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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제분업체들이 지난 밀가루 출고가격을 이전보다 7% 낮춤에 따라 이를 주원료로 쓰는 라면 가격이 잇따라 내린다고 합니다. 농심의 경우 제품에 따라 2.7%~7.1% 사이에서, 한국야쿠르트의 경우 3.7%~7.7% 사이에서 인하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회사가 원료로 사들이는 밀가루 가격은 똑같이 떨어졌는데, 왜 라면값 인하율은 회사마다 천차만별일까요. 또 농심이라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라 생산 공정 등이 거의 같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라면은 기존 가격대비 2.7%, 안성탕면의 경우 7.1%로 각각 인하폭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요의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 of Demand)
위의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탄력성이란 어떤 충격이 가해졌을 때 그 충격에 얼마나 반응하는지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을 뜻합니다. 같은 충격에 대해 반응 정도가 크면 탄력성이 크다고 흔히들 얘기하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농구공은 탄력성이 좋고 볼링공은 탄력성이 좋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그 이유는 같은 높이에서 공을 떨어뜨려도 농구공은 잘 튀고 볼링공은 잘 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탄력성의 개념을 수요의 법칙(Law of Demand)에 적용시키면,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란 한 상품의 가격 변화에 따라 수요량의 변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상품의 가격 변화라는 충격에 대해 수요량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탄력적(Elastic)인 상품과 비탄력적(Inelastic)인 상품
어떤 상품이 자체 가격 변화에 비해서 수요량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면 탄력적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가격 변화보다 수요량 변화가 상대적으로 작으면 비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컨대 한 제품의 가격이 1% 증가하였는데 수요량이 2% 감소하였다면 가격 변화율에 비해 수요량이 더 많은 비율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탄력적이라고 하지만, 수요량이 0.5%만 감소하였다면 비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쌀·비누·의약품과 같은 필수품들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이 변하더라도 수요량은 크게 변하기 어렵습니다. 쌀값이 올랐다고 해서 하루 세 끼 먹던 사람이 두 끼로 줄이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은 생활 필수품들은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비탄력적인 상품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지요. 반대로 명품 가방이나 고급 시계 등과 같은 사치품은 백화점에서 조금만이라도 가격인하 세일을 하면 평소 이상으로 이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따라서 탄력적인 상품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가격을 덜 낮추는 게 수입에 도움되는 인기 브랜드
기업의 총 판매수입은 가격탄력성과 관계가 깊습니다. 기업의 총판매수익은 판매량에 제품의 가격을 곱하면 됩니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큰 상품은 가격이 오를 때 그보다 더 큰 비율로 수요량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총판매수입은 떨어지게 되지요. 반면에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은 제품은 가격을 올려도 그 올린 비율보다는 더 작은 비율로 소비가 줄어들게 되므로 기업의 총판매수입은 증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격 탄력성이 큰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되도록이면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총판매수입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격 탄력성이 낮은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되도록이면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게 해당 제품의 총판매수입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 됩니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같은 종류의 다른 브랜드를 가지는 상품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같은 청바지라 하더라도 브랜드에 대한 선호 또는 특정 스타일에 대한 선호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의 청바지만을 고집한다면 이 청바지 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다른 상표의 청바지들에 비해 비탄력적으로 될 것입니다.
이는 라면업계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국내 상위 10위 라면 브랜드 중 8개를 차지하고 있는 농심은 라면에 있어서 국내 1위의 브랜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라면에 있어서 농심이 만드는 제품은 타사 제품에 비해서 비교적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비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밀가루 값의 인하에 따라 제품의 가격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농심의 경우 타사에 비해 가격 인하를 되도록 작게 해도 즉, 가격 수준을 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해도 수요량의 감소가 크지 않을 것이므로 총판매수입에 있어서 유리한 판매전략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은 같은 회사에서 만드는 신라면과 안성탕면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라면 판매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신라면, 2위는 안성탕면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는 신라면의 가격 탄력성이 안성탕면보다 비교적 비탄력적임을 알 수 있는 자료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밀가루 값을 인하하고 그리고 똑같은 생산 비용과 생산 공정을 가지는 신라면과 안성탕면의 가격 인하율이 각각 2.7%와 7.1%로 신라면의 인하율이 더 낮은 이유는 신라면의 가격탄력성이 안성탕면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신라면의 경우 가격을 조금만 낮춰도 신라면에 대한 수요량이 크게 감소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되도록 가격인하율을 낮추어 총 판매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신라면과 안성탕면 간 소비대체 효과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만 기업들은 해당 제품의 총 판매수입을 높이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해당 제품의 가격탄력성과 제품 간의 대체 정도 등을 모두 고려해 판매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요.
◆쉽게 배우는 경제 tip
수요의 법칙(Law of Demand)
일반적으로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어떤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 소비자들은 그 상품을 더 많이 수요하게 되고, 반대로 가격이 높아지게 되면 더 적게 수요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격과 수요량과의 관계는 역(逆)의 관계가 성립하고 있는데요, 이를 수요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법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러한 관계가 현실에서 빈번히 관찰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There is no rules without exception)'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요. 이러한 수요의 법칙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명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명품의 경우 높은 가격이 소비하는 사람의 사회적 가치나 지위를 나타내게 되어 가격의 상승이 오히려 더 많은 소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끔 신문에서도 가격이 낮을 때는 안 팔리더니 높게 부르니까 불티나게 팔리더라는 보도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형태는 상류층에서 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베블린 효과(Veblen Effect)'라고 부르고, 이러한 재화를 '위풍재(Prestige Good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반대로 가격을 내리니까 오히려 수요량이 더 줄어드는 재화도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리의 가격이 떨어져도 거기서 생기는 소득의 여유를 쌀의 소비로 전환함으로써 오히려 보리의 소비가 줄어들 수 있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들 재화를 '기펜재(Giffen Goods)'라고 부릅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기펜재는 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 201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