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좌석 난을 보니 스무 명 정도가 예약된 상태였다. 오대산은 내게 호기심으로 닦아왔고, 은하수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북문에 도착한 차는 25인승, 인원도 반도 안 차 의외였다. 그래서 그런지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은 나를 악수로 반갑게 맞아 주었고, 수원 시내를 거치며 몇 명을 더 태우기도 했지만 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복더위에다 휴가들을 가느라 예약마저 취소들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고열에 등산을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듯이 대부분 그늘진 숲 속과 계곡 산행이란 점을 생각하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꿀맛 같은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작은 은하수차는 아직 창문에 커튼도 달지 않은 새 차였고, 총무님으로 통하는 쉰 세대 지성과 미모의 여인네께서는 직접 차를 사서 운전하며 식사도 준비했는데 그러니까 현대판 또순이 사장님이었다. 은하수에 가면 아침 식사를 잘해주고, 산행 후에 뒤풀이도 날짜마다 돌려가며 잘해준다고 소문 들었다. 아닌 것 아니라 용인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김치 한 가지에 미역국밥을 말아 먹는데 일찍이 나는 그런 맛있는 김치와 미역국밥은 처음인 것 같다. 모두들 그렇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했는데 나는 초면인데도 염치 불구하고 밥과 국을 더 퍼다 먹으며 용감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무튼 총무님이란 분은 팔방미인으로 솜씨가 좋은 분 같았다.
지난 번 장마 때 다리가 떠내려가고 논밭이 매몰된 가운데 제방이 쓸려 내려간 흔적들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현장에는 포크레인도 보였고, 땡볕 아래 그래도 건질 수 있었던 작물을 수확하는 농민들 모습도 보였다. 상심에 젖어있을 그분들을 생각하면 산행대신 돕는 일에 뛰어 들어야 했겠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오대산 국립공원 관리소, 입장료가 3천원하고 꼬리를 달았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턱도 없이 비싸다. 모두가 지방자치 바람에 그럴 것 같다. 이곳에서도 계곡을 따라 얼마를 더 들어가니 꼬불꼬불 비포장 길이 나왔고, 상원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열한시 가까워서였다.
날씨도 더운데 무리할 것 없다며 상원사, 적멸보궁, 비로봉, 상왕봉을 거쳐 내려오는 4시간 길을 산행하기로 했다. 상원사는 많이 들어본 절로 마침 칠월 백중날이어서 많은 신도들이 찾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쳐 오르다보니 계곡이 흘렀고, 그런 계곡 물 앞에 반했는지 그때 발 담그고 물놀이나 하다 가겠다며 떼를 쓰는 사보텐님, 마침내 물 꾼 모으기에 나서봤지만 산 꾼들이 어찌 산을 눈앞에 두고 마다할 수 있겠는가. 시큰 등! 아무도 가세하는 이가 없자 결국 꼴찌에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경사가 심한 산자락에는 ‘비로암’ 이라는 사찰이 있었고, 앞마당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갈지자로 올라야 하는 산길은 그렇듯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땀방울은 어느새 낙수 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차여사라는 분과 길을 잘못알고 적멸보궁으로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며 일행들을 한동안 놓치기도 했다. 그러나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해둔 전각, 직접 방문하여 살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 의미는 말할 수 없이 크게 닥아 오며 일행들을 쫓는 걸음도 빨라져갔다. 비로봉을 다녀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어린이들도 보였고, 등산로는 계단이 많은데다 비로 흙이 빼어나간 나무 터거리들은 불편하기도 했다. 천육백 고지나 되는 산인데도 아기자기함이나 스릴 같은 것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비로봉에 올라 바라다본 첩첩 산들은 가슴 벅차왔고, 남쪽으로는 삼양목장과 노인봉, 북쪽으로는 그것이 설악산이라고도 했다.
강원도 산들은 대개가 이렇듯 정상에 올라보면 큰나무가 없는 잡목들만 있거나 아예 폐허가 된 곳들이다. 동란 때 얼마나 많은 포탄 세례를 받았으면 이리도 문드러졌을까. 어느 골짜기 어느 봉우리 하나라도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그 연장선상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픈 일, 때로는 한방 부셔버리고 싶게도 하지만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을 보며 결코 남의일이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쟁은 모두의 불행, 참혹한 것! 나는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비로봉을 내려와야 했다. 상왕봉을 향해 가는 길에 일행들은 자리를 보아 점심을 먹자고 했다.
마침내 어느 한곳 숲 속 그늘에 우리는 둘러앉았다. 저마다 준비해온 김밥과 도시락, 떡 등을 펼쳐놓고 영통사장님이란 분이 내놓는 간담이 서늘한 막걸리가 곁들여졌다. 음식들이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가운데 마음을 담은 술잔이 따라지고, 어느새 이야기 소리도 봄바람처럼 정겹게 흘러갔다. 그때 나는 글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사보텐님을 만난 것이 기뻤고,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미여서 실례일지 모른다며 사보텐의 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들 저분이 사보텐님이냐며 놀라는 표정들로 반겼고, 순간 나 역시 실수는 하지 않았나싶어지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 자리 모두 그분의 독자 팬들이었고, 작가와 독자가 만난 자리였으니 희희낙락 얼마나 좋더란 말인가. 나는 신비의 베일을 벗고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웃었다.
상왕봉으로 가는 숲 속 길 양쪽으로는 곳곳이 파헤쳐진 채 멧돼지들의 소행임을 알 수 있었고, 그때 뒤쳐진 후미가 걱정 되었는지 후미 대장은 소리쳐 은하수를 부르며 기다려주는 애정도 보여 주었다. 돌무더기 탑이 쌓여있기도 했던 상왕봉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점심에 마신 막걸리바람에 힘든 줄도 몰랐는데 얼마쯤을 그렇게 신나게 내려왔을까! 임도가 나왔다. 그러나 임도를 따라가게 되면 40분은 더 걸어야 한다며 중간에 샛길로 들었다. 하늘이 금방 어두워지며 비가 내렸지만 다행이 숲 속이어서 견딜 만 했고, 그곳 능선을 넘으면서부터는 급경사로 이어지며 험했지만 길은 얼마 안가 곧 계곡물소리와 함께 임도로 합류했다.
비도 그치고 임도를 따라 내려오며 바라다보는 비로봉은 웅장했다. 한낱 바람결에 지나지 않을 나의 존재를 저곳 비로봉위에 성큼 올려놓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위를 둘러보는 그 쾌감은 말할 것 없고, 저 높은 곳을 내가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차왔다. 곧 주차장이 시야에 들어왔고, 상원사에 다녀오니 벌써 일행들은 주차장 한쪽에서 삼계탕 파티가 한창이었다. 총무님께서 얼마나 정성껏 맛있게 끓여주셨는지 김치와 함께 나는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고, 배가 터지게 불러왔다. 그런데 돌아올 시간, 주문진으로 회를 먹으러 가자는 의견들이 돌았다. 나는 배도 부른 터라 시간도 늦어질 것만 같아 반대를 했다. 차 안은 금방 양분된 의견으로 팽팽했고, 마침내 거수로 결정키로 했다. 그러나 막상 손을 들고 보니 반대의 참패로 끝났다.
주문진을 향해 가는 차 속에서 벌써부터 흥이 나는지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어느 대장님은 음주가무 없는 은하수라는 것을 앞세우기도 했지만 오늘만은 예외라며 막무가내였다. 노래를 잘 하는 영통 사장님과 예비군복 차림의 코미디언 뺨치게 웃음바다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아무개 여사님이 단연 독보적 존재였다. 내가 군복입고 설칠 때부터 알아보았다며 여군 나왔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낙하부대 특공 출신이라고 외쳐 댔다. 차내의 일행 모두는 그의 동작하나 말 한마디에 웃고 울어야할 판이었다. 그렇게 주문진으로 달려가는 사이 얼마나 배꼽을 잡으며 웃었는지 터지게 부르던 배는 금방 꺼지고 말았는데 터치페이한 방어회는 입안을 살살 녹여주어 그만이었다. 반대의견도 따라보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틀을 깰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닐까.
모두가 만족해하며 하루를 즐길 수 있었고, 돌아오는 길 일행들을 위해 휴게소에서 사보텐의 꽃 부부님께서 사주신 아이스케키는 몸과 마음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기분이었다. 기약도 없이 서로 헤어졌지만 오대산과 주문진 모두 은하수와 함께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애써주신 총무님과 대장님 그리고 함께했던 일행 님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모두 고생 많이 하셨어요~~~다행히 날씨가 덥지 않았나 봅니다~~~주문진 회 사진으로만 봤습니다~~재미난 글 잘 읽었고 담에 만나 뵙지요~~~감사합니다~~
웃음과 즐거움으로 무더위를 날려보낸 오대산산행 !! 좋은 글로 기억에 남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항상 즐산 안산 하십시요
왕늑대님 산행글 너무 감사합니다~*~미역국 친찬 해주셔서 고많습니다~*~
왕늑대님 총무님의 매력에 푹~~ㅎㅎ 오대산 가고팟는대..우째 요즘 바쁜척하니라~~ 아쉽네요...글로나마 위로받고 기회가 있겟지요...^^ 신나는맘으로 건강산행 오래 즐기시길....글로나마 반갑습니다...왕늑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