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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은퇴자의 노래☆☆]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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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의 노래◎]
한상수 시집 / 서울詩壇시선 246 / 문예운동사(2019.10.01) /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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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1
꼬리꼬리한 된장 냄새
온 집안이 시끄럽다
된장찌개 덩달아
짜갈짜갈 소리 지르면
식구들은
밥상 앞으로 모여 든다
모두 입맛을 다신다
침이 마른다
목구멍은 곰지락곰지락
뉠리리야를 부른다
무장아찌
파리 드 골 공항
레스토랑에서
막개기빵을 억지로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한국인 노부부
가면을 벗고
힐긋힐긋 바라본다
온몸이 느글느글해서
그만 일어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다가와
빨간 무수장아찌를 건네준다
고추장 속에서 20년 넘게
꿈꾸던 애라고 한다
흔들리는 눈을 정지하고
막대기빵과 장아찌 한 조각
입 안에 넣자마자
내 눈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새우젓 맛
할아버지가 주신 말씀
니가 이 맛을 아느냐
채 썰은 애호박 위에
곰삭은 새우젓
송송 썰은 풋고추
칼 궁둥이로 으깨어 낸 마늘 올리고
새빨간 고춧가루 솔솔 뿌려서
밥솥에 쪄낸 새우젓
물 말은 꽁보리밥과 먹어 보았느냐
그 맛을 모르는 디
니가 어찌 한국 사람이냐
높이 올라갈 생각 말아라
새로운 출발
정지선에 이르렀다
새로운 출발선이다
넥타이 풀고
세월 지난 잠바 걸치고
신발을 바꿔 신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이력서
카메라 속에 버리고
지도를 헤집고 다닌다
철조망 친 산
나룻배 없는 강가에서
새로운 이력서를 쓴다
풀밭에서
친구 전화도 없는 날
골방에 누워있으면
천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카메라 들고
시골길로 나가면
들꽃이 알랑대며
말을 건다
발걸음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못 생긴 꽃도
참 아름답다
카메라에 꽃 하나 담고
풀밭에 누워있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자작나무숲 가는 길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사랑하고 있었다
구시렁대는 다리를 달래며
눈길을 헤치고 걸어간다
그것도 깔막진 비탈길
더러 녹은 길은 질척거리고
그늘은 두꺼운 유리가 깔렸다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흐르고
다리는 비명을 지른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싶다
카메라도 아무에게나 주고 싶다
그래도 고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다리에 기압을 넣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다리가 고함친다
쥐가 달려 든 것이다
친구가 얼른 쥐를 쫓아버려서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절룩절룩
마침내 자작나무 숲속에서
하얀 첫사랑을 누리었다
새봄
산비탈에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골목길에는 겨울바람
웅성거리는데
할머니는 호미 들고
들로 나간다
매화나무
백팔 번 꼬부라진
매화나무 한 그루
몸이 뒤틀리고
팔이 꺾여도
눈보라 뿌리치고
꽃 피운 너
못 생긴 몸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꽃병
여주에 갔다가
꽃병 하나 모셔왔다
단학 두 마리
금세 구름을 박차고
비상할 것처럼
날렵한 품새
몸값보다
몇 배나 아름다운 꽃병
거실 한 쪽
높은 받침대에 모셔 놓고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염려하는 고뇌가
마침내 꽃병을 섬기는
하인이 되었다
예쁜 꽃병 하나가
나를 어눌하게 한다
그리움
접지 접어
꽁꽁 숨겨놔도
연기처럼 비집고 나오고
땅속에
깊이깊이 묻어놔도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는
이승의 끝날까지
떨어지지 않는
미열
마침내는
뜬구름이 되고 말 것을
파랑새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쩌겠니
날마다 보고 싶은 것을
어쩌겠니
없으면 두리번거리는 마음
어쩌겠니
창문 앞 배롱나무에 날아오는
파랑새 한 마리
첫사랑
그녀는 어느 날
딱새처럼 날아들었다
바람도 쌀쌀한 날
꽃씨 하나 물고 와서
내 안에 심어 놓고
사랑의 노래 부르며
들락날락하였다
마침내 꽃씨가
아름답게 꽃을 피우던 날
슬픈 미소 던져 놓고
그녀는 딱새처럼
훌훌 날아갔다
쇳대
그리움 하나로
달려온 나그네
자물쇠 굳게 잠긴
좁은 문 앞에서
신발을 벗어 던지고
땅을 쳤지만
자물쇠는 입 다물고
말이 없다
내가 누군가
내 안에 내가
천 명이 넘는다
웅변가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군대도 있고
별의 별 내가 다 있다
모두 하나가
될 때도 있지만
둘로 갈라져
싸울 때도 많다
세월이
늙어갈수록
내 안에
인구도 늘어난다
나는 참된 내가 누군지
나도 잘 모른다
나의 길
어려서부터 걸어가던 산길
아직까지 걸어가고 있다
때때로 곁길로 들어가면
그릇 된 나를 찢어버리고
비탈진 산등성이를 오를 때는
땀으로 범벅이 된 한숨을
솔향기로 닦아냈다
푯대로 삼았던 산마루
숲에 가려 구름에 가려
갈 길을 잃으면
아픈 다리 어루만지며
산새 노래 위에서 쉬었다가 걸었다
돌부리에 다친 발길이
가던 길을 아득하게 하면
바람의 소맷자락 잡고
절룩절룩
걸어가고 있다
은퇴자의 일상 1
아침 향기는
커피로부터 우러나온다
이른 아침
눈을 부시고 일어나면
밤새 설치던
개꿈이 커튼을 제치고 나온다
뒤숭숭한 하루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던 어제가
흙탕물 미꾸라지 처럼 뛰놀고
마른 아침
하품하는 가로등 처럼
하루의 일정표가 한숨지을 때
커피 한 잔이
달콤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은퇴자의 일상 5
은퇴를 앞두고
티브이에서 배운 중국요리
행복을 만들고 싶다
월요일은 탕수욕
화요일은 팔보채
화려한 식탁
아이들 젓가락은 바빠도
아내의 눈길은 멀리 있다
수요일은 마파두부
목요일은 깐풍새우
중국집보다 맛있다는 아들
자기 반찬만 먹는 아내
남아 있는 요리가 고함을 지른다
금요일은 유산슬
토용일은 전가복
아이들은 젓가락춤을 추다가
저희 엄마 손을 잡아당겨도
아내는 옛 친구들만 좋아한다
일요일은 게볶음
마지막 요리
아내가 소스를 맛보더니
게 다리를 든다
나는 아내의 입가에 미소를 입혔다
온 누리가
알록달록한 하루
은퇴자의 일상 10
당신의 화려한 모습
보아도 보이지 않고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
들어도 듣지 못 했네
어둠속에서 허우적대며
지나온 세월……
왜 후회는 늦게 오는가
두통은 왜 이제야 오는가
뒤늦게 당신의 손 잡고
통곡하는 새아침이여
장날 추억
한적한 시골 장날이 되면
깽깽이 소리가 장바닥을 흔든다
막걸리 잔 기울이던 장꾼들
먹던 안주 버려두고 주막을 나간다
사람들 모여들어 동그라미를 그리면
풍각쟁이 신이 나서
코맹맹이 소리롤 뉠리리야를 연주한다
구경꾼들 손가락을 곰지락곰지락거리다가
어느새 어깨가 들썩들썩 하늘로 올라간다
넋을 잃은 굿판
깽깽이 소리 청승맞게 흐느적거리면
구경꾼들 하나둘 씩 자리를 뜬다
장바닥을 흔들던 풍각쟁이
활을 멈추면
장바닥은 이내 잠들고 만다
민담民譚1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는 한국양반협회 회장이라고 했다. 이 외에 개뿔 달린 감투가 백 팔개나 된다. 여기다 그는 화가이며 음악가이며 평론가이며 시인이라고 했다. 그의 명함에는 그냥 박사라고 적혀 있지만 어디선가는 철학박사라 했고, 어디선가는 미학박사라 했고, 또 어디선가는 문학박사라고도 했다. 그리고 설랑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마누라까지 온 가족이 박사라고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구 박사의 집이라 했다. 실제로 그의 별장 마당에는 구 박사의 집이라고 하는 커다란 석비도 세워져 있다. 그의 집을 보면 눈부시다. 단청이 참 울긋불긋하다. 그러나 나는 그다 어디 사람이며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는 잘 모른다
변신變身
그는 달변이다. 그는 부산에서 갈매기를 팔아넘기는 소개소를 운영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대구에 와서 바르게살기운동본부 무슨 부장을 하다가 대전에 와서는 어느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다
그의 핸드백에는 성경책과 치부책이 들어 있다. 치부책에는 고리대금 채무자 명단이 적혀 있다. 더러 치부책이 불평을 하면 그는 눈깔사탕처럼 알록달록한 축복기도를 각혈하듯 쏟아 놓았다.
그는 높은 구두를 신고 비틀거리는 설교도 한다. 죄악의 옷을 벗고 새사람이 되라고 한다. 그의 설교는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끝이 없다. 설교 대상자는 주로 치부책에 적혀 있는 사람들이다.
돈은 신이다. 그는 치과의사인 어느 장로를 존경했다. 그 앞에서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가 자기보다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개똥 쳐다보듯 하였다. 돈은 우월감을 찍어냈다. 그리고 달변은 침묵을 삼켰다.
그는 치부책을 만지작거리며 여의도로 날아가는 꿈을 도로에 깔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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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네 번째 시집을 낸다.
특별히 시를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더구나 남들처럼 아름다운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더욱 없었다. 일기를 쓰다가 중단한 후로 특별히 나를 끌고 가는 생각들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남긴 글들이다.
그래서 특별한 주제라든가 이념 같은 것도 없다. 일종의 삶의 흔적이라고 하겠다. 버리기가 아까웠던 삶의 순간과 호흡을 기록한 소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내 상황이라기보다는 지난날의 삶의 여정을 재정리한 것이라고 하겠다. 앞으로 더 정리되는 대로 계속해서 시집을 내고 싶다.
2019.10
일재서실에서
육헌 한 상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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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수 詩集 [※은퇴자의 노래※]
[ 評說 ] -
은퇴자가 바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
― 한상수 시인의 <은퇴자의 노래>를 읽고
성기조. 시인.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1. 들어가기
육헌 한상수 교수가 네 번째 시집을 낸다고 원고를 보내왔다. 시집 끝머리에 평설을 써달라는 말과 함께……
육헌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고맙지만 평설을 쓰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재삼 부탁하는 정성에 거절할 수 없어 쓰기로 했다. 육헌이 이 시집에 쓴 시인의 말에서 “일기를 쓰다가 중단한 후로 특별히 나를 끌고 가는 생각들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남긴 글들이다. 그래서 특별한 재주라든가 이념 같은 것도 없다. 일종의 삶의 흔적이라고 하겠다. 버리기가 아까웠던 삶의 순간과 호흡을 기록한 소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내 생활이라기보다는 지난날의 삶의 역정을 재정리한 것”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당나라의 시인 한유韓愈는 그의 쟁신론諍臣論이란 글에서 은퇴하는 것을 고불사지심高不事之心과 같다고 말하였다. 은퇴하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일생동안 일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나는데 어찌 마음의 소회가 없겠는가. 우리도 65세면 모든 공적인 일에서 손을 떼게 법으로 정하고, 그러니 과연 그게 맞는 일인지는 생각의 여지가 없다. 65세에 모든 일을 손떼게 하는 것은 누군가가 제멋대로 생각한 규정이다.
왜냐하면 생리학에서나 심리학에서도 인간이 일할 능력이 상실 된다는 법칙은 전연 성립될 수 없으니까 능력의 감퇴나 소멸은 어느 연령에서든 개념에 따라 상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손의 사용을 중지하면 손의 교묘한 능력은 잃게 된다. 또한 두뇌의 사용을 중지하면 우리는 급격하게 노망이 들어버릴 것이다. 누구에게든 언젠가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온다. 그러나 그것은 각 개인에 있어서 각기 상이한 시기에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H.S. 커티스) 맞는 말이다.
우리가 하던 일에서 은퇴하거나 강제 당하는 안일은 그 자체의 목적을 상실하게 한다. 65세를 넘겨서도 아직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가 일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또 일을 하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육헌도 아직 건강하다.
때문에 그는 날마다 부지런하게 알맞은 일감을 찾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지만 세상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자인한다.
2. 은퇴 이후
예로 드는 시는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은퇴한 후에 쓴 시이다. 때문에 육헌은 이 시의 제목을 <새로운 출발>로 정한 것 같다.
정지선에 이르렀다/새로운 출발선이다//넥타이 풀고/세월 지난 잠바 걸치고/신발을 바꿔 신었다//유통기한이 지난 이력서/카메라 속에 버리고/지도를 헤집고 다닌다//철조망 친 산/나룻배 없는 강가에서/새로운 이력서를 쓴다
-시 <새로운 출발> 의 전문
마치 정년을 엊그제 맞은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이십년에 가깝다. ‘세월 지난 잠바’ 걸치고 신을 바꿔 신은지 이십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 생생한 기억을 더듬으며 ‘유통기한이 지난 이력서’를 ‘카메라 속에 버리고 지도를 헤집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육헌은 이렇게 찍은 사진을 여러 차례 전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여주에 갔다가/꽃병 하나 모셔왔다//단학 두 마리/금세 구름을 박차고/비상할 것처럼/날렵한 품새/몸값보다/몇 배나 아름다운 꽃병//거실 한 쪽/높은 받침대에 모셔 놓고/감상하는 즐거움보다/염려하는 고뇌가/마침내 꽃병을 섬기는/하인이 되었다//예쁜 꽃병 하나가/나를 어눌하게 한다
-시 <꽃병>의 전문
세상일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사는 일이 은퇴라고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면 은퇴는 괴로운 일이된다. 우리나라는 65세를 기준으로 은퇴가 결정된다. 한편 생각하면 강제로 법률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당하는 쪽에서는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중국의 노자는 공성명수신퇴천도功成名遂身退天道라고 말했다. 공을 이루고 이름을 얻으면 그 직임에서 물러나 한가히 몸을 가지는 것이 오직 천도天道를 따르는 일이란 뜻이다.
노자의 이 말을 생각하면서 나이 먹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일이 있어도 세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기를 바란다.
여주는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그곳에 갔다가 귀한 꽃병을 모셔 왔는데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 구름을 박차고 금세 비상할 것 같은 단학 두 마리, 몸값보다 아름다운 꽃병에 빠져든 육헌은 거실 한쪽에 받침대 위에 놓고 감상한다.
너무 열심히 꽃병을 섬기기 때문에 스스로 꽃병의 하인이 되었다고 자탄한다 은퇴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어려운 일이다.
조금은 한가하기 때문에 ‘꽃병을 섬기는’일에도 시간을 쪼갤 수 있다. 노자의 말대로 천도를 알게 된 까닭이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되면 서두는 법이 없어야 한다. 절대 무리가 없다. 세상의 이치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무엇이고 천천히 한다.
나는 작은 겨자씨/사람들 눈에 잘 띄지않고/입김만 불어도 풀풀 날아가는/보잘것없는 존재//바람이 불어오고/자갈이 굴러와도/내 안에 있는 꿈/펼쳐지는 날//들풀이 시드는 들판/노랗게 장식하고/갈곳 없는 새들을 품어주는 시원한 그늘되리//꽃이 차차 익어 열매 맺으면/내가 가꾼 노란 꿈/멀리멀리 날려 보내리/온누리가 노랗도록
-시 <겨자씨의 꿈>의 전문
은퇴 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모두 즐겁지만은 않다. 그래서 작은 겨자씨에 자신을 비유한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입김만 불어도 풀풀 날아가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자신을 돌아보며 “내 안에 있는 꿈”을 펼쳐볼 날을 기대해 본다. 꿈을 펼치는 날이다. 그러나 그 꿈이 쉽게 펼쳐질 것 같지 않다. 희망이 있다면 ‘갈곳 없는 새들을 품어주는 시원한 그늘’이라도 되고 싶다는 육헌의 꿈, ‘꽃이 차마 익어 열매 맺으면 내가 가꾼 노란꿈, 멀리멀리 날려 보내’겠다는 그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당신의 화려한 모습/보아도 보이질 않고//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들어도 듣지 못했네//어둠속에서 허우적 대며/지나온 세월…//왜 후회는 늦게 오는가/두통은 왜 이제야 오는가//뒤늦게 당신 손잡고/통곡하는 새아침이여
-시 <즐거운 일상10>의 전문
아내에 대한 여러 가지 후회와 회한, 그리고 넉넉한 사랑이 담긴 시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쁘고 화려했던 아내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후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어도 듣지 못했던 후회를 깊이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내보인다. 그래서 ‘왜 후회는 늦게 오는가’ 탄식하고 있다. 그래도 육헌은 늦게나마 ‘당신의 손잡고/통곡하는 새아침’을 맞고 싶은 것이다.
모든게 새롭게 생각되는 계기를 만들어 아내와 함께 즐거운 일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
3. 동심의 세계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동심이란 시를 보라.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며 춤추며 모여든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를 가지고 논다. 가랑잎으로 배를 엮어 한 바다에 띄워 보낸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도 이만한 놀이는 어디선지 하고 논다.
천진스럽고 또 유쾌하다. 육헌은 아동문학가다. 대전사범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시와 동화를 창작해 왔다. 때문에 그의 마음에 천진스런 동심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 뒤에 대학교수로 봉직해 왔기에 동심의 세계는 더욱 억세게 그의 가슴속에서 타올랐으리라.
얼굴에 분 발라도/외로운 마음/달랠길 없어/찾아간 친구/장작불 피워놓고/구운 고구마/호호 불며 먹다가/입가에 검정/서로 손가락질하며/화들짝 웃었다
-시 <군고구마>의 전문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구워 먹는 고구마, 뜨거워 호호 불며 먹다가 입가에 검정을 묻치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화들짝 웃었다는 동심의 세계를 눈앞에 보는 것 같아 신선하다. 육헌은 이러한 동심의 세계에 묻혀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해 왔다.
1966년 경향신문에 동화 <지태와 미혜의 코끼리>가 발표되면서 그 해에 동화집 『풍선 먹는 사냥개』가 발표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시작으로 그가 한국 아동문학계의 선두에 서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산비탈에는 눈보라가/휘날리고//골목길에는 겨울바람/웅성거리는데//할머니는 호미들고/들로 나간다
-시 <새봄>의 전문
짧은 시다. 그렇지만 새 봄에 할 일이 모두 들어있다. 산비탈에는 아직도 눈보라가 휘날리는데 골목길에는 겨울바람이 그대로 남아서 불고 있다. 그래도 세상은 봄 기운이 돌아와 할머니는 호미들고 들로 나가 봄일을 한다는 이 시는 아이들이 보는 동심의 세계가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이러한 시를 짓는 육헌은 이익에 눈 밝은 기성세대의 생각을 멀리한다. 때문에 그는 어린이의 세계를 깨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동심은 어떠한 권력도 굉장한 재벌도 아랑곳 없다. 그 동심을 글로 일일이 표현할 문자가 부족할 지경이다. 동심을 색깔로 표현해 보자면, 하늘의 코발트색 같기도 하고 반응으로 보자면 리트마스 시험지같이 정확하면서 거짓이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육헌은 이러한 동심의 세계에서 글을 쓰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4. 육헌과 충청도 사투리
육헌은 충청도 사람이다. 금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충청도 사투리를 그대로 간직해서 언어활동을 한다. 사투리는 그 지역마다 특성을 가지고 발전해 오기 때문에 우선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 지역에서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정겹기고 하지만 한편 타지방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생소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출생해서 성장하는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사투리를 없애기는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된다. 사막에도 물이 흐르는 자국이 있듯 아무리 사투리를 없애려고 해도 남아있게 된다. 오직해야 방언, 토어土語라고 했겠는가.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면/사뭇 숫스러워지는 생각 고구려에 사는 듯/아스럼 눈 감었든 내 넋의 시골/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라고 시인 서정주는 그의 시 <수대동시>에서 노래하고 있다. 사투리를 많이 쓰는 사람이 모여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꼭 石戰석전을 하는 것 같이 시끄럽다. 허나 사투리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답기 그지없다. 육헌의 시 <바가지 비빔밥>을 보자.
입맛 떨어진 여름날/숟가락도 따분하다//배고플 때 박박 긁던 바가지/꽁보리밥 담고/송송 썬 열무김치/고치장 한 숟갈에/참기름 한 방울 쳐서 썩썩 비벼 내면//식구들 숟가락/바가지 속에서 씨름을 한다
-시 <바가지 비빔밥>의 전문
충청도에서는 바가지에다 밥을 잘 비벼먹는다. 물론 큰 그릇이 없기 때문에 바가지를 쓰지만 비비는데 소리 안나고 맛도 구수하다. 분위기도 시골스럽지만 바가지에 꽁보리밥 담아 열무김치 송송 썰어 넣고 고치장 한 숟갈에 참기름 한 방울. 이것들을 함께 썩썩 비벼 먹는다. 고치장도 숟갈도 모두 충청도 사투리다.
파리 드 골 공항/레스토랑에서/막개기빵을 억지로 먹고 있었다//옆 테이블에 앉은/한국인 노부부/가면을 벗고/힐긋힐긋 바라본다//온몸이 느글느글해서/그만 일어나려고 하는데/할아버지가 다가와/빨간 무수장아찌를 건네준다/고추장 속에서 20년 넘게/꿈꾸던 애라고 한다//흔들리는 눈을 정지하고/막대기빵과 장아찌 한 조각/입 안에 넣자마자/내 눈이 밖으로/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시 <무장아찌>의 전문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곳으로 유명한 드 골 공항식당에서 ‘무장아찌’를 맛보는 이야기다. 맨빵을 먹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국인 한 사람이 ‘무장아찌’를 건네 주었다는 이야기. 신기하기도 하지만 기적같은 사실이다.
맨밥에 장아찌를 먹듯 막대기빵을 먹으면서 무장아찌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식사습관이 다른 서양과 동양. 한국의 시골스런 풍경을 견주어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어찌 겉모양 뿐인가.
느글느글한 속이 장아찌 한입에 금방 개운해지는데. 글쎄 그 장아찌가 20년을 넘게 항아리 속에 있었다잖는가? 막대기빵과 장아찌 한 조각을 먹자마자 ‘내 눈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는 고백을 육헌만 경험한 특이한 사실이 될 것이다. 모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만들어낸 일이다.
5. 취미였던 사진찍기가 사진작가로
J.A.M.휘슬러는 <적을 만드는 은퇴한 예술가>란 그의 글에서 ‘모방자는 일종의 나약한 피조물이다. 나무, 꽃 또는 눈에 보이는 다른 표면적인 것만을 그리는 것이 예술가라면 사진이야말로 예술가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만큼 사진이 중요함을 말한다. 육헌은 아동문학을 하면서 사진찍기를 취미로 하는 듯 하더니 이젠 급수 높은 작가가 되어 전시회를 연다. 말하자면 급수 높은 사진작가 반열에 올라있다. 사진은 모든 사물들을 골라 찍으며 그것들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 나타낸다. 때문에 사진 촬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미처 몰랐던 측면에서 관찰하고 느끼고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진은 대상을 재현시키는데 목표를 두기 때문에 사진에 알맞은 대상을 찾아야 한다. 마치 모델과 마찬가지로 많은 해석들, 또는 잘못된 오류까지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육헌은 이점에 특히 유의하는 작가로 은퇴 이후에는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내비도 잘모르는/비밀의 정원/간신히 어둠속에/세운 삼각대/비밀을 주어 담으려고/어둠을 지워가네//드디어 동이 트고/나타난 풍경/깜짝 놀란 카메라/정신을 잃었는데/안개가 달려와서/하얀 커튼을 치네
-시 <비밀의 정원>의 전문
동이 트는 새벽 내비게이션도 잘 감지되지 않는 비밀의 정원에 삼각대를 세워 놓고 사진을 찍는다. 드디어 동이 트고 나타난 풍경에 깜짝 놀란 카메라가 막 작업을 시작하는데 안개가 달려와 하얀 커튼을 친다는 놀랄만한 사실은 밤새운 고생을 흔적도 없이 걷어 갔다. 말짱 헛일이 되었다는 허탈감만 일어나는 새벽에 육헌의 실망은 이루 말할 것 없다.
시에 나타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장엄한 일출을 찍으려고 밤을 새운 것 같다. <비밀의 정원>에 들어 있는 각주를 보면 ‘비밀의 정원’은 강원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 산 122-3군부대 내에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시도 사진찍기를 위하여 촬영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다.
육헌이 만약 사진작가로서 성장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장엄한 일출을 못 보았을 터이고 또한 강원도 산간에서 밤도 새우지 않았을 것이다. 은퇴지 말뜻 그대로 세삳ㅇ을 피하여 한가하게 산다면 육헌은 이만한 재미를 얻지 못할 것이다.
6. 마무리
육헌 한상수 교수는 늙마에 행복한 사람이다. 동화를 창작하고 사진을 찍고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행복. 그것만으로도 삶의 맛을 톡톡히 느끼며 세상을 산다. 그뿐인가 교회의 장로로 또한 문학강의 등을 열심히 펼치는 그의 삶에서 열정적으로 뜨거운 점을 발견할 때마다 단단한 힘과 끊임없는 노력이 그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언제나 공평무사한 생각, 열정이 넘치게 일을 찾아나서는 모습, 언제나 웃음으로 명랑하게 주변을 만들며 모든 이를 즐겁게 하는 일을 아름답기만 하다.
앞으로도 계속 예술 활동을 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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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육현 한상수 교수는 늙미에 행복한 사람이다. 동화를 창작하고 사진을 찍고 사진 작가로서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행복, 그것만으로도 삶의 맛을 톡톡히 느끼며 세상을 산다. 그뿐인가 교회의 장로로 또한 문학 강의 등을 열심히 펼치는 그의 삶에서 열정적으로 뜨거운 점을 발견할 때마다 단단한 힘과 끊임없는 노력이 그를 지탱해 주고 잇음을 보게 된다.
― 성기조 교수의 평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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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수 시인. 동화작가∥
∙ 충남 금산 출생
∙ 대전사범학교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대학교수로 퇴직
∙ 현재 대전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 1965년 소년한국 동화 <어떤 돼지>, 1966년 경향신문에 동화 <지태와 미혜와 코끼리>가 발표되면서 작품 활동을 히작하여,
∙ 동화집 <풍선 먹은 사냥개(1966)> 외 다수 발간
∙ 시집으로 시전집(2007)> <은퇴 이후(2018)> 그리고 이 시집 <은퇴자의 노래(2019)>를 발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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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의 노래, 산새 들새 노랫소리
한상수 대전대 명예교수, 시집과 동요집 동시 출간하다
승인 2020-01-09 08:43 / 수정 2020-01-09 08:43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무대에 쫓겨난 /배우들/허둥대며 객석으로 돌아와/관객이 되었다.//두고 온 미련/버리지 못해/무대 주변을 맴돌지만/설자리 없는 피에로//도시로 내려온 노루처럼/낯선 땅에서/두리번대다가/한숨으로 탑 쌓으며//일상의 뒤안길에서/안질 걸린 목소리로/랩을 부르며/흘러간 노래를 그리워한다. -한상수 <은퇴자>
새들이 풀숲에서 포릉포릉 날아다니는 소리/아기 새가 나뭇가지에서 벌벌 떨며/발을 조촘조촘 옮기는 모습/어미 새가 돌아오면/일제히 탄성을 지리는 귀여운 입/아기 새가 차츰차츰 자라면서/그 입으로 부르는 노랫소리/이 얼마나 귀여운가./새들과 함께 놀아보자.
-한상수 <산새 들새 노랫소리>
한상수 대전대 명예교수가 시집 <은퇴자의 노래>와 동요동시집 <산새 들새 노랫소리>를 동시에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상수 교수는 “네 번째 시집을 냈는데 특별히 시를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며 “남들처럼 아름다운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더욱 없었고, 일기를 쓰다가 중단한 후로 특별히 나를 끌고 가는 생각들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남긴 글들”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특별한 주제라든가 이념 같은 것도 없고 일종의 삶의 흔적”이라며 “버리기가 아까웠던 삶의 순간과 호흡을 기록한 소회이므로 현재의 내 상황이라기보다는 지난날의 삶의 역정을 재정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앞으로 더 정리되는 대로 계속해서 시집을 내고 싶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또 “동요동시집 <산새 들새 노랫소리>에서는 들새와 물새, 산새, 집새, 황새로 나눠 시를 지어봤다”고 전했다.
한편 금산에서 태어난 한 교수는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출발해 대학교수로 퇴직했다. 현재 대전대 명예교수이다. <소년한국>에 동화 ‘어떤 돼지’, <경향신문>에 ‘지태와 미혜와 코끼리’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화집으로 <풍선 먹은 사냥개>,<숲속의 음악회>,<푸른 별들>,<푸른 꿈의 이야기>,<팔도전래이야기>,<그리운 메아리>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기도로 뿌린 씨앗>,<한상수 찬송 시선집>,<은퇴 이후> 등이 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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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달빛자락 / 명상음악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http://cafe.daum.net/musicgarden/5r73/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