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여름 타월을 걷고 두꺼운 밍크 이불을 꺼내면서 포시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꽃이 시들어버린 양난을 대신해 노오란 소국을 들여놨더니 나도 덩달아 젊어진 느낌이 듭니다. 국화 향기가 생각보다 세다는 걸 아시나요? "머언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겐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님<국화 옆에서> 받고, 오랜만에 왕숙천 고수부지로 광합성 하러 나갔어요.
-
선친에 비하면 아들은 분명 종합 멀티플레이어일 찐데 그렇다고 행복지수가 꼭 높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시든 난초를 해체하면서 어쩔 수 없이 우울해졌습니다. '존재와 시건'을 리라이팅 하다가 '주체와 존재'의 차이에 꽂혀 특강 모드로 들어갔어요. '주체-존재-진리'의 알쏭달쏭 한 차이를 아시나요? 포스트모던이스트들이 거부했던 '진리' 개념을 살리려면 플라톤을 소환시켜야 되는 것 아닌가요? 노 노.
-
에에공! 포스트모더니즘은 틈-공백-균열-해체 등등 비일관적 다수의 동적인 것들을 통해 오기 때문에 고정시켜놓고 구조화하려는 것(이전 관습/문화/전통)의 상대개념으로 보인다. 페미니즘 역시도 단순히 남녀평등이나 '미투'로 한정하지 말고 진리를 찾아가는 '되기'의 과정으로 보길 바란다. 알랭 바디우 형님의 '존재'개념이 하이데거(존재와 시간)와 비슷하지만 노노, 똑같지 않아요. '존재' 개념은 '고정이 아닌 움직이는 것'으로 하이데거 받고, '사건'을 만난 주체가 랑그에 저항하는 진보주의로 강력 레이스를 쳐야 합니다.
-
이것은 니체 형님의 '생성의 존재론'(힘의 의지)과 닮아있습니다. '존재'는 '일자'로 쓰긴 하지만 '사건'에서 일자는 존재하지 않아요. 일자는 없고 '상황(사건) 안에서 나타난 일자 개념(주체의 현시)' 만 존재합니다. “존재는 무엇이 아니라, 언제 드러나느냐가 중요하다.”(너는 지금, 시간 속에서 되어가는 존재다) 우리의 존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
한강의 흐르는 물이 늘 흐르지만 다른 것처럼. 하이데거는 우리를 ‘현존재(Dasein)’로 <여기-존재하는-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네가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너 자신으로 존재하게 된다.” 삶의 유한함을 마주할 때, 진짜로 살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뜻이에요. 60에 배우는 3인 3색의 <현상학>이 흥미진진합니다. <존재의 차이>를 공부하다가 알랭 바디우(존재와 사건)-하이데거(존재와 시간)-니체(힘에의 의지)로 새 판짜기를 해보니 그럴듯합니다.
-
“진짜의 넌, 어떤 <사건>을 통해 태어난다” 누구든 어느 날, 운명적인 사랑을, 다메섹 사건을 만날 수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나, 새로운 꿈을 품거나, 그저 그런 일상 속에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 말입니다. 알랭 바디우는 바로 그때, “너는 너의 진리를 선택하라"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외면해도, 나만은 그것을 붙들겠다고 결단할 때 ‘주체’(참된 나)가 드러난다는 거예요. 에예공! ‘사건’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걸 선택하느냐 외면하느냐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
니체 형님은 이렇게 말했어. “존재는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 ‘되어가는’ 거잖아. 변하지 않는 ‘본질’ 같은 건 없어. 매일매일 운명이든 사건이든 맞짱 트면 돼! 아모르파티!" 우리는 계속 새로워지고 있다고. 그리고 오늘, 나에게도 사건이 올 수 있다면 그저 지나가던 노을, 누군가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 눈물 나게 맛있는 음식 한 끼가 나를 완전히 다른 길로 데려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짜 존재한다는 건, 그 작은 사건들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나를 선택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당신에게 ‘사건’이 찾아오면 그 진리에 충실하면 됩니다.우리가 아는 것처럼 만물이 생성-소멸을 반복한다는 건 계속 변화하려는 생명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을 니체는 <힘에의 의지>-헤겔은 <운동에의 의지>-후설은 <의식에의 의지>라고 하면서 누구에게나 그 의지가 있고, 삶은 그 힘(의지)이 어디로 흐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
"존재'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시간과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잠재적인 흐름이며, 그 흐름 속에서 주체가 진리를 선택하고 충실할 때 비로소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하이데거), 어떤 사건을 통해 나만의 진리를 선택할 수 있으며(바디우), 존재는 계속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니체)이 아닙니까? "Situations do not make a man but reveal him" 상황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그를 드러낼 뿐이다(이현주 목사)
-
<토지 31회>차입니다. "서방님! 왜경을 두려워하실 일을 하셨습니까?(서희)" "무엄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서희와 함께 있던 길상과 김환, 갑자기 두수가 들어오자 황급히 몸을 피합니다. 서희는 태연하게 두수와 맞섭니다. "우리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시는군요" "공노인! 함께 여행 갔다 왔던 그 사람 누굽니까?(서희)" "서희가 그리 걱정되면 후환을 없어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죽여야지(환)" 서희 걱정을 하는 길상에게 김환은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
"사랑하는 어머니가 목을 매었지요" "그래서 죽은 놈 껴안고 다시 죽기라도 한다는 거야" "영원히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게 될 거야" 금녀가 두수를 찾아와 당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이라며 권총자살합니다. 두수는 당황합니다. "안돼! 다 죽여버리겠어(두수)" 괴로워하는 두수를 보니 그가 금녀를 좋아하긴 한 것 같습니다. 두수가 송애를 찾아와 욕정을 채웁니다. 송애와 함께 있던 두수를 환과 길상이 급습하지만 송애가 대신 총알받이로 죽고 둘은 거꾸로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독립군이다! 잡아!" "이제는 어쩔 텐가?" "평생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절에 버려져서 그림을 그배우던 동자승-머슴-종놈-지금은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 하지만 어느 하나 진정한 나는 없었어요. 이젠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습니다(길상)" "그 사람은 새를 사랑했네. 언젠간 어머님이 말씀하셨네 "둥지를 떠난 새는 쉬고 싶어도 날개짓을 쉴 수 없다고 그래도 날아보고 싶은가?(환)" "지칠 때까지 날아보고 싶습니다(길상)" 독립군 마누라의 방은 언제든 뒤져도 되는 게 형사 부장이지(두수)" "닥쳐! 내게 필요한 것은 그깟 재산이 아니라 네 목숨이야"
-
두수는 이를 빌미로 서희를 협박합니다. "떠나기 전에 반드시 서희에게 들릴 것이니 잘 지켜(두수)" 한편 용이와 주갑은 축 처진 몰골로 죽음을 앞둔 월선을 찾아옵니다. "모르긴 해도 내가 가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겠지라우(주갑)" "산판일을 끝내고 왔다(용이)" "야 그럴 줄 알았소(월선)" "우리 많이 살았다... 내도 여한이 없다(용이)" 용이를 기다렸다는 듯 용이를 보자 용의 품 안에서 월선이 숨을 거둡니다. "엄마! 엄마! " "아이고 이 불쌍한 것아!(방 씨 부인)'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에도 사랑도 다 싫다"
-
"아이고 성님 아이고 성님(임이네)" "길상 마님이 오셨습니다" 상주는 용이와 홍이입니다. "김서방!" "조금만 참아요" 문상 온 서희가 용이에게 조만간 고향으로 컴백할 것임을 알립니다. "마님! 참말입니까? 참말로 가는 깁니까?(영팔)" "이제가면 언제나 볼라요~" 상여 송이 구슬프기만 합니다. "백상여라도 탔으니 참으로 다행이야(방씨부인)" 빨간 지방 위로 덮이는 흙더미가 인생무상, 삶의 회의를 마구마구 들게 합니다.
-
"피도 살도 안 닿았는데 오라비 형세 하지 마라(임이네)" "가소, 자꾸 이러면 내 이 집에다 불을 지르고 만다. 남부끄럽소(홍이)" "싫은 월선이가 내게 800원을 맡겼다 김서방이 그 돈을 맡아 주면 안 되겠나" 임이네는 월선이 홍이를 위해 남긴 돈을 탐내다가 용이에게 뺨따귀를 맞고 방바닥을 치며 울부짖습니다. 결국 용이는 공노인에게 군자금으로 기부하겠다고 의지를 밝힙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고 홍이를 위해서도 독립운동하는데 쓰는 게 좋겠습니다(용이)"
-
"작은 아버지 숙모님 절 받으시소. 그동안 사람의 도리를 못하고 살았습니다(용이)" 임이네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습니다. '집도 돈도 다 남의 손에 넘어가는구나" "상현아! 만주에 있는 최 씨 부인이 조준구 껍데기를 다 벗겨 놨어(황태수)" "이리 오너라! " "아버님이 어찌 됐다고요?(임 역관의 딸) "어떤가? 절세미인이지" "그 여자는 얼음이요. 가슴에 품을 수도 없는(상현)" 상현은 아직도 서희를 잊지 못합니다. 봉순도 역시 길상이 생각에 눈물짓는 걸 보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분명합니다.
-
"서방님! 돌아오지 않으십니까? 돌아오기 싫으신 겁니까(서희 독백)" '아버님! 안 됩니다(병수)" 서희는 공노인에게 집문서와 땅문서를 맡기고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서희가 땅과 집을 주고 알아서 쓰라는 걸 보면 봉황의 큰 뜻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나를 위해 친일을 더해볼 생각이오(서희)" "정말 함께 떠나지 않으실 겁니까(서희)" 서희는 어렵게 길상을 만나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길상은 서로의 짐만 된다며 거절합니다.
-
"좋습니다. 이건 꼭 이야기해 주세요(서희)" "그 사람 구천이가 맞죠?" "그분의 어머님은 윤 씨 부인이요(길상)" "보복을 위해 데리고 갔다 그 말이요?(서희)" "그건 사랑이었소(길상)" 길상은 서희에게 김환의 과거에 대해 낱낱이 일러줍니다. 서희는 물론 충격을 받습니다. "최서희가 없어 샅샅이 뒤져(두수)" 그러던 차에 두수와 김환의 격투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김환이 총상을 입고 길상의 부축을 받으며 사라집니다. 결국 서희는 아기아리고기디던 조선으로 떠나게 됩니다. "마님! 큰 도련님이 안 보입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갈 것입니다" "넌 아버지 대신 윤국이를 보살펴줘야지"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2.
여름 타월을 접고, 밍크 이불을 꺼내고, 시든 양란 대신 노란 소국을 들이면서 계절의 ‘사건’을 맞는 한 사람의 존재가 시작됩니다. “포시즌을 실감한다”는 말 한마디에서, 우리는 이미 ‘시간 속에 있는 나’의 변화와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서정주의 시 한 구절이 자연스럽게 흘러들고, 그것이 ‘왕숙천 고수부지’라는 삶의 구체적 장소와 연결됩니다. 철학은 언제나, 계절과 향기와 함께 오는 것 같아요.
-
바디우, 하이데거, 니체가 각각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존재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중이라는 진실입니다(바디우: 사건을 통해 주체가 태어난다. 진리를 선택하라/하이데거: 존재는 시간 속에 있다. ‘현존재’는 죽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니체: 모든 존재는 ‘힘의 의지’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 중이다. 아모르파티!).
-
이 모든 철학적 사유는 나의 삶과 맞닿아 있을 때 비로소 사건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강의 노트’가 아니라 ‘존재의 에세이’입니다. 후반부에 밀도 있게 정리된 <토지> 31회 요약은 단순한 줄거리 소개가 아닙니다. 한 인물 한 인물의 대사 속에 철학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두수, 김환, 서희, 길상, 용이, 월선, 홍이, 임이네… 이들은 사랑, 배신, 죽음, 헌신, 분노라는 사건을 통해 저마다의 진리와 주체를 찾아가는 존재들입니다.
-
예를 들어 “지칠 때까지 날아보고 싶습니다(길상)” 니체의 ‘운명 사랑’, 바디우의 ‘사건’,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한 문장으로 녹아듭니다. 또한,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갈 것입니다(환국)" 가족과 역사라는 이름의 의무와 주체의 선택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토지> 속 인물들은 사건을 ‘겪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악동님의 이 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입니다.
-
계절의 변화, 철학의 사유, <토지>의 비극과 희망… 이 모든 것이 교차하면서 한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진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우리는 모두 “되어가는 존재”이고, 그 ‘사건’을 마주하고, 피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면, 비로소 주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철학의 말이고, 문학의 말이며, 악동님의 오늘의 글이 말해주는 진실입니다.
2025.10.18.sat.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