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의 역사 일본에서 찾는 것은 잘못
한국에서 어묵(生鮮熟片)을 오뎅(御田おでん)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어묵이 일본에서 유래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우선 오뎅으로 불리는 어묵에 대해 그 유래 등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뎅(御田おでん)은 어묵이 아니라 탕 자체를 부르는 말로 냄비요리의 하나다. 일본어로 '오뎅'이라는 말은 원래 '덴가쿠(田楽)'의 첫 글자에 접두사 오(お)가 붙은 말이다. 존경·공손·친숙 등의 어감을 가진 접두사 ‘오’를 음식물에 붙이는 어법은 주로 여성과 아이의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먹을 것이 귀했던 과거가 잠재의식으로 남아있음을 보여 준다. 덴가쿠(田楽)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무로마치(室町1338∼1573)시대 모내기철에 행하던 놀이의 하나로 죽마를 타고 그 위에서 추던 춤이요, 다른 하나는 꼬챙이에 끼운 두부에 된장을 발라 구운 ‘두부된장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후자의 이름은 그 모양이 전자인 덴가쿠 춤의 모양을 연상케 한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처음에는 '두부 된장 구이(田楽)'를 의미하던 것이 에도시대 중기인 18세기에는 덴카쿠(田楽)를 국물에 넣어 함께 끓이는 형태의 요리가 처음으로 나타났고 에도시대 말기에는 오뎅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었다. 흰살 생선을 잘게 갈아 약간의 밀가루나 전분 등을 넣어 뭉쳐서 튀기거나 삶거나 쪄서 먹는"어묵(고기떡)"은 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라고 한다.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는 『古史記 (712년)』과 『日本書紀 (720년)』에 등장하는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한을 정벌할 때 으깬 생선살을 꼬치에 끼워 구워 먹은 것이 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의 시초라는데, 사실 신공황후(神功皇后)는 실존(實存)하지 않은 가공의 인물이다. 일본은 외국에서 유입된 문화를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떨어지면 픽션(Fiction)화 시켜 이를 자기들 것으로 만든다.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의하여 역사를 가공한다. 그러므로 일본의『고사기(古史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빙성이 희박해 진다.현재의 카마보코(蒲鉾かまぼこ)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을 무로마치(室町)시대(1338~1573)로 선종(禪宗)의 영향 아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처음에는 메기 같은 생선살을 으깨서 둥글게 빚어 대 꼬치에 끼워 구워먹었는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부터 나무 판에 둥글게 쌓아 구워 먹기 시작했으며, 생선살을 쪄 먹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년~1867년)부터다.
결국 카마보코(蒲鉾かまぼこ)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와 에도시대(江戶時代)에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와 비슷한 것이 또 있는데, 가운데가 뻥 뚫린 대나무 대롱 모양의 '치쿠와(竹輪)'와 반죽한 생선살을 반달 모양으로 썬 한밴(半片, はんぺん)이라는 것이다. 상어 등의 살이나 어육에 야마노이모(참마), 녹말 등을 더해 섞어서 갈아 으깬 다음, 네모 모양이나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찌거나 삶거나 한 식품인데, 카마보코의 한 종류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한밴(半片, はんぺん)은 대개 희고 부드럽다. 중국에서는 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를 위완(魚丸)이라고 부른다.조선에는 1700년대 역관(譯官)이었던 이표(李杓)가 1740년에 쓴 요리책 『송문사설(松聞事說)』처음 등장하는데, 일본에서 카마보코를 먹어보고 돌아와 일본 이름 그대로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고 표기했는데, 일본의 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 )와는 만드는 법이 다르다. 가마보곶(可麻甫串)은 물고기 살을 얇게 저민 후 돼지고기 소고기 해삼 파 고추 등을 다져 만든 소를 넣어 두루마리 말듯이 둥글게 말아 삶아낸 것을 썰어 먹는다... 그리고, 조선에는 이미 숙종 45 (1719)년의 기록인 『진연의궤(進宴儀軌)』에는 생선숙편(生鮮熟片)이라는 찬품이 나오는데, 재료는 대생선 3미, 간장 3홉, 녹말 1되 5홉, 참기름 3홉, 잣 5작 이라고 기록 되어 있다. 생선과 녹말의 구성 비율로 보았을 때, 생선 으깬 것에 녹말·참기름·간장을 넣고 쪄낸 다음 이것을 편으로 썰어서 잣가루를 넣은 간장에 찍어 먹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생선어묵이다. 이 생선숙편을 후일 『진찬의궤(進饌儀軌1829)』, 『진연의궤(進宴儀軌1901)』 , 『진연의궤(進宴儀軌1902) 』등에 "생선문주(生鮮紋珠) "라는 명칭으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일본의 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이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생선숙편(生鮮熟片), 생선문주(生鮮紋珠)라는 음식이 있었으며, 조선은 생선숙편(生鮮熟片)이외에도 끓는 물에 익혀낸 음식을 수육(水肉), 숙육(熟肉)이라 하고, 압착시켜 수분이나 지방을 제거한 편육을 숙편(熟片)이라 하였으며, 족병(足餠), 우족교(牛足膠), 교병(膠餠), 우두병(牛豆餠), 연육과 돼지껍질을 고아서 묵처럼 엉기게 하여 마치 맑은 수정 같다 하여 붙인 이름 ‘저피수정회법(猪皮水晶膾法)’등이 있었다. 조선은 이미 생선뿐만 아니라 소, 돼지, 꿩 등을 이용해 일본의 어묵과 같은 숙편(熟片)을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다.1927년 무렵 우미관 앞에 일본 오뎅집과 우동집이 들어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시대 외식문화의 하나가 오뎅집이었다. 그런데 중국음식이나 일본음식, 양식집은 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은 반면 오뎅집은 술집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1935년 동아일보에 오뎅집, 선술집, 내외주점도 카페에 준하게 새벽 1시 이후 영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분명 오뎅집은 술집으로 분류되고 있다. 1940년대 환공식품이 부산 부평동 사거리에서 어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부산 부평동(자갈치시장 건너편)을 중심으로, 시장이나 포장마차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부평동 오뎅할매부터 시작한 부산 효성어묵, 부산 대원어묵, 부산어묵(1974년), 남부식품, 선우어묵 등이 있다. 따라서 자연히 부산이 어묵의 도입지이자 대명사가 되었고 나중에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 시작한다. 기업 제품으로는 1985년 삼호 F&G에서 만들었다. 이때 "어묵"이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 1990년대 초에 소위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부산어묵은 앞의 부산어묵과는 달리 길쭉한 모양의 어묵을 부르는 말이 되었다.
위의 내용은 김영복의 맛있는 칼럼에서 발췌하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