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역량에 맞게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얼마 전에 상담을 받으러 온 남자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죽마고우였던 친구보다 자기가 공부를 잘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서울대에 갔고, 친구는 한 단계 낮은 대학교에 진학했단다. 두 사람 다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터라 각자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서 박사가 되었는데, 그 친구는 본교 교수로 임용되는 반면 자기는 그렇지 못하고 중견 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이게 뭐냐는 것이다. 인생이 성적순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불공정하다며 우울증을 호소했다.
죽마고우보다 우수했던 자기는 교수가 되지 못하고 회사에 다닌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그가 왠지 어려 보였다. 고등학교 이후 그 친구가 자기보다 더 분발했거나 인간관계를 자기보다 더 원활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전공이 뭐냐에 따라 취업의 판세는 확확 달라지는데 그는 오로지 고교 때 자기가 그 친구보다 성적이 좋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그가 어떤 푸념을 하든 간에 그가 현시점에서 어떠한 이유로 상담자를 찾게 되었는지 살펴보니, 친구보다 뒤처졌다고 여긴 그는 돈이라도 왕창 벌고자 했다. 그리하여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투자하였는데 그것이 잘못되는 바람에 빚을 지고 말았다. 이러한 그의 사고방식에 문제점이 있다고 여겨 좀 더 탐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학생 때 학우들이 사회 및 경제적으로 자기네 집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쟁쟁했던 점에 기가 꺾인 듯했다. 그때부터 인간관계도 피하고 공부나 하며 까칠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수석을 했던 어떤 남자는 자신의 삶이 서울의대에 진학하면서 꼬였다고 했다. 자기는 시험을 앞두고 부지런히 공부했는데, 몇몇 학우들은 시험 전날 밤이 돼서야 슬슬 공부하더니 자기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내었다고 한다. 즉 그곳에 있는 20~30% 정도는 아주 높은 지능을 가진 자들로서 자기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정도로서는 경쟁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휴학하며 방황하다가 독하게 마음 잡고 다시 공부하였는데, 이때 어떤 선배가 졸업 후 본교 연구원으로 일하는데 그의 성격이 엉망진창이라고 했다. 그 사람 역시 자기처럼 그냥 우수한 정도의 사람으로 과도하게 애쓴 결과 그 자리에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휘어진 성격 소유자로 변질한 것 같다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예로 회사의 중역인 어떤 사람이 말했다. 투철하게 자녀를 교육했던 아내는 딸을 서울의대에 합격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보기에는 딸이 자신의 능력에 비해 너무 과한 곳에 간 것 같더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 때만 되면 딸은 불안을 이기지 못해 거의 미치광이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차라리 딸이 연대에 갔더라면 훨씬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단다.
아무튼 빚을 지고 우울증을 앓는 그 남자에게 한때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로 친구 보다 잘되어야 한다는 그런 사고가 합당한지 한번 점검해보자고 하였다.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 그의 사고가 어느 한 지점에 고착된 것 같다고 지적한 것이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다분히 관념적이었기 때문인지,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알아듣도록, 그에게 교수가 되기 위해 태어났느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답하면서 피식 웃었다. 나는 다시 그런데 왜 그것에 그리 집착하냐며 어디서든 자신이 하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이 건강한 것 아니냐고 하였다. 이렇게 그를 흔들어놓은 다음 당면한 문제는 돈을 벌려다 도리어 빚을 지고 말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수습할지 모색해야지 이렇게 넋 놓고 친구와 비교나 하는 신세 한탄을 해서 되겠느냐고 그를 꼬집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래도 덜 망가졌는지 그는 부끄럽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방법도 없는데 자기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나마 가정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이러한 그에게 아직은 그의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니 몇 차례 상담을 지속하며 마음을 다져보자고 하였고, 그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런 사례를 통하여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사람은 자기 수준이나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힘들어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번번이 상승을 향해 욕심부리다 추락하고 괴로워하기 일쑤다. 이게 무지에 기인한 욕심 때문인지….
좀 더 낫고자 도전하는 삶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자족하며 즐기는 삶이 더 나은 것인지 늘 헷갈린다. 나아가 애착 없이 최선을 다하며 즐긴다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때로는 궁금하다.
첫댓글 "자기 수준이나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주변에 아까운 박사학위 소지자들 많네요.
잘 안풀려서요..
이유는 알수가 없지요.
감사하며 살지요..
오늘도 좋은 상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