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 본 문 : 갈라디아서 3장 6절 - 9절 (신약 p.304)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사랑합니다. - 승리하십시오. - 행복하십시오.’
+ 함께 찬양합시다. /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감인데, 감 중에서도 단감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런데 감 가운데 ‘나도 감’ 이라는 감이 있는데, 꼭 도토리만큼 아주 작은 감입니다.
하두 작아 ‘너도 감이냐?’ 했더니, ‘그래 나도 감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나도감’ 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인데, 외국의 문학서적에 ‘너도 밤나무?’ 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특히 퓰레처라는 사람의 시 속에 ‘너도 밤나무?’ 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너도 밤나무는 밤송이처럼 떡 벌어진 사이로 탐스럽게 알밤을 맺는데,
멋모르고 깨물었다가는 그 씁쓸한 맛에, 두고 두고 입안이 씁쓸하고, 아리아리 하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은 감인데 감 같지 않는 ‘나도 감’ 이도 “너도 밤나무” 처럼,
과연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인,
같지 않는 볼품없는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겉모습과 그 맛이 전혀 다른 ‘너도 밤나무’ 의 열매처럼, 과연 나는 겉모습은 예수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씁슬하게 하고, 떨떠름하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우리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늘 점검해 보아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얼굴 모습과 보이는 빛깔과 풍기는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의 모습과 빛깔과 향기를 느끼게 하는 삶이 있고, 삶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에게 묻는 물음을 들어야 합니다.
‘나도 감’ ‘너도 밤나무’ - ‘너도 목사냐?’ ‘너도 장로냐?’ ‘너도 권사냐?’ ‘너도 집사냐?’
‘너도 교사냐?’ ‘너도 성가대원이냐?’ ‘너도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냐?’
그리고 우리는 나 자신에게도 늘 이렇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도 감’ ‘너도 밤나무’ - ‘나는 정말 내 가정에서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나는 정말 내 직장에서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나도 감’ ‘너도 밤나무’ - ‘나는 정말 목사다운 목사인가?’ ‘나는 정말 장로다운 장로인가?
‘나는 정말 권사다운 권사인가?’ ‘나는 집사다운 집사인가?’ ‘나는 교사다운 교사인가?’
‘나는 정말 성가대원다운 성가대원인가?’ ‘ 나는 정말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가?’
무엇보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가?’ 하는 질문을 내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도 내게 던져야 합니다.
오늘 이시간은 이 질문에 도움이 되고자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릴 때에 은혜 듬뿍 받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 은 과연 어떤 삶입니까?
첫째로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은 ‘축복의 도구가 되는 삶’ 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제각기 값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모든 물건들도 제각기 그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물건이라도 그 물건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칼이 있는데,
그 칼이 훌륭한 조각가의 손에 쥐어지면, 훌륭한 예술 작품이 탄생할 것이며,
그 칼이 외과 의사의 손에 주어지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칼이 강도의 손에 쥐어지면, 그 칼은 사람을 헤치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똑같은 물건도 그 물건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에 우리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창조하신 것과 모든 복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불순종의 범죄함으로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습니다.
그로부터 우리 사람들에게 기근과 질병과 전쟁이 일어남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저주받은 사람만 있는게 아니라, 주님 은혜로 복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축복의 도구로 쓰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진노의 도구,
악한 도구로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주와 진노의 도구, 악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께서 악한 도구로 사용했던 불행한 사람입니다.
욥을 침노했던 친구들, 이르라엘을 침노한 앗수르 민족과 바벨론 민족, 다윗을 괴롭힌,
사울 왕은 분명 악한 도구로 사용했던 불행한 사람이었고, 불행한 민족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악한 도구가 아니라, 축복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에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있습니다.
하늘 복은 믿음을 갖게 하고,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는 신령한 복입니다.
땅의 복은 육신의 건강과 물질의 부와 출세와 명예를 얻게 하는 세상에 속한 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늘과 땅에 속한 복의 도구,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신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 고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만 잘 살고, 나만 높아지고, 나만 건강하고, 나만 평안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받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과 오늘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고 약속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그러므로 복의 근원입니다. 복의 근원이 된 우리들은 복의 근원의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복의 근원으로서의 우리의 사명은, 가정과 직장과 세상과 교회가 복을 받게 하는 축복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바라기는 복의 근원이 된,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는 ‘축복의 도구가 되는 삶’ 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은 ‘베푸는 삶’ 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고의 친절과 사랑과 최고의 대접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월급이나 받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면, 그 사람은 삯군에 불과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 벌기 위해 손님을 맞는다면, 그 사람 역시 믿는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직장에 다니든지, 장사를 하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나 때문에 나와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직장 동료, 내 집에 찾아오는 모든 고객들이,
복 있는 사람이 되도록, 예수 믿는 내가 축복의 도구로서의 베푸는 삶’ 을 살아야 합니다.
세탁소를 경영하여 크게 성공한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 그 성공비결을 간증했는데,
‘나는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세탁소 문을 열었으며, 옷을 세탁할 때나 다리미질을 할 때에,
예수님의 옷을 세탁하고, 예수님의 옷을 다리미질을 한다고 생각했으며, 옷을 맡기거나,
세탁된 옷을 찾으러 온 손님은 예수님이시라는 마음으로 맞이 한다.’ 고 간증했습니다.
참 그분은 예수 믿는 분으로 ‘축복의 도구로서의 베푸는 삶’ 을 훌륭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복의 도구로서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대하고,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도,
정말로 예수님을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축복의 도구로서 서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대하고,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도 ‘축복의 도구로서 서로 베풀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형제 자매간에도 ‘축복의 도구로서 서로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가족들끼리 ‘축복의 도구로서 서로 베풀 때에’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가족관계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와 성도들 간에, 성도와 성도들 간에 ‘축복의 도구로서 서로 베풀어야’ 합니다.
축복의 도구로서 서로 베풀 때에, 복있는 교회, 복 있는 성도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축복의 도구가 된 사람들의 특징을 누구에게나 베풀기를 잘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 문 앞에 앉았다가,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선 것을 보고 달려가 절하며,
말하기를 ‘당신들이 나에게 왔으니, 은혜를 베풀어서 나로 하여금 당신들의 발을 씻게 하고,
떡과 고기를 대접할 수 있게 해달라’ 한 후, 그들을 영접하여 잘 대접하였습니다.(창18:1-8)
이렇게 하나님을 잘 대접한 일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되었던 리브가도 물을 긷다가 ‘물을 좀 달라.’ 하는 이삭의 종에게 얼른,
물 항아리를 내려 마시게 하고, 약대에까지 물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창 24:18-20)
이렇게 잘 대접한 일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루디아라는 자주장사가 복음을 전하러온 바울에게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강권하여,
잘 대접하고, 자신의 집을 교회로 쓰도록 내어 줌으로 유럽 최초의 빌립보교회가,
창립되게 되었고, 빌립보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장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16:14-15)
이외에도 성경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손님 대접을 잘한 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엡 1:4 / 2:10) - 정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선한 일 -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함” 입니다.
그러므로 ‘복의 근원 - 축복의 도구로서 ‘베푸는 삶’ 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셋째로,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은 ‘복음을 전하는 삶’ 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만민이 구원얻을 것을 뜻합니다.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데, 곧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은 축복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축복의,
도구가 된 아브라함에 엄청난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멘! 아멘! (창 12:2-3)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은,
축복의 도구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등,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분명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데, 쓰임을 받은 큰 축복의 도구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이 부르신 때가 가까워 오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고백했습니다.
(딤후4:7-8)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복의 근원,
축복의 도구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아브라함이 받았던 모든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쓰는 놀라운 영광의 주인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은 어떤 삶입니까?
‘축복의 도구가 되는 삶’ ‘베푸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 곧 축복의 도구가 되는 삶, 베푸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을 살아 아브라함이 받았던 모든 축복을 받고, 사도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쓰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