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인생, 왜 태어났냐고?
곤한 인생 왜 태어냤냐고?
'작용은 있되 주체는 없다'
조금 어려운 말인데, 무아법에서 나는 있되 나는 없다는
말이다. 지금 곤한 인생을 살지만 '절대(개념)'는
아니라는 말이다.
기다림!
기차를 기다리든,사람을 기다리든
내 일터 사장을 기다리든,혹은 이산 가족을 기다리든
기다림 자체는 소중하고 거룩하다.
피곤한 인생,곤하게 잠든 영혼에게
'피곤한 인생,뭐덜러 태어냤냐'한다면
부처님이 섭하다 하실 것이다.
나그네의 짐보따리를 빼앗지 마라
나그네의 단잠을 깨우지 마라.
그가 비록 지금 초췌하고 누추할지언정
그의 생명 자체는 절대존엄이다.
강보에 쌓였던 나 역시 부모형제등 이웃들이
돌봐줘 아장아장 걸으며 배우다 지금 밥술이나
먹으니,어찌 저 곤한 인생을 가엾이 여기랴?
그도 부모가 있었고
만주든 연변이든, 이북이든 하얼빈이든
애틋하고 사랑했던 가족친지들이 있다.
다만 지금,여기가 힘들 뿐
그 영혼까지 능멸할 이유는 없다
언제 무너져 내릴 나의 일상을 상정하지 못하랴?
그의 꿈이나 잠이나 나와 똑같다.
다가올 그 언제, 때로 시원하고 때로 따순 방에서
호박 수제비 떠 먹고,양배추 떡볶기 먹으며
지난 시절을 회상할 수 있으니
고생했든 처절했든 지난 시절은 아름다운 것이다
무수히 스치는 역광장 모서리의 단잠
바로 그의 잠은 피곤해 이뤘던 어제의 내 잠과 똑같다
아침 뒷산에 오르면 멧돼지들이
지난 가을 떨어진 도토리와 썩은 밤을 찾는다
씁쓰레한 상수리와 땅속의 땅강아지를 찾아
밤새 후벼 파며 낙옆더미를 뒤진다고
나무랴거나 저주할 수 없다
내 삶이 거룩하듯,주둥이로 땅을 헤집어 놓는
그의 삶도 비할되 없이(무등등) 거룩하다 할 것이다.
무등등
-부처님 공덕이 그 어느 공덕에 비할수 없이 고준하듯
지금 나그네 단잠이 그 어느 칠보 침상 고뇌의
불면보다 낳으리니
나의 일상,나의 현존은 그 어느 인생이나 삶보다
비교할 수 없이 존엄하다.
길바닥에 쓰러진 곤한 인생을 천하다 하지 마라
그의 비닐 이불백과 그가 벤 작은 가방에도
꿈이 있고 다가올 내일의 풍요와 안락이 있다.
'작용은 있되 주체는 없다
변화속의 변화하는 나는 있지만 고정불변의 영원한
나는 없다. 그도 사바라는 꿈의 무대에서 꿈을 꾸고
있고,나 또한 꿈속의 무대에서 비닐짐을 끌어 안고
자는 그를 보고 있는 것이다.
곧 평등이요,자유라는 말이다.
달팽이 보고 너 왜 느리냐 하면 안되고
부지갱이 보고 너는 허구헌날 그 잿더미 불속만
헤집냐 하면 안된다. 님께서 만물에 불성이 있다 하셨
으니,모두 자기 역할이 있고,생명에 있어 차등이 없다는
부처님 분상! 만법이 완전하고 만물이 본래 성불임
을 토로하신 고준하신 생명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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