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살아있는 인격이요, 인간을 주관하고 주장하시는 참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마치 방언과 귀신쫓기 등을 행하되 인간들의 요구에 따라 순종하는 인간의 종으로 만들어 놓은 은사주의가 문제입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의 의미를 우리 마음 속에 새겨주심으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시면서 들어오시고, 우리를 의롭게 날마다 교훈하시며,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십니다.
반대로 번영신학에서는 그들의 성령이 그들의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도구요 종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그분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따라 자연히 따라 온다는 것을 배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형국은 선물가져오는 분은 겨우 한번 쳐다보는 정도이고, 선물을 보고 미친듯이 날뛰며 그 선물 자랑하느라 정신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누군가 손님으로 찾아왔을 때 손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손심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는가 바라보며 선물이 있으면 발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은사주의와 번영신학이 흔히 공존하며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바로 인간 욕심을 채워주며 인간 욕심이 추구하는 우상을 섬겨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골 3:5)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의를 추구하며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이후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죄를 짓기 때문에 그 죄문제를 다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끝에 면류관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많은 기도의 제목들중에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부터 살펴보고 그것의 성취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지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루카 11장 10절이하 말씀은 바로 죄사함의 문제, 거듭남을 위해 구하라는 말씀이며 또한 그 이후에 영적 성장을 구하라는 말씀이지 인간 욕심을 채우도록 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