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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완도 86코스 제3부
청해진유적지-장보고공원-죽청마을-완도 죽청농공단지-신기해안-완도해조류센터
20220726
제2부에서 이어짐
1.해상왕 청해진의 장보고를 생각하다
지칠 대로 지쳤다. 그렇지만 남파랑길 86코스의 남은 구간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 집중력은 희미해지고, 주어진 시각인 오후 6시 40분까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오직 제 시각에 도착하려는 일념으로 들러보고 싶은 곳을 그냥 통과하니 호기심은 떨어지고 몸은 더욱 피곤해져 힘겹게 걸을 뿐이다.
장좌리 해안의 세 그루의 보호수는, 주민들이 보호해야 하는 나무인 보호수가 아니라 나무들이 주민들을 지켜주는 보호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년이 넘는 당산목인 느티나무와 340년이 넘는 팽나무 2그루는 장좌리마을을 지켜주며 의연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기품이 있었다. 장좌리마을 주민들은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가장 근원적인 종교 형태인 주술적 기원의 대상으로 삼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들은 이 나무에 풍요한 삶의 꿈을 빌며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희망을 품으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바위와 나무는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기원의 대상인 것 같다. 해파랑길,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그러한 상징이 되는 바위와 나무를 많이 만났었다.
또한 청해진이 설치된 828년 이후 주민들과 병사 가족들의 식수와 빨래터로 이용되었다는 장군샘은 마을의 연륜을 말해 주는 듯하다. 장군샘 앞 집에서 담소를 나누던 아주머니들께 이 물을 마셔도 되는지 질문하니 마셔도 된다고 하여 장군샘의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셨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솟아오른 물은 몸 속으로 내려간다. 긴 역사의 물줄기가 몸에 반응한다. 아주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적지근하지도 않았다. 비교적 차가운 물이라는 것은 샘에서 물이 계속 솟아오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도 이 정도의 차가움을 유지한다면 샘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통일신라시대의 어느 길손도 이 시대의 길손처럼 이 물을 마셨을 것이다. 평화를 꿈꾸는 마음으로, 몸으로 퍼지는 물에 반응하여 해상왕 장보고의 정신을 기렸을 것이다.
장좌리해안길은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유적지와 장보고를 기리는 곳으로 조성되어 있다. 완도의 옛 이름은 조음도(助音島)였다고 한다. 장보고가 역적으로 몰려 염장에게 암살된 뒤 이 지역민들은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되었는데, 그들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청해진 이야기가 나오면 역적의 땅 조음도 출신이라는 것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빙그레 웃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 '빙그레 웃는 모양' 완莞, '섬' 도島를 써서 완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도(將島) 청해진(淸海鎭) 유적지를 스쳐간다. 시간에 쫓기고 몸이 지쳐서 장도를 바라만 보고 지나친다. 장도 청해진 유적지는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바다 속의 통나무열이 처음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시대를 측정하니 장보고가 활약한 시대와 일치하고 발굴조사 결과 성터와 우물 등 청해진 유적임을 입증하는 유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보고(張保皐, ?~841)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흥덕왕3년(828) 서남 해안의 중심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바닷길을 개척하였으며,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실시하였다. 어느 사학자는 청해진을 동아시아 바다의 해양경찰대이자 현대적 의미의 종합상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한 취지를 살려 완도군에서는 지난해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을 장좌리해안 끝 자리에 개관하였다.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이 무엇일까? 완도군과 (사)장보고글로벌재단은 2016년부터 장보고한상(張保皐韓商) 어워드(약칭 장한상)를 제정하여 장한상(張韓賞)을 시상해 왔다고 한다. 장한상(張韓賞)은 9세기 초에 장보고 청해진 대사가 한· 중· 일 등 해상무역을 독점하고 동서교역을 주도했던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의 재외동포경제인 가운데 거주국의 한인사회 발전과 한민족 정체성 함양에 앞장을 선 한상(韓商)을 21세기 장보고로 인증하는 상이라고 한다.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장한상 수상자들의 전시 공간이다. 이들이 낮선 이국 땅으로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했던 도전 및 개척정신과 글로벌 성공비결과 노하우, 리더십 등 성공스토리를 전시하여 청소년들이 미래의 장보고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인재 양성소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큰 뜻을 지닌 곳이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이다.
장좌리해안에서는 완도항을 중심으로 한 완도의 동쪽이 분명히 조망된다.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장보고대교, 완도항과 완도타워, 죽청리 언덕에 세워진 장보고동상 등이 모두 한눈에 조망된다. 이 풍경을 오봉산 상왕봉이 내려보고 있다. 지난 시절 완도의 상왕산 산봉들을 산행하면서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전체 위치 판별 감각이 부족하여 오직 풍경에 감탄만 하였는데 지금 다시 오봉산 산행을 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장좌리해안을 걸어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장보고 사당 청해사,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 해양생태전시관까지 오면 해안길은 이어지지 않고 청해진로로 나간다. 만약 장좌리해안이 죽청리해안과 가용리해안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남파랑길은 장좌리해안에서 가용리해안으로 나가 신지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신기해안을 거쳐 완도 해변공원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안에 해상보도교가 건설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해안이 연결되지 않아 남파랑길 86코스는 청해진로로 나가 완도읍의 죽청리와 가용리 거리를 돌아서 신기해안으로 나오게 되어 25km나 되는 거리가 된다. 완도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걸어야 되는 것이 맞다. 이렇게 걸어야 완도 지역의 마을과 지형을 분명히 알게 된다.
남파랑길은 완도읍 장좌리에서 청해진로로 나가 국도13호선 완도로의 지하통로를 통하여 죽청마을로 들어가 죽청마을을 돌아나온다. 죽청마을 언덕에 세워진 장보고동상을 보기 위해서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장보고동상 갈림목 죽청마을 언덕을 가로질러 내려가서 다시 국도13호선 완도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죽청농공단지와 완도농공단지를 거쳐 지방도77번 아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완도로교차로를 지나 국도13호선 장보고대로로 나온다. 여기까지가 지루한 듯하지만 발견의 기쁨이 크다. 완도의 명산 오봉산(상왕산) 아래의 지형을 살필 수 있고, 이 길을 걸으며 죽청마을 일대가 장보고의 본영지였으며 장보고 휘하 장수들의 무술훈련장과 장군샘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시대 이래 가장 품격 있는 마을은 배움의 장소가 있는 곳인데 죽청마을에 완도향교가 있다. 완도향교는 죽청마을이 유서 깊은 곳이며 마을 주민들의 자존심을 드러내 준다.
장보고대로에서 완도항으로 직진하면 완도 해조류센터에 금방 이르지만, 남파랑길은 장보고대로에서 왼쪽 신기길로 들어가 신기해안을 거쳐 완도 해변공원으로 돌아나오는 길로 이어진다. 해안에 올망졸망한 집들이 있는 해안 신기마을은 예쁜 솔섬과 쉼터정자가 있으며 선착장이 있다. 신기 해안마을에서는 신지대교와 신지도의 서쪽 해안을 더 가까이서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지대교 북쪽 너머로는 고금도가 조망된다.
신기해안에서 언덕을 넘어서 해변공원으로 나아가면 해안에 지상 37층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쌍용건설이 공사 중인 37층 쌍용더플래티넘완도아파트가 완공되면 주변의 아파트들은 시야가 가로막히고 높이에 압도될 것 같다. 반면에 더플래티넘아파트 입주민들은 신지도와 고금도를 비롯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여러 섬들과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해남군과 강진군의 해안과 산줄기 그리고 강진만 마량을 조망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한 주민에게 물어 보았더니 분양은 고가에 벌써 끝났다고 한다.
고층아파트 공사장을 빠져나와 해변공원로1234번길로 나갔다. 완도 음식문화를 자랑하는 맛의 거리이다. 길은 완도 전복거리 입구까지 이어진다. 걸음을 중단하고 음식점으로 들어가 음식과 술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렇지만 목표는 이루어야 한다. 유혹을 물리치고 얼마 남지 않은 완도 해조류센터를 향하여 잰걸음으로 걸었다. 전복거리 입구에는 완도 바다의 주요 해산물을 홍보하는 여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특히 전복은 완도에서 전국 생산량의 80%을 차지하는데 완도 바다가 전복 생육에 적당한 수온을 유지하고 전복의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등 여러 조건이 전복 양식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완도항 해변공원으로 나가면 완도항의 중심지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동망봉의 완도타워와 남망봉, 완도 해조류센터 등 낯익고 친숙한 건물과 산봉이 피로감을 몰아낸다. 모텔거리에서 베니스모텔 앞을 지나친다. 남파랑길을 걸으며 완도항 베니스모텔을 수차례 이용하였다. 오늘도 베니스모텔이 숙박지이다. 남파랑길 탐방을 끝내고 베니스모텔에 숙박하면서 여러 추억을 쌓은 곳이다. 그래서 정답다. 정다운 완도항, 이제는 어느 정도 위치를 찾을 수 있다. 곧바로 완도 해조류센터 앞에 도착, 길고 힘겨웠던 남파랑길 86코스를 이렇게 마친다.
2.탐방 과정
제2부에서 이어짐
고금도가 길에 이어져 있는데 왼쪽에 고금도의 봉황산이 솟아 있다.
완도읍 장좌리마을의 당산나무인 느티나무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수령 560년, 높이 20m, 둘레 6.9m의 느티나무가 임진왜란 전부터 이곳에 있었으니 마을의 역사를 들려주는 듯.
왼쪽 청해진로 1333번길을 통하여 해안길로 나왔다.
완도읍 대야리 해안이 왼쪽에 있다. 건너편 고금도의 봉황산이 위치 확인의 증표가 되어 준다.
남파랑길은 장도 목교 앞에서 오른쪽 해안으로 이어진다.
쉼터정자 앞의 팽나무는 현재 수령 340년, 높이 15m, 둘레 4.2m
현재 수령 360년, 높이 15m, 둘레 4.4m. 이 나무는 마을 안에서 자연적으로 자랐으며 주민들은 이 나무를 보고 한 해의 일을 정했다. 나뭇잎 전체가 균일하게 피면 농사가 잘 되는 것은 물론 고기도 잘 잡혔으며, 새가 나무에 둥지를 틀면 마을에 좋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828년 이곳에 청해진이 설치된 이후 마을 주민과 병사 가족들의 식수와 빨래터로 사용해 온 샘터이다.
왼쪽에 사후도, 오른쪽에 고금도, 그 사이 삼단려 섬 뒤로 맨 뒤에 강진만 동쪽 해안과 산줄기가 가늠된다.
시간이 부족하여 장도에 가지 못하고 아쉽게도 그냥 통과한다.
왼쪽에 신지도 상산, 중앙에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연도교 신지대교와 그 뒤에 완도타워, 오른쪽에 장보고 동상이 있다.
중앙에 장보고 기념관, 그 왼쪽에 장보고 공원, 그 왼쪽에 완도관광정보센터와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이 있으며 그 앞에 해양생태전시관이 있다. 왼쪽에 장보고 동상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해양생태전시관 앞에서 청해진로로 나간다.
장보고 동상이 있는 곳이 완도읍 죽청리 죽청마을, 중앙 해안에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완도 죽청농공단지와 완도농공단지, 신지대교 뒤쪽이 완도읍 가용리의 신기해안, 동망봉의 완도타워와 남망봉 그리고 완도항의 주도 섬 등이 모두 조망된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과 해양생태전시관을 거쳐 청해진로로 나가 장보고 동상이 있는 죽청마을, 완도 죽청농공단지와 완도농공단지를 거쳐 가용리 신기해안으로 나간다.
오른쪽에 신지와 고금도를 잇는 연도교 장보고대교가 있다.
상산이 멋지게 솟은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연도교 장보고대교가 장도 오른쪽에 보인다.
장섬 커피&식당 뒤 왼쪽 산봉이 오봉산의 상왕봉인 듯. 상왕산이라 불렸는데 개명하여 오봉산이라 불린다.
오른쪽 끝에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 건물, 그 왼쪽 뒤에 장보고 동상, 중앙에 신지대교, 그 뒤에 완도타워가 모두 보인다.
신지도 상산 왼쪽에 고금도를 잇는 장보고대교, 오른쪽에 완도를 잇는 신지대교, 그 뒤에 동망봉의 완도탸워가 보인다.
장도목교는 만조 때 장도로 출입하기 위해 세운 해상보도교, 중앙 뒤에 고금도의 봉황산이 위치 확인의 증표가 된다.
오봉산 동쪽 아래에 자리한 장보고기념관 관람은 다음을 기약하며 통과한다.
왼쪽 뒤에 장보고의 청해진유적지가 보인다.
장보고(張保皐, ?~841)는 이곳 완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백가제해의 큰 뜻을 품고 당으로 건너가 무녕군 군중소장을 지냈다. 중국 땅 곳곳에서 해적선에 나포되어 노비로 팔려온 겨레의 참상을 목도하였다. 의협심이 남달리 강했던 장군은 홀연히 군직을 버리고 귀국하여 신라 흥덕왕 3년(828)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바다에 날뛰던 노예선을 소탕하여 비로소 동아시아 세계의 해상 질서를 바로잡았다. 신라·당·일본 등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고 3국 간의 해운 교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아라비아·페르시아의 여러 나라와도 교역하여 명실공히 해상왕국의 무역왕이 되었다.
대사의 교역 활동은 종전의 조공무역의 형태에서 벗어난 새로운 단계의 교역 형태로 나아가는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나라에 큰 공이 있어 감의군사와 진해장군이 되니 불세출의 큰 별이다. 841년 정쟁에 휘말려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마쳤으니 흠앙의 정 담을 길이 없다. 우리는 해상왕 장보고의 빛나는 해양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오대양을 무대로 삼아 해양 한국으로 발돋움 할 때이다. 바다에서 부를 창출한 그의 정신을 바탕으로 희망찬 21세기 해양대국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2001년 2월 20일
이 사자상은 제1회 장보고축제 기간 중에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대사가 활동하였던 무역항로를 한·중·일 3국의 학계인사와 대학생 등 201명의 탐사단이 '96년 5월 15일~5월 23일까지 완도군~중국 산동성 영성시~일본 이만리시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96년 5월 17일 장보고 유적인 적산 법화원이 복원되어 있는 산동성 영성시와 완도군이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상호우호의 상징물로 영성시에서 우리 군에 기증한 것으로 '평화와 안녕'을 의미하고 있다. 2001년 7월
왼쪽에 고금도, 오른쪽에 상산이 우뚝한 신지도, 왼쪽 뒤에 삼문산이 솟아 있는 조약도가 보인다.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완도군과 (사)장보고글로벌재단이 <21세기 장보고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장보고한상(張保皐韓商) 어워드(약칭 장한상)를 제정, 선정한 수상자의 성공스토리를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장한상(張韓賞)은 9세기 초에 장보고 청해진 대사가 청해진을 설진하고 서남해안에 암약하던 해적을 소탕한 뒤 한· 중· 일 등 해상무역을 독점하고 동서교역을 주도했던 불세출의 영웅을 벤치마킹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습니다. 즉,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 및 문화영토를 해외에 확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재외동포경제인 가운데 거주국의 한인사회발전과 한민족 정체성 함양에 앞장을 선 한상(韓商)을 21세기 장보고로 인증하는 상이 장한상입니다.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장한상 수상자들이 낮선 이국 땅으로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했던 도전 및 개척정신과 글로벌 성공비결과 노하우, 리더십 등 성공스토리를 전시하는 곳입니다.
이 전당 설립 목적은 이곳을 방문, 관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 등이 장한상 수상자의 성공스토리를 공유하고 미지의 꿈과 비전을 설정한 뒤 강한 동기를 부여받아서 미래의 장보고로 성장할 수 있도록 코칭하는 글로벌 인재 양성소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에서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 건물 왼쪽에 있다. 장보고 공원은 장좌리와 죽청리 일원에 위치한다.
장보고공원은 한민족 최초의 세계인이며 해양 개척의 영웅인 장보고 대사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장도 청해진유적지 맞은편에 조성한 공원으로 총면적은 329,570㎡에 달한다. 이곳에는 장보고기념관, 장보고사당 청해사, 장보고 흉상, 관광정보센터 그리고 장도를 연결하는 목교가 있으며 앞으로 법화사저 복원, 해양 영웅 테마파크 등 시설을 확장하여~~ 2010년 2월 13일 완도군수
해양생태전시관 앞에서 청해진로로 나가 위쪽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청해 현대오일뱅크를 지나 완도읍 장좌리에서 죽청리로 넘어간다. 위쪽에는 국도13호선 완도로가 뻗어 있으며, 왼쪽 뒤에 장보고 동상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국도13호선 완도로의 죽청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이어간다.
잠시 죽청교 이래 청해진로에서 장보고 동상을 바라보고 완도로 북쪽 아래의 길을 따라 이어간다.
정면에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와 그 뒤에 동망봉의 완도타워가 보인다. 남파랑길은 완도로 북쪽 아랫길을 따라간다.
완도로 북쪽 아랫길을 따라오다가 완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죽청길을 따라 죽청마을로 들어간다.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죽청길로로 들어와 죽청마을과 맨 뒤쪽의 오봉산 상왕봉 산줄기를 조망한다.
장보고 동상을 보면서 남파랑길은 죽청길65로 진입하여 이어간다.
죽청마을에 완도향교가 있다. 죽청마을은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면 교동마을이 된다.
왼쪽에 죽청교회와 오른쪽에 천막공사구조물 완도산업 건물이 보인다.
본 마을 죽청리는 상왕산에서 발원하는 불당골 계곡수가 수백수처에서 화합하여 혹직혹곡으로 흘러 깊어서 푸르게 보인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하늘을 밝게 비추고 돌아, 동쪽 죽청리 동네 가운데 큰 내천을 이루어 청해진만에 유입하여 왔다. 옛날부터 상왕산을 위시하여 불지봉, 불상봉, 불주봉의 봉우리 산맥과 산야는 청산에 비할 바가 아닌 남국선경과 녹수청산으로 하늘이 내려준 황금빛으로 황홀한 신선의 세계로서 신비스럽고 빛나는 장소로 이곳이야말로 저 먼 남국의 풍경을 자아내는 따뜻하고 만물이 소생한 긴 봄날의 동네이며,
통일신라시대 828년 흥덕왕 때 해신 해상왕 장보고의 본영지로 대평뜰(한들), 부추원, 배둥둥이. 옥담터, 옥루정, 홍살문거리, 이방촌, 장군샘, 골래미, 사정촌(사장물), 엄나무골, 양지대미, 장안, 하마비(2곳), 가래골, 구시골, 쇠죽골, 당목, 쏠포 등이 있었던 장소가 있고,
상왕봉 동쪽 아래는 불당사지(부담사지)와 천왕사지가 있었고, 우일지는 백호산맥으로 동진하여 불지봉 등 하록에 법화사유지, 내원암지가 있었으며 더 동진하여 장사암, 망대(3곳), 불주봉 아래는 마골창 비짓골이 있고 더 동진하여 은한 다음 승산(중뫼산)이 있다. 또한 중앙일지는 청룡산맥으로 천연대를 지나고 불상봉 하록에 무위사지가 있었으며, 더 정동으로 질주하다가 망대(자앧 2곳)가 있었고 이어 청해진만 쪽에 장군암 바위라는 반석암이 대소합 8개(일부 고인돌)가 있는 장군망대가 있었으니 즉 이곳이 장군백이이다. 이곳 장군백이는 장보고 휘하 장군 이창진, 이량순, 김식, 대흔, 치운 등이 검과 창 쓰는 법 또한 활 쏘는 곳으로 무술을 연마하는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도장이었고, 연습 후 목이 마르면 바로 아래에 있는 약수 샘에서 물을 마셨던 곳으로 이렇게 죽청리는 장사암과 망대, 승산은 외적을 추계하기에 천연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시대 대흥사 주지 응송 박영희 스님의 장보고전 일부
죽청교회 옆을 통과하여 청해진어린이공원으로 나왔다. 장보고동상은 죽청교회 앞을 거쳐 언덕으로 올라간다.
님피링길은 청해정 방향으로 따라가다가 고개에서 바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장군샘이 장좌리와 죽청리에 각각 있는 듯.
님피링길은 국도13호선 완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이어진다. 왼쪽에 신지도의 상산, 중앙에 신지대교가 보인다.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죽청농공단지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농공단지2길을 따라 남파랑길은 완도 죽청농공단지 지역을 통과한다.
완도죽청우편취급국 앞쪽 농공단지2길을 따라 진행
케이완도영어조합법인 뒤 농공단지2길을 따라 완도 죽청농공단지를 통과한다.
건너편은 완도농공단지 지역이며, 완도읍 죽청리에서 길을 건너 완도읍 가용리로 들어간다. 남파랑길은 농공단지2길에서 완도군근로자종합복지관 앞 농공단지길로 우회전하여 이어간다.
남파랑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농공단지1길로 이어간다.
완도농공단지 지역을 통과한다.
완도농공단지 지역을 통과하여 왼쪽 끝 조은주식회사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언덕으로 오른다.
조은주식회사 앞에서 우회전하여 언덕으로 올라간다.
경영수산 앞을 거쳐 왼쪽으로 돌아간다.
지방도77번 완도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완도교차로 방향으로 나간다.
완도교차로 아래를 통과하여 장보고대로로 나아간다.
완도장례식장 앞을 거쳐 이어간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신기길로 이어간다.
엘트라움 아파트 뒤 왼쪽 신기길을 따라간다.
남파랑길은 신기마을회관 방향이 아니고 왼쪽 신기길로 이어진다.
언덕으로 올라간다.
고개를 넘어 해안 방향으로 나간다.
신기길 언덕을 넘어서 해안으로 내려가며 신지도를 바라보았다. 상산 왼쪽 해안에 신지면 송곡리 강독선착장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신기길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꺾어 언덕을 올라간다. 신지도의 상산과 왼쪽에 강독선착장이 보인다.
건너편은 신지면 송곡리이며 해안의 선착장은 강독선착장이다. 신지대교 왼쪽 뒤에 고금도가 보인다.
신기선착장의 솔섬이 예쁘다. 신지대교 너머로 보이는 곳은 고금도이다.
언덕길을 넘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해양수산부 완도합동청사가 있다.
해양수산부 완도권 합동청사가 2007년 2월 28일 준공되었다.
남파랑길은 쌍용더플래티넘완도아파트 공사장 앞으로 이어진다.
왼쪽 공사 중인 쌍용더플래티넘 주상복합 완도아파트와 오른쪽 우성팰리스힐 아파트 사이 골목으로 진행한다.
2023년 10월 완공 예정, 지상 37층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오른쪽 해변공원로1234번길을 따라간다.
왼쪽에 완도금일수협활선어 위판장 건물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완도 전복거리 입구까지 이어간다.
앞쪽에 완도 전복거리 입구가 보인다.
완도 전복거리 입구에서 걸어온 해변공원로1234번길을 뒤돌아보았다.
완도 전복거리 입구에는 완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홍보하는 여러 게시판이 전시되어 있다.
왼쪽 뒤에 동망봉의 완도타워가, 중앙에 완도 해조류센터 건물이 보인다. 그 앞이 86코스 종점이며 87코스 시작점이다.
남파랑길 탐방을 마치고 숙박할 베니스모텔이 완도항 해변공원로에 있다.
완도항 해변공원에서 동망봉의 완도타워, 그 오른쪽의 남망봉의 철탑, 그리고 오른쪽 완도 해조류센터 건물을 살폈다.
2014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주제관으로 개관하였으며, 1층 특산품 홍보관, 2층 해조류 전시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남파랑길 87코스 안내도가 앞에 설치되어 있다.
남파랑길 86코스를 어렵게 마치고 87코스 안내도 앞에서 기념한다. 6시간 40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