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카페정보
원불교 중국교구(부속 베이징교당)
 
 
 
 

친구 카페

 
  1. 절수양
 
카페 게시글
여행정보 스크랩 화산 및 서안 여행 (1) - 서안(西安)으로 출발
도원 추천 0 조회 133 12.01.21 09: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추석 (중국은 중추절)의 연휴 기한을 이용하여 화산과 서안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여행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9월 9일(금) : 북경 서역에서 3시 52분 출발의 T41차의 열차를 탐(6인용 침대 열차)

9월 10일(토) : 새벽 5시경에 도착하여 근처에서 아침식사

                    버스로 이동하여 화산에 도착

                    케이블카를 타고 화산의 봉우리 입구까지 등반

                    하산 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시안의 저녁시간 9시에 실시된 분수쑈를 감상

                    시안 내의 한국인 식당에서 저녁

9월 11일(일) : 병마용 --> 지하궁전 --> 화청지 를 구경하고 시안역에서 6시 30분 북경 출발 기차

9월 12일(월) : 아침 6시경 북경 도착

 

거의 12시간 이상의 기차 여행을 하여하 하는 일정 상 실질적으로 화산에서 하루, 시안에서 하루, 합하여 이틀 코스로 구경을 다녀온 것 입니다.

중국 5대 악산(중국의 오악은 동쪽의 타이산(泰山, 산둥성, 1545 m),  서쪽에  화산(?山, 산시성, 1997 m), 남쪽에 헝산(衡山, 후난성, 1290 m), 북쪽에 헝산(恒山, 산시성, 2017 m), 남쪽에 쑹산(嵩山, 허난성, 1494 m)을 가르킨다)의 하나인 화산을 오르기 위하여 많은 힘이 들었고, 여행 기한 동안 내내 비가 와서 화산에 오르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지 못할 것 같은 우려는 산아래 펼쳐진 구름에 의하여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비가 잘 오지 않는다는 서안에서 여행 내내 비를 맞으며 구경하였던 기억은 또 다른 중국 여행의 추억을 남겨 주기에 충분 하였다.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면서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거대한 중국 문화 유산 들에 대하여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이와 반대로 그 시대의 황제의 막강한 권력와 위력을 다시금 느낄 수가 있었다.

중국에서 가보고 싶었던 서안을 보고 오면서 중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유산들이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기회가 되면 이들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들을 모두 돌아보는 여행을 떠나보고자 다짐을 해 보았다.

이번 서안 여행은 중국의 5대 악산에서 가장 험하다는 화산과 중국의 문화재중 가장 거대하고 웅장한 문화재를 남긴 진시황의 정교한 병마들을 보면서 중국의 거대한 땅과 오랜 동안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문화재들을 남긴 중국의  문화 현장을 확인한 여행 이었다는 생각이다.

저 서안의 땅에 묻혀 있을 또 하나의 거대한 진시황릉이 공개 된다면 이 또한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안에 도착하여 역사를 빠져 나오자 마자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역사 근처의 건물에 검은 연기가 치솟고 소방차들이 운집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은 잡혔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하도 넓은 땅이라 3초 마다 이런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이다.

 

 

 

아울러, 서안은 오랜동안 거의 10개 이상의 왕조의 수도 역활을 해왔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안역에 내려보니 옛고도의 도시답게 옛성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이들을 보수하기 위한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 이 옛성에 올라 이를 둘러보는 관광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몇장의 사진으로 나마 아쉬움을 먼저 달래본다.

 

 

 

 

 

 

 

서안역 주변에 세워져 있는 옛 성곽들의 모습이다.

 

 

 

[여행정보]

서안((西安(Xian))

 

중국 산시성의 성도. 한, 위, 서진, 수, 당시대에 국도 장안성이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섬서앙소문화의 중심으로 대표적 유적인 반파유적은 시의 동쪽교외의 산수하반(産手河畔)에 있음.

서주시대의 유적은 시의 서편 풍하하반에 있고, 서안의 객성장에서 장가파는 문왕의 풍경의 적(豊京의 跡), 동안의 보도촌은 무왕의 호경의 적(鎬京의 跡)이라고 추정함.

주의 동천후는 진의 지배하에 들어 시황제는 위하북안 국도 함양성과는 별도로, 이 땅에 광대한 대규모의 아방궁을 비롯, 수많은 건축을 했다.

전한 고조는 현재 장안의 서북에 장안성(長安城[漢])을 쌓아 B.C. 200년 낙양(임당)에서 천도함.

이후 위, 진의 수도로서 서경이라 불림.

북위가 분열한 후 서위가 수도를 두었고 다음 북주로 이어졌다.

수는 전국통일이 이루어진 문제의 개황(581-600) 초년에, 한의 장안성 동남방에 신도를 건설, 대흥성이라 불렀고 당은 다시 이를 장안성이라 함. 태종 때 대명궁, 현종 때 흥경궁을 짓고 인구 100만을 넘는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가 됨.

당말에 와서 황폐되고 천우원년(904)에는 낙양천도를 꾀하여 장안의 주요건축을 모조리 해체, 재료를 수로로 낙양에 운반해서 장안성은 순식간에 폐허가 됨.

명대 초(14세기 후반), 당대의 황성전역과 궁성남반, 양자의 동쪽 소지역을 성벽으로 둘러싸서 현재의 서안성이 됨. 그 규모는 당대 외곽성의 6분의 1에 불과함.

당대의 유구로는 자은사 대안탑, 추복사 소안탑, 향적사탑, 흥교사 현장탑이 있음. 근래에 다시 대명궁, 홍경궁, 청룡사적도 발굴됨.

전한의 제릉으로는 문제의 패릉, 선제의 두릉이 동남 교외에, 기타의 구릉은 위수 북쪽의 구릉에 산재함. 무제의 무릉이 가장 크고 원제의 위릉은 이에 버금감.

당대의 제릉, 소종의 화릉을 제외한 18릉이 모두 위수 북안에 있다. 헌릉, 장릉, 단릉은 평지에 축조됐으나 다른 15릉은 산위에 지어진 능임. 묘전(前) 신도(神道)의 좌우에는 석인, 석마, 석사자가 서고 태종 소릉의 육준과 고종 · 측천무후의 건릉에 있는 석상이 유명. 근래에 건릉배총의 영태공주묘, 장회태자묘 등이 발굴됨. 그외 서안 주변의 2200여기의 수 · 당묘에서 200여점의 묘지(墓誌)와 삼채명기, 벽화가 발견됨(⇒당대의 미술).

성내 남쪽에는 구공자묘를 이용한 산시성박물관이 있어 출토문물의 보관 진열에 힘쓰고 있고, 그 일부에 비와 묘지를 많이 소장하는 서안비림이 있고 반파유적의 촌락지도 동박물관의 관할하에 있음.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