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노래로 익히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로 통성명이라니, 내 차례가 오면 얼굴이 빨개진 채 겨우 부르느라 곤혹스럽긴 했어도 꽤 낭만적인 추억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공연장에서의 떼창 말고는 무리 지어 노래하는 모습을 만나기가 어렵다.
예전엔 흔했냐고? 매우 흔했다!
소풍길에 줄을 서서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고, 둥글게 앉아 수건 돌리기 같은 게임을 할 때도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 운동회를 해도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며 응원전을 펼쳤다. 어디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특별이벤트가 있을 때 만인가? 친구들과 고무줄 뛰기를 하면서도 노래를 불렀고(말도 안 되는 가사가 즐비한 노래들을 ㅎㅎㅎ)'우리 집에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같은 놀이처럼 노래로 전개되는 놀이도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는 곳엔 늘 노래가 따라붙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다 큰 어른들도 노래할 자리는 많았다. 술잔이 오가는 식당이라면 으레 노래를 부르는 손님이 있기 마련이었고 신혼부부 집들이에서도 서로에게 노래를 시키고 함께 부르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행동은 민폐로 여기게 되었고 노래는 노래방에서, 그것도 코인노래방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혼자 향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예배시간에 부르는 찬송이 아니면 따로 노래할 일이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그녀의 애창곡을 따라 부르기 시작해서인지 내 안의 노래세포가 깨어났나 보다.
어느 날 어머니와 작은 공원을 지나 시장나들이를 하고 오는 길에 갑자기 이 노래가 툭 튀어나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박-경-주
그 이-름 아름답군요'
(이번엔 어머니를 향해)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아는'
(망설임 없이 부르시고는 멈칫하더니 이내)
'나 - 다!!!'
하하하하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나의 선창에 정확한 음정으로 주저 없이 화답을 한 것도 놀라웠는데, 얼른 당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니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게다가 '나는 나'라니! 조물주 버금가는 지혜와 순발력 아닌가!
우리는 함께 유쾌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고고고 이제 살겠네!헥헥!"
"어머니힘드셨어요?오늘뱃살좀 들어갔겠는데요? 하하"
현관을 들어서자 안도하는 어머니에게 농담을 건네며 운동화를 벗기고 보니 언제 실뇨를 한 건지 양말까지 젖어 있었다.
소변이 마렵다는 말씀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산책 도중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산책하는 동안 불편한 기색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언제 그랬을까? 소변이 마려운데 미처 말씀을 못하신 걸까? 아니, 느낌 자체가 없었나? 이러다 곧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는 걸까?
어머니가 당신의 이름을 얼른 말하지 못하는 것이나 실뇨를 하는 횟수가 잦아지는 것은 더 세심한 간병이 필요한 때가 왔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