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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과 '부역죄처벌'의 되먹임 논리를 넘어서
1. 이번엔 과거와 <다른 쪽의 절반 역사>만인가?
'부역죄처벌'은 '인민재판'에 닮은 꼴이었다. 그리고, '인민재판'은 일제의 진압적 자세의 닮은 꼴이었다. '인민재판'이 꼭 지배층 전체를 친일파로 몰고서 거기에 따랐던 일반인 까지도 친일파 추종자로 모는 이유가 있다. 일제 말 지하공산주의자들의 '분노'가 일제에 대항논리를 창출하면서 일제에 급속도로 닮아갔다. 그렇게 일제 군국주의를 닮은 인민재판이 생겨나소, 인민재판을 무서워 하는 이들에 의해서 인민재판을 닮은 부역죄 처벌이 드러났다.
전쟁을 안다,고 말하는 우파내의 전문가라는 사람자체를 믿을 수가 없다. 인민재판 마인드와 부역죄 처벌은 상호간에 '경중'을 분간하기 어려운 폭력의 대결장이었다. 처음에는 일제 를 닮게 소련군에 의탁된 '친일하던 스타일' 그대로 '소련군대 따까리'하는 수준의 지랄이었지만, 갈수록 살아남기 위해서 공산주의자간의 결속으로서의 '인민재판'이 되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국군과 경찰은 국민방어를 하면서, 그러한 빌미가 될 요소들에 대해서 초강력 대응했다. 인민재판이란 반인권논리에 저항하기 위해서 같은 수위로 맞서야 된다는 것은, 죽창을 둔 농민에 맞서서 방패와 곤봉을 들어야 하는 전투경찰과 논리상 같은 것이다.
인민재판의 폭력성은 부역죄처벌과 북진자유통일의 계기로 되었다. 가족들이 북한공산당에 몰살되는 것보다도 더 강하게 김일성공산집단을 죽여야 한다는 이유가 성립되는 일도 드물다.
자신있게 말한다. 북한 김정일 부대가 남하하게 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동포와 북한공산당을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는 그 '주둥이'를 '간첩'으로 간주하고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인민재판과 부역죄처벌의 '양대폭력' 사이에서 삶을 부지하는 의미보다도, 미국에 강하게 한반도 핵폭탄 융단폭격을 통해서 한반도 멸망을 통한 김정일정권과 동반 멸망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전쟁은 전쟁의 시간만큼 전방이든 후방이든 인간성을 황폐화시킨다. 숨어서 '꼭 살아남아야 돼'하면서 굶주림을 움켜잡은 앙상한 모습과, 언제 어디서든지 '인민재판'과 '부역죄처벌'의 양대고리자체를 피해가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구전'으로 전달되는 전쟁사와 '우파'의 교과서 전쟁사와 '좌파'의 전쟁사가 강하게 다르다.
분명한 사실은 '과거사 진상 조사위'는 반전성향이 강했던 구전사와 우파의 교과서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인민재판'을 숨기고 있다. 이는 좌익 성향의 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만 봐도 알 수 있다.
2. 한나라당이 정권 창출을 꿈꿀 때 되먹임 대상은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사변'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6.25 남침전쟁 때가 참고문헌이 될 듯 하나?
한나라당이 정권 창출하고서 운영전략을 내세울 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우파 관리 방법이 '모방대상'이어야 하지, "인민재판"의 역반응으로서의 '부역죄처벌'이 모방대상이어서는 안된다. 그래야, 정말로 간절한 국민의 기대를 받은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 될 수 있다.
물론, 김대중전대통령의 '사형제폐지운동'은 북한김정일의 인민군이 남하시에, '인민재판'을 위해서 돌격할 막강한 충성 부대를 얻기 위한 작전으로 여겨진다. 자유민주주의 법체제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양심없이 파괴할 대상들은 '사형수'이다. 사형수만큼 자유민주주의가 빨리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야, 자기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전대통령에서 시작되는 사형제 폐지운동은 '6.15'의 연장선상에서 김정일 부대 남하시에, 아무 조건 없이 흔적없이 일반인들을 핍박할 극악한 조폭 살인마 병력 찾기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88% 이상이 건강하게 살아갈 사람들의 권리 우선으로 김대중전대통령의 의지를 비난한다. 어쩌면, '치매'에 걸린 듯(걸렸다가 아니다) 하다는 비난이 나올만 하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인데, 범죄자의 자유를 내세워 국민의 자유를 뺐기로 한다면, 온갖 허울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 듯(제 정신 아닌듯....의 속어) 하다.
6.25 남침 전쟁 때 국군과 경찰이 시행했던 초강력 부역자 처벌 수준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김대중전대통령이 꿈꾸는 사형제 폐지와 6.15 선언으로 이루어진 김정일 인민군 남하의 조건이 맞물려야 한다. 그 조건이 맞물리면 무조건 우파의 주장은 김대중전대통령이 꿈꾸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앙'의 뒤집기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수준에서 막고서 정권 재창출을 한다면,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의 전략에 되먹임이 되어야 마땅하다.
<사변>이 벌어지고 난 뒤에는 <부역죄처벌>논리가 가능할만큼의 '재앙'이 벌어지는 것이고, <사변>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의 전략을 우파 권력 확장 입장에서 뒤집기 전략이 중요할 것이다.
3. (아줌마 : 텔레비전 드라마 <===바보 상자)//(아저씨. 할아버지 : 신문 정치면 <====정치병) : '건전한 시민층 전체'의 자유주의도 파탄되고, 권위주의 국가 시대의 어법으로도 되돌아가게도 못하게 하는, 한나라당의 주된 "우파 지지층"의 한계성.
<국민의 정부>의 집권 전략을 가장 닮게 하면 '통일전선부' 소속의 권력자들(사법적 의미의 '간첩')을 반드시 잡겠다는 주장을 토로함이 중요하다.
아줌마들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과 구세대 남자들이 신문의 정치란을 좋아하는 것은, 결국은 같은 종류이다. 남자의 군대 여자의 출산의 유사성의 논법보다 압도적으로 더 닮아 있다.
극화된 멜로영화와 멜로 드라마는 작법 부터가 다르다. <청춘의 덫>같은 소설적 늘여쓰기 스타일이 방송용 드라마의 표준이 되고, 영화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같은 '기-승-전-결' 의 극적 구성법이 표준이
된다.
반면에, 학문적 정치학과 신문 정치란의 접근법도 <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청춘의 덫>의 차이만큼 다르다. 신문 정치란은 응축성 있는 영화와 응축성 없는 드라마의 차이보다도 더 응축성이 없다. '이익'과 실리를 준다 준다 하는 어슷한 기대감으로서 신문의 정보 판매를 늘리고, 드라마는 뭔가 이야기 전개 시키는 척 시키는 척 하면서도 줄거리를 천천히 전개시킴으로 광고 수입을 올린다.
'신문정치란'칼럼체와 텔레비전 드라마 작법의 유사성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은 한국 구세대들의 극도의 피동성과 수동성이 느껴진다.
'신문정치란'과 '텔레비전 드라마' 전문 독자 시청자를 중심으로 정치상상력을 펼치는 것은 지독하게 제한된다. 부역죄 논리를 곧이 곧대로 적용하면 이명박 시장과 손학규지사조차도 자유롭지 않다. 김대중전대통령의 햇볕정책 지지의사가 현재까지 지속되는 손학규지사도 있고, 이명박시장의 현재까지 부정되고 있지 않는 북한 민족론에 작년의 협조의 움직임여파도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무의식적으로 협력하는 이들까지도 '처벌대상'으로서 몰았던 6.25 전쟁기때의 응징방식대로 적용한다면, 한나라당 지지자 중에서 "털어서 깨끗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사변'이 벌어진 이후에는 그것을 알면서도 재현되어야 한다고 하는 가능성은, 사변이후에는 사변의 종말이 최선이며 '착함'이 있을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논객으로서 글쓰기도 답답하다. 열심히 읽고서는 "아! 만족한다!" 이것으로 끝이다. '건필'하라는 식의 기원으로서, 끝끝내 젊은이들을 구세대 영역에 끼게 하는 편입유도로 마침내 '바다를 건너다'는 삶에서 폐인이 되고 있나 는 생각마저도 들기까지 하다. 결국, 여자 아줌마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어떻게 쓰는 울고 웃기기 작전에 희노애락을 벌이듯이, 칼럼에서 의당 그러한 것을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체'방식으로서의 고정은 서글퍼진다.
결국, 그 틀 바깥에 서 있는 좌익의 어법에 무참히 깨지는 것을 극복할 수 없어진다.
4. '마르크스주의'와 '좌익공부'에 해박한 30대 식자층이 통전부 소속인 '빨-파라치'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한나라당의 집권 전략은 좌파에 타협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이명박시장에 배팅 거는 사람 처럼 '이야기체'에 수동화된 우파 구세대에 잘보여, 우파 젊은 세대 피빨아 먹겠다는 전략이어서는 안된다.
바다를 건너다,의 좌익 공부기반으로서 우파 내부를 바라보니 '부역죄 처벌'이 원천적 불가능하도록 하는 면모가 훤히 바라보였다.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서 그것이 대학가에 기억되는 방식을 착실하게 무시하고, 곧장 논증 없이 '김정일'에 줄을 긋는 방식은 문제가 있음이 너무도 보였다. 국민이 납득 없이 '꼬리대가리'없이 하는 주입에 국민은 더 이상 부드럽게 수용하지 않는다. 군대와 교회의 위계논리엔 되었다고 하는 식으로서도 문제가 있다. 되는 영역이 갈 수록 줄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다가 주장한 바는 좌익 인문사회식자층을 대거 <빨-파라치>로 전향 시켜야 한다. 그것도 그냥 <빨-파라치>가 아니다. <통전부 소속 빨파라치>여야 한다. 식자층에서 '간첩'이 있다면 아낌없이 국민 앞에 내 놓고 말하겠다는 고백이 있도록 해야 된다.
신문 정치란이나 드라마나 보는 사람은 논증하는 힘이 없다. 6.15가 사악하다는 이야기만 몇년 째 반복하면서 단 한차례도 만화를 써서 10대를 설득하지 못했다. 이는 신문정치란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세대의 70년대식 사유법을 벗어나면 품위가 깎인다는 착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통전부 소속 "빨-파라치"가 <전문가의 일>이 되고 <모두의 일>이 되지 않으니, 국민들에 공감도가 적다. 좌익 지식 개방은 보다 공공적으로 전문화된 '빨-파라치'가 되어야 된다. 정말로 좌파 지식을 개방하면서도 우파 수준을 70년대에서 발전을 하지 못하게 한 조갑제기자에, 우파의 미래를 씨말렸다고 분노를 3년 간 토해왔다. 조갑제기자가 북한공산당의 역사교본의 표현과 흡사하면서도 70년대적 패턴으로, 신문정치란과 드라마 애호 구세대의 입맛에 맞도록 식자층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 일정한 수준에서의 성장을 반대했다. 그것은 이명박시장을 끼고 도는 '변증법적 유물론' 휘날리는 수상한 이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반경을 확장하는 효과도 있다.
좌익 사상이 개방되었으면 필요 최소한으로서 정말로 용서 못할 '빨-'이 뭔가가 선명해야 한다. 통전부 '빨-'파라치는 모두의 일이면서 공공의 객관적 일이어야 한다.
우파는 '통전부 빨'이 가져온 대한민국 국가 침체 현상을 선언하면서, 집권 이후에는 모든 파벌과 유화정책을 쓴다고 하면서 차츰차츰 우파 이념 코드 강화로서 우파의 지지층 확장을 노려야 마땅하다. 일단, 일차적으로 '통전부 빨'은 반드시 잡겠다는 선언의 공감이 중요한 때이다.
'통전부 빨' 파라치가 되려면 '남북관계'가 아니라 '국가안보'가 1차적으로 중요하다고 되어야 한다.
5. 인민재판(재앙중 일부)와 부역죄처벌(대항재앙)의 짝행위를 안다면, '연방제' 중지는 제2의 부역죄처벌 막기를 위한 제일 중요한 요소.
우파 지지층은 거의 대부분이 신문정치란과 드라마 애호자이다. 그렇기에 상황 파악력이 깊이가 없고 감정에 많이 치우쳐진다.
우파 참여층이 게시판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로 수필체의 글을 남긴 상황에서 '건필기원'한다는 차원으로서 계속 그래 주길 바라는 차원보다도, 흔들림 없이 정보 축적 전제에서의 전진이 중요하다.
북한동포에 뭔가를 나눈다는 발상으로서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기에 빠뜨리고서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그 어떠한 종교적 목적이라도 순수할 수 없는 '사기극'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에 못지 않게 북한동포가 소중하면서 북한동포의 자유를 주장해주자는 말이, 대한민국 국민은 개좃도 아니다 라는 식의 조건으로 치우쳐지면 '북괴'에 가서 사서야 할 분이 실수로 남아 있다는 비판을 정당화하게 한다.
북한동포를 구출하고자 대한민국을 의도적으로 사변 상태에 빠뜨리거나, '조국통일전쟁'으로서의 전란으로 전쟁 종결될 때는 혼합된 상태가 되길 꿈꾸며 '사변'에 의도적으로 걸어들어가서도 안된다.
일차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연방제' 사변을 향해가는 길목에 대해서 저항하고 차단하러 나서야 한다. 야후 '재미존'에 실린 '민족문제연구소' 광고글을 보면 서울대 김윤식교수 포함하여 고위 관계자 명단이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통일전선부 위주로 '6.15 선언'의 의미를 풀이하는 만화를 그리면, 흔들림 없는 10대와 20대의 우파 지지층을 만든다. 일차적으로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자기가 먼저 살고 안정하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 정치담론은, 최악의 욕사발을 일억년간 지껄임당할만할 지경일 것이다.
10계명의 '거짓증거'의 거짓은 단순한 'FALSE'를 의미하지 않는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누구만 살게 한다는 발상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는 거짓부렁이란 것이다. 아무리 마음안에 있는 순수함에 의거해 한줌의 거짓이 없다 해도, 그 뇟덩어리가 이미 사탄의 주문에 의해서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