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가운데는 지리산 천왕봉
남쪽 명산의 정상 가운데 덕유산이 가장 기이하니, 구천뢰(九千磊, 구천동) 위에 칠봉이 있
고, 칠봉 위에 향적봉이 있다. 덕유산은 감음(感陰, 안음(安陰)의 옛 이름)ㆍ고택(高澤, 장수
의 옛 이름)ㆍ경양(景陽, 금산의 옛 이름)의 여러 군에 걸쳐 있는데, 곧장 남쪽으로 가면 천
령(天嶺, 함양의 옛 이름)과 운봉(雲峯)이다. 지리산 천왕봉과 정상이 나란히 우뚝하며, 이
어진 산봉우리에 연하가 300리나 서려 있다. (……)
산을 오르는 데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감음의 혼천(渾川)을 따라 구천뢰 60리를 오
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양의 자갈길을 따라 사자령(獅子嶺)에 올라서 이르는 것이다.
――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 ~ 1682), 「덕유산기(德裕山記)」
▶ 산행일시 : 2019년 8월 17일(토), 맑음, 선선한 날씨
▶ 산행인원 : 9명(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일보, 신가이버, 제리, 대포, 무불, 메아리)
▶ 산행코스 : 안성 학루교→1,165.7m봉, 가새봉(1,370.0m), 1,395.7m봉, 백암봉(1,500.4
m), 동엽령, 1,425.4m봉, 무룡산(△1,492.1m), 무룡산 북서릉, 1,218.0m봉,
초연교→명천호
▶ 산행거리 : GPS 도상거리 17.0km
▶ 산행시간 : 12시간 1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0 : 2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20 – 죽암휴게소
03 : 07 ~ 04 : 50 – 안성 학루교, 차내 계속 취침, 산행준비, 산행시작
06 : 04 – 1,030m 고지
06 : 22 – 1,165.7m봉 아래, 아침 요기
07 : 02 – 1,165.7m봉
07 : 23 – 1,165.7m봉 북서릉 1,162.0m봉을 잘못 갔다가 다시 1,165.7m봉
08 : 22 – 가새봉(1,368.9m)
09 : 15 – 덕유산 주릉 1,490m봉
09 : 42 – 백암봉(1,500.4m)
10 : 42 - ┣자 갈림길 안부, 동엽령(東葉嶺)
11 : 10 ~ 11 : 48 – 무룡산 2.8km 전, 점심
12 : 08 – 1,432.2m봉(대기봉)
12 : 28 – 1,425.4m봉
13 : 03 – 무룡산(舞龍山, △1,492.1m)
14 : 48 – 1,218.0m봉
15 : 54 – 명천계곡(明川溪谷)
16 : 24 – 원통사 갈림길, 초연교
17 : 04 – 명천호, 산행종료
17 : 40 ~ 19 : 30 – 금산, 목욕, 저녁
21 : 52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덕유산 백암봉과 무룡산 주변
2. 산행 고도표
▶ 가새봉(1,370.0m)
잠결에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소리인 줄로 알았는데 차문 열고 나서자 용추계곡의 포말 이는
물소리다. 학루교를 건너며 헤드램프 비추어 내려다보는 계류가 아주 볼만하다. 학루교를 건
너자마자 오른쪽 계곡의 소로로 든다. 소로는 계류를 잠시 거슬러 오르다 왼쪽 사면을 바짝
기어올라 엷은 지능선을 붙든다. 새벽이슬이 내려서일까? 풀숲은 흠뻑 젖었다. 밤공기가 선
선하다.
등로 주변에는 보기 좋은 아름드리 적송이 즐비하다. 열여드레 둥근달은 그런 노송 사이를
부지런히 비집으며 우리 뒤를 쫓는다. 긴 오르막길 땀이 비칠 듯하면 풀숲 헤쳐 찬이슬을 끼
얹는다. 등로는 여러 지능선을 모아 제법 굵어졌다. 갑자기 눈이 아무리 비벼도 소용없게 침
침해진다. 한참 후에야 우리가 안개 속에 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풀숲이 젖은 것은 안개비가 내려서다. 부지 중 활엽 나뭇가지 건드려 안개비 모은 소낙비를
맞는다. 5시 30분이 넘고 헤드램프를 소등해도 걸을만하다. 여태 뵈는 게 없어서 막 가던 능
선이 보이기 시작하자 잡석 섞인 가파른 오르막이다. 키 큰 나무숲이 워낙 울창하여 일출의
장려함을 알지 못하겠다. 1,165.7m봉 아래에서 아침요기 한다.
1,165.7m봉은 우리의 눈과 발에 퍽 익숙하다. 불끈 솟아 동녘 반공을 차지한 첨봉의 가새봉
을 보게 되어 그렇고, 그보다는 산죽 숲을 헤치고 사면을 조금 더 내려가면 어쩌면 덕유산 유
일의 더덕의 보고가 있어서다. 그러나 오늘은 사면을 누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안개비에 젖
은 풀숲과 산죽 숲이 수심 깊은 물구덩이다. 등로만 해도 키 큰 산죽 숲이 우거져 발로 더듬
으며 가야 한다.
1,165.7m봉은 세 갈래 튼튼한 능선이 분기하는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왼쪽은 망봉(望峰,
699m)을 가거나 덕산리로 내릴 수 있고, 오른쪽은 가새봉을 경유하여 덕유주릉으로 간다.
등로가 잘나서다.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왼쪽 내리막길을 한 차례 쏟아졌다가 안부께의
가로누운 거목의 노송을 넘고 이슥 오르니 봉우리 정상에 무덤이 있다. 가새봉 가는 길에 이
런 데가 있었던가 하고 새삼스레 지도와 나침반을 들여다본다.
역시 믿을 건 오직 나침반이다. 방향착오. 동진해야 할 것을 0.3km 북서진하여 1,162.0m봉
으로 잘못 갔다. 뒤돌아간다. 뒤도는 길은 1,165.7m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사면을 도는 우회
길이 잘 났다. 1,165.7m봉에서 가새봉을 오르는 1.3km가 오늘 산행 중 험로의 하이라이트
이다. 키 큰 산죽 숲이 우거진 가파른 오르막이다. 계절을 달리하여 올 때마다 험로다. 한 발
한 발 더듬어 길을 찾아야 하고, 산죽 숲에 묻힌 고사목이 발목지뢰다.
가새봉에 오르면 비로소 시야가 트인다. 우선 향적봉에서 남덕유산 서봉까지 덕유주릉이 장
쾌무비하다. 가새봉을 오르는 이유다. 덕유주릉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고 오른쪽 사면
도는 우회로를 마다하고 억센 잡목 숲 헤치고 암릉을 간다. 가새봉 동벽 위의 암반이 빼어난
경점이다. 가새봉 내리막의 바위 슬랩이 약간 까다롭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안내 받아 내
린다.
3. 덕유주릉, 가운데 안부가 동엽령
4. 가새봉에서 바라본 덕유주릉, 그 너머는 지리산 천왕봉
5. 왼쪽은 삿갓봉, 그 뒤 오른쪽은 남덕유산, 그 오른쪽은 남덕유산 서봉
6. 덕유주릉 너머는 금원산과 기백산
7. 앞 왼쪽은 무룡산
8. 멀리 가운데는 지리산 천왕봉
9. 앞 왼쪽은 무룡산
10. 멀리 가운데는 가야산
11. 멀리 가운데는 오도산, 그 왼쪽은 두무산, 오도산 앞 능선은 보해산, 금귀산, 박유산
▶ 백암봉(1,500.4m), 동엽령(東葉嶺)
가새봉에서 덕유주릉 가는 길은 순탄하다. 등로 가린 산죽 숲은 없고 등로 주변 풀숲의 물기
는 햇살 받아 걷혔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완만한 긴 오르막이다. 아무래도 덕유산의 진면
목은 겨울일 것 같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길도 겨울에는 상고대 눈꽃이 만발하여 눈부셨다.
오늘은 원추리, 산오이풀, 모싯대, 동자꽃, 여로와 동행한다.
1,395.7m봉을 넘고 덕유주릉이 가까워지자 국공이 벌써 출근했을 리 만무하지만 발소리 말
소리 숨소리 죽인다. 얼른 목책 넘어 덕유주릉 1,490m봉이다. 딴 세상이 펼쳐진다. 매직 아
우어다. 눈길 닿는 데마다 진경이다. 석화성 가야산을 대번에 알아보겠고, 이로 말미암아 하
늘금 뭇 봉들을 알아본다. 수도산, 단지봉, 의상봉,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숙성산, 황매산,
웅석봉, 그리고 지리주릉 …….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은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을 틀림없이 올랐었다. 그는 여
산(廬山)은 바로 금산(錦山) 안성현(安城縣)에 있는 덕유산(德裕山)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덕유산을 3일 동안 유람하며 산의 겉과 속을 두루 답사한 뒤 돌아와서 기록하였다. 그의
「유여산행(遊廬山行)」중 일부다.
향로봉 위의 해가 한낮을 가리키자 香爈峰上日將午
눈앞이 확 트이고 시야가 넓어지네 劃然前臨眼界濶
왼쪽에는 가야산 바른편에는 대둔산 左揖伽倻右芚岳
저 하늘 남쪽 끝에 가로놓인 두류산이 頭流橫亘天南末
모두가 푸르게 한눈에 들어오니 蒼然盡入一望中
무수한 봉우리가 개미집과 유사하네 無數峰巒似蟻垤
한유(韓愈) 같은 대문장이 힘을 다해 쓴다 해도 韓公或若極費力
아마도 이 모두를 형용하진 못하리라 猶恐形容未能悉
오늘따라 웬일인지 덕유산이 텅 비었다. 덕유주릉에서 오가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한겨울
혹한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우리 독차지여서 좋긴 하다만 한편 불안하다. 혹시 입산통제를
우리만 몰랐을까? 그들은 막바지 피서를 즐기려고 강으로 바다로 갔을까? 무룡산까지 가는
도중에 드문드문 예닐곱 명의 등산객을 만났을 뿐이다.
숲길 벗어나면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백두대간 갈림길인 백암봉에서 차분하게 조망을 즐기
려고 또 휴식한다. 널찍한 공터에 나무그늘 없이 햇볕이 가득해도 조망에 취해서인지 따가운
줄 모르겠다. 백암봉 내리는 길. 무룡산과 삿갓봉, 남덕유산을 발걸음으로 줌인한다. 동엽령
까지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 3좌를 넘는다. 바닥 친 안부로 ┣자 갈림길인 동엽령이 조용
하다.
산꾼들의 산행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한 동엽령은 예전에는 동업령(同業嶺)이라고 한 모양이
다.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통안에서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로 넘어가는 재인데 높고 멀어서
혼자는 못 가고 여럿이 모여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고(同業) 한다.(한국지명총람)
12. 덕유산 중봉
13. 하늘금 맨 왼쪽부터 의상봉,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숙성산
14. 하늘금 맨 왼쪽은 가야산, 맨 오른쪽은 오도산
15. 가운데는 남덕유산
16. 멀리 가운데는 지리산 천왕봉
17.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황석산, 그 오른쪽 뒤는 지리산 천왕봉
18. 멀리 가운데는 가야산, 그 앞은 단지봉, 그 왼쪽 앞은 수도산
19. 멀리 왼쪽은 지리산 천왕봉
20. 백암봉에서
21. 멀리 오른쪽은 장안산 주변
22. 가새봉
▶ 무룡산(舞龍山, △1,492.1m), 명천계곡(明川溪谷)
동엽령 지나고 점심 먹을 자리를 물색한다. 좀처럼 그늘진 너른 공터가 보이지 않는다. 숲길
소로이거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햇볕이 가득하다. 등로 벗어나 그럴듯한 생사면을 살폈으나
허리께 차는 산죽만 무성하다. 무룡산 2.8km 남겨둔 지점에서 길옆 명당인 공터를 만난다.
둘러앉아 한담이 한 반찬이다. 식후 냉커피는 역시 신마담이 흔들어 식혀야 최고의 맛이다.
당초에는 오늘 산행을 삿갓재 지나고 삿갓봉에서 그 남서릉 시루봉을 넘을 예정이었으나 대
포 님의 등산화 사정을 핑계하여 무룡산에서 남서릉으로 내리기로 한다. 대포 님은 동서울터
미널에서 출발할 때 등산화 밑창이 삭아 곧 떨어질 지경에 있는 것을 알았다. 근처에서 전화
선을 구득하여 임시방편으로 얼기설기 묶고 살금살금 걸었다. 얼마 안 가 덜렁덜렁해진 밑창
을 끌고 선두그룹에 끼여 여기까지 온 것은 실로 대단하다.
그간 오지산행의 산행 중 등산화 밑창이 갑자기 망가진 사례를 보면, 나의 경우, 재고품인 등
산화를 싸게 샀는데 질운산 겨울 산행 때 밑창이 나갔다. 아이젠을 준비했던 터라 아이젠으
로 감싸니 별 문제없이 걸을 수 있었고, 신가이버 님의 경우, 방태산 산행 때 밑창이 나가 도
중에 임도가 나오자 탈출했다. 신가이버 님은 길고 긴 임도 자갈길을 맨발로 내려오다시피
했다.
무룡산 오르는 길. 예전에 목책 너머 깊은 풀숲에서 대물 더덕을 보았기 연신 기웃거렸으나
그때보다 풀숲이 더 우거졌다. 빈 눈일 수밖에. 봉봉을 오르고 내린다. 돌탑이 있고 ‘대기
봉’이라 표시된 1,432.2m봉을 넘고도 1시간 가까이 줄달음하여 무룡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무주 27, 1987 재설’이다. 정상 주변의 풀숲과 나무들이 웃자라 발돋움하여도 조망이 썩 좋
지는 않다.
무룡산 정상에서 오던 길을 30m쯤 뒤돌아 그 북서릉을 내린다. 능선을 잡으려고 넙데데한
사면을 이리저리 누빈다. 잡목 숲에 너덜이 깔린 사나운 사면이다. 어렴풋한 선답의 흔적이
반갑다. 이런 데서는 녹슨 깡통도 인적이라 반가운 법이다. 지도에 눈을 박고 간다. 고도를
뚝뚝 낮춘다. 지도에서 잠깐이라도 한 눈 팔면 엉뚱한 데로 간다. 1,218.0m봉을 한 피치 내
린 1,180m봉에서 북서진해야 할 것을 북동진하고 있으니 비탈진 사면 0.2km나 트래버스 한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암벽 암릉을 자주 만난다. 암릉의 반대편이 블라인드 코너라 아예 직
등하지 않고 좌우사면을 예의 살펴서 길게 돌아간다. 계류 물소리 점점 크게 들리고 잰걸음
하여 명천계곡이다. 옥수가 층층 폭포 만들어 우당탕탕 흐른다. 알탕을 아낀다. 가급적 도로
와 만나는 초연교 가까운 데가 좋다. 징검다리로 계류 건너고 계류가 함께 내리는 묵은 임도
가 나온다.
알탕을 너무 아꼈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팻말과 플래카드를 열 걸음이 멀다하고 붙여
놓았다. 마치 우리를 겨냥한 것만 같다. 그냥 간다. 여기서는 무주가 대처로 가깝다. 우리들
로서는 좋은 추억이 적지 않은 무주다. 미리 단골식당에 전화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
통령배 탁구대회가 열려 그 손님들로 십 수 년 단골이라도 도저히 받을 수 없단다.
금산으로 가기로 한다. 이 덕유산이 예전에는 금산 안성현의 여산이었다니 금산에 전에 없던
정이 든다. 이윽고 초연교. 국공과 악연을 또 맺는다.
23. 멀리 가운데는 가야산
24. 멀리 가운데는 두무산, 오도산
25. 모싯대
26. 멀리 왼쪽은 지리산 천왕봉, 앞은 월봉산
27. 가운데는 삿갓봉
28. 앞은 삿갓봉, 그 뒤 왼쪽은 남덕유산, 오른쪽은 남덕유산 서봉
29. 멀리 가운데는 덕유산 향적봉
30. 무룡산 정상에서
31. 명천계곡
32. 명천계곡
33. 명천계곡
첫댓글 우~와 !! 산도 사진도 좋습니다.
덕유산, 많이도 갔지만 구석구석 갈데가 널렸네요. 더 자주 가야겠어요.
탁트인 조망으로 흠뻑 젖은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가을이 쪼금 느껴지기도 했네요 무수한 잠자리와 나비들을 보며.
시원한 조망에 가슴이 탁트인 하루였습니다...오늘도 행복합시당
역시 덕유구먼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