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리
물금역에서 매리2교를 건너면 바로 낙남정맥의 들머리가 되므로 미리 읍사무소에 확인했더니 아쉽게도 지금은 상판을 철거해서 사람이 다닐수가 없다고 하며 다음 역인 구포까지는 가야 한다고 한다.
서울역에서 비숫한 시간에 출발하는 고속철을 이용하면 구포까지는 2시간이나 일찍 갈수 있지만 값이 너무나 비싸 거부감도 생기고, 목표로 한 낙원고개까지는 해 떨어질때 쯤이면 도착할수 있을것 같아 그냥 무궁화호를 탄다.
택시를 타고 매리2교가 놓여있던 삼거리에 가보니 역시 다리는 보이지 않고 낙동강만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길건너 바위지대에 반가운 표지기 몇개가 들머리를 알려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머리끈을 질끈 동여메고 8번째 정맥종주를 위해서 트럭들이 바삐 다니는 69번 지방도로를 건넌다.
(낙남정맥 들머리)
- 동신어산
가파른 수직암릉을 오르고 대구와 대동을 잇는 도로 공사현장을 넘어 숲으로 들어가 묘지들을 지나치는데 뭔가 뜨끔하더니 소매를 걷어올린 왼팔에 금방 빨간 발진이 돋고 가려워진다.
손길가는데로 긁기 시작하면 걷잡을수 없이 퍼지는 법이라 소매를 내리고 가려움을 참아가며 연신 나타나는 암릉지대를 올라간다.
첫 갈림봉에서 왼쪽으로 꺽어져 뾰족한 봉우리를 두개 오르니 그제서야 동신어산이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더운지 잠깐사이에 바지안은 온통 땀투성이가 된다.
양쪽이 벼랑을 이룬 좁은 암릉지대를 올라서면 발밑으로는 구불구불 흘러가는 낙동강이 펼쳐지고, 강 건너로 백양산에서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마루금이 가깝게 보이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이런저런 쓰잘데없는 근심걱정들이 잊혀진다.
바위들을 휘돌아 동신어산(459.6m) 정상에 오르니 삼각점과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 쓰인 오석이 서있으며 바위밑으로 보이는 조망 또한 거리낌이 없다.
벌떼들이 윙윙 날라다니는 숲 한쪽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산우들과 꿈에 부푼 낙동정맥종주를 시작하던 몇년전 봄날을 생각하고 다시 한번 강건너 금정산의 산세를 눈에 담아 본다.
(뒤에 보이는 동신어산)
(동신어산 정상)
(동신어산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낙동정맥)
- 백두산 갈림봉
그늘이 서늘한 솔발을 따라 비탈길을 내려가 안부에서 가파른 바위지대를 넘어 암봉으로 이루어진 490봉을 오르면 벼랑을 이룬 동신어산의 암벽들이 멋지게 보인다.
다시 앞이 툭 트이는 시원한 암릉지대를 밟으며 덕산리와 선무동을 이어주는 감천재로 내려서니 작은 이정판이 서있고 빽빽한 잡목숲이 기다린다.
관목들을 헤치며 가파른 숲길을 오르면 백두산이 갈라지는 470봉이고, 조망이 트이는 바위에 앉아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며 몰운대를 생각하고 있으니 발진 생긴 왼팔은 가려움이 더 심해진다.
서둘러 이어지는 능선으로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는 남쪽으로 방향이 틀어져서 몇번이고 왕복하며 확인하지만, 낯익은 정맥표지기들을 발견하고는 의심하지 않고 따라간다.
(동신어산을 내려가며 바라본 낙남정맥의 마루금)
(감천재)
- 백두산
급하게 떨어지는 잡목숲을 따라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361.5m)를 넘고 시야가 트이는 바위봉에 올라서니 마루금은 북서쪽으로 도망가고 있고 그제서야 엉뚱하게도 백두산으로 가고 있는 중임을 알아챈다.
내려오기도 많이 내려왔지만 정맥표지기들이 계속 걸려있고, 바다로 함몰해야 하는 정맥의 성격상 낙남정맥은 동신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니라 바다와 좀 더 가까운 분성산이나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여야 한다는 주장도 읽은 기억이 나 일단 가 보기로 한다.
낮은 봉우리(275.4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양지바른 곳의 무덤가를 지나니 송림사이로 멀리부터 보이던 백두산이 앞에 뾰족 솟아있다.
평상까지 놓여있는 그늘진 안부로 내려가 돌탑을 지나고 가파른 능선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 470봉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산줄기도 제법 유장하게 보인다.
산불초소와 오석이 서있는 백두산(352.9m)에 오르니 김해시와 낙동강 일원이 훤하게 펼쳐지지만 신어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까마득하게 떨어진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백두산의 위용)
(470봉에서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유장한 산줄기)
(백두산 정상)
- 생명고개
예기치않게 길을 잘못들고 정맥에서 많이 떨어져있는 백두산까지 왕복하느라 시간을 보낸터라 목적지를 낙원고개에서 가까운 영운리고개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따로 찾아오기 힘든 의미있는 발걸음이라 애써 생각하며 백두산을 내려간다.
헉헉거리며 1시간만에 470봉으로 돌아와 약간 내려가니 북서쪽으로 꺽어지는 마루금은 무성한 나뭇가지에 가려있고 어두운 숲터널로 급한 비탈길이 이어진다.
사거리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잡목길을 한동안 올라가니 땀이 줄줄 흐르더니 기어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가 옷에 쓸리고 따가워진다.
두리뭉실한 봉우리를 넘고 몇분 더 오르면 역시 특징없는 봉우리에 장척산(550m)이라 쓰인 등산안내판이 서있으며 장척계곡과 버스시간표등이 적혀있다.
무성한 잡목들을 헤치고 사거리안부를 넘어 묘지들을 지나 넓은 임도로 내려서니 신어산이 앞에 우뚝 솟아있어 기를 죽인다.
임도들을 가로지르며 주동리와 묵방리를 잇는 생명고개(290m)로 내려가면 시멘트임도 삼거리에는 약한 햇살이 가득 차 있고 서늘해진 바람에 푸른 억새들이 나풀거린다.
(장척산 정상)
(생명고개 너머로 보이는 신어산)
- 신어산
임도를 건너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가면 신어산은 높아만 보이고 진땀은 뚝뚝 떨어지며, 날이 더워서인지 발걸음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위에 올라 옷을 훌훌 벗은채 찬물을 마시고 허겁지겁 간식을 먹고있으니 지나온 정맥봉들은 아스라하게 보이고 백두산은 앞에서 반갑게 손짓을 한다.
힘을 내어 돌탑이 서있는 동봉에 오르니 내려앉는 태양너머로 신어산이 마주보이고 남쪽으로는 중국민항기가 추락했던 돗대산이 가깝게 보여 비명에 가신 분들을 잠시 추모해 본다.
반들반들한 맨땅을 밟으며 천불사로 이어지는 안부를 지나고 철쭉평원을 따라 신어산(630.4m)에 오르면 산불초소가 있는 넓은 정상에는 삼각점과 큼직한 정상석이 서있고 산책나온 주민 두명이 꿰제제한 내 모습을 연신 쳐다본다.
김수로왕의 전설이 깃든 신령스러운 산정에 서니 태양은 가야골프장을 지나 어언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있는데 이정표에는 영운리고개까지 아직 4.4km라 적혀있어 급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신어산 동봉)
(동봉에서 바라본 신어산)
(신어산 정상)
- 영운리고개
의자가 놓여있는 쉼터들을 지나고 출렁다리를 건너니 기둥처럼 솟아있는 기암괴석들과 푸른 노송들이 어우러져 신어산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여준다.
넓은 헬기장을 지나고 이정표와 돌탑이 서있는 서봉(630m)에 오르면 정맥은 묵방리로 이어지는 좋은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가야골프장을 향해서 급하게 꺽어진다.
너덜을 조심해서 통과하니 급한 내리막이 이어지고 나무들을 잡아가며 바위지대를 천천히 내려가면 등로가 희미해져 신경이 쓰인다.
어둑어둑해지는 가파른 숲길을 이리저리 돌며 한동안 내려가면 8번홀의 넓은 그린으로 내려서고 왼쪽으로 꺽어져 관리도로를 따라간다.
몇년전 골프에 열중하던 때를 회상하며 잔디들을 밟고 텅빈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클럽하우스로 내려가니 직원인듯한 사람이 사유지에 들어왔다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
오른쪽으로는 골프장을 확장하면서 다 망가진 정맥이 보이지만 컴컴한 도로를 그냥 내려가면 차량통행이 많은 일반도로와 만나고 나전리에서 김해로 넘어가는 영운리고개(270m)는 바로 위이다.
(어둠에 묻혀있는 영운리고개)
- 나전리
불야성을 이루고있는 김해시를 바라보며 골프장육교가 넘어가는 고개에 올라가니 오른쪽 나전리쪽으로는 식당 몇개와 여관들의 불빛이 훤하게 켜져있다.
가까운 어촌장모텔에 방을 얻고, 위에 있는 자동차극장 매점에서 찬 캔맥주 하나 마신다음 식수와 음료등 내일산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
골프장 손님들을 상대하는 식당에서는 갈비 일인분은 팔지도 않을 뿐더러 마땅한 식사거리도 없어 난감해하니까 여주인이 된장찌개라도 먹고가라 하신다.
시끌벅적 떠드는 골퍼들 옆에 앉아 소주 한병도 청하니 맛갈스러운 가자미무침이 덤으로 딸려 나와 생각지도 않게 포식을 한다.
찬물에 몸을 딱고 텅빈 러브모텔 한켠에 누워있으면 팔 하나는 풀독인지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몸은 사방이 쓸리고 따가워서 내일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열린 창으로는 정맥의 시커먼 실루엣이 지척에 서있고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지친 몸을 어루 만진다.
첫댓글 초장부터 확실히 신고 하셨군요... 신어산은 몇년전 비행기 추락사고 난 그산이 맞지요???
예! 신어산 바로 밑이 돗대산인데 거기에 떨어졌습니다. 아마 위령탑이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낙남이 의외로 잡목과 까시덤불이 심하더군요...
내년 초에 낙남을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산행기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