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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모후산(母后山. 918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12월 28일 인시(寅時) 말(末)에 일어나니 天地는 어둑 어둑한데 날씨는 포근하고도 고요하여서 동남방에 샛별이 고요의 어둠을 밝혀 주신다. 이것 저것 챙겨서 반고개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아직은 남산님들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후 2~3분 간격으로 이미자님, 홍현문님, 안언니 등이 도착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간의 안부를 여쭙니다. 능선(신동승)님에게 전화로 연락하면서 10여 분을 기다리니 반월당에서 좀 늦게 출발했다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도착하신다.
연하여 서남시장, 죽전사거리, 칠곡IC에서 최종출발하여(40명) 현풍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朝飯)을 듭니다. 년말(年末)이라 그런지 평소 주말답지 않게 넓은 광장이 한산(閑散) 하여서 을씨년 스럽기 까지 합니다.
차 내에서 간단한 진행을 마치고 신나게 달리는데~ 새로 가입하신 김종갑님, 박현숙님, 이원우님의 인사말씀과 아울러 노래로 화답을 해 오신다. 남지와 칠서를 지나 함안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줄곧 내달아 진주, 하동, 순천을 지나 주암IC에서 다시 15번 18번 국도를 따라드니 구불~ 구불~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지나 ‘유마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계는 11시30분을 조금 지나있다.
늦은 시간이라 준비운동 없이 유마사(維摩寺) 입구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합니다. 오늘따라 “남산산악회” 풀래카드(placard)를 펼치고(김종갑님 찬조)서 기념사진을 찍으시니, 남산의 위상이 한결 더 높아진 느낌이 듭니다.
감사를 드리면서~ ‘유마사’는 등산후에 답사하기로 하고 서둘러 “용문재”로 오름니다. 등산로는 잘 닦여져 있어 도로에 가깝고 절 주변에는 ‘비자나무’를 많이도 심어 놓았다. 개울따라 얼마를 오르니 계곡을 가로질러 ‘무지개 나무다리’가 놓여져서 걷기에도 한결 수월하고 주변 경관에도 잘 어울림니다.
산행길 옆으로는 녹차나무를 좌 우로 심어 놓아 싱그러움을 더 해주고, 간혹 옛날 “숯가마터”를 복원 해 놓아서 옛 선조님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으며, 또 적당한 곳에 소박한 ‘사각정자’가 세워져 있어 잠시 잠시 쉬어 갑니다.
날씨가 얼마나 포근하고 맑은지~ 오를수록 초겨울에 나린눈이 녹아내려 등산로는 질척~ 질척~ 걷기가 많이도 불편합니다. 오늘도 디카맨 김해진님, 김종갑님, 황고문님 등은 사진 찍기에 분주하시고 산이름(母后山)에서 주는 푸근함 보다는 돌너덜이 어찌나 많은지 걷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슴니다.
도란 도란 지난날의 추억담을 나누면서 한시간 여를 올라 “용문재”에 오르니, 능선에는 “모노레일” 설치공사로 아름다운 대자연이 많이도 훼손되어 있도다. 모후산 정상에 “돔형식”의 “천문대” 건설에 자재를 운반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항구적인 관광목적이 있는 것인지 짐작키 어렵슴니다.
개발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전 국토가 무차별적으로 훼손되고 있으니... 백년대계(百年大計)로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물려줄 아름다운 저 江山을 잘 보존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의 사명일진데~ 관계당국에 당부드리노니... 부디~ 아름다운 조국의 山河를 잘 가꾸시고 훼손을 최소화 하소서!
새로난 산길은 경사가 심하고 언땅이 녹아서 질척 질척 하여 걷기가 힘들어서 다시 등산로를 따라 오름니다. 8부능선 쯤 올랐을까? 그 높은 곳에 묘(墓) 한기가 모셔져 있다.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봐도 그리 좋은 길지(吉地)도 아니건만 어찌 이 높은 곳까지 옮겨 모셨는지~ 참으로 후손들의 그 정성이 지극합니다 그려!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져서 서북방쪽으로 저만큼 눈 덮인 무등산 일대의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오늘따라 시야도 꽤 넓고 멀어서 ‘호남정맥’의 연봉들이 이어져 달리는 모습이 참으로 장엄하게 다가옵니다!
그럭저럭 정상이 보이는 바로아래 ‘천문대’에 도착하여서 모두들 시장타(14:05) 하여 건물옆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드시는데, 따사로운 겨울 햇볕을 받으며 도란 도란 밥맛도 좋슴니다.
점심후 서부장님이 나눠 주시는 차를 마시며 충분한 휴식을 한 후, 정상에 올라 모두들 모후산(母后山. 918m) 표석(標石)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잠시 사방을 조망(眺望)합니다.
이곳 ‘모후산’은 호남정맥의 담양군 연산 부근에서 동남쪽으로 작은 지맥이 흘러 나와 꾀꼬리봉, 기우산, 차일봉을 거쳐 백아산(금년 2월 시산제 모심)에 이르고, 다시 매봉, 밤실산, 운월산을 지나 모후산에 이르며 그 잔여지맥은 매봉산(497m)을 거쳐 동복천(同福川)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통명지맥이라 한다.
연하여 서, 남, 동을 감싸고 도는 ‘호남정맥(湖南正脈)’에는 서북쪽에 무등산, 서남방에 가지산, 제암산, 사자산, 동남방의 존제산, 조계산, 동쪽으로 광양의 백운산, 쫓비산, 망덕산이 빙~ 둘러져 있어 마치 거대한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참으로 장엄하고도 푸근하게 느껴집니다.
아울러 동북쪽으로 저 멀리 지리산 일대와 장수군의 장안산, 팔공산, 진안군의 마이산 일대에서 발원한 산천수(山川水)들이 골골이 모이고 합수(合水)하여 유려(流麗)한 섬진강으로 흘러드시니... 강산수려(江山秀麗) 합니다!
천재박덕(淺才薄德)한 이 사람은 2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한생을 그리던 어머니를 36년만에 이곳(母后山)에서 재회(再會)를 하시니 감회가 새롭슴니다. 96년에 창설한 남산산악회에 20여 년을 몸담고 등산 해 오면서, 오고 간 인사들은 또 얼마며~ 알게 모르게 많은 님들에게 누(累)가 되지는 않았는지 염려되고 또 염려 됩니다.
그저 ‘山이 좋아 산에서 쉬고(휴:休:사람이 나무곁에서 쉼), 나무(我無:아무:無我:내가 없슴)’가 많은 산에서 “내가 없다”는 고금(古今)의 진리를 공부 하면서... 지난 세월을 모든님들과 더불어 山行 해 왔슴니다.
“일체(一切)를 얻기 위해서는 一切를 놓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바로 山에서 또 나무(我無:無我)에서 깨달으면서... 이제 일체(一切) 방하착(放下着:모든 것을 내려놓음)하고 피안(彼岸)의 세계로 떠남니다.
눈에 삼삼 귀에 쟁쟁 그리운 님들이시여!
오고 가는 인연속에 인정이 따사롭구나
이생에 못다한 인연 내생에나 다시 보세!
정상 표석(標石) 후면에 모후산은 본래 “나복산(蘿葍山)”이라 했는데, 고려 공민왕(恭愍王:1351~1374) 10년(1361)에 홍건적의 난을 피해 태후(太后:명덕왕후)를 모시고 피난한 곳이어서 그 이후 “母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피난온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인삼을 재배하여 “고려인삼(高麗人蔘)”의 시배지(始培地)가 되었다고 한다.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게봉’으로 출발합니다. 집게봉 가는 길은 잔설(殘雪)이 많이도 붙어 있어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용문재’로 되돌아 하산 하시고, 마지막 돌격대원 5명(필자를 비롯하여 황고문님, 서부장님, 안언니, 김해진님)만이 용감하게 출발합니다.
모두들 아이젠(독 Eisen)을 착용하고 경사가 심한 등산로를 조심 조심 10여 분을 나려오니, 설빙(雪氷)은 녹아 있고 생각보다 산행길이 훨씬 수월합니다. 점심후라 배도 든든하고 날씨도 포근하여 겨울등산 치고는 댓길(大吉)입니다 그려!
한참을 신나게 달려 선두와 후미가 보이지 않으시니, 꼬추까루! 꼬추까루! 하시면서 노익장(서경철.78)님의 목소리가 온 산천을 쩌~렁 쩌~렁 울림니다. 중봉에서 얼마를 기다려 다시 합류하여 하산 여부를 여쭈니 “집게봉”까지 가자신다.
다시 종종 걸음으로 내달아 집게봉에서 쉬고 있으니, 꼬추까루! 꼬추까루! 山 구호가 힘차게 들려 옵니다. 필자도 이에 응대하면서 한참을 쉬고 있으니 안언니, 황고문님, 꼬추까루님, 매산(김해진)님이 차례로 도착하셔서 “집게봉(767m)"의 이정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합니다.
이 곳에도 이름모를 고혼이 잠들어 계시는데, 비록 산 정상에 모시긴 했으나 약간은 봉분쪽으로 경사가 져 있어 겉물(빗물)이 고여 들겠슴니다. 주위의 형국도 그리 좋지 않은 곳에 어찌 이리 힘들게 모셨는지... 안타까운 맘으로 하산합니다.
20여 분을 신나게 나려오다가 우연찮게 나무지팡이를 하나 얻어 짚고 나려오니 한결 안전합니다 그려! 그럭 저럭 “유마사(維摩寺)”에 도착하여 이곳 저곳 도량(道場)을 답사 하는데, 박총무님과 홍현문님의 전화가 교대로 빗발침니다!
산령각(山靈閣)과 대웅전(大雄殿)에 들어 간단한 예를 드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主山)은 미려(美麗)하고, 백호(白虎)도 적당하며, 청룡(靑龍)은 우람하고도 장엄하게 뻗고 휘감아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대단한 길지(吉地)임을 알겠슴니다.
비구니가 상주하는 도량이라 유별히 정갈하고 아늑하여 정적(靜寂)이 감돕니다. 안내문에 ‘유마사(維摩寺)’는 백제 무왕 28년(627) 당나라의 고관 이었던 “유마운(維摩雲) 거사(居士)”와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 하였다고 하며, 그 뒤를 이어 많은 선사(禪師)가 나타나 한 때는 8암자(귀정암, 사자암, 금릉암, 은적암, 운성암, 동암, 오미암, 납굴암)가 있었다고 한다.
부속건물로는 대웅전, 산령각, 극락전, 명부전, 염왕전, 응진당, 향당, 봉향각 등이 있으며, 오늘날에는 승가대학을 설립 준비에 있다고 한다. 또 산세가 험하고 요충지인 탓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 하여 활동하였으며, 한편으로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옛 전각(殿閣)은 모두 소각되고 현존건물은 근세에 지은 것이라 한다.
서둘러 도량을 걸어 나오니 여기 저기 “법구경(法句經)”의 구절들이 나무에 걸려 있어 가슴이 뭉클해 지며, 해탈교(解脫橋)를 건너 좌 우에는 고승대덕님의 부도탑(浮屠塔)이 몇기 모셔져 있다.
그 중에 “유마사 해련부도(維摩寺 海蓮浮屠:보물 제1116호)”는 팔각지대석 위에 작은 팔각기둥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연꽃받침을 얹었으며, 그 위에 다시 팔각원당형의 돌을 얹고 팔각지붕돌을 얹어 놓았다. ‘해련스님’의 부도로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몇 걸음을 더 걸어 나오니 일주문은 아직 단청도 하지 않고 현판(懸板)도 달지 않았다. 그 옆으로 개울을 가로질러 거대한 돌다리가 놓여 있는데, “화순군향토문화유산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 이 다리는 유마운 거사의 딸 보안이 치마폭에 싸서 옮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넓이가 315cm, 세로 길이가 약 510cm, 두께가 55cm 이고, 좌측 상단에 “維摩洞天普安橋(유마동천보안교)” 우측 상단에는 “觀世音菩薩 梁蓮浩(관세음보살 양연호)”라고 새겨져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식별이 쉽지 않다.
허허(虛虛)로운 맘으로 산문(山門)을 나서며 법구경(法句經) 한구절을 상기 해 봅니다.
마치 지붕이 잘 덮인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
수양을 쌓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법구경 14편)
단기 4347년(서기 2014년)12월 28일
전남 화순군 모후산(母后山 918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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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2월28일 '모후산' 등산에 동참하신(40명)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아울러 당일 진행에 수고하신 벽송대장님을 비롯하여, 능선부대장님, 윤갑용부회장님,
박총무님, 황고문님 등 많은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이제 갑오년도 저물어 갑니다~ 모든님들! 다가오는 을미신년(2015년)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 하시길 바라며, 가내 만복을 빌겠슴니다.
갑오년(2014)이 서서히 저물기 전에 모후산 등정은 감회가 남 다르고
모두 다 정상을 향하여 오르고 ... 마무리를 멋있게 하고 오니
을미년(2015)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기를 기원 드림니다.
황고문님! 지난 2년간 많은 수고를 하셨으며,
이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다사다난 했던 갑오년을 보내면서~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겨 봅니다!
다가오는 乙未新年에는 더욱 편안하시고~
가내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남산을 든든이 지켜주신 고회장님의 은덕에 감사드리며,
남산 역사에 길이남을 산행기 아름다운 추억이 될것입니다.
그간 남산을 이끌어 주신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벽송대장님이 다녀 가셨군요!
지난 2년동안 벽송님의 도움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슴니다.
덕분에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이제 평회원으로 돌아와 조용히~
보이지 않게 남산님들을 돕겠슴니다~
을미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빌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