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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관련된 물리적 현상은 거시적인 혹은 고전적인 관점에서 아인슈타인(Einstein)의 일반상대론으로 잘 설명되어 왔다. 하지만 미시적인 세계에서 중력을 연구한다면 일반상대론은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 효과와 역할이 커지게 되는 양자역학이 일반상대론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을 일관성 있게 묶는 소위 양자중력이론에 대한 연구가 있어왔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고, 현재로서는 끈 이론만이 양자중력이론의 유력한 후보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올바른 양자중력이론의 구축은 블랙홀(Black Hole)이라는 중력의 특별한 대상에 얽힌 수수께끼들을 풀어냄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이 수수께끼들 중 하나가 블랙홀 엔트로피(Entropy)로서 이는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 완벽한 물리적 이해가 되어 있지 않다.
왜 그리고 무엇이 블랙홀인가?
블랙홀은 일반상대론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의 극단적인 상황으로서 이론상의 결과물이었다. 질량을 갖는 대상은 그 질량에 비례하는 슈바르츠실드(Schwarzschild) 반경이라는 것을 갖는다. 만약 슈바르츠실드 반경을 반경으로 하는 구면 안쪽으로 그 대상이 압축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블랙홀을 얻게 된다. 슈바르츠실드 반경으로 이루어진 구면은 블랙홀을 특징짓는 것으로서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 불리며, 이 구면 안쪽으로 어떤 것이든 들어가면 설사 그것이 빛이라 할지라도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블랙홀과 같은 물질의 극단적 상황이 정말로 생길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블랙홀은 단지 이론가들의 상상에 따른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블랙홀의 존재에 관한 신빙성 있는 실험적 증거들이 축적되어 왔다. 물론 그것들은 검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하늘을 훑는 것으로는 관측되지 않는다. 대신, 천문학자들은 블랙 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 있을만한 보통의 별들이 보여줄 비정상적인 측면들을 찾음으로써 블랙홀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별 외곽의 먼지나 가스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으로 빨려 들어갈 때, 그것들은 거의 빛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가속을 받게 된다. 그러한 속도에서, 돌면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이 만드는 거대한 소용돌이 내에서의 마찰은 막대한 양의 열을 내게 되며, 이는 먼지와 가스의 혼합체가 작열하면서 보통의 가시광선과 X-선을 내도록 한다. 이러한 복사는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 생성이 되므로, 블랙홀을 탈출하여 뻗어나갈 수가 있고, 우리가 직접 관측하여 연구할 수 있다. 일반상대론은 그러한 X-선 방출이 갖게 될 성질들을 상세하게 예측할 수가 있다. 이런 예측된 성질들의 관측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준다. 예를 들어, 관측결과들 중 하나는 우리 은하계의 중심부에 태양 질량의 250만 배에 달하는 아주 무거운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실 이런 엄청나게 보이는 블랙홀도 우주에 산재한 엄청나게 밝은 퀘이사(Quasar)들의 중심부에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것들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이러한 블랙홀들은 태양의 수십 억 배에 달하는 질량을 갖는다.)
우리 우주에 실재한다는 많은 증거들로 인해 블랙홀은 확실히 물리학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간의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은 물리학자들에게 아직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의 상당부분은 블랙홀이 열역학의 법칙과 매우 유사한 법칙을 따른다는 관찰에 그 기원을 둔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4차원 시공간에 존재하는 슈바르츠실드 반경은 블랙홀의 질량과 비례 관계가 있으며 사건의 지평선을 규정짓는다. 이는 사건의 지평선이 갖는 면적이 블랙홀의 질량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킹(Hawking)은 이러한 사실과 블랙홀은 무엇이든 빨아들인다는 성질로부터 사건의 지평선의 면적은 항상 증가한다는 것을 보였다. 그의 결과가 나온 이후, 1970년 베켄슈타인(Bekenstein)은 호킹의 결과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유사하다는데 착안하여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지며 이는 사건의 지평선의 면적에 비례한다는 대담한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이 제안은 곧 많은 반론에 부딪치게 되었다. 호킹 또한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그는 만약 열역학의 법칙과 블랙홀이 따르는 법칙이 유사하다면, 블랙홀이 온도를 가져야 하는데 이는 블랙홀의 성질과 명백히 위배가 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온도가 있다는 것은 블랙홀로부터 열적인 복사가 있다는 의미이지만, 블랙홀은 말 그대로 검은 존재여서 블랙홀로부터는 그 어떤 것도 방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홀과 양자효과
하지만 이 반론은 양자역학을 무시하고 일반상대론이라는 고전론적 입장에 국한했을 때에만 올바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1974년 역설적이게도 반론을 제시했던 호킹은 사건의 지평선 근처의 강한 중력장 하에서 양자효과에 의해 입자-반입자의 쌍생성이 일어나고, 이중 반입자는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입자는 블랙홀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 가능함을 보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블랙홀의 질량이 감소하고 그 여분의 에너지는 열복사의 형태로 방출되어 블랙홀이 실제로는 검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함께, 블랙홀의 온도(베켄슈타인-호킹 온도)가 사건의 지평선에서의 중력장의 세기로 주어진다는 결과도 얻었다. 블랙홀의 물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양자효과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는 호킹의 결과는 블랙홀이 엔트로피와 온도를 가지며, 열역학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베켄슈타인의 제안은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인 진전에 대한 실험적인 검증, 예를 들어, 호킹의 계산에 따른 블랙홀로부터의 복사는 아직 관측이 안된 상태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블랙홀의 질량이 커질수록 블랙홀의 온도는 내려가고, 따라서 복사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수치상으로 보자면, 블랙 홀의 질량이 대략 태양 질량의 3배일 때, 블랙 홀의 엔트로피는 10 78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가지지만, 온도는 10 -8 K로서 극히 낮게 된다. 이렇게 낮은 값은 블랙 홀이라고 믿어지는 천체에서 호킹의 계산에 따르는 복사를 관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해 준다.
블랙홀이 보여주는 이러한 열역학적 성질은 놀랍기는 하지만 다분히 거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열역학은 거시적 물리를 다루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열역학이 주는 결과의 미시적인 이해는 통계역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블랙홀 역학의 보다 근본적인 미시적인 입장에서의 이해는 블랙홀의 통계역학을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 블랙홀의 통계역학적 연구는 엔트로피 자체가 미시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엔트로피는 주어진 거시적 물리량에 대해 물리계를 구성하는 미시적 자유도들이 가질 수 있는 가능한 상태들로부터 주어진다. 블랙홀을 특징짓는 거시적인 물리량은 블랙홀의 질량, 전하 그리고 각운동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물리량들이 주어진 상황에서의 블랙홀은 아주 다양한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과정들의 수는 블랙홀을 구성하는 미시적인 자유도들이 가질 수 있는 상태들의 개수와 연결이 되어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주게 된다. 기체에 대한 통계역학적 연구가 기체의 미시적인 자유도인 기체분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블랙홀의 통계역학은 블랙홀의 미시적인 자유도를 알아냄으로서 연구되어질 수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얘기할 끈 이론에서의 몇몇 성공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현재까지 이들 자유도에 대한 이해는 모호한 상태이다. 한편 앞서 언급한 호킹의 계산과 그 이후의 계산들은 양자역학적 효과를 다루기 때문에 블랙홀의 미시적 이해에 성공한 경우라고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접근법은 블랙홀은 고전적으로 다루고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의 양자효과만을 다루는 준고전적인 방법이어서 블랙홀 자체의 미시적 자유도에 대해 얘기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블랙홀 엔트로피가 사건의 지평선의 면적으로 주어진다는 결과는 얻었지만, 양자효과의 고차 보정은 무시한 결과이고 고차 보정을 무시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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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과 블랙홀 엔트로피
전술한대로 끈이론은 양자중력이론을 포함하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이론이다. 끈이론 내에는 열린 끈(open string)과 닫힌 끈(closed string), 두 종류의 끈이 존재한다. 이들 각각은 그 진동 모드(vibrating mode)에 따라 여러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 양자로 나타나는데 닫힌 끈의 모드 중 하나가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graviton)이다. 이 입자는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 일반 상대론의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 따라서 끈이론 내에도 블랙홀 해가 존재하며 끈 이론이 제대로 된 양자중력이론이라면 블랙홀이 갖는 여러 특성들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끈 이론에서 얻어낸 최대의 성과 중 하나는 특정한 경우의 블랙홀이 가지는 엔트로피를 미시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끈 이론에서 블랙홀의 물리를 다루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난점이 존재한다. 끈 이론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브레인들을 많이 모아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 이때의 시공간 기하구조를 규정짓는, 곡률 반경 또는 슈바르츠실드 반경 따위의, 특성 길이가 끈 이론 자체의 기본 길이(string scale)보다 클 때 그 시공간 기하 구조가 의미를 갖게된다. 이로부터 끈 이론의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의 이론인 초중력 이론(Supergravity)이 잘 적용될 수 있으려면, 끈의 결합상수와 모여있는 브레인 개수의 곱이 1보다 훨씬 커야 한다는 조건이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브레인들 위에서의 동역학을 끈이론의 건드림이론(perturbation theory)으로 설명하려면 그 전개변수(expansion parameter) 역할을 하는, 스트링의 결합상수와 브레인의 개수의 곱이, 1보다 작아야 한다는 조건이 나온다. 즉 블랙홀로 다룰 수 있는 영역과 그것을 끈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른 것이다. 이 두 개의 다른 영역간을 비교하기 위해선 끈 이론의 결합상수를 증가시키는 영역간의 속채우기(interpolation)가 필요하며 따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끈이론과 같이 초대칭성이 있는 이론의 경우 소위 BPS 상태라 불리는 것은 초대칭성 중 일부가 보존되는 상태를 말하며 이는 그 대칭성으로 인해 양자역학적 보정이 없는 안정된 상태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BPS상태에서 끈의 건드림 이론으로 구한 물리량은 속채우기 과정에서 그 값이 변하지 않으며 중력에서 그에 대응되는 블랙홀배경에서의 물리량을 바로 설명해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하를 띤 블랙홀은 이론적으로 가질 수 있는 전하의 최대값이 질량에 의해 제한된다. 달리 말해 전하를 띤 블랙홀 중에 가능한 최소한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블랙홀을 extremal 블랙홀이라 한다. 이러한 블랙홀의 온도는 절대온도로 0 K이며 따라서 호킹 복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블랙홀들은 안정하다 할 것이다. 비록 이들은 온도가 0 K이지만 어떤 경우 엔트로피가 '영'이 아닌 다른 값을 가지는데 이것은 가능한 바닥상태(ground state)의 수가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끈 이론에는 전자기장과 성격이 비슷한 많은 종류의 U(1) 게이지 장이 존재한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전자기장의 벡터 포텐셜(vector potential)처럼 벡터인 것도 있고 더 높은 랭크(rank)를 갖는 텐서(tensor, 좀더 정확히는 form)인 것도 존재한다. 이 게이지 장들을 만들어내는 물체들은 이들의 전하를 띤 것들이다. 전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기본적으로 점 전하를 띤 입자이며 랭크가 (p +1)인 게이지 장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p 차원 공간에 펼쳐저 있는 p-브레인(brane)이다. 끈 이론의 경우 1-브레인으로 볼 수 있는 끈 자체, 그리고 열린끈이 살고있는 D-브레인 등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p-브레인들이 p 차원 공간을 완전히 감고있을 때 이들은 부분적으로 초대칭성을 유지하는 BPS상태가 된다.
바파(Vafa)와 스트로민저(Strominger)는 Q5개의 D5-브레인들과 Q1개의 D1-브레인들이 겹쳐있고 그 겹쳐진 방향으로 n5의 운동량이 있는 끈이론 상의 특별한 BPS상태를 고려하여 이들이 만들어내는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끈의 건드림이론을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그들은 우선 이들이 많이 쌓여있을 때 생기는 5차원 블랙홀 기하구조를 조사하여 그 사건의 지평선의 3차원 면적으로부터 블랙홀 엔트로피가
로 주어짐을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 D1-D5 브레인 위의 동역학은 끈 이론의 결합상수가 작은 경우 브레인 위에 존재하는 열린 끈의 진동모드 중 에너지가 가장 작은 모드들의 동역학으로 결정된다. 이 모드들은 다름 아닌 게이지 장의 뭇겹 (multiplet)에 속하는 스칼라 장들과 그것들의 초대칭 짝들이며, 이것들은 D1-브레인들이 펼쳐져 있는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D1-D5 브레인들은 2차원 위의 초대칭 스칼라 장이론으로 기술된다. 이들 가벼운 스칼라 장의 개수는 Q1Q5에 비례하며, 그것들이 가지는 에너지는 n5에 비례한다. 잘 알려진 2차원 등각장론의 결과를 이용하면 이 물리계가 가지는 상태들의 개수는 exp[2π(Q1Q5n5)1/2]가 되며, 이로부터 얻어지는 엔트로피는 정확히 중력 이론에서 구한 위의 엔트로피와 일치한다.
앞으로의 과제
위에서 기술한 5차원 BPS 블랙홀에서의 놀라운 성공은 끈 이론이 올바른 양자중력 이론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 후 브레인들의 좀 더 복잡한 모임으로부터 나오는 4차원 BPS 블랙홀에서도 D-브레인들의 동역학으로부터 베켄슈타인-호킹 엔트로피를 구하는데 성공하였다. 다음 단계로 BPS에서 약간 벗어난 블랙홀의 경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BPS 상태에서의 결과들과 유사하게 끈의 건드림 이론으로부터 블랙홀의 열역학적 성질들을 규명할 수 있었다. 이는 비록 BPS 상태에 가까운 상태이긴 하지만, 양자보정이 초대칭성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끈의 건드림 이론에서 구한 물리량들이 끈의 결합상수를 키우는 속채움 과정에서 그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이다.
현재 끈 이론에서의 블랙홀 엔트로피 문제에서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연계에 존재할 것이라 믿어지는 대부분의 블랙홀에 해당되며 또한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갖는 슈바르츠실드 블랙홀 엔트로피의 통계역학적인 설명이다. 위에서 기술한 블랙홀의 경우와 달리 슈바르츠실드 블랙홀은 오직 질량만으로 기술되는 블랙홀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끈 이론을 이용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단순한 블랙홀이 어떻게 그렇게 큰 엔트로피를 갖는지에 대한 만족할 만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블랙홀의 형성과 호킹 복사 과정에서의 정보손실 (information loss) 여부이다. 블랙홀은 여러 물질들이 모여 형성된다. 블랙홀을 형성하는 물질들은 블랙홀 형성 이전에 다양한 물리량 혹은 양자수를 갖는 것들이며, 원칙적으로 이 물리계를 양자 파동함수로 기술할 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비록 블랙홀의 물리량은 단순히 질량, 전하, 각운동량으로만 주어지지만, 끈이론을 이용하여 일반적으로 대단히 큰값을 갖는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설명할 수 있었다. 만약 호킹 복사가 없다면 블랙홀의 엔트로피만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즉, 블랙홀 형성 이전의 다양한 물리량들에 대한 정보는 블랙홀이 어떻게든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호킹의 계산에 따르면 블랙홀은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호킹 복사로서 그 에너지를 방출하는 존재이다. 흑체복사 (black body radiation)와 같은 순수한 열적 복사는 마구잡이 분포 (random distribution)의 형태를 가지며, 복사의 원천 (radiation source)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포함하지 않는다. 만약 호킹 복사가 순수한 열적 복사이고, 그 결과로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evaporation)해 버린다면, 블랙홀이 갖고 있어야할 정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셈이 된다. 이는 블랙홀 증발 이후의 양자 파동함수를 블랙홀 형성 이전의 양자 파동함수로부터 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블랙홀의 형성과 증발 과정에서의 정보손실 문제이다.
이 문제는 물리학자들간의 첨예한 논쟁거리들 중 하나이며, 현재 결정적인 해법이 없는 상태이다. 물리학자들의 주장은 실제 정보손실이 일어난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주장은 양자역학을 포함한 현재의 물리학에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극히 급진적인 것으로 호킹에 의해 대표된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보다 보수적인 두 번째 주장을 선호하며, 현재의 물리학 체계 내에서 이를 설명하려고 한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제안된 설명 중 하나는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어떠한 잔여물이 남는다는 소위 잔여물 모형(remnant model)이다. 전하를 갖는 블랙홀인 경우, 호킹 복사가 일어난 후에 마지막 상태는 아마도 BPS 상태의 안정된 블랙홀일 것이다. 그러나 슈바르츠실드 형태의 블랙홀인 경우는 질량만을 갖고 전하는 없는 블랙홀이어서 그 잔여물이 무엇이 될지 불분명하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호킹 복사가 실제로는 완전히 마구잡이인 열적 복사가 아니며, 호킹 복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정보가 블랙홀로부터 빠져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견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아직 실제 직접적인 계산으로 제시되지 못한 상태이다. 다만, 끈 이론에서 BPS 상태에 가까운 블랙홀의 호킹 복사 계산에서 흑체 복사와는 다른 형태의 복사 분포를 얻어냄으로서 그 가능성은 엿볼 수 있었다.
비록 특정한 경우로 제한되어 있지만 끈 이론을 통한 블랙홀 엔트로피에 대한 미시적인 이해는 최근 6-7년간의 끈 이론의 소위 2차 혁명기간 중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로서 끈 이론이 성공적인 양자중력이론이 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할 것이다. 현존하는 이론물리학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 중 하나인 위튼(Witten)은 어떤 인터뷰에서 그가 연구활동한 시기에 나온 이론물리학의 결과들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들어달라는 질문에 '끈 이론이 중력을 포함한다'는 결과를 들었다. 20세기 초반에 나온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인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의 성공적인 결합은 21세기에 접어든 현재에도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으며 이는 최근의 관측 천체 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근본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측면에서 점점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블랙홀에 대한 끈 이론을 통한 이해는 완전한 양자중력 이론으로서의 끈 이론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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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 (KAIST) 이학박사 (입자이론물리학) (1995)로서 서강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1995-96), 서울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1996-98)을 거쳐 현재 고등과학원 (KIAS) 물리학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현승준 박사는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h. D(1991)로서 연세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1992-96), 경희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1996-98), 고등과학원 조교수급 연구원(1998-2001), 서울대학교 BK21 계약조교수(2001)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