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 대표 맡은 임순례씨 기금 마련 전시회 … 소와 인간 소재 영화 만들 계획
버려진 개들과 양평에서 살고 있는 임순례 감독. 올 봄 같이 살기 시작한 버려진 개 ‘보리’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올해 문을 연 영화사 이름도 ‘보리 픽쳐스’다. [박종근 기자]
“어렸을 때 우리 집 강아지뿐 아니라 동네 개들을 전부 다 좋아했어요. 어머니 말씀이, 온 마을 수십 마리 개들이 동네 입구 쪽으로 줄지어 달려가면, 순례가 학교에서 오는구나 하셨대요.”(웃음)
유난한 동물사랑 때문일까. 흥행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물론 ‘여섯 개의 시선’‘날아라 펭귄’ 등 인권영화를 만들어온 임순례(49) 감독이 동물권리 수호자로 변신했다. 올 5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직을 맡아, 멧돼지 사냥을 내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헌터스’ 코너에 제동을 걸었다. 관련 기금 마련을 위해 30일까지 서울 경복궁 인근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박재동 판화전을 열고 있다. 전시중 매일 오후 6~8시 ‘임순례 감독의 동물과 영화 이야기’를 진행한다. 24일부터는 배우 엄태웅·방은진·문소리씨,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등 이 자신의 반려동물과 함께 전시장을 찾아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도 힘든데 동물 힘든 거 신경 쓸 여유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사람이 힘든 게 대부분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 부족에서 생긴 것인데, 가장 약자인 동물을 배려하는 마음과 문화를 가진다면 그 혜택을 인간이 보는 것 아닐까요?” 동물권리와 생명권 보호가 인권보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가 차별 없는 인권 보장을 위해 싸워왔다면 이제는 생명권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특히 반려동물이나 가축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됐고 그들의 문제는 인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어요. 동물보호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감수성의 한 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 감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양평에서 버려진 개들과 함께 생활해오고 있다. “서울에서 살 때 한 버려진 개 가족에게 먹이를 준 적이 있어요. 주민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원성이 대단했어요. 양평으로 이사 간 뒤 6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씩 몰래 와 먹이를 주곤 했는데, 어떤 분들은 나중엔 쥐약을 놓겠다고도 하셨어요. 그 분들이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 도시빈민들에게는 버려진 개을 품어낼 여유가 전혀 없다는 거죠.”
동물보호 문제를 통해 한국사회가 보인다는 얘기다. “버려진 개들을 입양 보내는데, 믹스견(잡종)은 싫어하세요.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 있듯이, 순혈주의가 반려동물에까지 적용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는 두 차례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를 다녀온 경험을 떠올렸다. “마을 식당 앞마다 큰 개가 한 마리씩 있는데, 다 주인 없는 개예요. 하지만 식당 주인은 먹이를 줍니다. 주인이 없지만 모두 보호받고 아무도 굶어 죽지 않으며, 공존하는 평화로운 풍경이지요.”
그는 “모든 인간이 고통을 피하고 행복하길 바라듯, 동물도 마찬가지”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인용하면서 “동물보호에 대한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이고 낮은 인식, 정책 부재” 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언젠가 본격 동물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촬영을 위해 동물을 괴롭혀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며 웃었다. 우선 내년 3월 소와 인간의 동행을 그린 로드무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촬영을 시작한다. 02-737-5751 www.withanim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