가져가고, 호남 제주권에서도 실제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했던 새누리당은 4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제와 결합하는 동시입후보제의 경우, 제도 도입의 취지인 지역주의 완화에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의석이 추가되는 것도 아니고 비례대표 당선인만 바뀌는 방식일 뿐이다.
다만, 동시입후보제는 정당지지를 제고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지역주의 완화와 무관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동시입후보제 하에서는 지역구선거의후보 개인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후보가 소속된 정당에 대한 득표로 이어지는 ‘혼성효과(contamination effect)’가 나타난다.
지역구 후보가 선거운동을 통해 정당의 정책과 이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게 되고, 유권자는 지역구후보를 통해 정당투표를 결정하게 된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비례대표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지역구 출마후보가 되므로 동시입후보제는 정당득표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4. 나가며
우리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전국단위 명부작성방식이기 때문에 지역주의 완화효과를 보일 수 없다. 지역주의 완화가 명시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권역단위로 비례의석을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제이어야 한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제라고 해도 지역구와 비례대
표를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병립형에서는 특정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특정 권역에서는 경쟁 정당의 의석점유율이 낮아 지역주의 완화효과가 미미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현행 선거제도의 대안으로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제는 한국 선거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구의석의 과다한 축소’, ‘의원정수의 유동성’, ‘비례의석 배분의 불평등’, ‘직능대표 다양성 원칙의 적용상 어려움’ 등의 문제점도보인다.
한편,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제에 적용되는 동시입후보제는 정당지지를 제고하는 효과는 있지만, 지역주의 완화효과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동시입후보제는 잘못 운영하게 되면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가 비례대표로 부활당선되는 통로로 고착화될 소지가 있
다. 또한 비례대표 홀수 번에 배정되는 여성할당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고, 정치적 소수, 직능대표의 원내진입도 위축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제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선관위 안을 논의함에 있어 장․단점을 균형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보다 개선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