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세상에 나다
-최석영-
여자가 인형을 만든다. 3년 전 구청 문화센터에서 컬트교육을 받고 인형을 만들었는데 어느덧 컬트인형 제작 전문가가 되어 몇몇 가계에 물건을 내놓게 되었고 희한하게도 그 인형들을 사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여자는 인형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지만 돈을 번다는 재미 보다는 누군가 여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인형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이상 하게도 여자는 기분 좋은 날, 기쁜 날, 바쁜 날, 화가 나는 날에는 인형을 만들지 않고 우울한 날, 슬픈 날, 그냥 기운 없이 축 처지는 날에 인형을 만든다. 왜 그러는지 여자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굳이 누가 무르면 또 대답해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그 때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만들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기분도 상쾌해 지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지도 않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을 유식한 말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길이었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 하는 길이었고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이었다. 여자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할 때마다 궁색과 궁핍은 벽에 걸린 시계의 태엽을 풀고 풀린 태엽은 딸깍 딸깍 시계를 돌리고 시계는 마술을 부려 아이들 눈에 잠 오는 약 가루를 뿌리고 아이들은 침대에 소파에 피그르르 쓸어져 잠이 들어 버렸다. 원단을 사고 재단을 하고 몸을 만들어 물을 들이고 솜을 넣어 바느질을 하여 몸을 만들고 옷을 지어 입히고 신발을 만들어 신기고 얼굴 윤곽을 잡아 주면서 인형은 차츰 차츰 사람의 모향을 하고 사람이 된 인형에게 여자가 가방 하나를 들려 줬다. 인형이 들기엔 좀 크다 싶은 가방을 들리자 인형은 훌쩍 여행이라도 떠날 것처럼 보였고 챙이 큰 보자라도 씌우면 영락없이 고향집으로 달려가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여자가 인형에게 모자를 막 씌우는 순간, 여자의 남편이 들어왔다. 벨을 누르지도 인기척을 내지도 않고 열쇠로 문을 끄르고 들어 와서 말없이 신발을 벗는데 비틀거리는 것으로 봐 집에 오는 길 포장마차 아니면 호프집에서 술을 한잔 한 모양이다. 여자는 그러는 남편을 한 번 힐끗 쳐다보는 것으로 왔느냐는 인사를 대신 했고 남편은 말없이 옷을 벗고 욕실에서 양치를 하고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서 보고 싶은 것을 보다가 무심히 소파에 팔을 걸치다가 아이를 발견하고는 아이를 앉아다 방에 누이고 침대를 가로질러 자는 큰놈을 반듯하게 누이고 이불을 덮어 주었고 거실로 나오다가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끓이며 냉장고를 뒤적였다.
“커피?”
“응!”
남편이 커피 두 잔을 타서 한잔은 아내 옆에 두고 나머지 한잔은 자신이 들고 소파에 기대앉아 팔걸이를 하고 이산을 본다. 그 사이 아내는 이산을 가끔 곁눈질로 보고 귀로 들으며 인형에 눈을 붙였고 인형은 인형이 되었다. 본드도 재봉틀도 플라스틱도 종이도 가공되지 않고 온전히 천과 솜과 실 바늘로 만 만들어진 인형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여자에게서 생명을 얻었다.
‘넌 이제부터 도나 야. 도나!’
여자가 인형에게 도나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하지만 여자가 입 밖으로 이름을 말하지 않았음으로 아무도 인형이 이름이 도나라는 사실을 모fms다. 도나는 자기의 이름을 몇 번 이고 되 뇌 인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봐 중얼 중얼 거리다 문득 도나라는 이름을 왜 지었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자신을 만들어준 엄마라는 여자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음으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별 방법이 없는 도나는 옷을 쓰다듬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엄마라는 여자에게 몸을 맡겨 뒀다. 여자가 자신의 컬트 바구니를 정리하고 도나를 텔레비전 옆 테이블에 앉혀 두고 욕실로 들어가고 남편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기 위해 도나 앞으로 왔다가 도나를 슬쩍 들춰 보고는 별 흥미가 없는지 휙- 제자리에 놓고는 강호동 이혁재 강수정이 나오는 야심만만 이라는 프로를 틀어놓고 다시 소파 있는 데로 가 허리를 기대고 팔 거리를 하였다.
여자는 욕실에서 나와 안방으로 가 영양 크림을 바르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 옆에 있던 도나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도나를 끌어 앉고 잠이 들었다. 여자는 금 새 잠이 들었지만 도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인형은 잠이 없는 지도 모른다. 도나가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는데 남편이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더니 검지로 코를 문지르고 취침 등으로 조명을 바꾸고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고 침대위로 슬금슬금 올라 가 도나를 아내 가슴에서 빼내 화장대 위에 놓고 슬립 가운을 들춰 브래지어를 끌어 올리고 살색보다 조금 붉은 아내의 젖꼭지를 빨며 애무를 시작했다. 도나는 아직 어려서 이것이 무슨 생활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부부생활 이라고 하고 꼭 부부들만 이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게 부부들이 많이 하는 생활이고 대개의 부부들이 이들 부부처럼 이 생활을 한다. 여자의 남편이 가슴을 만지고 팬티 속으로 손을 넣고 입이 입술을 더듬자 여자가 잠이 깨여서 엉덩이를 들어 옷 벗기기 편하도록 하자 남편이 옷을 벗고 여자는 하의만 벗겼다. 언제부턴가 여자는 상의 벗는 것을 무척 귀찮아했고 남편이 상의를 벗기려 하면 짜증을 부렸음으로 남편은 여자의 상의 벗기는 것을 포기하였다. 남편은 아내의 상의를 벗긴 게 언제인지도 모른다고 친구들에게 투덜거린 적이 있지만 아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이나마 국물도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내가 엉덩이를 들어주고 다리를 벌려주고 무릎을 세워주고 남편이 위로 올라와 삽입을 하고 끙끙 거렸다.
“어머니께 전화 왔어.”
“뭐라고?”
“용돈 좀 보내래. 보일러가 고장 났다고.”
“그럼 보내 드려야지 별 수 있어.”
“생활비 십 만원 밖에 안 남았는데?”
남편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아내를 내려 다 보고 아내는 고개를 돌려 도나를 본다. 도나, 도나! 도나는 시골 출신 이었고 친구 아버지 집에 하숙을 하면서 친구 아버지의 아들을 사랑하게 되고 연적과 치열한 경쟁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하고 사랑도 인생도 사회적 성공도 쟁취한 만화 속 주인공이다. 여자도 도나와 같이 될 줄 알았다. 처음엔 도나 처럼 시작 했고 성공 했고 성공 했었다. 하지만 결말은 도나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도나는 행복하게 끝났는데 여자는 행복하게 끝 날 것 같지가 않다. 만화 속에는 억척스럽고 무서운 시어머니가 없었는데 여자에게는 있었고 만화 속 여자는 전문직 캐리어 우먼 이었는데 여자는 평범한 직장 여성 이었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의반 타의반 사표를 써야 했고 그 이후로는 취직이 되지를 않았다.
“내일 사무실에 가서 통장에 넣어 놓을게.”
남편은 직장 동료 김 대리에게 또 돈을 빌릴 것이다. 수 백 만원의 월급을 받고 자기 집도 가지고 있고 차도 어깨 펼 만큼 크지만 성공 하였다는 아들이라는 허울이 시댁 부모님께 생활비가 뭉칫돈으로 나가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면서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고 집과 차가 있으니 그에 걸 맞는 옷을 입어야 하고 먹어하고 돈도 쓸 만큼 써야 위신이 서고 어울릴 수 있고 왕따와 무시를 당하지 않고 또 능력 있어 보이고 그래야 승진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저금은 꿈도 못 꾸고 진정 엄마는 언제 용돈을 보내 드렸는지 가물가물 하고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서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는지가 십년이 넘었지만 가물가물 하고 그렇다고 식당에 나가기는 싫고 말주변이 없어서 영업직은 못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편 월급 바라바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시원치가 않는데 아이들 가르칠 돈은 날로 늘어나고 노후대책은 꿈도 못 꾸고 출세시킨 아들 덕 좀 보자고 기세등등한 시어머니 욕심은 채우기도 급급하고.
“10분 지났어. 아직 안 돼?”
“기다려.”
“빨리 끝내 나 피곤해.”
“알았어.”
남편을 위해 여자를 위해 여자가 엉덩이를 조금 들어 허리를 올리고 끙 끙 소리를 내 주자 남자가 ‘으-윽’ 하고 사정 하고 아내 옆으로 벌러덩 눕고 여자는 자신의 속옷으로 밑을 닦으며 화장실로 가고 남자는 잠이 들고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는 화장대에 앉아 가만히 있다가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은 출근을 하고 여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씻겨서 옷을 입혀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보내고 커피를 타서 이재용 정선희 가 나오는 아침 프로를 보고 통장에 입금 됐다는 남편의 문자를 받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여자의 시어머니는 여자로서 경운기 운전도 하고 남자들과 물싸움도 하고 625동란 때는 빨치산에게 쌀을 뺏기지 않기 위해 피가 터지도록 매를 맞은 적도 있을 만큼 대가 센 여장부였고 그런 기질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 시키고 대기업과 은행에 취직을 시켰다. 남편과 남편 형의 말로는 어머니가 무서워 연애 한 번을 제대로 못해 봤다고 했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시골에서 작대기를 들고 서울까지 올라오신 분이었기 때문이란다. 한 번은 봄에 모내기 하는 철에 임신 한 여자(며느리)에게 모내기 밥을 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여자는 시집와서 쭉 해온 일이라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었지만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하늘이 노랗고 막막하여 아이를 가져 이렇게 저렇게 힘이 들고 어려우니 이번 한 번 만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하는데 전화가 뚝 끊겼다. 하여 화가 나서 전화를 끊으셨나 싶으면서도 잘 말씀 드렸으니 이해하시리라 믿었지만 5시간 후에 현관에서 시어머니를 보아야 했다. 시어머니가 전화를 끊고 바로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며느리의 짐을 싸서 베란다 밖으로 내 던졌다. 여자는 겁에 질려 울기만 하고 달려온 아들이 빌고 또 빌었지만 시어머니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고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 뺑뺑이를 돌리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했고 엔딩 곡은 앰뷸런스였다. 하혈을 하는 여자는 공포라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악랄하고 영악함도 알았다. 며느리에게 유산 기를 보일 만큼의 공포를 줬음에도 실제로 유산을 시킬 만큼의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 치밀함을 보이며 유유히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그 다음해 여자는 핏덩이 아이를 업고 모내기를 하러갔고 아이는 찬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며 발을 동동거려야했다.
“어머니… 보일러 값 30만원 입금 했습니다.”
“그럼 기사 출장비는 내 돈으로 내란 얘기냐?”
“저 그게…”
“알았다. 인정머리 없는 것.”
요즘 보일러는 고장도 잘 안 난다는데 시어머니 보일러는 해년 해 마다 고장이 나고 봄가을 야유회는 꼭 가야하고 보약도 드셔야 하고. 하고. 하고. 하고. 차라리, 시어머니가 현명하지 않을까? 확실하지 않을까? 부모가 저렇게 대차게 나오니 자식이야 어찌됐든 노후연금 보험은 확실하지 않은가.
여자가 캐릭터샵에 들려 쇼핑백에서 도나를 꺼내 주고 주인 여자가 감탄을 연발하며 도나를 진열했다. 도나가 눈을 동글 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도나가 세상이 참 희한 하다고 생각 하는데 여자가 도나를 한번 보고 씽긋 미소를 짓고는 빠이 빠이를 하고 돈 봉투를 받아 가방에 넣고 돌아서서 나갔다.
“오늘도 넌 슬픈 얼굴을 하고 있구나? 너도 역시 이름이 없네? 니 엄마는 왜 이름을 안 지어 주는 지 모르겠구나. 이름 지어 주는 것도 참 숙젠데.”
‘나는 도나에요. 엄마가 도나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주인 여자는 도나의 말을 듣지 못했다. 주인 여자가 도나 앞에서 자리를 비키자 쇼윈도 유리에 도나 엄마가 조금 보였다. 슬프다. 슬픈 감정이 도나에게 일었다.
“그래. 생각났다. 널 도나라고 부르자. 도나! 어떠니? 김수연 이가 쓴 건데 여자 주인공이 시골서 올라와 성공을 하고 사랑도 얻고 그러는 거란다. 꼭 너처럼 생겼어. 야무지고 예쁘고 똑 부러지고.”
도나는 맞은 편 거울을 본다. 그리고 정말 그런가 싶어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지만 매장에 있는 다른 인형들 보다 더 화려하지도 더 예쁘지도 않는 자신의 모습에 괜 시리 자신이 없다. 어떤 여자가 들어온다. 도나를 만든 여자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여자다. 그 여자는 멋진 핸드백과 부드러운 옷과 세련된 머리를 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것저것 인형을 만지작거리더니 도나 앞에 섰다.
“영혜 씨가 오늘 가져왔어요.”
“그래요? 인형이 슬퍼 보이는 게 마음에 들어요.”
“슬퍼 보여요? 저는 당차고 자신 있어 보이는데.”
“아뇨. 옆으로 보면 무척 슬퍼 보여요. 친정이 없는 여자 같기도 하고. 특히 이 가방이… 마치 시골 기차역에 서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글쎄요. 전… 그리고 영혜 씨는 친정 엄마 있어요. 이거 팔리면 엄마 통장으로 넣어 주는 걸요.”
“그래요? 그럼 살까?”
여자가 도나를 들어 도나 밑에 있는 가격표를 본다. 도나도 자신의 가격표를 보고 싶지만 너무 밑에 있어 보이지를 않는다. 도나는 도나 자신이 얼마인지 궁금하다.
끝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