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친정부모님은 두분다 이북이 고향이신 실향민으로 사시다
고인이 되신지 꽤 오래되셨지요.
아버지는 평양, 어머니는 황해도 신막....
그래서 우리집은 김치를 비롯해
모든 음식이 이북식이였는데
제겐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도
맛있지도 않았답니다.
김치는 언제나 슴슴한 맛에
고추가루를 넣은듯 만듯한 색깔이었고
고추장은 메주가루를 많이 넣어
찰진맛도 달착지근한 맛도, 매콤한 맛도 없는 그저 그런 맛.
불고기나 다른 음식엔 절대 설탕을 넣지 않고....
그래도 그중에서 제가 제일 맛있어 한 것은
이북식 왕만두와 녹두빈대떡이었답니다.
여기서는 녹두전, 또는 녹두부침이라고 하던데
이북사람들은 이름하여 녹두빈대떡이라 하지요.
우리집에서는
설이나 추석명절, 그리고 제사나 집안 행사때
갈비찜은 빠져도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만두와 녹두빈대떡...
친정엄마가 만두소와 녹두빈대떡 재료를 만들어 놓으면
만두 빚기와 녹두빈대떡 부치는 일은 언제나 제담당이었죠.
뻣뻣한 윗부분을 잘 다듬어낸 고사리와
신김치를 송송 썰어 물기를 짜주고
다진 돼지고기와 파, 다진마늘, 통깨, 참기름,
소금 약간을 넣고 잘 버무려줍니다.
아쉽게도 양념해둔 속고명 사진이 없어져 버렸네요.
깐녹두는 쌀1/2컵과 함께 불려둡니다.
쌀대신 부칠 때 쌀가루를 넣어도 상관 없겠지요.
그냥 녹두로만 부치시면 잘 안부쳐지거든요.
언젠가 한번 파는 녹두부침을 사다 먹어 봤는데
밀가루가 들어갔는지 맛도 없고
식으니까 엄청 뻣뻣해지더라구요.
그 이후로 안먹으면 안먹었지
절대 사다 먹지 않아요.
전 잠자기 전에 물에 담가서 아침에 깨끗이 씻어줬어요.
한 10번정도는 씻어줘야
녹두껍질이 거의 제거되면서 깨끗해진답니다.
믹서에다 갈아주시는데
녹두와 물의 비율은 1: 1.25로 했을 때가
제일 부드럽고 부치기도 적당해요.
잘 보시면 아마 보이실거에요.
녹두:1,000ml, 물: 1,250ml
저속으로 시작해서 고속에서 한20~30초정도 갈아줍니다.
너무 곱게 갈아도 맛이 없어요.
부치기 직전 갈아 놓은 녹두에 양념해 뒀던 고명과 소금 약간 넣고
골고루 잘 섞어 주시고...
귀찮더라도 한 국자씩 뜰 때마다
국지로 밑에까지 잘 저어 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녹두분이 밑으로 다 가라 앉아버리거든요.
예열된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한국자씩 떠서 노릇노릇하게 부치되
가장자리는 깔끔하게 성형해 주셔야 모양이 예쁘답니다.
친정에서는 식용유대신 항상 돼지기름을 사용했는데
더 고소하고 맛있어요.
우리딸보고 예쁘게 담아서 먹음직스럽게 찍으랬더니
투덜투덜....궁시렁궁시렁.....대면서
요렇게 찍어 놨네요.
녹두빈대떡은 적당한 두께에 겉이 바삭해지도록 부쳐서
뜨거울 때 먹어야 젤 맛있답니다.
너무 두툼해도 맛이 없어요.
차례상, 제삿상에 올리는 밀가루부침을
이렇게 녹두빈대떡으로 바꿔놨더니
이것 역시 시댁식구들한테 인기짱이랍니다.
친정엄마는 제가 한 양보다 2~3배나 더 많은 양을
일년에 10번이상 매번 맷돌로 녹두를 타서 불리고 갈으셨으니
얼마나 팔이 아프셨을까요?
그만큼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깐녹두가 나오고 믹서가 있어서
만들어 먹기가 한결 수월해졌지요.
전 이녹두빈대떡을 부칠 때마다
친정부모님이 그립고 보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