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성장 동력이 떨어지기에 도시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노동집약형인 신발과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연근해 어족 고갈로 재미가 적다. 조선 산업은 이웃의 울산이나 거제에 넘어갔다. 그러니 인구가 노령화 되어가고 출산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교육대학을 졸업한 신규교사 임용도 전국에서 문이 가장 좁은 것으로 안다.
지난해 겨울 부산 동래 어느 종합병원 산부인과병동에서 아내가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열흘 동안 간병하고 있을 때 그 큰 병원에서 신생아가 단 한 명 태어났다. 7층 전체가 산부인과 병동인데 신생아실은 늘 썰렁 비어 있었고, 중년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만 부인병수술 후 병실에서 회복기를 맞고 있었다. 그 때 병실 비좁은 간이침대에서 며칠 보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그 병실에서 마주본 산이 금정산성이었다. 지난날 그곳을 두 번 오른 적이 있다. 그 때 동행한 사람들은 지하철 온천장 주차장에 차를 두고 1호선 범어사역에 내려서 산에 올랐다. 가을에 올랐기에 범어사 뒷자락의 단풍이 참 좋았다. 금강암을 돌아 오르면 북문에 닿는다. 그곳에서 부산 시내를 조망하면서 계속 남쪽으로 성을 밟고 나가면 동문과 남문을 만난다. 오른쪽으론 산성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낙동강과 김해가 드러난다.
남문까지 오면 그곳엔 반가운 먹거리가 있다. 걸쭉한 산성막걸리와 도토리묵이 있다. 금정산 산행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운치 있고 의미를 부여 할만하다. 땀을 식히고 목을 축이고 나면 산성마을에서 나오는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온천장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산행을 끝이고 도심을 빠져나와 낙동대교를 지나면 귀가다. 대체로 하루 일정이 조금 여유가 있어 이즈음이면 석양을 마주할 때다.
이번에 친구와 함께한 부부산행으로 금정산을 정했다. 창원터널을 빠져나와 김해국도를 타고 낙동대교를 건넜다. 우리는 동래 방향을 잡지 않고 화명동 방향으로 잡았다. 친구는 인터넷 검색으로 금정산 지도를 출력해 왔다. 나는 옆자리에서 지도를 보고 길 안내를 했다. 화명동으로 지하철 2호선이 지나기에 많이 바뀌었다. 탁 트인 들판과 낙동강을 조망하는 위치라 대단지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금정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자동차로 서문을 지나 산성마을에 닿았다. 산성의 뒷꼭지로 오름 셈이다. 주막에서 산성막걸리를 한 통 사서 배낭에 넣었다. 주막 주인에게 동문으로 오르는 길을 안내 받아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처럼 서문에서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동문까지 가니 그제야 남문에서 오른 사람들과 북문에서 오른 사람들이 꽤 많이 오르내렸다. 넷 가운데 나 혼자 이 산성에 오른 경험이 있었다.
조금 더 진행하자 부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 해운대가 보이고 광안대교가 걸쳐있었다. 북항 컨테이너 부두와 영도도 보였다. 회동수원지와 영락공원묘지도 손바닥만 했다. 발 아래 가까이 지난겨울 입원했던 병원건물도 성냥곽만 했다. 범어사에서 오르면 첫 관문인 북문 근처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 시든 잔디에 우리가 도시락을 펴자 다른 사람들도 우리 따라 우르르 곁에 앉더구나. 초면이지만 서로의 반찬을 나누어 들면서 산성막걸리도 함께 비웠다.
가까이 금정산의 어원이 되는 금샘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가보지 않았다. 이 금정산성은 임란 때는 왜구와의 치열한 전투 기록은 없는 성이다. 당시 동래부사 송상헌이 장렬한 순국을 한 전투는 발아래 저 동래성 전투였다. 이 금정산성은 보존된 성곽의 길이가 아주 길뿐더러 성 안에 지금도 상당한 주민이 상주하고 초등학교도 있다. 주로 행락객을 대상한 토속음식을 파는 사람들이다.
금정산의 정산인 고모당에 올랐다. 암반으로 된 바위 덩어리였다. 정상 바로 아래 고모할미 전설이 서린 산신각이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낙동강이 김해와 양산을 나누고 있었다. 저 멀리 김해공항과 다대포도 보였다. 신불산과 천성산도 보였다. 아마 이 산허리 어디쯤으로 고속철 터널이 지나도록 설계되었지 싶다. 국토개발과 환경보존 사이에 고민하던 도롱뇽 재판이 떠올랐다.
우리는 하산 방향은 돌려 미륵사로 향했다. 바위틈에다 제비집처럼 붙여 지은 절이었다. 보리암이니 향일암이니 바위틈에서 모신 부처에서 기도발을 잘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 미륵사도 마찬가지였다. 절 뒤의 바위가 미륵불처럼 아주 우뚝 솟아 우람했다. 평범한 사람이 봐도 기도처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잠시 두 손을 모으고 바위 틈 암반수를 한 모금하고 산성마을을 돌아 주차한 곳에 닿았다.
하산하면서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말하길 “그럼, 이 산성에 서문은 없나보군?”했다. 그 즈음 나는 자나고 있는 오른쪽 계곡 아래를 가리키면서 “바로 아래 계곡에 있는 저 성문이 서문이라네.”라 했다. 금정산성의 서문으로는 사람의 출입은 하지 않고 그냥 계곡을 막아 성곽만 쌓아 둔 곳이었다. 미끄러지듯 내려와 왔던 길을 되돌아올 때는 역시 예전과 같이 석양을 안고 있었다.
첫댓글 금정산성, 범어사, 온천장.... 학창시절 소풍가던 길은 참으로 멀고 버스도 두 번 나눠 타고 갔는데....새삼 그쪽으로 느긋하게 가보고 싶습니다. 부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