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과연 한국 대중 음악사를 진정으로 빛낸 뮤지션들은 누구이고, 음반들은 어떤것일까?
우리는 여태까지 'Rolling Stone 선정 100대 명반', 'VOX선정 올해의 음반 100선' 등은 보아왔지만 국내 음악 매체에서 이러한 것을 심도있게 다룬 것을 본 기억은 없다. 국내 대중음악사에서는 명반으로 선정할만한 단 100 장의 음반도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선정 경위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면서) 소신있게 음반을 선정할 만한 자신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관심조차 없다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연재의 마지막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음반들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여태까지 Sub Special Text에서는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의 평가방법으로 70년대 이후 뮤지션들을 정리하였고, 이는 기존에 형성된 뮤지션들에대한 평가도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내가 뽑은 음반 100선' 만을 하고 싶었으나 좀 더 객관적으로 자리매김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서브 기자들 뿐만아니라 외부 '음악 선정 위원들'로부터 음반 추천을 받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현재 음악 산업계에 관계하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어느 정도는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이 코너의 '음반 선정 위원'으로 위촉을 하였다. '음반 순위 매김'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사람도 있겠지만, 이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음반 선정 방법 >
1. 먼저 선정 위원들에게 100매 이내의 음반 선정을 위촉하였다.
2. 시대/장르는 불문하고, 한 뮤지션에 대해서 복수로 음반 선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3. 반드시 음반 선정시 순위를 매겨달라고 하였다.
< 순위 집계 방법 >
1. 21명에게서 가장 많이 선정된 음반에 먼저 순위를 매겼다.
2. 선정된 음반 횟수가 같으면 개인 순위의 합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높게 순위를 매겼다.
3. 다음 '100대 명반' 순위 옆의 ( )안의 숫자는 선정 위원들에게 지목 받은 횟수를 의미한다.
전체 1위인 들국화 1집의 경우는 선정위원 전부에게서 선정이 되었다.
< 선정 위원(가나다 순임/총 21명 >
고희정(서울스튜디오 마스터링엔지니어), 곽택근(신나라 레코드 영업부대리) ,김기정(펌프), 김민규(서브기자), 김영대(나우누리 뮤즈), 김종휘(팬진공편집인, 인디음반 제작실장), 류상기(다음기획 제작/기획부장), 박민희(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 박상완(기독교방송 PD), 박준흠(서브 편집장), 신승렬(나우누리 뮤즈),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유현숙(논픽션작가), 이창기(나무를 사랑하는사람들), 조경서(경기방송 PD), 조성희(서브기자), 조원희(카사브랑카,슈거케인), 진용주(우리교육기자), 최순식(하나뮤직 기획/홍보실장), 한유선(자유기고자), 황정(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1. 들국화 1집 (1985/서라벌레코드) [전인권(v,g), 최성원(v, g, b, key), 조덕환(g, v), 허성욱(key)]
결코 짧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 장의 음반만을 고르라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현실보다 과대포장되어 온 것이 과거이고 보면 그러한 거품을 걷어내고 결과물 자체를 냉정하게 응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 경제적 여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교묘한 통제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하던 당시의 젊은이들에 대한 회상이 단지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로 그쳐진다면, 그리고 80년대라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 의미를 갖는 명제가 한낮 운동권의 회상으로만 그친다면 그 시기 모습을 드러낸 4명의 젊은이들의 이 역사적인 첫 발디딤은 추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4가지 독자적인 아이덴디티의 조합으로부터 파생된 들국화라는 록밴드가, 그리고 그들이 내지른 첫 번째 외침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대중음악에 있어서 적지 않은 것이었다. 호황 뒤로 얼굴을 숨긴 제도권의 입김으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한 채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던 가요계의 자신의 틀에만 안주하고자 하는 록과 모던 포크 등 대학 중심의 음악들이 위와 밑으로 나뉘어 더 이상 공유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들국화가 던진 정사각형의 출사표는 긴 동면에 접어든 듯한 대중음악을 깨우게 된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각자의 역량이 충분한 4명의 싱어 송 라이터들이 '음악이란 현장에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 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이 땅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전인권의 절규와 <매일 그대와>에서 보여준 최성원의 감성 어린 목소리, 허성욱의 절제된 건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나타난 조덕환의 곡 쓰기 그리고 최구희, 주찬권, 이원재 등 당시 최고의 세션맨 등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이 음반이 철저한 싱어 송 라이터의 감각과 역량으로 라이브를 위한 라이브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이로써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밴드'라는 단위의 구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음악인들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들국화는 1집 이후 실망스러운 후속 작들과 잦은 멤버교체 등으로 호흡을 길게 갖지 못한 채 신화로 남게 되었고 대중음악사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답보의 상태를 맞게 된다. 그 이후 철저한 상업논리에 의한 인기곡의 생산과 재생산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었고 '노래 만들고 노래 하는' 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별칭하에 지하로 가라 앉게 된다. '만일 들국화가 데뷔 앨범과 같은 에너지로 그 생명력을 키웠더라면 대중음악은 다양성과 독자성의 자양분을 충분히 흡수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갖고 표절과 시스템화되어 버린, 일방적인 한 장르의 득세로 다양성과 함께 그 항체를 잃고 점점 고사해가는 듯한 현 가요계를 바라볼 때 13년 전에 뿌린 이 씨앗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은 더할 뿐이다. 아직 소멸하지 않은 13년 전의 그 씨앗들은 매스미디어와 자본에 지배되는 대중음악계의 변방에 자리하며 마로니에와 신촌, 홍대 근처의 지하에서 다시 제2의 들국화로 피어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즉, 이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자신의 색깔을 간직한 채 세상에 당당히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들국화가 13년 전에 보여주었던,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가능성이다. (황정)
첫댓글 저도 이앨범 명반중에 명반이죠 우리나라 모던포크락그룹으로 최고이죠,,
가요좋아하시는분 100선앨범 다들어보세요,,,정말멋진감동의세게 빠질겁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과함께 배우며 자주들려서 듣고 행복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