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0]“반갑다. 둘리야. long time, no see”
둘리를 보러 갔다. 아기공룡 둘리 말이다. 둘리를 처음 만날 때가 언제였더라? 까마득한 일이다. 1983년 4월, 그래 맞아. <월간 만화 보물섬> 창간호였을 걸. 교보문고에서 구입, 광화문에서 수유리까지 버스 속에서 달마다 정신없이 몰입했었지. 사회 초년병이었는데, 얼마나 재밌었던지, 조카(이종누나의 아들)가 보기 전에 내가 먼저 김수정 작가의 찐독자였던 걸을. 그로부터 만 40년, 세상에나, 둘리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둘리 TV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만들어져 히트를 쳤다는 것 등 간간히 둘리 소식을 듣긴 했어. 그러다 쌍문동에 ‘둘리 뮤지엄’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어제 오후, 여덟 살 손주(초1)와 38세 아들 등 ‘3대’가 함께 소원을 풀었다는 것이 아닌가.
일단 동심童心(?)의 발로라 할까? 할아버지인 나도 재밌었다. 지하1층에서 간단한 영화를 보고, 3층까지 계단에 그려놓은 ‘그때 그 만화들’. 당시 둘리의 출현으로 가장家長인 ‘고길동’의 집은 바람잘 날이 없었다. 게다가 깐따삐야에서 온 외계인 도우너, 아프리카에서 온 암컷 타조 또치, 가수 지망생 마이콜, 공포의 공갈젖꼭지 희동이 등이 합세해 저질러대는 ‘재살이(장난)’에 넋을 잃고 화만 내는 불쌍한 고길동, 그때는 ‘박해의 대명사’ 길동이 미웠는데, 지금은 신문 한 줄 편하게 읽지 못했던 길동이 안쓰러워졌다. 나의 아들은 ‘세인트saint(성인) 고’라며 치켜세웠다. 고길동 문패의 집앞에서, 만화가 김수정의 작업실 앞에서, 이런 동심은 나라에서 나서서라도 부추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주가 어찌 알까? 그저 캐릭터가 재밌고, 놀이시설이 재밌어 저 홀로 재미가 나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역시 동심-청년심靑年心-노심老心은 사랑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요즘 아가들에게 히트작인 ‘아기상어’처럼, 그때는 둘리의 주제곡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음음/알 수 없는 둘리 둘리/빙하 타고 내려와 친구를 만났지만/일 억년 전 옛날이 너무 그리워/보고픈 엄마 찾아/모두 함께 떠나자 아아아아/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는 2절까지도 절로 외워졌다. 엄벙한 마이콜 밴드 ‘핵폭탄과 유도탄’이 불렀던 ‘라면과 구공탄’ 노래는 또 어떠했는가.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 라면은 역시 구공탄으로 끓여야 제맛이란다. 그 말도 지당하다. 그 노래에 배꼽을 쥐지 않는 자, 얼마나 있으랴. <날아라 슈퍼보드>의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촉’과 유명세를 다투면, 어느 쪽이 우세할까?
둘리 이후였을 터,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20권짜리 야구만화. 까치와 엄지의 사랑에 얼마나 마음을 조였던가. 신혼시절, 얼마나 재밌었으면 아내와 독촉을 해가며 밤새 독파했을까? 영화도 같이 보려 간 기억이 뚜렷하다. 그 이후엔 특별한 만화로 뭐가 있었더라. 허영만 그림에 김세영 글의 <사랑해> 12권은 지금도 소중히 갖고 있을 정도이니. 흐흐. ‘만화漫畫의 힘’을 무섭게 느낄 수 있는 고전이 되어버린 명작들은 이밖에도 많을 것이다. 내 아들들이 일본 농구만화 ‘슬램덩크’나 초밥만화를 지금도 버리지 못하듯이. 나도 때때로 청소년시절 읽었던 이근철의 <카르타>를 다시 읽어 보고 싶으니까 말이다.
96년 상영해 만화가 김수정을 빚더미로 만들었다는 영화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최근 상영됐다는 기쁜 소식인데, 볼 데가 마땅치 않다. 둘리 박물관에서 상시 상영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튼 우리의 ‘세인트 고’는 2007년 아들 철수와 딸 영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위의 성화와 압박에 못이겨 둘리와 희동이, 도우너와 또치 등 4명을 입양하게 되었다. 1명이라도 빠트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깨가 또다시 무겁게 되었으니, 한 장의 ‘가족관계증명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런 즈음에 최근 고길동(80대초로 추정됨)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40년만에 아주 멋드러진 편지 한 통을 남겨 화제가 되고 있다. “제가 40년 전에 맡은 게 악역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 몰랐다”며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더군요. 그러고는 아주 철학적인, 마치 도를 튼 듯한 말도 합니다. “반가운 웃음과 세월의 섭섭함이 교차한다”며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거절과 후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아는 것.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혜안은 거부하기엔 값진 것이니, 행여 둘리와 친구들을 나쁘게 보지는 말아달”라고 합니다. “그 녀석들과 함께한 시간은 제 인생의 가장 멋진 하이라이트로 남겨져 있”는데, “보고 싶다고 백 번, 천 번을 말하면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며 “이뤄지지 않을 그리움은 바람이 되어 저의 가슴을 스쳐”간다고 고백합니다. 정말 ‘어른스러워’ 졌지요? 둘리도 고길동도 철이 다 들은 것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꼰대같은 말을 남깁니다. “한때를 추억하는 바로 지금이/내 미래의 가장 그리운 과거가 된다”고 말합니다. 역시 꼰대지요. 흐흐.
둘리 탄생 40주년을 맞이하여, 그들의 집(쌍문동 고길동 댁)을 아들, 손주와 함께 방문하여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낸 이야기였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