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일기 소감문
하느님의 선물을 미리 알았더라면!
현리성당 최점희 루치아
지난해 12월 2일 창세기를 읽으며 시작한 성경통독일기. 그날 제 마음속에 와 닿은 말씀은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창세4,6-7)였다.
나도 카인처럼 화를 참지 못하는 죄악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음이 아닐까? 마음속으로 울며 하느님 보기에 너무 부끄러워 숨어들고 싶었던 첫날이었습니다. ‘제 탓이오’를 입으로 외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선 늘 남을 탓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소스라치게 놀랐던 날이었습니다.
매일 말씀의 양식을 찾아 성경을 넘긴지 어느덧 40주간에 이르러 ‘미카서’를 읽으며 소감문을 쓰게 된 오늘, 와 닿은 하느님 말씀.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6,8)
내리는 빗줄기에도,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하느님의 숨결은 머물고 있고, 분노와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 속에서도 내 안에 함께 머물러 계신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에서 달디 단 만나를 본다. 뜨거운 볕 아래 익어가는 과일에서 달콤한 감로수를 맛본다. 아무리 봐도 밉기만 한 사람을 만나는 곳에서는 예수님의 가시관을 만난다.
말씀은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되기도 하고, 슬퍼하는 내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무언가 때문에 슬퍼질 때, 무언가 때문에 어깨가 처질 때,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라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 하느님께서 주신 이토록 귀한 선물을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봉사만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미사 때 보고 듣는 말씀이 전부인 때가 있었다. 세례 받은 지 25년이 가까워지건만 거두어진 결실이 없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3년에 걸쳐 성서백주간 공부했고, 또 3년이나 걸려서 성경 필사하였고, 또 이제 성경통독일기를 40주간까지에 다다른 지금, 참 아쉽고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성경을 열심히 읽었더라면 참 좋았을걸! 머릿속에 쏙쏙 박히는 그런 때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지금은 눈으로 읽지만 머리까지 당도하기 전에 마음에서 머문다. 무화과나무 아래 서있는 나타나엘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의 신앙생활을 위해 말씀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 굳건한 허리띠를 만들어 동여매야 하리라.
길가에 피어있는 수많은 꽃들을 보노라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저절로 공경과 찬미를 드리게 된다. 말씀을 알고 바라보는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닭의장풀’의 푸른 자줏빛, ‘너도송이’의 수줍은 분홍빛, ‘개여뀌’의 겸손한 붉은 빛, ‘마타리’의 환한 노란빛, ‘궁궁이’의 순박한 흰빛, ‘쑥부쟁이’의 보랏빛. 그토록 아름다운 색들의 향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살아있는 말씀을 만난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40,6-8)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는 곳에는 윙윙대는 벌과 나비들이 많다. 향기를 알고 찾아드는 나비처럼, 달고 단 성경 속 말씀의 향내를 찾아 눈과 마음을 모아 힘차게 날갯짓 하는 한 마리 나비가 되고 싶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예로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