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일본 같은 선진국은 물론, 세계 2위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조차 자동차 배출가스와 연비(燃費·1L의 연료로 달릴 수 있는 거리)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EU의 경우 2012년까지 자동차 평균 연비를 국내 모닝이나 클릭과 같은 경·소형차 수준(L당 18~20㎞)으로 높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2020년까지 차종 구분 없이 평균 연비를 L당 14.8㎞로 높여야 한다. 일본도 2015년까지 2004년 대비 연비를 20% 개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중국에서는 2010년부터 '유로4(현재 한국의 규제 수준)'의 배출가스 규제를 전국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의 김재우 팀장은 "전세계 내연기관(휘발유·디젤엔진) 자동차 시장은 2010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며 "하이브리드카·전기차는 2010년부터 본격 성장기에 진입, 2025년경에는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약 58%에 달하는 5000만대가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료전지차의 경우 2020년쯤 본격 성장기에 진입, 2040년쯤에는 전세계 자동차 판매대수의 90%를 차지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 ▲ 하이브리드카의 지존인 도요타 프리우스의 2세대 모델(2004년 출시)
도요타는 전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도요타는 1997년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카 전용차인 프리우스(Prius)를 선보였으며, 올해 4월말까지 출시 11년 만에 전세계 누적판매 100만대를 달성했다. 다른 하이브리카 모델까지 합치면 146만대를 팔았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판매는 프리우스를 내놓은 1997년 330대에 그쳤으나, 작년에는 43만대로 급증했다. 도요타 그룹에는 도요타 브랜드 7종, 렉서스 브랜드 3종 등 총 10개의 하이브리드 차종이 있지만, 프리우스가 전체 판매량의 70%에 달해 모델 편중이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즉 프리우스를 빼고는 판매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얘기다.
- ▲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 현재 국내에서 가장 저렴한 하이브리드카. 값은 3390만원. 도요타의 방식보다 실제 연비개선 효과 는 크지 않다. 혼다는 내년에 성능을 크게 높인 신 형 하이브리드 전용차를 내놓는다./ (도요타 렉서스 GS450h)중형 스포츠 세단에 하이브리드 기능을 넣어 기름 값을 아끼면서도 스포츠 주행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24일 출시 예정.
혼다는 도요타와의 하이브리드카 경쟁에서 지금까지는 완패했다는 분석이다. 혼다는 1999년 하이브리드 전용차인 인사이트(Insight)를 내놓았고, 준중형차인 시빅과 중형 세단인 어코드에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용해 지금까지 모두 24만대를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코드 하이브리드와 인사이트는 단종됐으며, 시빅 하이브리드만 조금씩 팔리고 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방식은 전기 모터의 용량이 커서 연료 절감 효과가 큰 '하드타입(hard type)'인데 비해, 혼다 방식은 전기 모터 용량이 적어 연료 절감 효과가 작은 '소프트타입(soft type)'이어서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경제성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 ▲ (현대차 쏘나타 LPG 하이브리드)내년 7월 아반떼 LPG 하이브리드 출시에 이어, 2010년 출시될 예정이다. 국내 사양은 LPG 엔진, 북미(北美) 사 양은 휘발유 엔진을 사용한다./ (볼보 C3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정용 220V(볼트) 전원에 3시간 만 충전하면 최대 100km 정도의 거리를 운행할 수 있다. 충전한 전기를 다 쓰면, 일반 하이브리드카처럼 자체 엔진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 쓴다.
그러나 혼다는 내년에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용차를 내놓아 실지(失地) 회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혼다의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사장은 "신차는 경량화 기술과 새 시스템을 적용, 연비가 더욱 향상됐다"며 "기존 하이브리드 전용차(도요타 프리우스 등)보다 값도 저렴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신형 하이브리드카를 내년부터 전 세계에 연간 20만대 이상 판매할 계획이며, 2010년까지 혼다 전체 판매의 10%(약 45만대)를 하이브리드카로 채우겠다"고 말했다.
닛산은 그 동안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돈을 주고 구입하는 처지였다. 이를 중형 세단 알티마(Altima)에 장착해 팔고 있는 것. 그러나 닛산은 최근 2010년까지는 자체기술을 통해 하이브리드카를 새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도요타 시스템을 가져와 파는 것은 기술에 대한 홍보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비용 면에서도 도요타와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곤(Ghosn) 회장은 나아가 2010년에 완전 전기자동차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 ▲ (도요타 하이브리드카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콘셉트카‘하이브리드X’)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에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하이브리드 카의 경제성을 극대화했다./ (사브 9-3 바이오파워 하이브리드 콘셉트카)휘발유 대신 바이오 연료인 E-85(휘발유 15%에 에탄올 85%)를 사용하며, GM과 다임러벤츠·크라이슬러가 공동 개발한‘2모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했다.
GM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하이브리드카의 실용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GM은 대신 가장 고난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친환경 자동차의 하나인 연료전지차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사이의 기술 간극은 'E-플렉스 플랫폼(platform·차의 기본 뼈대·구조를 지칭)'이라는 친 환경차로 메워나간다는 계획이었다. E-플렉스의 대표적인 차종은 시보레 볼트(Volt)로 2010년 양산 예정이다. 볼트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자동차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심야(深夜)전기를 사용해 충전해 주면, 수백원어치의 전기로 하루 운행(50~60km) 정도는 가능하다는 게 GM 주장이다.
그러나 GM도 최근엔 하이브리드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쪽으로 180도 바뀌어 다임러벤츠·BMW와 함께 '2모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있다. 2모드 시스템은 복잡하고 부피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정속(定速) 주행 시 연료 절감 효과가 떨어지는 도요타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했고, 모터 용량이 작아 원가 절감에 유리하다. GM은 현재 대형 SUV인 시보레(GM의 대중차 브랜드) 타호와 GMC(GM의 SUV·픽업트럭 전문브랜드) 유콘에 이 2모드 시스템을 탑재해 판매하고 있다.
GM의 래리 니츠(Larry Nitz) 하이브리드 개발 담당 임원은 "2모드 시스템은 도요타 방식에 비해 미국적인 상황에서 장점이 많다"며 "상용화에서 도요타가 훨씬 앞서긴 했지만 빠른 시간 내에 격차를 줄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포드는 2004년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방식을 도입해 SUV인 이스케이프(Escape) 하이브리드를 판매해 왔지만, 역시 도요타 방식을 그대로 받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최근에는 경영 악화로 인해 자체적인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포기한 상태이며, E-85(휘발유 15%에 식물에서 추출한 알콜 85%를 섞은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는 차를 만들겠다는 쪽으로 친환경차 계획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디젤 엔진을 통해 연비 향상을 꾀해 왔으나, 2012년 이후 연비 규제가 크게 강화됨에 따라 하이브리드카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다임러벤츠는 GM과 공동개발중인 2모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벤츠의 중형 SUV인 M클래스에 탑재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의 마틴 빈터콘(Winterkorn) 회장은 지난달 말 일본의 산요전기와 폴크스바겐의 하이브리드카에 장착할 배터리를 공동 개발한다고 밝혔다.
현재 도요타에 대항하기 위해 GM과 BMW·다임러벤츠 간의 하이브리드 연합이 만들어져 미시간주의 공동개발센터에서 2모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자동차산업연구소의 최상원 연구위원은 "지역 별로 친환경차의 개발 트렌드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즉 일본은 도요타가 주도하는 하이브리드카, 유럽은 폴크스바겐·푸조가 주도하는 클린디젤차(하이브리드 기술 일부 활용), 미국은 E-85로 대표되는 바이오 연료차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역별로 어떤 오염 물질을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지, 또 어떤 기술의 산업경쟁력이 뛰어난지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돈 안되는 하이브리드 카… 수익성이 과제하이브리드카 보급에 가장 큰 걸림돌은 수익성이다. 이기상 현대차 이사는 "전기모터·인버터(교·직류 변환장치)·배터리를 일본 메이커만큼 값싸게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말했다.
국내 일본계 자동차회사의 한 임원은 "도요타 프리우스에 들어간 부품을 모두 뜯어내 일본 부품업체가 도요타에 납품하는 단가를 분석했는데,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로 아직도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높이는 홍보 효과를 통해 수치적 적자 폭을 만회했다고 하지만, 후발 주자는 이런 장점도 기대하기 어렵다.
도요타는 올해 1분기 북미 시장에서 124억엔(1240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이 7000억원 이상 급감한 것이다. 수익성 높은 대형차는 안 팔리고, 마진이 매우 적은 소형차·하이브리드카만 많이 팔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간도 문제이다. 산업연구원의 전재완 연구위원은 "미래형 자동차 보급이 일반화되려면 5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발등의 불'인 고유가 극복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경차·디젤차 보급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