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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임란의사 백일장 산문 수상작
초등 저학년
장원 : 한다현 -흥무초등 2-1
운동화
우리 할아버지는 농사일과 소를 키우십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운동화는 늘 흙투성이 소똥 투성이 울상인 모습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뜨거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날에도 언제나 울상인 운동화를 신으시고 논과 밭으로 그리고 소 외양간으로 열심히 다니셔서 우리가 먹을 쌀과 채소들을 농사지어서 우리가 가면 늘 챙겨 주십니다. 나는 문득 할아버지의 운동화가 더러운 거보다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우리 엄마는 일부러 대구백화점까지 가셔서 할아버지의 운동화를 사서 오십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멋진 운동화를 선물 받으신 할아버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 하십니다. “야야! 돈도 없는데 말라꼬 샀노? 니 신이나 사 신지...” 하시면서 낡은 엄마의 신발을 쳐다보십니다. 할아버지가 엄마를 많이 사랑하시나 봅니다.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엄마가 할아버지를 생각하시는 것처럼 나도 어른들께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쌀과 채소와 용돈도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할아버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우수상 : 윤지우 -경주초등3-2
운동화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윤지우 생일축하 합니다~” 오늘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의 생일이다. 맛있는 음식과 케이크를 먹고 나니 드디어 선물 뜯는 시간! 엄마의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책 언니의 선물은 예쁜 스티커, 공책, 연필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선물 어? 아빠는 분홍색이랑 회색이 섞인 운동화였다. 나는 아빠에게 그냥 감사하다고 말하고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운동화를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방에 두었다. 1주일 뒤 아빠가 부산으로 출장을 간다고 하였다. 나는 아빠와 인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빠의 운동화를 신고 학교로 갔다 그런데 발이 따끔따끔하였다. 그래서 운동화를 보니 어! 그 쪽에 작은 편지가 있었다. 내용은 “지우야 아빠가 1주일 뒤 부산으로 출장을 갈거야 건강하고 다치지마 사랑해♡”였다. 나는 눈물이 나는 걸 참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운동화만 신고 오면 좋은 일이 생겼다. 예를 들어 반장선거에 나가면 부반장이 되고 등등 오늘 백일장에 올 때도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과연 상을 받게 될까? 궁금하다 .운동화야 제발 상 좀 받게 해 줄래?
우수상 : 진기준 -황성초등학교3-4
운동화
오늘 나는 새 운동화를 샀다. 그 운동화는 새것이어서 그런지 윤이 났다. 내가 원하던 신발이고 내가 골랐던 신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신발을 살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여러 가지 색이고 이 신발 겉으로만 봐도 오래 신을 수 있고 잘 안 닳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발에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딱 맞아서 달리기 할 때에는 이 운동화가 필수일 것 같았다. 딱 맞았지만 중간 중간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어서 바람이 잘 통하기 까지 하였다. 또 이 신발은 방수 신발이어서 바닷가, 계곡 등에서 이 신발을 신고 놀 수 있다. 맨발로 물놀이를 하다가는 바닥에 있는 유리조각 때문에 다칠 수 있어 이 신발을 신으면 된다. 게다가 이 신발은 내가 떼를 써서 겨우겨우 산 것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백화점에 갔는데 부모님께서 내 것은 사주지 않으시고 부모님 것만 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내 것만 안 사주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부모님께서 “너는 옷과 신발이 많잖아. 그런데 엄마하고 아빠는 다 헌 옷과 헌 신발 밖에 없잖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백화점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울음이 그쳤을 때에는 내 입이 삐죽삐죽 오리입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원하는 신발을 사게 되었다. 나는 고집불통 귀염둥이이다. 지금은 새 신발을 사서 기분이 엄청 좋다. 오늘은 화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좋은 하루도 아니었다.
우수상 : 이솔민 -용황초등2-1
운동화
오늘 나는 아버지의 운동화를 보았다. 운동화는 다 떨어져서 구멍도 나 있었다.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아버지가 이렇게나 많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다니... 나는 아버지가 많이 힘드신 듯해서 순간 울어버릴 뻔 했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속만 썩여왔는데, 이렇게 힘들게 일하셔서 나에게 용돈도 주시는 거였을까?
앞으로 나는 부모님께 안마도 잘해드리고 공부도 잘하고 책도 잘 읽어서 속을 안 썩일 것이다. 또 학교에서는 싸우지 않을 거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가작 : 임수진 -나원초등1-1
운동화
분홍색에 리본이 달려있는 내 운동화를 신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나는 하늘에 올라가 작은 구름을 따고 싶어요. 그 구름 아래로 가져와 구름빵을 만들꺼에요. 그 구름빵은 우리 할아버지 88번째 생신날 선물로 드릴꺼에요. 우리 할아버지는 나처럼 빨리 걸을 수 없어요. 이 빵을 드시면 운동화 신은 것 처럼 힘이 생길 것 같아요.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가작 : 조현정 -유림초등1-7
운동화
새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 놀자. 룰루랄라 축구하며 놀면, 운동화가 더러워져요. 우리 엄마, 조물조물 손빨래해서, 짱짱한 해에 말려요. 어느새 운동화가 다 말랐어요. 뽀송뽀송한 운동화 신고 다시 밖에 나가 야구하며 놀아요. 쨍쨍하던 해가 집에 가나 봐요. 벌써 저녁노을이 져요. 안녕. 다음에 놀자. 다들 집에 가요. 나도 이제 집에 가야지. 쏴아 쏴아 목욕을 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요. 이제 저녁밥 먹고, 내일을 기다려요. 내일도 운동화 신고 놀거에요. 이제 하늘에는 초롱초롱 별들이 총총 반짝반짝 달이 떴어요. 운동화야 잘자. 내일 또 같이 놀자. 운동화에게 인사하고, 쿨쿨 나는 잠이 들어요.
가작 : 이신후 -월성초등1-1
운동화
내 운동화가 학교에 가요.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요. 또 다음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요. 신발 안에 모래가 가득 들어갔어요.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어요. 엄마한테 혼날꺼에요.
가작 : 양채은 -경주초등3-3
운동화
헌 운동화는 한 가지 색밖에 없고 작고 닳았다. 나는 그 운동화를 신기 싫다. 그래서 엄마, 아빠와 같이 가서 새 운동화를 샀다. 알록달록 예쁜 운동화가 생겨서 좋다. 새 운동화를 신으니 달리기도 잘 할 것 같다. 내는 달리기를 할 때마다 꼴찌를 했다. 헌 운동화를 신어서 인 것 같다. 새 운동화를 신고 달리면 꼴찌를 안 하겠지. 새 운동화를 신으니 엄마도 예쁘다. 아빠도 멋있다. 새 운동화를 사주신 엄마, 아빠가 너무 고맙다. 새 운동화를 신으니 내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초등 고학년
장원 : 이나영 - 용황초등6-1
손수건
6월 6일 현충일 이었던 어제, 나는 TV에 현충일 기념 방송을 보며 훌쩍훌쩍 거리게 되었다. 한참을 울던 나는 주섬주섬 손수건을 찾았다. 손수건. 순간 나는 손수건이 이별, 슬픔, 사랑의 징표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수건이 이별의 징표가 되는 이유는 남녀가 헤어질 때 손수건으로 서로 흔들어 작별하기 때문이다. 손수건이 슬픔의 징표가 되는 이유는 사람이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을 차분히 닦아주어 어느 순간 슬픔까지 닦아내기 때문이다. 손수건이 사랑의 징표가 되는 이유는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처음 나오는 눈물, 콧물을 손수건으로 훔쳐주기 때문이다. 또 손수건을 목에 둘러주어 아기가 감기에 걸리지 말라는 부모의 사랑담긴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부모님께 손수건으로 사랑을 표현한 적이 있다. 어느날 엄마의 손수건이 날깃날깃 다 해어진 행주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5월8일 어버이날, 카네이션과 손수건을 같이 담아드렸다. 이번 세월호 사건은 손수건이 슬픔을 표시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고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손수건으로 참아내며 자식의 생가를 확인하는. 난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내가 나중에 커서 자식을 낳으면, 또 손수건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아이가 울거나, 코를 풀거나, 추울 때 손수건이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피겠지.
내 생각에, 손수건으로 마음이 따끈해지는 사랑이 더 많은 듯하다.
우수상 : 임 경우 - 나원초등5-2
손수건
푸른 바다 옆 작은 나무에 만은 노란 손수건이 걸려있다. 차디찬 물속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며, 부모님, 친척들, 선생님, 친구들이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너무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노란 손수건을 걸고 있다. 벌써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50일이 넘었다. 온 국민 가슴 속에 노란 리본 새기고 두 손 모아 눈물 흘리며 기도한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 엄마는 내가 몇 시간 늦게 귀가해도 얼굴 빨개져 걱정된 목소리로 왜 이제 왔나고 하시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그들의 가족은 얼마나 걱정되고 힘드실까?
나도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내 가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야겠다. 어서 돌아오세요.
우수상 : 이가솔 - 경주초등5-3
손수건
나에겐 아주 중요한 손수건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 할 때에 어머니께서 선물로 사주신 손수건이다. 분홍색 리본을 달고 있는 헬로키티 손수건이다. 그 손수건 안에는 많은 슬픔이 담겨있었고, 많은 아픔이 담겨있었다.
어느 한 날 이었다. 어머니께서 너무 힘드셨는지 자꾸 눈물을 흘리신다. 나는 오늘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어머니의 눈물을 닦는다.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닦을 때 마다 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내 마음이 꿰매져 있을 때면 어머니께서는 활짝 웃고 계신다. 그럴 때면 내 마음도 웃음꽃이 핀다. 그 손수건이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 손수건을 꺼낼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언젠간 반드시 그 손수건에 있는 슬픔과 아픔을 다 짜내고 행복과 기쁨이 손수건으로 바꿀 것이다.
우수상 : 윤나희 - 경주초등5-4
손수건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윤나희 생일 축하 합니다.”
오늘은 내 생일. 몇 달 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다. ‘쩝쩝’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다 먹고 제일 기대되는 선물 공개 시간만이 남았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선물을 하나하나씩 열어 보았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 예쁜 문구세트 등 마음에 드는 선물들이 아주 많았다. 드디어 아빠 선물을 뜯을 시간. 아빠는 지금까지 모든 선물들을 내가 원하는 선물로 사주셨기 때문에 특히 기대가 컸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선물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였던 선물은 겨우 손수건이었다. 그것도 빨간색에 흰색 땡땡이가 있는 아주 촌스러운 손수건. 나는 정말 실망하였지만 아빠가 보고 계셔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웃었다. 그때 아빠가 말씀하셨다.
“나희야, 이 손수건은 아빠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란다. 이 손수건 아빠가 정말 아끼던 건데 특별히 너 주는 거란다. 어때, 정말 마음에 들지?”
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아빠가 그렇게 아끼던 것을 나에게 주다니. 정말 감동 받았다. 이 손수건에는 아빠의 추억과 사랑이 들어있다. 나는 이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가 다음에 내가 낳은 내 딸에게 선물 줄 것이다.
가작 : 조유정 - 용황초등4-4
손수건
나는 한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 그 손수건에는 많은 따뜻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손수건은 지금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땐 참 고마운 손수건 이었다. 내가 목이 아팠을 때 손수건으로 내 목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때는 아주 답답해서 ‘아 답답해! 빨리 이걸 풀고 싶어!’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답답하지 않고 정말 따뜻했었는데. 그 손수건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내 동생이 어릴 때 엄마가 보고싶어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때 참 뜻 깊은 일을 하였던 것 같다. 그 여린 눈물을 닦아 줄 때 착한 아이가 된 것 같은 참 좋은 추억을 내게 남겨주었다. 또 내가 열이 심하게 오를 때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내 머리를 식혀주었다. 만약 그 때 그 손수건이 내게 도움주지 않았다면 난 펄펄 끓었을 거다. 그 많은 추억을 간직한 헌 손수건이었지만 나에겐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내게는 최고의 손수건이다.
가작 : 한나래 - 황성초등5-3
손수건
여름 방학이면 우리 가족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 곳도 가지 않기로 결정 했습니다. 난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세월호 사건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는 텔레비전을 보시면서 매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언니, 오빠 등 많은 사람들이 배에 갇혀서 못 나오기 때문이죠. 저도 엄청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바다가 배신을 하다니. 여름이면 물놀이와 온갖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나에게는 놀이터이자 가족과의 뜻 깊은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만 미워 할 수가 없었죠. 마음을 가다듬고 난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까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훌륭하신 분들이 최선을 다하지만 안타까움만 계속되고 나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작은 일에 투정부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빨리 해결이 되어서 아직 배에 갇혀 나오지 못하신 분들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해서 슬픔의 손수건을 적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작 : 김상은 - 포항초등4-2
손수건
손수건은 고마운 친구다. 무더운 여름 땀이 날 때도 흐르는 땀을 깨끗이 닦아주고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날 때도 눈물을 닦아준다. 손수건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주는 아주 고마운 친구다.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에 입할 할 때는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길게 달고 다니셨단다. 나는 왜 손수건을 가슴에 달았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웃으면서 “그때는 휴지나 물티슈가 별로 없어서 콧물이 나면 닦기도 하고 손도 닦고 했다”고 하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손수건은 참 고마운 친구다.
중등부
장원 : 김수지 - 경산 삼성현중학교1-2
일기
그날은 2년 전, 청마백일장에서 운문부 가작을 타고 기분이 참 좋던 날이었다. 너무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 난 그날 저녁 가작을 받은 이야기를 일기로 옮기려고 의자에 앉은 순간, 집으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그때가 정확히 2012년 11월 10일 오후 8시 17분 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의 아저씨 목소리.
“여보세요?”
“얼른 엄마 바꿔!”
“누구세요?”
“빨리 엄마 바꾸라니까!”
거실에서 밥을 먹는 엄마에게 재빨리 전화기를 넘겼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그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뭐라 말하는 것 같았는데, 뭐라는지 안 들렸다. 그리고 심하게 떨려오는 엄마의 대답.
“네...?”
덜덜 떨리는 엄마 손.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엄마는 밥을 먹다말고 옷을 챙겨들고는 나에게 말했다.
“수지야, 민지 밥 먹이고 재워라. 그리고 엄마는 병원에 다녀올게.”
“어느 병원이요?”
“동국대학교.”
그러곤 갔다.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나는 혼란이라는 심해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괜찮을 거라 생각을 하며 나는 설거지를 하고, 집을 치우고, 동생을 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한 내 동생은 그냥 언니도 같이 자자고 했다. 동생에게 먼저 자라고 말하고는 거실에 앉았다. 뭐라 말할 것도 없고, 그냥 혼자서 중얼거리다 떠오른 생각
‘혹시... 설마... 설마... 아빠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엄마나 아빠이길 바라며, 문을 열었다. 앞에 선 사람은 이모가족. 당시 경주에 살던 나에게 경산에 살고 있던 이모가 소식을 듣고 온 것 같았다.
“이모야! 무슨일이고!”
“수지야.”
이러면서 이야길 시작했다. 하... 어떻게 아빠가 쓰러졌다고 했다. 심근경색으로 예상되고, 45분 만에 발견이 돼서 뇌사상태며, 살아도 희망이 없을 거란 소식에, 난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2012년 11월 11일 오전 7시 58분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뭐랄까, 그냥 다... 허망한 기분.
그렇게 2012년 11월 10일 일기장 제목은, 청마백일장에서 아빠로 바뀌었고, 그 일기를 울적한 날마다 읽어본다. 내게 상처가 되어버린 일기. 아빠일기
우수 : 최별이 - 계림중학교3-6
일기
책상 정리를 하다가 보게 된 내 초등학교적 일기장. 정리를 멈추고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옛날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로 쓴 나라 호국에 관한 일기가 나왔다. 넘기던 손을 멈추고 일기를 찬찬히 읽어보니 나라를 튼튼하게 하여 임진왜란 같은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게 하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되어 있었다. 그 내용이 괜시리 우스워서 웃음을 한번 터뜨린 나는 곧이어 빨간 볼펜으로 진하게 쓰여진 선생님의 감상평을 읽게 되었다.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물음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일기장을 손에서 놓고 공책을 한 권 꺼내 일기를 고쳐 써 보기로 했다.
호국, 호국이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 그러한 노력이 지금 얼마나 되도 있을까. 생각해보니 호국을 위한 노력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중3인 나도 모르는데 나보다 나이 어린 학생들은 알긴 할까, 호국을 한다면 나라의 어린 아이들마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왜적이 쳐들어오는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생겨났다. 순국선열 말 그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열사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 위태로운 일이 생겨난다면 선뜻 목숨을 바칠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애국심을 기르는 노력을 더 해야 할 것이다. 매년 실시되는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행사도 더 확실히 열어야 할 것이다.
우수 : 김규일 - 문화중학교 3-1
일기
지난 어린이날, 아버지께서 회사에 출근하신 덕에 나는 시험이 끝난지 사흘 밖에 안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며 놀 수밖에 없었다. 2시간 정도 게임을 하고 있으니, 밖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호령, 책 좀 읽어라. 그 하늘같은 기세에 놀란 나는 냉큼 내 방으로 들어가 수십번도 넘게 읽어 이제 대사까지 완벽히 암기한 ‘마법천자문’을 꺼냈었는데, 그러자 슬며시 유치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낡은 공책이 같이 딸려 나왔다. 위에 ‘XX초 2-1 일기장’ 이라고 적혀 있는 책에 흥미를 느끼며 일기장을 펼치자, 첫 장 부터 눈꼴사나운 제목들이 나를 반겼다. ‘나는 돈을 모아 게임기를 사겠다.’, ‘생일 파티에 놀러가서 잠을 잤다’, ‘점심에 라면과 피자, 저녁에 회를 먹었다’ 등 시시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들이 너무 많았다. 가지고 있기에 너무 창피해 한꺼번에 버리려 하다가, 문득 다른 일기장을 열어보니, 알록달록한 사진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또 한켠에는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 갔다’, ‘작은 이모가 결혼을 했다’, ‘XX랑 싸워서 기분이 나빴다’ 같은 글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낡은 종이뭉치 속, 마치 타임머신처럼 어린 시절 안에 서 있었다. 그러나 몇 권의 일기는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이 났고, 나도 중학교에 들어오고 난 후로부터는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나는 버려지고 잊혀졌던 내 추억이 방 한 칸 묵은 곳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느끼며, 그 종이들을 책꽂이 맨 윗칸에 차곡차곡 옮겨 넣었다.
가작 : 김지민 - 신라중학교 1-3
일기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학교에서 일기를 안 적어도 되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일기는 개인의 역사라고 일기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일기는 개인의 역사여서 일기를 쓰면 어른이 되어서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 쓰는 것이 귀찮았다. 그런데 일기는 개인의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그 나라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안네의 일기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대표적이다. 전쟁 속에서 개인의 생각과 느낌이 글이 되어 시대를 반영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추억이 되거나 중요한 날에는 일기를 쓰려고 노력 할 것이다.
가작 : 김진주 - 포항여자중학교1-6
일기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일기를 매일 잘 써서 상장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일기검사를 받을 때엔 내 마음을 잘 들춰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내 사생활을 침해당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자 일기를 쓸 의무가 없었다. 난 처음엔 마냥 좋았다. 일기를 안 쓰니까 내 생활을 들추지 않아도 되어서 기뻤다. 하지만 그건 한 순간 이었다. 일기를 쓰지 않으니까 내 추억을 간직할 곳이 없어진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일기를 써서 귀찮기만 했지만 중학교 때가 되어 이제야 겨우 느낀것이 못내 아쉽다. 꼭 일기를 쓸 필요가 없더라도... 난 내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
일기는 그 추억을 간직하는 보물창고다. 조금은 귀찮고 힘들어도 나의 추억을 차곡차곡 쌍을 수 있게 일기와 더 친해져야 겠다.
고등부
대상 : 권송지 - 선덕여고2-4
약속
밝게 빛나던 별들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힘들게 찾아낸 별은 이미 빛을 잃은 뒤였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사고. 슬픔, 비극, 절망, 어떤 말로도 이 안타까움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서 빠져 나오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제발 무사하렴. 너무 춥지? 아저씨가 곧 구해줄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너희를 절대 잊지 않을게. 우리가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 줄게. 대답을 듣지 못할 슬픈 약속들이 허공을 울렸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나라의 시간은 멈춘 듯 했다. 봄을 즐기던 사람들은 우울하게 하루를 보내고, 한창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던 가게는 문을 닫았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북적거릴 첨성대도 고요하기만 했다. 모든 것들이 슬픔에 빠졌다. 오직, 노란 리본만이 바람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봄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절망적이었던 시간동안, 얼음을 녹여 줄 작은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음을 느낀 이들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척박한 아스팔트 사이로 핀 꽃처럼, 아무도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힘겨웠던 시간 동안 우리가 사는 이곳은 사랑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눈물 한 방울, 노란 리본이 하나씩 묶여질 때 마다 그 사랑은 배가 되었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흘린 눈물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 주었다. 비록 간절히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것 또한 사랑 이었다.
슬픔은 아직 떠나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피워낸 사랑의 힘은 대단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이웃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의 앞길이 희망적이기를 바란다.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 질 것이다. 작지만 큰 한반도가 사랑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우리 모두가 빛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남남이 아닌 하나가 되어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이들과 미래를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친구들의 죽음에 부끄럽지 않게, 매일 매일을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장원 : 김세희 - 선덕여고2-7
약속
아침 일찍 일어나 외출할 준비를 한다. 친구가 며칠 전부터 기대해도 좋다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터에 들뜬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대문을 열면 보이는 붉은 낙엽에 선선한 바람. 완벽하다. 몇 분 걸어 도착한 친구와의 약속장소 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는 내가 오자 방긋 웃으며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도중 우리와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은빛 생명을 발견한다. 옆의 친구도 그들을 보았나보다.
“연어, 쟤네들도 참 고생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 알을 낳아봤자 죽을 텐데 저렇게 힘들게 올라 가냐.”
친구의 말을 듣고 약속이나 한 듯 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째서 저리도 힘겹게 물에 맞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예상이나 하고 있을까. 그들이 죽음과 맞바꾸어 이루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올라갈수록 단풍에 물들어 빨갛게 물든 강이 더 반짝거린다. 가슴이 조금 뭉클해진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을 희생해서 알을 낳는 것, 어쩌면 태초에 그들은 모두 함께 약속하지 않았을까? 우리들이 모두 모이면 저 거센 강물을 오를 수 있으니 함께 가서 우리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도록 알을 낳자고. 비록 자신들이 희생당할지언정 아가들에게 미래를 맡겨보자고. 걸음이 더욱더 빨라진다. 모든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섞여 혼잡해진다.
“야, 너는 저거보고 뭐 느끼는 거 없냐?”
친구는 무심히 그들을 바라보고는 툭 허니 던진다.
“자기 종족이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어찌 낯설지가 않은 게 인간 같기도 한 것이... 좀 그러네.”
친구의 입에 걸린 싸늘하고도 아련한 웃음에 멍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적지에 가까워진 듯하다. 강의 상류. 붉은 낙엽이 그들을 덮고 있고 내가 걷는 땅은 폭신폭신하다. 그대들에게 자그마하게 속삭인다.
‘그대들이여 당신들의 힘겨운 싸움은 끝이 났고 나머지는 아가들에게 맡기고 편히 가세요. 그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아가들이 열심히 노력할 것을 약속할게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친구에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기로 약속했던 곳은 얼마나 남았는데? 빨리 가자!”
우수 : 박정민 - 선덕여고1-2
약속
일단 약속이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끼리 무언가의 중요한 일을 미리 정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어린 아이들이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꼭꼭 걸며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약속의 개념은 단순한 것 일수도 있지만 약속을 맺은 사람들 간의 신뢰가 일순간에 깨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약속이다.
그럼 먼저 자신이 누군가와 미래의 중요한 일을 정할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과 그 일을 하기 위해 만날 날짜, 장소 혹은 시간을 정한다고 할 때 우리는 보통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약속 당일 시간, 막상 약속을 정한 내가 못 지키거나 혹은 그 상대가 약속을 못 지키는 등 많은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렇다면 갑자기 약속이 깨졌을 때 무슨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는 것이다. 약속을 깬 사람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로 일축할 뿐이지만 실제로 그 약속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나온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약속을 위해 준비해온 시간이 순식간에 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서로간의 약속을 깨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몇몇 사람들에게는 정말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약속을 깰 수도 있지만, 종종은 갑자기 마음이 변심해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꾸며내 약속을 깬다는 등 제각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믿음이 깨질 수 있는 약속 파괴. 어떻게 하면 덜 일어날 수 있을까?
먼저 약속을 정할 사람의 평소 모습을 생각해 봐라. 혹시 그 사람이 평상시에도 거짓말을 자주 하거나 좀 덤벙댄다면 그 사람 간의 약속을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약속의 시간, 장소이다. 장소가 처음 보거나 엉뚱한 곳, 시간의 이름과 늦음 등이 맞지 않는다면 그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이 조금 적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는 확실한 확인 사살이다. 약속이 되기 전까지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기만 하겠는가? 마지막까지 그 사람과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의 여부를 의심해 보도록 하여라.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를 확인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약속.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말라는 말리 있듯이 약속을 함부로 깨지 마라. 그리고 약속을 깨기 위한 핑계를 만들어 내지도 마라. 자신은 그 핑계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듣는 사람에게는 그 핑계의 거짓이 한 눈에 다 드러나니까.
잊지 말자. 약속의 중요성을. 그리고 약속을 잘 지켜 좀 더 진실 된 나와 사회를 만들도록 하자.
우수 : 하바름 - 선덕여고1-6
약속
얼마 전 수학여행을 떠나던 아이들을 가득 태운 배가 침몰하는 일이 있었다. 적재하중초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로 많은 내 또래아이들이 죽었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분들도 많은 끔찍한 사고였다. 우리는 안타깝게 죽은 그들을 보며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들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이 생긴 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 사건은 우리에게 점점 잊혀져간다. 호국영령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숨과 희생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숨과 희생 또한 잊혀져간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그들의 희생은 점점 잊혀져간다. 현충일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인데도 우리는 그저 빨간 날, 노는 날 이라고만 생각한다. 우리가 살면서 매일 그들의 희생을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지켜진 이 땅을 소중히 잘 지키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때 잠깐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희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런 노력들이 그들에게 가장 큰 보람이자 감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수 : 심우섭 - 신라공고 3-1
약속
나는 약속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평소에는 나를 보지도 않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그 여성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전에 내 누나다. 비록 친누나는 아니지만 내가 친누나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직 나를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약속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해야 누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줄까?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누나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누나의 말은 ‘야 너는 내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무서워서 말을 못 걸겠다. 그러지 말고 편하게 지내자’ 누나의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누나와 약속을 하면서 다시는 무서운 표정을 지어 누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누나도 약속을 했다. 앞으로는 너에게 많은 이야기를 할 게 우리들은 약속을 통해 더욱 가까워졌고, 약속을 하면서 나는 누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누나는 내 사랑을 모르지만 그래도 나를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우리들은 서로 번호를 교환하게 되었고 한 달에 한번은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서로가 더 많은 약속을 하면서 지낸다. 너무 많은 약속을 하는 바람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선 책을 하루에 1시간씩 읽고, 독후감 써서 보내기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나쁜 마음먹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기, 마지막으로 서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하기. 전부 누나가 나를 생각해주면서 한 약속들이다. 이 사람이 내 누나라서 나는 좋다. 나는 이 약속들을 꼭 지켜서 누나에게 보답하려고 한다. 약속이란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만 꼭 지킬 수 있는 약속이라면 해도 좋을 것 같다. 때론 지키지 못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마음을 전달하고 이해하고 가까워 질 수 만 있다면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통해 읽고 싶지 않았던 책들을 읽었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도 약속 때문에 견딜만했다. 아마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삶에 의욕도 없이 인생을 포기했을 겁니다. 하지만 약속을 하면서 지금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나중에 저와 수도 없이 많은 약속을 한 사람에게 고백을 할 겁니다. 사랑한다고, 약속을 통해 가까워진 인연이니 이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편하게 말할 겁니다.
가작 : 이연정 - 선덕여고1-3
약속
몇 년 전, 돌아가신 큰 할아버지가 계신다. 외갓집에 놀러 갈 때면 항상 제일 먼저 할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할아버지 저 왔어요’하고 인사를 드리면 ‘어, 그래. 니 누고?’하고 말씀하신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이 드심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일을 하시고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일을 나가실 때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어우, 일 그만하시고 제발 가만히 계세요’라고 하신다.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가 일 하시다가 다치실까봐 걱정인 것이다. 할아버지가 일을 나가시면 나와 내 사촌은 할아버지가 일 하시는 곳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도와 드리고는 했다.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릴 때마다 할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이 있었다. ‘이래 도와주니까 얼마나 좋노. 자주 놀러오너라’하고 말하셨는데 1년, 2년, 한 살 두 살 먹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주 외갓집을 가지 못 하였다. 어느 때와 같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빨리 옷 입고 준비해라. 할아버지 병원에 계신 단다.’ 나는 얼른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수척해지신 모습으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며 숨을 쉬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왜 다치신 거냐고 물어보니 일 나가시다가 언덕에서 넘어지셨다고 했다. 잠시 할아버지를 보고서는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집으로 향하는 내내 괜찮으실 거라며 나를 달래셨다. 얼마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할아버지와 일을 함께 했던 날, 생신 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사소하고 일상적이었던 하루하루가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장례가 3일 동국대 장례식장에서 치루어 졌다. 하지만 2, 3일 동안 나는 한 번도 장례식장을 들르지 못 하였다. 어린 동생들과 고모 집에 가 있어 라는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장례식에 들리지도 못하게 하고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한동안 엄마와 말도 하지 않았었다. 사촌은 할아버지의 화장 모습까지 다 봤다고 하였는데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해서 슬펐다. 할아버지의 장례가 있은 후 첫 제사. 외갓집의 문을 열고 무심코 할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방문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말 ‘이래 도와주니 얼마나 좋노. 자주 놀러오너라’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가작 : 박다빈 - 선덕여고1-4
약속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 아니다. 엄마, 아빠께도 약속 잘 지키는 딸이 아니며 친구에게도 허구한 날 약속을 미루고 학교에서도 눈치나 핑계를 대며 미루거나 안 지키는 일들이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모자랄 것이다. 엄마아빠께는 어릴 적부터 몇 번 A4용지에다 ‘다빈이가 지킬 약속들!’ 이라며 적고 책상이며 냉장고이며 붙여 놓고 지킬 거라 자신했지만 정작 지킨 약속들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주말에 친구와 약속을 잡으면 약속 당일에 피곤하다며 미루고 옷이나 가방을 빌려놓곤 언제까지 줄게 라고 해놓곤 한 계절이 지난 후에 준적도 있었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숙제를 내시면 야자시간이나 집에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다빈이 오늘은 숙제 해 왔으려나?’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평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를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지만 웃기는 건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땐 짜증내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정말 이기적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소한 약속들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몇 년후 사회에 나가면 많은 일들이 크고 작은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심으로 일들이 생기고 없어지는데 앞으로 이런 태도가 지속되면 나는 과연 무엇으로 기억될까?라는 생각이 들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분명 난 고등학교 입학 전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다빈이가 지킬 약속들!’엔 제일 1순위가 약속 잘 지키기였는데, 왜 그것 하나 실천 할 거라 약속 하지 못할까? 어쩔 땐 후회, 회의감까지 들 때도 있다. 10분 뒤 상황과 10년 뒤 상황을 생각 해 보라는 것 같이 10분 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와 10년 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상황은 다를 것 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가 남겨질 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반성이 많이 되었다. 약속 잘 지키는 딸, 친구, 제자, 10년 후엔 약속 한 잘 지키고 믿을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가작 : 이세홍 - 문화고 2-1
약속
‘돌아오겠습니다’ 아들은 늘 그렇게 떠났다. 임진년 경주의 아들이 떠난 길. 1950년(경인년) 경주의 아들도 떠났다.
‘기다리겠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기다리셨다. 어머니가 그렇게 기다리던 세월은 백발에서 백골이 되도록 갔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긴 채 역사 속 위인이 되었다. 아들을 보낸 어머니도 역사의 슬픔 하나 장식하고 있다.
‘어디있나요’ 6월이면 대대손손 충혼탑에서 현충탑에서 목 놓아 찾는 이가 있다. 수십, 수 백 년 전 이뤄진 약속이 오늘날 큰 울림이 되어있다.
누구나 약속을 한다. 작고 하찮은 것에서 크고 중요한 것까지. 약속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약속이다. 해마다 6월이면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찾아온 많은 기다림 들이 있다.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기다림의 약속을 끝내 어긴 슬픈 마음을 바라본다.
장려 : 박다정 - 근화여고 2-3
약속
319396608000초, 5323276800분, 3696720시간, 154030일, 모두 422년을 입 모아 말하는 시간이다.
“1592! 1592!”
목청이 터져라 불러대는 누군가의 외침에 남자는 눈을 떴다.
“유예기간은 끝났다.”
“예?”
남자는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살폈지만 눈에 닿는 것은 어둠 뿐. 보이는 것이라곤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매달린 1592라는 번호 뿐이었다.
“모르는 척 하는구나, 에잉! 분명히 네 놈 새끼손가락까지 걸어가며 약속하지 않았더냐? 고얀놈.”
“약속이라뇨! 착각하신 모양인데 제 이름은 1592가 아니라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이라구요!”
“한민족 주제에 민족의 과거는 어찌 잊고 사느냐?”
“제 과거라뇨? 저는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았을 뿐입니다.”
헹! 푸흡! 여러개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화를 내고 싶었으나 보이지도 않는 대상에게, 어디를 향해 화를 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집행을 시작하겠다. 죄수번호 1592. 네 죄를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구요!”
“호오. 뻔뻔한지고.”
“집에서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직장에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지냈구요. 상을 주진 못할망정 죄라뇨?”
푸하하하!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남자는 웃음소리가 마치 족쇄처럼 느껴졌다.
“1592, 이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
“1592년에 죽은 사람의 수를 말해보아라.”
“......100명?”
남자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진 듯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대체 이 허무맹랑한 문제들은 뭐란 말입니까!!”
“허무맹랑?”
귓가에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자는 몸을 급하게 움츠렸다. 장난스럽던 소리가 이리 무섭게 변할 수 있다니.
“재판은 끝났다. 형벌은 사형으로 하지.”
탕.탕.탕. 나무가 나무를 만나 이뤄내는 소리는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남자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사형이라뇨! 대체 제가 새끼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이 뭡니까!”
낄낄낄. 멍청한 놈! 저런 놈은 죽어도 싸! 허공에 자신에게 삿대질하는 손가락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이라 불리웠던, 대한민국이라 불리우는 너의 새끼손가락이 기억나지 않느냐?”
“예?”
“1592년을 잊지 않겠다. 맹세하던 너의 약속은 깨졌다. 역사를 모르는 한민족은 죽어 마땅하지.”
남자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장려 : 임소현 - 경주여고 1-2
약속
어렸을 때, 난 울보, 완전 울보였다.
자신이 하는 대로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 갈 때면 자기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닌데 나의 눈에서는 반사적으로 흘러내리는 나의 눈방울.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에서 울지 말라며 잘못 한 것이 없는데 왜 우냐고 그만 뚝 그치라는 엄마의 눈빛 속에서 나의 얼굴에서 투명한 눈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과연 나의 얼굴에서 찡그러진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얼굴을 지닐 수 있을까?
장려 : 김시영 - 근화여고 2-5
약속
“국민 여러분, 저를 믿어주십시오”
국민들을 향하여 호소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담긴 국민을 위한 마음. 과연 그 마음들은 진심일까? 그런 의문들 속에서 던지는 투표 종이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믿기 힘든 만큼 그들 역시 우리를 위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를, 우리 국민을, 우리 정신을, 단지 지키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목숨을 내놓으신 수많은 이름도 나이도 모를 분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단순하게 귀를 사로잡는 공약들이 아닌, 그 이름도 남기지 못한 분들의 희생정신이다. 고등학생도 알 수 있는 그 사실을 어른들은 왜 그리도 차갑게 등지고서 국민의 눈을, 국민의 마음을, 국민의 정신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것일까.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 지켜낸 그 나라는 이제 사람들의 가슴에만 남아 소리쳐낼 뿐 더 이상의 나라를 위한 그 무엇도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그저 주민들에게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 석 자와 그 어떤 것을 내주어도 이 나라를 사랑하겠다, 지켜내겠다는 약속을 지켜내고자 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남겨놓은 이 땅은 정치를, 권력을, 눈가림을 원하지 않는다. 희생정신을 원한다. 이제 우리의 본보기가 될 어른들이 직접 보여줄 차례이다. 아직 고둥학생의 눈으로 많은 것을 보지는 못한다. 그저 어른들의 시각을 전해들을 뿐. 그렇지만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국가라면 그게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나이이다. 20대라는 반 사회인으로 진정한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우리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공략을 약속받고 싶다. 많은 어른들이 지킨 그 나라, 이제 다시 한번 우리가 희생정신을 보일 때이다.
대학, 일반부
장원 - 김창숙 - 경주시 황성동
기둥
그러니까 3년 전, 초겨울이었다. 울릉도와 포항을 오가는 화물선의 선장이었던 아버님이 울릉도에 짐을 부리고 포항으로 돌아오던 새벽녘, 울릉도에서 한 아름 캔 나물이며 가득 채운 물통을 리어카에 실은 채 오토바이를 끌고 퇴근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에 매단 리어카 때문에 골반 뼈가 이그러졌고 소변 줄을 매단 채 1년을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아버님 말씀이라면 토씨 하나 달지 않고 예, 예, 하시던 어머니는 한시도 겉을 떠나지 않고 덩달아 병원에서 1년을 보냈다. 다들 어머니가 아버님을 살린 거라고 했다.
다시 평범함 일상을 되찾은 지 2년, 어머니 칠순을 기념해 생애 첫 가족여행을 떠났다. 문경새재 옛 길을 거닐면서도,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월악산에 올라서도 우리 모두는 아버님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었지만 정작 아버님은 펄펄 기운이 넘치셨고, 어머니는 내내 몇 걸음씩 뒤처지고 있었다. 이미 그 때부터 어머니 몸속에 병마가 꿈틀대고 있던 걸 눈치 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행 마지막 날, 펜션 마당에 활활 장작을 피우고 일곱 개의 가느랗고 긴 초를 세운 케이크의 불을 끄면서 어머니는 ‘일 년에 한 번씩 여행을 오자’고 하셨고 집 떠나는 걸 마뜩찮아 하던 아버님도 흔쾌히 ‘그러자’하셨다. 그 것이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족여행이 될 줄은 꼼에도 모른 채.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던 어머니는 췌장암을 선고받으셨고 딱 7개월을 더 머무시다 2월의 섧은 눈 내리던 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당신이 우리 집 기둥인데 이러고 누워있으면 우짜노!’ 하셨지만 남은 자들은 ‘남편 살려놓고 이리 가 버리면 우짜노’ 한탄을 했다.
우리 누구도 어머니의 빈자리를 예감한 적 없었던 만큼 올 봄, 남겨진 모두는 우왕좌왕 허둥대고 있었다. 외항선을 십 수 년 타고 다녔던 아버님이 밥조차 안칠 줄 모른다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미역이랑 멸치를 넣고 끓여낸 멀건 미역국을 끓여 드시는 걸 봤을 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가 가신 지 이제 4개월. 아버님은 생선에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넣어 조림도 해 드시고, 미역국이며 김치찌개도 곧잘 해 드신다. 적적하실까 싶어 매일 전화하는 것으로, 주말마다 아버님을 찾아가는 것으로 위로를 해 드리지만 외로움과 서러움을 어쩌지 못 할 것이다.
저 하나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고 하늘을 떠받칠 수 있으랴. 기둥 하나가 내려앉은 우리 집은 언제 넘어질지 모르게 위태위태한 나날이다. 남은 기둥들 쩍쩍, 소리 내 갈라지지 않도록 아버님이 좀 더 버텨주시길 바랄 뿐. 덜 외로우시길 바랄 뿐.
우수 : 안태우 - 경주시 동천동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에대해 인지를 못 한다. 과연 우리에게 소중한 건 무엇일까?
흔히 소중하고 든든한 것을 말할 때 기둥에 빗대고들 한다. 우리 집의 기둥은 아버지였다. 기둥이 없으면 집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둥이 지치고 무뎌질 때까진 그에 맞게 행동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가 기둥의 자리에 서있고, 그제서야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를 느끼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또한 그러셨을 것이다. 세월이 지났고 우리는 또 그 기둥이 지치고 무너질 때까지 방치하고 있다.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위에 뿌린 그들의 숭고한 피와 우리가 편히 숨 쉬는 하늘로 메웠을 슬픈 함성을.
요즘에는 잊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꽤 많이 한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선택이었을까? 굳이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기둥, 낡지 않게 그리고 추위에 겉이 갈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무작정 올린 화려한 지붕에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기둥들은 어떤 모습일까? 푸르고 높은 하늘 아래 말없이 그려 본다.
우수 : 조수영 - 경주시 황성동
기둥
지난 4월 16일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비극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 로 온 나라가 같이 아파했고 함께 울었다.
처음에는 놀란 가슴이 분노로 바뀌더니 뉴스를 보면 볼수록 허망해져갔다. 든든히 나를 지켜주시던 부모님이 암 선고를 받던 날처럼,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 믿었던 우리나라가 무너진 느낌이랄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이제 선진국이라고 나름 자부했었는데 한 겹 한 겹 벗기면 벗길수록 드러나는 비리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골다공증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뼈에 숭숭 수 백 개의 구멍이 생겨 한 번 넘어졌을 뿐인데 골절이 되어버린......
양심 없는 기업인과 책임감 없는 선장과 허술한 법체계와 국가조직에 이르기 까지 어느 것 하나 구멍이 없는 곳이 없었다. 아무리 튼튼한 기둥이라도 그 밑에 쥐가 들어 오랜 시간 갉고 갉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게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만 들여다보고 있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는지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나무젓가락 하나는 쉽게 꺾을 수 있지만 여러 개가 뭉치면 꺾기가 어렵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윤리적으로 빈틈없이 튼튼해질 때 우리나라의 기둥이 다시 든든히 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세우고 부러진 기둥을 보수 할 때이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보수 공사 중이다. 외벽에 누수 방지 시트를 발랐더니 올해 봄에만 해도 비가 오면 베란다로 죄어들던 물들이 며칠 전 내린 제법 큰 비에도 불구하고 베란다가 보송하다. 이제 각 세대의 내부에 보수공사까지 성실히 참여한다면 우리 아파트는 더 든든히 건재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반드시 그리하리라 믿는다. 이번 기회에 모든 개인과 기관이 보수공사를 확실히 하여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우수 : 서영희 - 경주시 황성동
기둥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둥, 오늘도 기찻길을 누빈다.
덜커덩...덜커덩... 아파트 뒤편 너머로 기차가 하루에도 수 백 번 지나간다. 수평선으로 길게 쭉 뻗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기둥으로 묵묵하게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청명한 어느 가을날,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15분 후에 기차가 지나가는데 애들이랑 뒷 베란다로 내다 봐.” 하며 밝은 목소리로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후다닥 내려놓고는 애들과 종종 걸음으로 뒷 베란다 친가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설레였다. 연인을 기다리는 설레이는 마음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잠시 후 모퉁이를 돌아 기관차 모습이 보였다.
기관차 운전실의 조그만 창가에서 남편이 팔을 쭉 뻗어 손을 흔드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순식간에 ‘휑’하고 지나갔다. 아쉬움은 산등성이처럼 컸지만 우리 집의 기둥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주고는 유유히 사라져 갔다.
기둥의 냄새가 묻어나는 기차... 꽁무니(후부)가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거실에 앉았다. 아쉬움이 일렁거렸는지 또 다시 그 길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그리움과 고마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처음엔 열차 소음에 시끄러워 잠을 못 이룬 날이 많아 짜증을 냈다. 또한 기차가 지나갈 때는 진동으로 인해 집이 들썩 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느 때 부터인가 그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로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 집의 소중한 기둥이 사랑의 종소리로 귓가에 들려주었기에...
남편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기차 소리로 모든 것을 훤히 꿰고 있었다. 하물 열차인지 여객 열차인지, 어디로 가는지, 몇 열차인지... 소리를 듣고 가늠할 정도가 되었다. 철도에서 보낸 시간이 꽤 오래 되었음을 짐작이라도 하듯...
18년째 기차에 몸을 싣고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철도를 누비는 남편, 철도 기관사를 천직으로 여길 만큼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다고 생각하면서 직업에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러니 직업의식 보다는 어느 행선지로 가든 기차여행을 떠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출, 퇴근을 한다. 남편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놓이고 흐뭇하기 그지없다. 이면에는 열차 소음과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아무리 천직이라 하지만 때로는 지치고 힘든 기둥, 이제는 수평선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기찻길처럼 평안한 삶의 휴식처로 달리길 바라는 맘,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차에 실어 보내 본다. 무리집의 기둥, 귀한 보석보다 소중하고 하아얀 눈만큼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가 작 : 정정미 - 경산시 경청로 222길
기둥
그날은 평소처럼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늘 애들 아빠는 퇴근이 늦었다. 그렇게 우리끼리 저녁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주머니!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 누구십니까?”
“119입니다.”
순간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쳤다. 눈앞이 캄캄하고 심장은 미친듯이 발버둥 쳐 왔다. 그렇게 내가 믿어온 의지해온 기둥은 순식간에 쓰러져갔다. 어린 자식 두고 날 두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숨 쉴 힘조차 나에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딸 아이가 작은 쪽지 편지를 보내 왔다.
“엄마! 우리 아빠 없어도 열심히 살아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기둥은 피어나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야 했다. 눈물 흘릴 시간조차 없었다. 가끔 늦은 밤 기둥 생각이 떠오른다.
‘어느 먼 세상에서 잘 살고 있겠지’
‘뭐가 그리 급하셨소?’
소리 없는 눈물이 베개를 적시 운다. 힘들지만 힘들다 말 할 수도 없고 슬퍼도 슬프다고 말 할 수 없다. 이젠 나의 새로운 기둥 두 개를 바라보도 그 기둥들의 밝고 희망찬 미래만 바라보도 살 것이다. 아직도 내 손 잡으며 편지를 건네던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소중한 기둥들이여.
가 작 : 안윤주 - 경주시 황성동
기둥
천년고도 경주에 태어날 때부터 살아왔지만 곳곳에 숨 쉬고 있는 유적에 큰 애정을 갖지는 못 했었다. 그러다 불혹의 어느 날 남산을 다니다 탐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남산에 있는 석탑과 석탑의 조각들, 거의 빠짐없이 만나러 다녔고 경주지역에 무수히 산재해 있는 탑을 만나면서 많은 유산을 품고 있는 내 고장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경주를 떠나 다른 지역의 탑에도 하나씩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는데 사사자탑이 있는 화엄사를 가게 되었다. 이형탑으로 걸작에 꼽히는 사사자탑은 나에게 고선사지 석탑에서 느낀 뭉클한 무언가를 주지는 못했다. 다소 실망하여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닿은 아름다운 암자 구층암 그곳에 내가 화엄사를 방문한 의미가 있었다. 소박한 암자에 눈에 확 들어오는 요사채의 기둥. 죽은 모과나무를 아무런 가공 없이 생긴 그대로 기둥으로 받쳐 놓았지 않은가! 주위에 살아있는 모과나무가 몇 그루 있었지만 메마른 모과나무 기둥과 잎이 무성한 모과나무가 전혀 다르지 않게 보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비록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는 않았으나 아름다운 암자의 기둥이 되어 메마른 모습이나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그 모과나무 기둥은 분명 생명이 있음이다. 물리적인 생명이 다 하였다고 그것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421년 전 구국 활동을 펼치신 우리의 선열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가신 그 분들의 얼은 우리의 역사 속에 기둥과 밑거름이 되어 우리 속에 숨 쉬고 있다.
물질문명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에만 환호 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 내면에 담겨 있는 정신에 집중 할 일이다.
장려상 : 김은미 -경주시 용강동
기둥
뚜벅뚜벅 딱 세 박자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제 마실 나가셨던 아버님께서 오시는구나 하며 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몇 해 전만해도 아버님 목소리가 저 지팡이 소리를 누르고 쩌렁쩌렁 하셨는데 교통사고 이후로 기력도 목소리도 세원에 묻혀 버리셨다. 유달리 더위가 일찍 온 여름인지라 지팡이 잡으신 손이 땀으로 흥건하시다. 아버님, 식사 하셔야지요. 라고 아버님을 부축이며 안방으로 들어온다. 어머님과 신랑은 모내기하러 논에 가셨기에 아버님과 둘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시집 온 지 십년이 넘어도 반찬솜씨는 늘 제자리이다 그래도 소고기국 맛있다 하시며 다 드신 후 나에게 한 말씀 하신다. 아이들 잘 있나? 밥 잘 먹이래. 하시며 그 아이들이 우리 집 기둥인 거 알제. 아버님 저는요 저도 기둥인데...... 하하 매번 하시는 당부 말씀 끝에 나도 아버님께 애교 섞인 대답을 해 본다. 이제 아버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처음엔 아들만 손자만 챙기신다고 섭섭했는데, 저녁이 되어 집에 갈 때 지팡이 짚으시고 대문 넘어 배웅해 주시면서 아버님께서 손을 흔드시는 걸 보고 있으면 말씀만 기둥 기둥 하시지 우리가족 모두를 귀하고 아끼시는 아버님 마음이 내 가슴에 쇠기둥처럼 쿡 박혀진다.
장려상 : 이정임 - 경주시 충효동
기둥
집을 지으려면 기둥이 튼튼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고찰들 중 많은 것들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 갔지만 기둥만은 남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기둥은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왜구의 침략에 남쪽 바다를 지키고자 했던 이순신 장군이 임진년의 기둥이었듯이 지금의 우리도 나라의 든든한 기둥을 원한다. 전투에 임할 때에는 그 누구보다 앞장섬은 물론이요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하신 장군을 생각한다.
기둥이 무너지면 나라가 어떤 역경에 빠지는지를 우리는 보고 있다. 진도 앞바다에서 한 순간 무너지는 참변을 겪고 있다. 나 혼자 살겠다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탈출한 선장을 보며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 혼자 만 살겠다고 자식 같은 병사를 버리고 탈출했으면 우리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장군께서 활약했던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비극 앞에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기둥의 모습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 해 본다.
장려상 : 정수경 - 경주시 도지동
기둥
‘전화 받아 엄마’
간밤에 꿈자리가 어지럽다. 아침에 일어나니 영 마음이 무겁다. 전화기 너머 여전히 답이 없다.
아침부터 친정엄마는 집을 비우고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당장 달려 갈 수 있는 친정집도 아니고 답답하다. 핸드폰도 받지 않는다. 마음이 더 조바심에 오전 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전화 했네 우리 딸”
“어디 갔다 왔어.”
“응, 충혼탑에 외삼촌 보러.”
아, 아뿔싸 6월이구나. 엄마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6월.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6월. 못난 딸이 되어 버렸다.
외삼촌 얼굴은 모른다. 6.25전쟁 때 비행기 조종사였던 외삼촌은 전쟁 중 전사 하셨다. 친정엄마에게는 늘 아버지 같고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였다는 외삼촌
전쟁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잃어버린다. 늘 집안의 든든한 기둥으로 모든 집안 식구들이 그 기둥에 의지하고 믿고 살았는데 한 순간 전쟁이 기둥을 부셔 버리고 집안은 기울어졌다.
늘 6월이면 엄마는 새벽 일찍 동네 충혼탑에 간다. 충혼탑을 보며 그리워하는 오빠를 목 놓아 부르고 안부를 묻는다.
세월이 흘러 흰머리 가득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는 외삼촌을 그리워하고 마음에 큰 기둥이 되어 의지하며 사신다.
엄마의 큰 기둥이 무너져버리지 말아야 할 텐데, 기도한다.
‘엄마다 나에게는 기둥인 것 알지?’
장려상 : 이형숙 - 경주시 감포읍
기둥
집안의 기둥인 엄마가 돌아가셨다. 우리 집은 엄마가 아버지보다 한 살 위다. 그래서 누나나 엄마 같은 아내였나 보다. 아버지께 엄마는 어떤 큰 기둥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잠도 못 주무시다가 낮에 일보러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깜빡 졸음운전을 하신 듯하다.
우리 4남매는 경북 청도의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 어머니는 사과농사로 우리들을 공부 시키셨다. 오라버니와 남동생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혼인했다. 여동생과 나는 34, 31살에 했으니까 늦게 한 편이다. 소자 손녀 많이 두기를 원하신 아버지 어머니는 뜻에 맞게 가정을 꾸려나가는 자식이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은 내게 전화를 자주한다. 기숙사에 있는 딸도 어버이날에나 받을 것 같은 장문의 전화 문자를 보내온다.
엄마 장례식 날 생각 했다. 엄마 흉내 내며 살면 되겠지. 언젠가 나도 하늘나라 가는 날.
엄마!.....
하고.
다음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