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비를 쏟아부어가며 개인의 역량만으로 봉사단을 꾸미고, 기부금을 마련하는 콘서트를 열며 “봉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이가 있다. 21년째 봉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김중필(52) 씨다. 그는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일뿐,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따뜻한 약속을 시작하다
21년 전인 지난 94년, 지인에게 80kg 쌀 25가마를 받았다. 너무 많은 양이라서 이를 가지고 바로 동사무소로 갔다. 쌀로 떡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떡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김 씨가 보탰다. 이름을 알리고 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이름을 알았는지 이 일로 시장상을 받았다. 그러나 스스로 느끼기에 자신이 한 봉사는 아니었다. 또 이 사건이후로 그가 봉사에 뛰어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 날, 회사가 있던 당정동에서 군포역을 지나오는 길이었다. 노인 세 분이 컵라면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아버님, 여기서 뭐하시고 계세요?” 그 노인은 대답했다. “집에서는 가끔 애보는 보모 역할밖에 하는 게 없어서 여기 나와서 사람들 구경하고 있어.” 그 어르신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르신들은 지하철역 앞 의자에서 앉아계실 때 말고는 역 앞에 있는 노인정에서 먹고, 자고 한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말한 노인정을 찾아갔다. 허름한 노인정 건물에 남자 80명, 여자 8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 때 그가 말했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제가 식사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평소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어르신들을 도와야겠다는 예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계획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약속을 지켰다. 1년이 지나고 나서는 지인들까지 모아서 3개월마다 경로잔치를 해드렸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노인정까지 늘렸다. 2,3년 이렇게 식사 제공에 경로잔치까지 하다 보니 사비가 보통 많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부담은 컸지만 그러면서도 약속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인복지관, 고아원, 요양원, 군부대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점점 키웠다.
위기를 넘기며 또 다른 약속 도장을 찍다
그러던 중 2004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일주일 후 다시 보자는 의사의 말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병명은 선천성 심장판막증이었다. 인공심장을 다는 수술을 했다. 수술은 8시간 동안 이어졌다. 수술이 끝났지만 12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자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까지 했다. 그는 14시간 만에 간신히 깨어났다가 4시간이 지난 뒤 다시 혼절했다. 그 후 이틀간 그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났다.
회복기간을 거치며 그는 소아백혈병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죽음과 싸워야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는 또 하나의 약속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퇴원 후에는 ‘희망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소아혈액암돕기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수익금은 모두 아이들의 치료비로 쓰였다.
2년 전부터는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도 나눔을 확대하고 있다. 20가정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60가정으로 점점 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2달에 한 번, 라면과 쌀을 직접 갖다 주며 요즘 어려운 일은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김 씨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해 또 다시 내년의 다짐을 밝혔다.
“제가 피는 담배가 4000원인데요. 내년부터 담배를 끊을 겁니다. 이게 하루에 4000원씩 한 달이면 12만원이에요. 12만원이면 두 가정에 보일러 태우는 거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그 생각을 하니까 이걸 끊어야겠더라고요.”
봉사도, 봉사자도 없다
그는 그가 하는 봉사를 동냥질로 표현한다. 그만큼 마음상하는 일이 많았다. 대기업에 지원 요청을 해도 무시당하기가 일쑤고, 도와준다는 호언장담을 믿고 있다가 고작 5만원을 보내준 기업의 마음씀씀이에 기분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뒤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어 김 씨는 마음이 든든하다. 지재영 농심 노조위원장은 한 달에 30박스씩 매달 도움을 주고 있다. 덕분에 어려운 이웃들을 넉넉하게 도우며 수혜 가정수를 늘려나갈 수 있었다. 남촌병원에서는 봉사자들이 직원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고, 각종 콘서트마다 응급차량을 지원해주었다. 중소기업 ‘감이좋아’에서도 화장품과 염색약을 제공해주며 힘을 보탰다. 개그맨 박준형은 행사마다 엠씨를 자처했다. 재능기부로 백혈병아이들을 돕는 것이다. 지난 8월에 있었던 희망콘서트에도 박준형의 도움을 받아 행사를 치러냈다.
21년간 이렇게 규모가 큰 봉사회를 만들어 많은 돈을 들여가며 봉사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죠. 제가 원래 드라마, 동영상, CF 등 방송기획 연출 일을 해요. 이렇게 일해서 오는 수익금 60%를 사랑과봉사회에 쏟고 있어요. 전 40%로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사실 옆에서 집사람이 도와주니까 저도 이렇게 재밌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벌써 5년째 배우자 또한 김 씨의 봉사를 도와가며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사랑과봉사회에는 봉사도 없고, 봉사자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저희 모임에는 봉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일은 자신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면서 정신적인 건강을 얻고, 나눠주기 위해 움직이면서 신체적인 건강을 얻는 거죠.”
[회원가입 및 후원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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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10-8443-7333 (김중필 회장)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