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거리다(외 1편)
유순예
으스러지도록 농사일만 하다 죽은
아버지 어머니가 두고 간
땅! 땅! 땅!
그 땅을 놀릴 수가 없기에 이 딸내미가 부쳐요
아버지 어머니 누워 있는
산소 밭에는 들깨를 심었고요
저온창고가 있는 밭 한쪽
너덜너덜한 비닐하우스 안
두 고랑은 쪽파를 심었고요
한 고랑은 양파를 심었고요
가상마다 진을 쳤던
잡초들은 확 뽑아버리고 월동 씨앗을 뿌렸고요
배추 상추 고수 고추 갓 시금치…
남새밭에서는 온갖 야채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요
나는 옴마처럼 안 살 것여!
앙탈 부리던 못된 것들이 곳곳에 처박혀서
눈물을 베고 잠이 들던 이 딸내미는
아버지 어머니를 꼭 닮은 농부가 되어가네요
땅! 땅! 땅!
이제야 저도 땅땅거리며 살게 되었네요
으름과 산밤
여든세 살 잡수신 어머니는 딸내미 주려고
밭 가상에서 자생하는 으름을 따다
먹어봐, 어서 먹어봐!
권하고
쉰여덟 살 철부지 딸내미는 어머니 드리려고
산에서 자생하는 산밤을 삶아서
잡숴봐, 어서 잡숴봐!
권하는
가을, 초가을이다
이렇게 예쁜 것을 어떻게 먹어!
이렇게 야문 것을 어떻게 먹어!
산밭에서 나고 자란 품성이 고결한
으름과 산밤
무르고 단단한 것의 화합이다
—시집 『당신이 그곳에 계시는 동안』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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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예 / 1965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 2004년 부산시인협회 공모 신인상 당선. 2007년 《시선》 특별발굴시인으로 선정되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속삭거려도 다 알아』 『호박꽃 엄마』 『나비, 다녀가시다』 『당신이 그곳에 계시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