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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특별한 책입니다.
공관복음으로 알려진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서로 공통된 점이 많지만, 요한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4복음서 중에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어느 복음보다 더 명확히 나타내 줍니다.
요한은 그 기록을 목적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생명,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개인의 구주로,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바로 7대 표적입니다.
이적과 표적은 다릅니다. 둘 다 놀라운 일, 기이한 일이지만, 이적은 이적으로 끝나지만 표적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표시가 되는 이적입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요 1:7)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요 11:15)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2)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 13:1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요 19:35)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 충분한 증거들을 유심히 살필때 우리는 믿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고, 그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단순한 기적이 아닌,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표적(Sign)'이라는 관점으로 서술합니다. 요한복음 1장부터 12장까지 펼쳐지는 일곱 가지 표적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메시아임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표적: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요 2:1-11)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기쁨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은 돌항아리에 채워진 물을 최상급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이 표적은 율법과 정결 예식의 구시대가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기쁨과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잔치의 기쁨을 완벽하게 회복시키시는 기쁨과 행복의 창조주이십니다.
두 번째 표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요 4:46-54)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둔 왕의 신하가 가나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직접 가지 않고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만 내리셨으며,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가는 길에 아들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사건은 거리를 초월하여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며, 눈으로 보는 표적보다 말씀 자체를 신뢰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는 태초에 생명을 창조하신 바로 그 말씀임을 선포하십니다.
세 번째 표적: 베데스다 못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요 5:1-9)
예루살렘 베데스다 못가에는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런 소망 없이 누워 있던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그를 찾아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시며 그를 완쾌시키셨습니다. 종교적 형식에 매여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하던 안식일에 행해진 이 표적은, 절망에 빠진 인간에게 참된 회복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임을 보여줍니다.
네 번째 표적: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심 (요 6:1-14)
광야에서 배고픈 무리를 보시고, 한 아이가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 명에 달하는 인원을 배불리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셨습니다. 과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시키는 이 사건은, 예수님이 단순히 육적인 굶주림을 채우는 분을 넘어 우리 영혼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심을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양식의 근원이심을 증거하십니다.
다섯 번째 표적: 물 위를 걸으심 (요 6:16-21)
오병이어 사건 직후, 제자들은 밤중에 어두운 갈릴리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공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셨고,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가라앉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표적은 자연 만물을 통치하시는 창조주의 권능을 드러내며,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찾아와 지키시는 하나님, 어떤 풍랑, 역경, 절망속에서도 평안과 행복을 주실 수 있는 평강의 주되심을 선포하십니다.
여섯 번째 표적: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심 (요 9:1-7)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어둠 속에 살던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심으로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육신의 눈을 뜨게 한 이 사건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잘 본다고 착각하는 영적 무지 속의 바리새인들과 달리, 어둠에 갇혀 있던 자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세상의 빛'이심을 강렬하게 증명합니다.
일곱 번째 표적: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요 11:1-44)
일곱 표적의 정점이자 하이라이트로,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무덤 안에서 부패하기 시작한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명령 한 마디에 죽었던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 걸어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지배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며, 훗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드러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친히 밝히신 일곱 가지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 I AM)선언이 등장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라고 밝히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이 선언들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며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구원자이심을 증명합니다.
첫 번째 선언: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줄이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무리가 단지 육신의 배를 채울 떡을 더 얻기 위해 찾아왔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육의 양식은 먹어도 다시 배고프지만, 예수님은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늘의 참된 양식이십니다. 세속적인 성취나 물질처럼 곧 사라질 헛된 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하지 말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과 교제하며 영적인 참된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두 번째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초막절 절기 동안 예루살렘 성전에 커다란 촛불을 밝히던 배경 속에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무지, 절망이라는 깊은 어둠 속에 갇힌 세상에 진리와 소망, 생명을 밝히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어두운 세상의 문화와 죄악의 길을 따르지 않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정직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빛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빛속에 있는 따스함, 생명, 밝음, 에너지 등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세 번째 선언: "나는 양의 문이다" (요 10:7,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거짓 목자와 도둑들에 대비하여 참된 보호자를 설명하시는 맥락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양들이 안전한 우리로 들어가고 나오는 유일한 통로가 되듯,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구원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 되십니다. 세상에 다른 구원의 길이나 대체재는 없음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구원과 영적 안전,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네 번째 선언: "나는 선한 목자다" (요 10:11, 1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 목자와 달리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고 계시며, 양들을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친히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친히 목숨을 버려 구원해 주신 주님의 귀한 소유입니다. 삶의 방황을 그치고,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선한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의지하며 신뢰할 때, 양을 돌보시듯 주님은 우리 각자를 이 세상에 나 혼자뿐 것처럼 특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섯 번째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하신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치료자를 넘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선물하십니다. 따라서 육신의 죽음이나 삶의 절망적인 상실 앞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마침내 승리케 하실 부활의 주, 생명의 주, 회복의 주님되심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로 그 소망을 품고 담대하게 오늘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여섯 번째 선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시며 주신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시며, 변치 않는 참된 진리이자,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절대적 가치가 흔들리는 상대주의 세상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삶의 유일한 이정표이자 진리로 붙들어야 합니다.
일곱 번째 선언: "나는 생명의 참 포도나무다" (요 15:1,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제자들과의 마지막 다락방 강론에서 하나님과 성도 간의 친밀한 관계성을 강조하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생명력의 원천이시며, 가지인 성도는 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을 때만 생명을 유지하고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열매를 맺으려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기도, 말씀, 교제)을 최우선으로 삼을 때 비로소 풍성한 영적 결실이 맺혀집니다.
주님으로 인한 그 풍성하심을 누리는 복된 날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https://youtu.be/Jva1WlENt-8?list=RDJ-qMv1roB7E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