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 달려 도착한 곳 아리타 도자기마을
아리타(有田) 야끼(燒) [조선도공 이삼평]
임진왜란 정유재란.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이 전쟁을 일본역사에서는흔히 ‘도자기 전쟁’이라고 말한다.
선진문물의 약탈을 위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도공만이 아니었다. 금공(金工) 석공(石工) 목공(木工)은 물론 세공품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17세기 초까지 백자를 만드는 기술은 중국과 한국만 갖고 있었다.
조선 백자에 군침을 흘리고 있던 일본은 이를 직접 만들기 위하여 임진왜란 때 전쟁에 참가했던 영주들이
경쟁적으로 도공들을 잡아갔다.
그러나 백자는 당시 조선에서는 흔하게 사용했던 투박하고 소박한 도자기였다.
이삼평을 도자기의 신으로 모신 신사

조선 도공 이삼평
에도시대에 일본의 번주들은 칼로 세상을 휘두르다가 돌아서면 차를 마시곤 했지만,
흙을 고온에서 구워 만드는 자기 기술은 없었다.
번주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도공들을 끌고 가 부려 먹었으니 조선이 일본의 침략은 막아냈으나
고급 기술 인력은 일본에 유출된 셈이 됐다. 당시 끌려간 조선 도공 가운데,
충청도 공주 사람 이삼평이라는 도공은, 1616년 고온에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고령토를 발견하고 가마를 만들어
자기를 생산하는데 이것이 일본 최초의 자기인 아리타 자기다.
기술을 천시하던 당시 조선에서 천민 대접을 받으며 자기가 만든 작품에 이름도 새기지 못하였던
조선 도공들은 자신 명의로 된 도자기를 빚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을 시켰다.
조선 도공들은 큐우슈우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자신의 혼을 담은 백자,
청자를 만들면서 일본의 도자기 수준을 높였다.
지금도 아리타 마을에 가면 그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 앞에는 영광스럽게도 도예의 조상으로 추앙하는 도조(陶祖)라는 말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이삼평기념비로 오르는 언덕길에는 무궁화가 피어 있다. 4백년 전의 조선인 이삼평을 기리며 꽃마저
그의 조국의꽃 무궁화를 심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산 정상에 거대하게 '도조 이삼평 기념비'를 세우고 또한 신사(神社)까지 만들어 이삼평을 추앙하고 있다.
이삼평의 비

임진왜란 때 끌려가 일본에서 백자의 세계를 연 이삼평.
그는 아리타(有田)에서 백자의 원료가 되는 흙을 발견하였다.
이를 사용해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자기를 빚었기에 그는 지금도 도조(陶祖)로 추앙받고 있다.
일본에 잡혀간 조선 도공들은 영주들의 극진한 지원 아래 마음껏 예술성을 살릴 수 있었다.
여기까진 가이드의 말로만 본 것들이다.
이삼평의 작품




이삼평의 도자기는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팔려나갔다.
독일 드레스덴의 쯔빙거 궁전을 본떠 지은 도자기전시장
입장료가 비싼관계로 밖에서만 눈띵했다는~~

△ 아리타 포세린 파크 ('도자기공원.) 사진: 위키피디아
안내서에는 “17세기 이후, 유럽의 왕후 귀족을 매료시키고
세계의 도자기에 영향을 준 아리타야키의 고장다운 테마파크.”라고 적혀 있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럽풍으로 만든 테마파크.
테마파크내 삼평카페




일식 정식 점심식사




인형인줄 알았는데 녹차네요.

기념품 가게 인형들





일본에서는 3월3일이 여자어린이날 5월5일은 남자 어린이날이란다
아래 사진은 여자어린이날이 다가옴으로 지금부터 이렇게 장식을 시작한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