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이키’라는 스포츠 업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어디일까요? 아디다스? 뉴발란스? 아니면 다른 신발업체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우선 나이키 제품이 어떤 목적을 가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 제품들은 건강과 레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건강에 투자해야 할 고객들이 그 시간에 정신적인 즐거움을 위해 게임만 한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나이키 제품이 팔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 상대는 스마트폰 게임이라고 말합니다. 게임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육체 활동에 필요한 운동화의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톨릭의 경쟁 상대는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아닙니다.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죄’입니다. 선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욕심과 이기심이 우리의 경쟁 상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경쟁 상대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그마한 죄라도 철저하게 멈출 수 있어야 주님의 적들을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그마한 죄도 멈추기를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죄를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당시의 율법보다도 더 엄격한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라는 율법 조항만 지킬 것이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도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라 하십니다. 오른눈이 죄짓게 하면 빼어 던지고, 오른손이 죄짓게 하면 잘라 던지라고 하십니다. 너무한 말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적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외적으로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 가장 은밀한 감정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웃 관계와 부부 생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편에 서서 죄를 멀리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확실하게 구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사시는 모습을 먼저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주님처럼 죄를 멀리하고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첫댓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신부님 강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