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에겐 영혼이 있습니다.
세상엔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게 존재합니다.
밤에 잠을 잘 때 가위 눌리는 현상이나, 세상에 초자연적인 현상, 기타 종교들의 의식,
이들은 모두 사람에게 영혼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동물에겐 영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도, 이성도, 종교도 없고, 본능만 있습니다.
TV 뉴스에서 비열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를 보면 시민들은 ‘짐승만도 못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본능에 충실한 인간을 가리켜 짐승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처럼 모성애가 강한 동물조차도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본능이지, 그것들이 그것을 알아서 행하지는 않습니다.
간혹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말이죠. 저도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었기에 그런 분들의 마음을 이해 하지만, 자신의 영혼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네요.
2. 외로운 정신의 고뇌
저는 종종 생각이 많아서 밤에 잠을 뒤척입니다. 잠을 자야 하는데 너무나 고민과 번뇌가 심해서 한참을 뒤척여야 잠이 들기도 합니다.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 못되죠.
그런 날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의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까? 라고 말이죠.
왜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을 하면 가슴이 아프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솟구치는지 저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특히 외로운 감정이 찾아 올 때는요.

(인간은 참으로 쓸쓸한 존재입니다..)
[고립되어 있다..마음을 이해받지 못하고 전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이해 할 리가 없다. 부모든,친구든,교사든 누구든 예의없이 마찬가지다. 마음은 도저히 알 수없는 막다른 골목미로..때로 그 본인조차 길을 잃고 출구를 잃어버리는 미궁은 타인이 알수 없을 리가 없다. 그래서 갈구하고 있다. 모두들 이해를 애정을 찾고 있다,찾고 찾고 ..끊임없이 찾지만...결국 접근을 할 수가 없다.세계에 57억의 인류가 있다면 57억의 고독이 있고 그리고 그 모두가 치유되지 못한채 죽는다..고독한 채로 사라져 간다 .]
-출처: 도박 묵시룩 카이저-
결국 그것은 영혼의 고뇌이며 정신적 세계의 일부입니다.
사람의 몸속엔 각자의 영혼이 들어있고, 육체가 죽으면 그곳에서 나옵니다.
이런 부분들이 여러 종교에서 다루고 있는 사후 세계입니다.
기독교는 이 부분에 있어서 영원한 천국성을 제시 합니다.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제시 한답니다.
사실상 이런 믿음은 제가 가진 신앙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 할 순 없지많요
3.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인간은 왜 죽을 까?’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삶은 대게 100년 정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그토록 영생하고자 불노초를 구했지만, 영생은 그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분명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자살하고자 수면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들었던 두려움은 난 죽으면 어디로 갈까 였습니다.

(정처 없이 가고는 있었지만 제 중심은 언제나 불안해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아직 죽음 뒤의 세계를 못 가봤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요~
제가 21살 정도 때 저녁에 아르바이트만 하고 낮 시간엔 그저 영화에 미쳐서 보냈습니다.
거의 백수생활에 가까웠고,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사람들과의 마찰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없어야 정상인데, 전 그 때도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외로움 공허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저는 혼자 있던지, 집단과 있던지, 상관없이 생각하기에 따라 고통의 여부나 강도가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한발을 내밀기가 두려웠습니다.
인생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도,
늪에서도, 한발을 내밀기가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 저의 에너지는 ‘라디오 헤드’라는 얼터너티브 락 밴드의 감성적 에너지였고, 그것은 젊은 날의 나를 새로운 길로 인도해주는 구원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랭보의 시집을 읆으며 전 반랑자를 꿈꾸기도 했었죠. 배우 조니뎁을 우상화 시키며,그의 눈빛부터 스타일, 인생까지 표방해 가고 싶었습니다.
영화와 음악은 제게 얄팍하지만 소중한 ‘희망’을 주는것 같았습니다.

조그맣게 나마 길이 보였습니다.
비틀거리고 휘청거리지만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들을 통해 전 부정적인 사상까지 키워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끝은‘공허함’과 ‘허무’ 였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이론은 제가 25살까지 갖고 살아 온 이론이었습니다.
전 세상이라는 마력에 중독이 되어있었습니다.
[자, 문제는 중독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중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TV를 시청하는 것이든, 섹스를 하든, 마약을 하든, 밤새도록 춤을 추든,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을 억압하지 않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요소들에 스스로의 영혼이 포박당했을 때부터이다. 무엇에 중독되면서, 우리와 친숙한 일상은 비틀어지고 변형되며 우리는 끝없는 늪 속으로 추락한다. 스스로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중독된 삶, 혹시 영화는, 나의 중독이 아닐까?]
-하재봉 의 영화평중-.
위의 글처럼 전 음악과 영화, 술과 담배에 제 인생이 완전히 포박되어 있었습니다.
전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제 멋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지치고, 만족이 없더군요.
4.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사람의 인생은 길어야 120,대게가 평균 70~80입니다.
[시편 90편 10절 말씀]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죽습니다. 애석하겠지만 결국은 눈을 감는 그날은 오고야 말지요.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전도서 3장 20절 말씀]
20절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저는 세상을 통해 삶의 의미와 해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찾고 찾고 얻으면 얻을 수록 삶의 공허함만 더 커져갔죠.
그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나의 감성들과 소중한 존재들도 언젠가는 모두 곁에서 사라져 갈 것입니다.
잡힐 듯 말듯 한 인생의 꿈도 막상 이루어지면 일시적인 행복에 그치곤 하였습니다.
불같은 연인과의 사랑도 결국은 시들시들 식어버리더군요.

[세상은 결국은 한때입니다.]
부와 명예, 사랑하는 가족들, 젊은 날에 빛이 되어준 우상,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 악착 같이 모았던 돈, 그토록 아끼던 소중한 물건들, 등등 얼핏 보기엔 다 내 것 같았지만 결국 내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것이라면 죽을때 함께 가지고 가야합니다. 재산도,명예도,가족도,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남겨둔채 우리는 쓸쓸히 사라져 갑니다. 어떤 것 도 들고 가져가지 못한답니다.
[디모데 전서 6장 7절 말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제가 쫓고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허구이자 언젠가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환상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삶은 무척 행복합니다. 진정 인간이 얻어야할 값진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분은 제게 살며시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공허한 눈빛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난 그게 좋았는데... 왜 갑자기, 아무느낌도, 아무 쾌감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알던 나는 항상 유리창 너머에서 비를 맞는 쓸쓸한 사람이였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도, 나를 위로하던 담배도,라디오 헤드의 [high and dry] 도.. 모두다 어디로 떠나 버렸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떠났다는 게 솔직히.. 홀가분했습니다.
이제는 가을 햇살을 쬐고 있어도 백야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건, 그분을 만남으로 모두 떠나 버렸고 대신 따뜻한 기운만이 돌기 때문입니다. 전 이제 진정한 “행복”을 얻었답니다.
그분을 만난이야기 .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전해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 보다 그저 당신이 주님을 그저 한번 만나보기만을 기대한답니다.
지금의 저는 살아있습니다. 사랑하고 있고, 느끼고 있고, 진심으로 웃고 있습니다. 살아서도 영생을 추구하고, 죽어서도 영원히 살수 있다는 확신이 있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26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행복한 내가 ,행복한 당신이, 행복한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를 채워주신 분)
제 안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우물이 있었니다.
그저 단순한 외로움 때문이라 단정 짓기엔
제 영혼의 목마름은 커져갔습니다.
왜 이리 내 영혼은 공허할까...
그것을 채워보려고 많은 만남을 가져보았지만
불같은 사랑은 그저 일시적인 마약일 뿐
영원성을 갖고 있진 않았습니다.
어떤 사랑에도 한계점은 존재했고,
폭풍같은 사랑이 지나고 나면
그것은 내 안에 독이 되어
뿌리를 흔들고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제 영혼을 채워주는 따뜻한 사랑을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저에게 영원한 사랑을 공급해 준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온전한 사랑의 경험은
제가 앞으로 추구할 사랑의
관념을 새롭게 세워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사랑해 주셔서
첫댓글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언 14장 21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