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간직했던 그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점차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동심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회복해야 할 근원적인 마음이 아닐까.
“어린아이는 사람의 근본이며 동심은 마음의 근본이다.동심은 순수한 진실이며 최초의 한가지 본심이다.만약 동심을 잃는다면 진심을 잃게 되며,진심을 잃으면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을 잃는 것이다”
○‘동심설’로 권력에 맞서
이 말은 중국 명나라때 진보적 사상가였던 이탁오(李卓吾)가 그의 대표적 저술인 ‘분서(焚書)’에서 한 말이다.‘분서’는 시와 산문 등을 모아 놓은 일종의 문집이다.그리고 이 책을 관류하는 핵심 사상은 ‘동심설’로 요약된다.
그는 왜 동심을 강조했고,그가 말한 동심은 무엇일까. 동심은 거짓없는 진실한 마음이며,기존의 고정관념과 윤리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다.최초의 본래 마음인 동심은 이미 주어져있는 지식과 명분과 의리를 정면에서 부정한다.
의리와 명분에 사로잡히지 않고 본래 그대로의 참다운 마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이탁오 사상의 핵심이었다.그는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권위에서 해방되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에 의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상화된 경전의 권위를 인간 내면으로 전환시켜 주체적인 자기 확립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모색한 그는 규범적인 것,원리적인 것보다 인간 내면의 마음을 근원적인 것으로 보며,그것의 주체적 발로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미치광이로 체포된뒤 자살
이탁오가 동심을 강조한 이유는 도학을 외치며 지배이념의 권위에 안주하고 있던 학자와 관료들의 위선,무능을 여지없이 폭로하기 위함이었다.입으로는 인의를 외치며 점잖은 군자인양 처세하면서 명예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가짜 사람’이 그가 가장 미워한 비판의 대상이었다.그는 불교와 노장을 진지하게 읽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사상적 박해를 가했던 지배자들의 ‘거짓’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다 불온한 사상가로 낙인찍혀 옥중에서 자살하였다.
시대의 반역자,이탁오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는 당대의 지배적 이념에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이다.그의 조상은 이슬람교도였으며,그의 가문은 원래 상인집안이었다고 한다.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지방의 하급관리직을 전전하였다.이렇다 할 벼슬을 하지 못했던 그는 ‘미치광이’‘위험한 사상가’로 지목되어 온갖 비난과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절에 머물면서 저술활동에 힘쓰다가 어느날엔가 삭발을 하여 유학자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기괴한 모습을 하기도 했다.마침내 그의 추종자들과 도망다니다 체포되었고,1602년 감옥에서 자살하였다.그가 지은 모든 저술은 불태워졌으며,금서로 취급되었다.
동심은 또한 당시의 지배적인 문학 풍조를 극복하는 유력한 무기이기도 하였다.화석화된 문학의 규범과 권위를 부정하고,진실하며 자연스러운 작가의 감정 표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문학운동을 펼치는 전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문학의 근본은 동심에서
이탁오는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시를 짓거나 문장을 쓸 때 반드시 옛날의 전범과 권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시대마다의 문학이 지닌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였으며,나아가 음란한 것을 가르친다거나 도적질을 가르친다고 하여 매도하였던 ‘서상기’ ‘수호지’같은 소설을 오히려 더욱 높이 평가하였다.
문학은 시대에 따라 발전하며,모방은 문학의 생명을 파괴하며,소설과 극 같은 민중의 새로운 문학양식이 사대부의 시문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장의 핵심 근거가 바로 인간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진실한 마음인 동심이었다.
이탁오가 ‘분서’에서 역설하였던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마음,그것은 봉건적 지배이념과 문학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개체로서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었다.그러한 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동심은 지배이념과 권위에 맞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근원적 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