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전문은 다른 곳에 실었으므로 여기서는 그 대강만 올린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메디치 가문의 등용을 꿈꾸었다. 말하자면 군주론은 그의 자기소개서인 셈이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군주론은 실제 정치에 적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점이 역설적으로 오늘날까지 군주론이 읽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지금도 많은 정치인들이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그 증거다. 어떻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쓰기 위해 당대의 모든 역사서를 섭렵했다.
그 속에서 내린 그가 내린 결론은 군주는 때로 교활해야 하고, 때론 용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군주가 되려면 어느 정도 행운이 따라야 하고 그 자신의 역량 또한 출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군주의 자질에 대해 자질구레한 것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어떻든 그의 역량의 출중함을 보여준다. 그러함에도 메디치 가문이 그를 외면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군주론을 통해서 마키아벨리가 야심 가득한 인물임을 읽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든 그의 이상이 가득 담긴 군주론의 내용은 후대에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로 고스란히 남았다. 특히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지금도 인용이 되는 대표적인 문구 중의 하나다.
’군주론‘에는 비판받을 만한 내용도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여성에 대한 폄하 그리고 비난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마키아벨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구체적인 증거다. 그밖에 행운과 역량에 대한 단언들, 역사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 등과 관련해서도 서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그것이 고전 읽기의 즐거움일 것이다.
어떻든 ‘군주론’에서 논의되는 통치자의 모습과 관련된 논란은 무성하다는 것은 ‘군주론’에 대한 해석과 주장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생각 또한 그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을 듯싶다.
생각하게 하는 구절
“군주가 나라를 얻고 유지하면, 그의 수단은 언제나 명예롭다는 평가를 받고, 그는 모두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민중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일의 결과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문장은 여기서 나왔다.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자’와 ‘여우’의 방법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윤리적 규범과 어긋나는 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문이 그 앞에서 닫히겠습니까? 어떤 질투가 그를 반대하겠습니까? 어떤 이탈리아 사람이 그를 추종하지 않고 거부하겠습니까” 야만적 지배의 악취가 모두에게서 풍깁니다. 그러므로 전하의 탁월한 가문이 정의로운 과업에 뒤따라 희망과 용기로 임무를 맡으셔야 합니다. 그 깃발 아래에서 조국이 고귀해지고, 그 후광 아래에서 페트라르카(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시인)의 말이 실현되도록 말입니다.“
”역량이 광기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전투는 짧게 끝날 것이니,
이탈리아인들의 가슴속에서
옛날의 용맹이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오.“
16세기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