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안에 꼭 있어야 할 이것
노병철
옛날 뽀빠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뽀빠이는 올리브가 브루터스에게 위해를 당할 급박한 상황에는 그녀의 괴성(?)을 듣고 어디에선가 나타나 시금치를 먹고 괴력을 발휘한다. 시금치 먹을 때 나오는 음악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미국 애들이 시금치를 좋아하지 않아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읽은 적이 있다. 덕분에 애어른 가릴 것 없이 시금치를 먹는 바람에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나 미국 텍사스주의 시금치 재배 농부들은 뽀빠이의 동상도 세워줬을 정도란다. 하지만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반공 목적으로 쓴 시가 아니었음에도 반공 시로 알려졌듯 뽀빠이 작가도 영양분 많은 음식이 뭐가 있을까 싶어 찾다가 철분이 많은 시금치를 우연히 선택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근데 사실 시금치엔 철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시금치를 싫어한다는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금치에 ‘시’자가 들어가 진절머리 나는 시댁 생각 때문에 싫어하는 며느리는 그래도 이해는 한다만 시금치의 그 맛을 왜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혹 여름 시금치를 먹었나? 맛이 없기로 여름 시금치만 한 것이 있을까. 시금치는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난다. 겨울철 시금치 맛을 모르면 시금치 제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월동하기 위해 잔뜩 영양분을 품고 있기에 알밴 양미리처럼 정말 죽여주는 맛이 난다. 내게 밥도둑은 게장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시금치 무침이다. 시금치 반찬만 있으면 밥 한 그릇 그냥 넘어간다. 특히 참기름에 무친 겨울 시금치의 달싹한 맛은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맛이다.
옛날엔 잡채라는 말이 여러 가지 나물을 섞은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으로 만든 잡채라는 것을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큰 맛을 느끼지 못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아니면 잡채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는 어떤 맛 때문일까. 중국집에 빵과 섞어 먹는 고추잡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고추잡채와 빵이 나오면 그다음 요리는 없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중국집 코스요리의 끝이 고추잡채란 말이다. 나에게 익숙한 잡채라는 것은 따로 있다. 잡채는 당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맛이다. 이게 내가 아는 ‘잡채’이다. 그리고 또 이 잡채에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시금치 없는 잡채는 맛이 없다. 푸른색 시금치가 주는 잡채는 식탐을 불러일으키는 첫 번째 부재료이다. 그리고서 돼지고기나 당근이 들어갈 뿐.
시골 마을 잔치 때 엄마가 어떤 음식을 하느냐에 따라 그날 횡재하는 놈이 있고 별 볼 일 없는 놈이 생기게 된다. 지네 엄마가 부엌에서 밥이나 퍼고 상차림만 하고 있으면 말짱 황이다. 그런 엄마한테는 붙기도 힘들고 붙어봐야 별 반찬 없다. 재수 옴 붙었다 생각하고 보직 제대로 잡은 엄마를 둔 애한테 가서 빌붙는 것이 최고다. 이상하게 우리 엄마는 잡채 담당으로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대구에서 시골로 시집온 유일한 여자라 배려 차원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다른 애들 외가라고 하면 전부 시골인데 난 도시가 외가이다. 도시 여자는 다른 것은 시키면 사고를 치기에 잡채는 아주 간단한 것이 그런지 항상 엄마 담당이었다. 우리 삼 형제는 그런 엄마 덕분에 당시 고급 음식이었던 잡채를 다른 애들보다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우리가 부러워 껄떡였던 놈 중 하나가 지금 큰 병원을 운영한다. 그놈은 지금도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잡채란다.
“시금치 먹고 싶다.”
“.....................”
“시금치 먹으면 뽀빠이처럼 힘이 세진다던데.”
마누라 눈에 흰자위만 보인다. 바로 튀었다. 일전에 정구지 해달라면서 졸랐던 말이랑 똑 같이 나오고 말았다. 언놈이 정구지가 정력이 좋다고 했는지 원.
첫댓글 섬세하십니다.
남해와 포항시금치가 제대로 맛있는 계절이라 저도 어제 한 묶음 사서 무쳐 먹었습니다.달달한 맛이 입안에 스며드니 막 건강해질 듯합디더.
역시 재밌습니다.
전 잔칫집에서 부엌일 하시는 분 자녀들이 엄청나게 부러웠습니다.제 엄마는 마님처럼 옥양목 적삼 풀 꼿꼿이 먹여 다려입고 잔칫집 안방에 턱 앉으셔서는제가 먹거리 궁금해 담너머로 기웃대면 눈 흘기셔서 무서웠습니다.옆집 아지매가 그런 절 불러 한쟁반 퍼 주시던 잡채 맛 잊을수가 없습니다.그 아지매집에 양녀로라도 가버리고 싶었다니까요.
잡채 올설날에 우리집 밥상에 꼭 올려야겠습니다.아이들이 그리워 하는 음식일수도 있겠네요.
부페가 아니라도 밑반찬으로 잡채 그것도 잡채라고 생각되는 것이 상에 올라오면
모든 사람들의 젓가락이 그 접시를 향하더군요.
전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더니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조금 고개가 끄떡여지네요.
이 작품은 우리집 남자가 읽어야 제 마누라가 얼마나 좋은지 알텐데 ㅎㅎ
잡채?
따~보~옹!
더 말해 뭣 하리오ㆍ쌤의 글처럼 잊을수 없지요ㆍ
시금치가 들어간 잡채, 참 맜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