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yombo(소욤보)라 부르는 몽골 국기다.
푸른색은 국가를 위한 영원한 충성을 뜻한다. 붉은 색은 전진과 번영을 말하고, 노란색 소음보는 몽골의 독립과 자유를 상징한다.
우라나라의 7,6배 정도의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몽골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인구는 보잘 것 없다. 약 300만 인구중 190만 정도의 인구는 올란바트로 수도에 몰려 있다. 유목민들이 초원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어 여러가지 사회적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인구 대부분은 라마교와 자연을 숭배하고 있고 이슬람교 4% 가독교 또한 4% 믿고 있다. 몽골의 카돌릭 역사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253년 몽고 회림지역에 프란치스코회 루브르크 수사가 도착 선교하였으나 곧 철수한다.
1275년 교황사절 마르코폴로가 북경에 도착한 후 몽고를 찾았으나 특별한 선교는 없었다.
1294년 프란치스코회 코르비노 신부가 원나라에 도착한 후 30년간 선교하여 약 3만명의 신자에게 전교하였으나 원나라가
멸망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후 지속적으로전교에 힘을 기울였으나 혁명을 통하여 공산주의로 고착화 되면서
전교의 길은 끊겨 었다.
1992년 몽고가 개방과 개혁을 선포하면서 바티칸과 몽골 사이 외교관계 성립된다. 2017년은 외교관계 성립 후 25주년되는 해이다.
2007년 한국카톨릭 대전교구에서는 사제를 파견하기 시작하여 선교의 기초를 세우고 몽골 현지인 청소년을 선발하여 대전카톨릭신
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 부제품을 받고 당진본당에서 부제로서 사목활동을 하다 2016년 몽골 주교좌 성전에서 사제서품을
받아 몽골 최초의 사제가 된다. 한국 최초 사제 출신지역을 갖고 있는( 김대건 안드레아, 솔뫼, 최양업 토마스, 청양) 대전
교구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2017년 현재 두 개의 본당(항올 성당, 소피아성당)을 포함하여 유목민 자활을 위한 가나안 농장과 유목민 출신 자녀들과 도시
빈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 진료지원 등등 여러방면에서 활발하게 전교를 하고 있는 중이다.
순례가 되었든 여행이 되었든 자신이 정주한던 곳을 떠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정주하던 곳을 떠나 외방으로 나갈 때 짐을 꾸려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고 정주할 때처럼 모든 물품을 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단촐함을 기준으로 짐을 꾸려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이 머물 지역의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기준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시10분에 탑승한 후
3시간 30분 비행끝에 징기스칸 공항에 내려 버스로 다시 40분 이동끝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방 배정을 끝낸 후 파스칼 형님과 투숙하였다.
해돋이 기척에 눈이 떴다. 커텐을 체친 후 해돋이 능선을 찾았으나 도시의 해돋이였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산맥에서 뜨는 것은 사실이나 여러 형태의 건물로 가려져 해돋이를 실감할 수 없었다. 세면 후 3층 식당으로 내려가 호텔식으로 아침을 챙긴 후 짐을 다시 꾸렸다. 오늘 일정은 다음과 같다. 호텔식우로 조반을 챙긴 후
1.호텔을 출발하여, 2. 마트에 들러 장을 본 후,3.국립공원 테롤지, 엉커즈 산 트레킹이다. 4. 오후 게르를 방문 게르 숙박체험과 몽골 전통음식 허르헉으로 석식을 해결한다. 5. 식사 후 적당한 시간을 이용하여 별을 보고 모닥불을 지펴 형제적 친교 나눔 후, 6.취침으로 하루를 마감할 계획이다.
아침 일정을 각자 마친 후 짐을 꾸려 호텔 로비에 모였다. 호텔 정문에서 들어 오다 발견할 수 있는 대형 그림이 눈 길을 끌었다. 자세히 살핀 결과 군마(群馬) 그림이었다. 형제적 친교의 모습을 담는 일은 일체감의 성격이 있다. 행선이 같고 목적이 같은 일이 바로 순례와 여행이다.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은 동료가 되는 것이다. 동료들끼리 단체 사진, 좋은 추억이 된다.
마트에 들러 저녁 만찬에 사용할 상추, 과일, 와인, 맥주를 준비 할 때 시종일관하게 함께 행동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바울로 자매께서 과일을 사 나눠 주셨다. 다시 이 지면을 통해 인사드린다. 그리고 원래 트레킹 코스를 바꿨다. 시작에서부터 부담이 오는 가파른 언덕과 마지막 내리막 길이 신경 쓰였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영향을 미쳤다. 모름지기 하루 일정은동참한 모든 사람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 늘 하루 일정 안에는 평균적 보편성이 깃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일정 영향으로 내일 일정까지 영향을 끼쳐선 안되는 것이다. 늑대상 트레일러로 바꿨다. 완만하면서 아름다운 길로 바뀐 것이다. 일정이 수정된 후 변경된 출발장소로 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하였다. 그리고 행정을 점검하고 채비 한 후 모두 동그란 원형을 만든 후 함께 기도를 드렸다. 개인적으로 후렴으로 혼자 속삭이듯 화살 기도를 드렸다. 주 하느님 찬미하나이다. 당신의 사랑으로 만드신 드넓은 초원을 걷기 위하여 여기 모두 모였나이다. 당신이 만드신 원인을 깊이 생각하며 감사드리고 그 안에 필경 깃들어 있는 자연의 지혜를 본 받아 배우고 익히고 살며 평화의 그릇으로 만들어 많은 이들과 나누려 하오니 오늘 우리들의 일정에 당신의 사랑이 가득하게 하소서, 아멘.
어느새 곁에 서서 같이 걷는 것 같았는데...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짓누르는 악동을 닮은 바위곁에 까지 올라 가 손을 흔든다. 샷더 소리로 응수한 후 걸어 온 길을 돌아 보았다.
바울로 자매님이 저 아래에 서 계셨다. 허리의 통증으로 참여 불가능하였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몽골까지 오신 것이다. 걸음 여행이 끝날 때까지 부근을 가볍게 돌아 보면 있다가 하산하는 곳으로 버스를 이용하여 오기로 한 후 헤어진 것이다. 돌아보는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몽골의 날씨는 짖궂다. 흐리고 비가 뿌리더니 다시 잔득 흐렸다. 그러나 마루금을 넘는 순간 듬성듬성 파란 하늘이 보였다. 사진을 찍으며 초원을 가로질러 올랐다. 걷는 순간마다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그 사이에 보이는 에델바이스,
다가 가 살핀 후 담아 두었다. 순수한 정열이 산악인을 닮아 산악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 된 고산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다. 한국에도 여러 종이 있다. 우린 솜다리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른다. 어느시기엔 설악동 노점 상인들이 남획하여 비늴 포장하여 판적이 있어 멸종화 되어가던 과정이 있었다. 지금은 공룡느으 요아장성, 천화대 높고 깊은 산중에서나 만날 수 있는 꽃이 되어 버렸다.
순수한 정열, 참으로 고귀하고 가치 있는 마음과 자세다. 꽃을 봄으로서 순수한 정열을 지금 그리고 내일 또 그 다음날 다시 하루 일정의 주제로 삼기로 하였다.
조각가는 하느님이시다. 창조적인 질서인 것 만은 틀림 없는 일이다. 사진에는 주제와 부제가 명확해야 하고 첨경 또한 제대로 된 위치에 있어야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사진은 사실적인 구도지만 자연은 사진보다 한 수 위인 몽한적인 뜻을 더하고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초원과 초원 위에 배열된 돌과 나무, 야생화, 그리고 지금은 닫힌 잿빛 하늘까지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코끼리 앞 다리가 연상되는 바위를 돌아 나가자 오르막의 초원이 다시 펼쳐진다. 여러개의 구릉이 초원을 주름지게 만들어 놓았다.
멀어지고 감춰지고 드러나고 뒤처지고 사람들은 초원의 모습과 어울리며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갔다. 나는 반복적으로 단호하게 드러내는 단어의 조합인 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걷지 않는 자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다. 앞으로 나감으로서 새로운 자연의 속살을 통하여 감동을 받았다. 이 정도면 걸음 여행은 보증수표를 받은 것이나 진배 없었다.
오르막에선 자연스럽게 몇팀으로 구분된다. 선두는 1.8km 언덕을 오르고 있었고 나를 중심으로 100m 이내 앞선 사람과 뒤에 선 사람들로 구분되고 그 넘어로 후미가 구분되어 있었다.
세 사람, 맨 후미 대열이다. 그러나 걱정할 일이 아니다. 길이 좋고 앞으로 나타나는 풍경이 좋아 그 핵심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지점으로 합류될 것이다. 그곳에선 늘 단체사진으로 우리는 스스로 기념하고 있다. 근육질의 무더기 바위 옆 능선에 두 남녀가 앉아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후미 모습을 담으면서 슬쩍 끼어 넣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 젊은 남녀였다.
바위산 주변으로 자작나무가 호위 하듯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오름이 시작된다.
화원을 선점한 기쁨의 표현이다.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난 것만으로 미소를 짓는다!
숨이 흩어지면 힘들다는 증거다. 활동량에 비해 흡입되는 산소량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숨이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기세에 눌려 있다는 증거다, 이럴때는 뒤로 돌아서서 걸어 온 길을 보며 깊게 숨을 쉬며 가다듬어야 한다. 넓고 깊게 타우 십자가처럼 숨울 골라야 한다. 암벽등반 행사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캠프 사이드가 아름답게 다가 왔다.
잠시 돌아 보셔요! 소리쳤다. 그리고 단추를 눌렀다. 쇠소리가 들렸다.조리개가 열렸다 닫히는 소리다. 빛이 모아진 후 다시 닫히면서 상(像)이 맺히는 것이다. 대열을 잠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한다.
숫자가 부족하여 돌아보니 안드레아 형제님께서 마루금에서 무엇인가 열중하고 계셨다. 그래서 이 독사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길 옆으로 숨어 있던 자작나무 숲, 초원에서 불어 오는 야생바람 영향으로 곧은 가지가 별반 없다. 나무는 빛과 바람에 나신이 되어 자란다. 물의 영향도 받지만 빛과 바람이 나무의 형태를 좌지우지 한다. 떡꺼머리 총각의 머리처럼 가지들이 산발형태다. 그러나 보기는 좋다.
벌써 자작나무 숲으로 입실하려는 선두가 있어 잠시 붙잡았다. 뒤배경과 자작나무 숲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의도가 전해 졌을까? 감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의 마음 수첩에 담아 두었을 것이고...아니면 그만이다. 하하하,
우리들이 걸어 온 뒤 안이다. 길, 곡선이 아늑하고 벌써 추억이 묻어나는 듯 하다. 오름은 집념이 담겨 있다면 돌아 봄은 여유로움이 풍긴다. 집념안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집념을 벗어나 슬쩍 뒤 돌아 보는자에게 주는 넉넉함이다.
베어진 나무 토막과 백색의 자작나무 사이와 아니 그냥 초목이라 하자, 초목 사이로 늘 순례와 걸음 여행 팀을 사랑하는 데레사 자매님이 보였다. 카메라를 의식한 행위는 아닌 것 같고 잠시 오름의 곤란함에서 벗어나려 등을 돌린 것인데 걸린 것이다.(2017,08,19 - 02 page에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