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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걸리면 10명 중 8명이 직장 잃어 |
서울 강북구에 사는 임모(57)씨는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1남2녀를 길렀다. 살림은 빠듯해도 집안은 단란했다. 그런데 암이 임씨 가족의 행복을 파괴했다. 그는 2007년 온몸이 시름시름 아파 동네 병원에 갔다가 "큰 병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고려대 안암병원에 갔더니 췌장암이었다.
그는 2008년 4월 췌장암 수술을 받고 그해 연말까지 매달 일주일씩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았다. 2500만원이 들었다.
3남매 키우는 데 바빠 보험도, 저축도 없었다. 임씨가 일을 못해 수입도 끊어졌다. 그는 넉 달 만에 의료급여 대상자(집안 형편이 어려워 정부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는 사람)가 됐다. 그래도 치료비와 생활비로 빚이 3000만원까지 불어났다.
임씨는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공공근로를 해서 월 30만원씩 벌었다. 부인(53)도 식당 일을 하고 있다. 대학생 딸 둘은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했다.
중1인 막내아들은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서 대상·금상을 탔지만, 아버지가 암에 걸린 뒤 "공부해서 돈 벌겠다"며 미술을 포기했다. 임씨의 부인은 "당장 먹고사는 것도 힘들지만 막내가 나이보다 너무 일찍 철든 게 더 가슴 아프다"고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원희목 의원(한나라당)은 13일 "암 환자 대다수가 암에 걸린 뒤 직장을 잃고 빈곤층으로 내려앉는다"는 내용의 국가암관리사업단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암도 암이지만, 일자리를 잃고 고액의 치료비에 시달리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사업단측이 올 들어 정부에서 암 치료비를 지원받은 사람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암 환자 10명 중 8명 이상(83.5%)이 암 진단을 받은 뒤 실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층별로 쪼개 살펴보면, 일반적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10명 중 7명(71%)이 실직한 반면 임씨 같은 의료급여 대상자들은 10명 중 9명(91.5%)이 일자리를 잃고 막막해졌다. 배움과 기술이 적은 저소득층일수록 암으로 인한 타격이 크다는 뜻이다.
원 의원은 "실직은 생활고로 이어지고, 생활고는 치료비에 대한 부담감으로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사업단 조사 결과, 암 환자 중에서 "치료비가 부담되지 않았다"는 사람은 계층을 불문하고 극소수(3.5%)였다. 암 환자 절반이 치료비가 매우 부담스럽다고(46.3%) 답했고, 나머지도 "부담스럽다"(30.3%), "약간 부담된다"(19.8%)고 답했다.
또 암 환자 10명 중 1명 이상(13.7%) 이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병원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료급여 대상자들은 5명 중 1명(22.2%)이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 못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원 의원은 "건강보험에서 암 진료에 대한 보장성이 많이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환자들에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본인 부담을 낮추는 한편, 암이 완치된 사람들이 순조롭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재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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