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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 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글은 냉전 종식이후, 그리고 동티모르 사건을 빗대어 지식인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하며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역설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신문의 기사를 비판의 근거로 삼는다. 그것만큼 중요한 중요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언급하는 지식인은 기자만이 아닌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평론가, 이른바 전문가들까지 포함한다.
촘스키는 냉전 종식 후 미사여구로 포장된 미국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인 수사인지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이러한 사실은 냉전 종식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미연방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어왔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일관된 정책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요컨대 미국은 상당히 비민주적인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면서, 종전의 정치`경제 질서를 전복시키고 '좌편향'적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민중중심의 변화를 피하려고 애쓴 사례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저자 노암 촘스키 Noam Chomsky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9세에 MIT대학 부교수가 되었고, 1955년 '언어이론의 논리 구조'라는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후 세계적인 언어학자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세계 문제와 미국의 패권주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논문과 비평을 통해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는 강대국들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고발함으로써 '세계의 양심'이란 평을 받고 있다.
현재 MIT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국제 테러리즘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비판하는 글들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Reflections on Language』 『Language and Responsibility』 『해적과 제왕』 『숙명의 트라이앵글』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불량국가』 『테러리즘의 문화』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등이 있다.
역자 강주헌
언어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했다. 저서로는 『계집 팔자 상팔자?(우리말에 나타난 성차별 구조)』와
『나는 여성보다 여자가 좋다(우리말에 나타난 성차별 구조를 넘어서)』가 있고, 대표적인 역서로는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선물』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등이 있다.
1. 지식인의 책무
2. 목표와 비전
목표 대 비전
인도주의적 관점
새로운 시대
저항의 목소리
모진 사랑
3.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
변하지 않는 진실
실물 세계에서 시장
민주주의 : 국민을 억압하는 민주주의
자유시장 보수주의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 주인들의 유토피아
진실을 말하는 것 - 지식인의 책무
심혜영님|2006.03.10 |
예전 대학시절 지식인의 책무는 무얼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 진지해져야 한다고 나름대로 심각했던 그 시절
나는 그랬었다.
물론 답이 풀리진 않았다.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진실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나름 결론짓고
나는 진정한 ‘지식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될 것인가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책을 구경하다 이 책을 발견하고선 반가웠던건.
현존하는 세계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
촘스키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일까?
촘스키는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진실을 찾아내 알려야 하지만
그 책무를 다하기가 어렵고,
특히 약점을 지닌 사람은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경우도 있다며
아주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지식인에게는 이런 책무가 뒤따르지만,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에서
그 책무에 따른 희생은 실로 엄청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정의하고 그는
미국의 오만과 음모를 고발한다.
전 세계를 피폐하게 하는 음흉성을 고발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선의의 얼굴을 하고서
언제나 자유와 평화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우는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한번쯤 그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고
여러 가지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서도 들었다.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반미주의자는 되지말자고
그냥 중립적으로 봐주자고 생각했었는데
미국의 짓거리는 정말
눈뜨고는 못봐 주겠다.
'진실'과 '민중의 힘'을 믿는다면 희망을 갖고 진실을 찾는 노력
김강섭님|2005.11.26
촘스키는 미국 사회내에서 이른바 주류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촘스키는 베트남전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세계도처에서 행해지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비판하였고, 강대국들의 폭력과 인권유린을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즉, 촘스키는 미국의 이익에 반(反)하는 글들을 발표하여 다수의 우중을 자각한 민중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책무(원제 : 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글쓰는 사람과 지적인 책임)]에서 촘스키는 ''지식인(기자, 평론가, 전문가 등)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 까닭은 논의의 초점이 곁길로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다.
지식인은 왜 진실을 알리고 말하는 데 힘을 써야하는 것일까? 촘스키는 그 답을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려, 대중이 그 문제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P.16, P.24)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촘스키의 진단이다. ''많은 교육받은 사람들은 진실을 밝히는 데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왔다(P.36).'' 지식인들의 이러한 행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와 특권과 권력이 보장되는 귀족정치주의자의 길을 걷는 것(P.94)이며, 민주주의자의 길을 외면하는 반민주적인 것이라고 촘스키는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식인이 대중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이유는 교화(敎化)의 목적도 있지만 대중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의미를 갖는 행동을 촉구하여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줄이기 위함이다(P.25). 즉, 민중의 힘을 조직화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함(P.178)이라는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식인의 책무》편에서는 지식인이 왜 진실을 말해야 되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목표와 비전》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편에서는 지식인들이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 해서 형성된 기만과 왜곡으로 굴절된 세상(미국을 위한, 소수의 부자를 위한, 국가를 능가하는 기업가를 위한....)을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다.
촘스키는 이데올로기나 종교에 의해 편가름되는 세상이 아니라, 진실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듯 하다. 지식인에 의해 민중에게 전달된 진실은 민중의 힘을 조직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이렇게 형성된 민중의 거대한 힘은 정당성이나 정통성을 갖지 못한 지배구조를 와해시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 아닐까 싶다.
비록 더디거나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진실''과 ''민중의 힘''을 믿는다면 촘스키와 같은 희망을 갖고 진실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에서 이런 선택이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때가 드물게 있었기에.....(P.178)
지식인의 책무
metalkid님|2008.03.25|http://blog.daum.net/meki77/14283241 8 |0
독서기간 2008년 3월 24일~ 3월 25일 / 독서번호 915
노암 촘스키 지음 / 강주헌 옮김 / 황소걸음 펴냄 (2005)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는 도덕적 행위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노릇이기 때문에 동어반복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뻔한 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문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속한 지식인 계급의 기본적인 실천 원리가 이 기초적인 도덕률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입에 거품을 물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적인 실천 원리로 현실을 평가할 때 우리는 역사적으로 끝없는 나락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 16p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우리지만 새삼스레 말할 것이 많고 대답할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들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 공동체에 달가운 소리여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속한 학교와 언론계와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에 대해 숨김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문명 세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43p
기업계와 금융계가 누리는 막강한 힘은 결코 민중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이런 힘은 국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법원과 법률가들에 의해 교묘하게 구축되고, 국가 간의 경쟁을 이유로 대규모 민간 기업에 특권을 보장하는 식으로 더욱 확대된다. - 51p
민간 기업에 인정된 권리와, 그 뒤에 감춰진 법리는 20세기를 장식한 전체주의의 두 형태, 즉 파시즘과 볼셰비키주의를 키워낸 지적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에서 민간 기업의 독재적 구조가 두 수치스런 형제들과 달리 영원하리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 52p
고전적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아나키스트적 비전에 따르면, 모든 계급 구조와 권위 구조는 개인적 관계에서나 사회적 관계에서나 정당성 확보라는 커다란 짐을 안고 있다. 그런 짐을 감당하지 못하는 계급 구조는 정통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와해되어야 한다. 민중이 이런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면서 과감히 맞설 때 견뎌낼 계급 구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주의자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 53p
따라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아나키스트는 민간 폭군들의 집요한 공격에서 국가의 제도적 역할 중 일부를 지키는 동시에, 민중에게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도록 국가기관들을 개방시키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궁극적으로 국가기관을 해체해서 훨씬 더 자유로운 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 56p
듀이의 표현을 빌리면, 생산의 궁극적 목적은 재화의 생산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로 맺어진 자유로운 인간’의 생산이었다. 한편 러셀은 교육의 목표를 ‘지배가 아닌 다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자유와 개인의 창의성이 마음껏 꽃피울 수 있으며, 노동자들이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가 되는 자유로운 공동체에서 지혜로운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따라서 강압적인 부조리한 구조는 해체되어야 했다. 특히 은행, 토지, 산업을 장악해서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는 민간 기업이 언론, 통신 등 선전과 프로파간다의 수단까지 장악해 더욱 강화시키는 지배 구조를 해소해야 했다.
이런 해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본 궤도를 크게 벗어날 것이라고 듀이는 덧붙였다. 그리고 정치가 대기업이 사회에 던지는 그림자로 전락해서 그림자가 옅어지더라도 요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이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고, 민중은 자유롭고 지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밥벌이를 위해 일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58p
하지만 권력에의 순종이 강요되지 않는 사회, 즉 자유의지에 따라 권력에 순종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반미’와 같은 개념들이 사용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 문화의 씨앗까지 기억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그런 개념들이 사용되었다면 코웃음 세례만 받았을 것이다. - 60p
러셀과 듀이가 지금보다 문명화된 시대에 주장해서 요즘의 좌익 자유주의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개념인 ‘인도주의적 관점’은 주된 현대 사상, 즉 레닌과 트로츠키가 고안해 낸 전체주의 사회와 서구의 국가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이끌어가는 사상과 완전히 대치된다. 전체주의 체제는 다행히 붕괴되었지만, 서구의 자본주의 체제는 아직도 꿋꿋하게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런 후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암울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 - 61p
미국이 경제 전쟁을 획책하면서 쿠바를 빈곤의 수령으로 몰아넣었지만 쿠바가 ‘당신들의 노예’가 될 수 없다며 달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미국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 69p
노동자 신문들은 언론, 대학, 지식인 계급을 ‘돈에 팔린 성직자’라며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요컨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억압을 합리화시키고 천박한 가치관을 주입시키려는 권력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앞잡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 80p
헨리 데마레스트 로이드는 “노동운동의 소명은 인간을 시장의 미혹과 원죄에서 구해내는 것이며, 시장의 원죄에서 비롯되는 가난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는 민주정치의 원리를 경제에도 확대할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다”고 선언하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노동 시간, 고용 조건, 생산 과정의 분할 등을 결정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로이는 “산업의 지휘관은 노동자에 의해 선출돼야 하며, 그 지휘관은 주인이 아니라 서번트가 되어야 한다. 노동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 81p
토크빌은 “조건의 불평등이 계속되어 고착화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몰인정한 계급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제조업의 귀족들이 그 경계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종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제퍼슨도 “빈곤의 만연과 부의 집중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며 조건의 평등을 기본적인 명제로 삼았다. - 83p
바쿠닌은 지식인이란 새로운 계급이 평행한 두 길 중 한 길을 걸을 것이라 예언했다. 지식인들은 민중 투쟁을 이용해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패덕한 체제를 강요하는 ‘붉은 관료’들로 변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힘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재빨리 깨닫고 ‘돈에 팔린 성직자’로 자처하며 국가 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민중을 때리는’ 관리자나 변명자가 되어 진짜 주인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예언이었다.
바쿠닌의 예언은 사회과학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앞날을 정확히 내다본 극소수 예언 중 하나였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바쿠닌의 예언은 명예의 전당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 85~86p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담론의 지적 수준은 경멸할 가치조차 없다. 도덕적 수준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지경이다.
…
과거에 항상 그랬듯이 우리는 제퍼슨적 의미에서 민주주의자의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귀족정치주의자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귀족정치주의자의 길은 넉넉한 삶을 보장한다. 부와 특권과 권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민주주의자의 길은 투쟁의 길이다. 그 투쟁은 쓰라린 패배를 겪기도 하겠지만, ‘돈을 벌어라! 너만을 생각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굴복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보상을 받는다. - 94~95p
세계 정복을 향한 케네디의 무자비한 음모가 1980년대 무대에서 시들해지자 미국의 경계와 삶을 위협하는 새로운 적을 찾는 모색이 계속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고 방어력도 약한 리비아가 용감무쌍한 레이건주의자들에게 그럴듯한 샌드백으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발광한 아랍국들, 국제 테러리스트들, 그럴듯한 나라들이 적절한 후보자로 떠올랐다. 예컨대 조지 부시는 파나마를 침공하는 것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자축했다. 하지만 파나마 침공은 결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어전이 아니었다. 악마 노리에가를 생포해서 그가 저지른 죄를 심판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우습게도 그가 CIA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저지른 범죄를 심판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군사원조의 절반이 콜롬비아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데 콜롬비아는 충격적인 잔혹 행위로 남반구에서 가장 악랄한 인권 탄압국이지 않던가. 간섭의 패턴은 같았지만 구실은 달랐다. 이번에는 마약 밀매단에게 미국을 지키겠다는 구실이었다. 미국의 군사원조와 군사 훈련은 ‘마약과의 전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군사력 양성에 집중되었다. 아니, 한 가지 점에서는 마약과의 전쟁과 관계가 있었다. 국제인권감시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게 군사원조와 훈련을 받은 군부와 준군사조직이 마약 밀매의 주역이었다. 요컨대 마약 밀매는 미국의 정책이 거의 반세기 동안 양성해 온 범세계적인 사업이었다. - 107~108p
얄궂게도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장 원리의 무시와 국가 폭력이 경제 발전에서 큰 몫을 해왔다. 전후 유럽과 일본, 그리고 신흥공업국이 대표적인 증거다. 사실 이 나라들 모두 미국의 군사력에서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늘날 제1세계와 제3세계는 18세기까지만 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 후 큰 격차가 벌어진 이유 중 하나는 지배계급의 의지였다. 요컨대 지배 후 계급이 시장 원리의 강요를 완강히 거부한 나라들은 모두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
영국과 미국이 산업화를 시작한 초기에 그 원동력은 면방직 산업이었다. 달리 말하면 미국 남동부에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학살해서 땅을 빼앗고 노예들을 수입해서 목화를 재배한 덕분에 값싼 목화를 안정되게 공급받을 수 있어 산업혁명이 가능했다.
우리가 요즘 들어 입이 닳도록 찬양하는 시장 원리에 맞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런 식의 착취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 119~121p
1992년 유엔개발보고서의 추정에 따르면 부자 나라들이 보호주의적인 정책과 금융 정책으로 개발도상국들에게서 빼앗아가는 돈이 연간 5천억 달러에 달했다. 이른바 ‘원조금’의 12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게다가 5천억 달러가 대부분 수출 보조금으로 쓰였다. 아일랜드의 저명한 외교관 얼스킨 차일더스는 이런 행위를 ‘실질적인 범죄 행위’라 규탄하면서, 개발도상국가들이 ‘정치 수단으로서의 경제 정책,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억압’에 관련해서 유엔총회에 상정하려던 1991년의 결의안이 미국의 주도하에 서방국가들에 봉쇄되었던 점을 상기시켰다. 실제로 워싱턴은 테러 이외에 경제적 수단을 통해서 쿠바와 니카라과 같은 건방진 독립국들의 버릇을 고치려 해왔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지유시장에 대한 찬송을 그치지 않았다. 차일더스의 지적대로 이런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물론 부자 나라들의 유력 언론들이 그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일더스는 “부자 나라들의 부도덕한 행위가 그들의 국민에게 낱낱이 밝혀지면서 지배계급이 한없이 부끄러워할 날”이 오기를 바랐다. - 123p
1995년 4월, 극우 성향의 해리티지 재단이 자체적으로 편성한 연방예산안을 제출했고 의회는 그 예산안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였다. 해리티지 재단은 납세자 6분의 1의 의견을 존중해서 펜타곤 예산의 증액을 요구한 반면, 국민 3분의 2가 찬성하는 교육, 약물중독 치료, 환경 등 사회적 지출에 대해서는 대폭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해리티지 재단의 한 정책분석가는 “철학의 문제다.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는 일에 반드시 지원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 납세자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또 엄밀히 말해 여기에서 진짜 문제는 ‘좌파 성향 단체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라’는 해리티지 재단의 요구였다. 가톨릭 자선단체, 전미은퇴자협회 등 간혹 연방정부로부터 쥐꼬리만한 보조금을 받아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단체들까지 ‘좌파’로 분류하고 있으니 말이다. - 147p
매디슨의 집정권들이 지배력을 강화하자,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존 듀이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는 ‘대기업이 사회에 던지는 그림자’로 변해갔다. - 153p
세계 무역의 40%가 다국적기업의 내부 거래고, 50% 이상에 미국과 일본이 관계되어 있다. 이런 거래는 엄격한 의미에서 ‘무역’이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고 지배력을 갖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시장을 훼손하는 ‘뚜렷이 보이는 손’이 중앙에서 조종하는 기업 운영에 불과하다. - 175p
이런 흐름을 저지하고 뒤집어서 계몽시대의 가치관, 자유와 인권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만과 왜곡의 그림자를 뚫고 들어가 세상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고 첫 단계다. 그 후 민중의 힘을 조직화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과거의 예에 비춰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선택이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때가 드물게 있었다. - 17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