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정문 돈화문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과 '창덕궁' 우중 산책-돈화문부터 옥류천까지- 진정한 소통과 조화로운 러더십을 마음으로 품다 호미숙
비가 내리는 날 파워블로거 얼라이언스 회원들과 그 외 다양한 곳에서 초대되어 함께 한 자리, 우산을 바쳐들고 2시간이 넘도록 창덕궁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우리의 혼을 일깨워주고 우리가 지녀야할 국가 브랜드 즉, 국격은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서 정치인으로써 또는 사회적 리더들로써 우리것을 제대로 알자.
세종 리더십 고궁 속에서의 사회통합 궁궐문화- 이배용 국가브랜드 위원장
우리 문화를 세계화 해야한다. 국가브랜드는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1395년에 경복궁이 창건 되었고, 1405년에 2궁으로 창덕궁 3궁은 창경궁 그 외 덕수궁 경희궁 등인 5대궁궐과 종묘가 함께 있다는 건 세계의 자랑이다. 임진왜란 등 외침과 6.25에도 버텨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1.우리 것을 몰라서 자랑할 것을 모른다. 주인의식을 갖고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갖고 한국의 전통문화는 과거가 아닌 현재다 세계화의 1번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동양문화에서 한국의 특수성 유교문화의 본산지의 내재된 조화-과거 현재 미래가 농축된 곳으로 궁궐이다.
3. 자연과의 소통 돌과 나무와 산과 궁궐의 건축 설계 자연 존중, 자연보호, 자연사랑
4. 나라는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된다. 이조시대나, 비원이란 명칭은 일제가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서 조선이란 국호 대신에 이씨왕조에서 이조라고 했고 창덕궁 이름을 없애기 위해서 1904년 창덕궁의 관리실 이름이었던 비원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이런 것은 불식시켜야한다.. 창경궁도 창경원으로 유원지처럼 동물원이 되어버렸다, 문화를 지킬 수 없으면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
5.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현재 시작부터 끝까지 정신유산 자랑스런 자산을 미래를 위해서 재창조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리더와 외국인들도 궁궐문화를 통해서 다른 느낌이 들 것이라 생각한다.
궁-임금과 가족이 생활 곳 궐은 정치를 하는 곳 궁궐-정치하는 곳과 임금의 생활하는 곳 궁.
창덕궁 홈페이지-http://www.cdg.go.kr/main/main.htm
오랜 세? 역사 속에도 창덕궁 담장은 600년을 지키고 자연은 계절따라 꽃을 피우고 있다.
과거로부터 뿌리내린 현재와 미래 ,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소통의 공간, 전통으로부터 이어진 지금, 돈화문 섬세함과 사각의 고층빌딩의 조화를 찾는다
미국에서 왔다는 두 자매 15일간의 한국여행을 하고 있단다. 창덕궁 앞에서 다음 코스를 살피고 있다. 다음 코스는 북촌마을. 한국을 어떻게 느끼냐고 묻자 한마디고 놀랍고 아름답다라고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배용 국가브랜드 위원장의 두 시간에 걸친 창덕궁 산책으로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리더십과 창덕궁의 궁궐 문화와 아름다운 디자인과 사회통합의 숨은 곳은 찾아 우리 안에 국가브랜드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금천교 세심-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라
북 현무--600년을 지켜온 북쪽의 악귀를 지키는 거북이 남 해태-옳고 그름을 총명하게 분리한다. 세심교를 놓는 이유 궁궐 앞에 개울엔 명당수를 끌어내서 흐르게 하여 관리들이 출퇴근할 때 마음을 세척하고 들어가도록 하는 공정한 마음인 세심ㅡ 마음을 씻는 역할로 공명정대하도록하였다. 경복궁의 영제교 창경궁은 옥천교가 있다.
진선문
가운데 길은 어도로 임금만 걸어가고 좌측은 문관 무관이 들어가는 길이었다.
인정문
1, 통틀-궁궐만 둥근 기둥을 사용했다. 유교의 기본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의 조화 인간과 하늘의 섭리를 섬겨서 시대를 이끌도록 메시지 전달
2, 박석-가운데길은 어도. 좌우측 세워진 것은 품계석 동쪽 문관 서쪽은 무관이 위치 창덕궁이 박석은 새롭게 만들어 재건했다. 옛날의 박석은 무질서 속의 질서로 있어 잡초가 자라나서 발바닥을 시원하게 해주며 임금이 바라보았을 때 조명역할을 해주는 월석기능을 갖았었다.
3, 쇠고리- 정3품이상의 차양막을 세워 로열박스 기능 당상관 이상의 자격의 품계만 이용
인정전의 내부
인정전의 안쪽에는 임금이 앉은 어좌가 있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천장에는 봉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조각이 그려져 있다. 등불은 개화기 때 변형이 된 것으로 전기가 1997년 들어오면서 전등을 달았다. 봉황은 상징의 새로 봉황이 출현하면 성군이 나타난다. 성군이 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라 하는 메시지 하늘의 마음을 품어서 성스런 정치를 하는 뜻
오봉병풍-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 다섯 개는 임금에게 드리는 멧세지로 백성을 보고 정치를 하라. 병풍 뒤를 동서남북을 잘 살피고 북- 백두산 동- 금강산 서-묘향산 남-지리산 중앙이 북악산. 동서남북 중을 새겨 넣어 두루 살피라는 뜻이다. 궁궐에 배치된 것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이 새겨져 있다 곧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컨텐츠다.
인정전은 법전으로 경축일이나 행사를 하는 곳이며 그물이 쳐 있는 것은 처마 끝에 새가 둥우리를 쳐 천적도 함께 나타나 살생을 일어나므로 살생을 막기 위해서 그물을 설치
문고리와 문걸이와 아름다운 문양들
성정전 -유일한 청기와 건물 편전으로 신하들과 토론과 논의하는 곳이지만 유일하게 복도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임금이 돌아갔을 때 상청이 모셔지는 곳이기도 해서 빈청이 되기도 하는 상을 모시는 곳이었다. 양로연을 베풀기도 했다- 80세 이상의 노인을 신분의 고하,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사회통합을 위한 고령자를 위한 효로서 받들어 모셨다. 다양성을 갖고 있었다.
세종은 창덕궁에서 10년 가까이 정치를 했다 세종은 특히 대군의 집에서 정치를 하기도 하므로해서 유연성과 변화를 추구했고 새로운 구상개발을 했다.
희정전을 둘러보며 희정당의 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 의자 배치도 개화기 때 변형되었다. 침전 속에는 가구를 두지 않았다. 온돌 문화이기도 하지만 자객이 가구 뒤에 숨을 수 있을 때, 상궁이 조달하기에 이부자리 둘 필요가 없었다.
대조전-왕비의 침전
대조전 왕비의 침전 으로 희정당보다 지대가 높으므로 여자가 높다. 자연 공간을 그대로 활용했다. 전통을 계승하는 동쪽 방은 합궁하고 서쪽 방은 왕비가 일상적으로 주무시는 곳이고 무대는 대조전 공연을 펼치는 곳이다. 궁녀들의 방이 배치되어 2인1실로 기숙사 형태다. 방 안에 화롯불을 피워 차를 끓여내는 다방이다 대조전 뒤뜰
왕비 거처에서 뒷마당 경운각으로 복도가 연결해주었고 후원이 있다.
화강벽으로 남사 손으로 두 개가 얹혀 질 수 있다는 사괴석으로 화방벽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과 불길을 막고 도둑을 박는 탄탄한 벽의 전형적인 기능이다
이동식 화장실 매화틀을 놓고 위에서 의자에 용변을 보았다, 왕비의 전용 화장실
괴석을 세워 놓고 정신적 화괴를 놓아 사시사철 돌의 유연성과 굳건한 마음으로 정서함양 하는 곳이다. 굴뚝에도 학이 놀고 아래는 사슴이 놀고 불가사리가 있고 다양한 상상력을 주었다. 굴뚝에 토끼. 용 불가사리 등을 부조를 해서 굴뚝에도 창의적인 마음을 새겨본다
빨갛게 익은 앵두
소나무 나무들의 어떤 마음으로 갖고 서있을까, 역사의 지킴이다
낙선재 상량정 승화루 독서실 재충전의 수련실 네모집과 육각정으로 아름다운 조화로움의 극치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만 감탄하지 말고 우리나라 궁전의 문화에 품격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사회통합이고 창의적인 정신으로 곧 국가브랜드다.
장락문 대원군의 글씨 신선의 집의 이상향
디자인의 극치는 이곳에 있다, 여성들이 살던 곳으로 상이 있을 때 근신하는 공간이다 아궁이인데 불이 날 수 있으므로 얼음 깨지는 문양을 새겨넣었다. 불조심 의미 불을 끄는 상징성
가마에서 내려 놓는 발받침대
실내의 만월문
홍살문 옆에 지붕이 또 있다. 반쪽 지붕 상청 돌아가신 사람의 공간이다.
상량전으로 오르는 길
낙선재 후원인 상랑정 (육각형 정자) 낙양정으로 겹처마로 되었으며 꽃몽오리를 디자인, 천정의 의미는 우주 만물을 관조하다보면 융합과 배려와 아량을 갖는 곳이다.
보름달 문으로 원형으로 만든 이유는 하늘을 보고 전경을 마음을 품어 편협마저도 보름달처럼 만드는 만월문이다, 화가 있는 문화이다 담장마다 거북모양이 있고 양쪽이 비대칭 속의 조화를 이룬다 포도모양과 다람쥐 두 마리 담장 포도는 자손 번성 영원만대로 이어가라는 것
왕자들의 독서실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
부용지와 부용정
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부용지도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다.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 돌에는 뛰어 오르는 형상의 물고기 한마리가 새겨져 있다. 부용정(1792년 건립)은 + 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잉어 물고리 새겨진 이유 등용한다는 물고기가 물살을 어수문을 통과 규장각 등용의 스토리이다, 시험을 보고 이상을 꿈꾸는 곳 하모니의 스토리 부용지 일대에서 느끼는 메시지 왕과 신하 자연과 신과 백성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어수문-물고기가 주합루로 올라가 규장각으로 들어가도록 창살을 개패 역할 대나무를 심어 선비의 절개를 느끼라는 것
규장각 정조임금이 1776년 왕실의 도서관을 세웠다 1층 서고이고 2층 주합루 연람실이다.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활을 쏘기도 한 정원이었는데, 정조 때부터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다. 영화당에는 왕이 참석한 가운데 시관이 자리하여 시제를 내리고, 춘당대에서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보았다
불로문 늙지 않는 문 큰 돌을 깎아 만들어 톨틀이고 문짝을 만들었다.
애련정 연꽃 혼탁함에 물들지 않고 세속에 젖지 안고 고고하게 향기로움을 날린다 겸손한 지혜의 세자의 독서실 소박하다.
반도지의 관람정 부채를 부치는 지붕. 반도지 일제시대를 거꾸로 놓았다. 물 속에 부채가 발을 디딘는 모습이다.
승재정 연못물이 모세의 길처럼 갈라지는 곳이 있다 관람정에서 승제정까지 걸어간다
존덕정 존덕정은 인조 22년(1644)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육각정자의 형태 그대로인 '육면정(六面亭)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그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눈썹지붕인 겹지붕과 단청이 아름답고 또한 개혁군주인 정조의 친필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폄우사.. 우매한 마음에돌침을 놓는다 독서를 하는 곳 펌우사 가는 길에는 왕자들의 팔자걸음 연습장이 있어 위풍당당하게 보폭을 넓혀서 걸어 마음을 넓히고 이상은 높게 포용과 정치 박석을 박아 놓아 팔자 걸음이 자동으로 된다.
승재정
창덕궁 마지막 끝자락 옥류천을 향하여
취규정 높은 곳 별을 모으는 곳
취한정 차고 시원한 물을 모으는 곳
-옥류천 주변- 옥류천의 소통과 화합의 마지막 메시지
배려 조화 나눔 소통 화합 법고창신 오래된 것을 본받아 내일을 창조하자 귀중한 가치다
옥류천-인조 글씨 숙종의 시 응봉산에서 물을 받아들여서 한번 걸러 내어 흘러 가게 만들었다.
태극정 우주의 원리는 우주의 생성의 원리를 음양오행의 이치를 인간이 목금화수토 오행과 인의예지심의 오성을 어떻게 합치되는가 마음의 통합 자연과 인간의 조화의 소통과 ?합을 여기서 끝자락에서 깨닫고 품고 실천을 해야한다.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수 없다는 것 이금의 리더십은 자연과 백성을 어기고 이룰수 없다 소통과 하합은적극적인 사랑과 감사로 화합의 교훈과 메시지를 무언의 미래를 향해 정신과 마음을 담는다.
청의정 궁궐에 모를 심어 임금과 세자와 왕자가 모를 심었다 농업사회가 7-80%가 농민들의 수고와 고통스럼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두평에 추수하고 이엉을 엮어 초가집으로 지었다. 상상도 못할 통합의 장
궁궐에서 농민들과 함게 하는 마음을 나눠보고 농민들을 위한 마음의 희망을 주고 사각에서 육각에서 팔각으로 연등천정인데 마지막은 원으로 만들어졌다. 네모나 태어난 땅에서 다듬어서 세월이 흘러 다듬어져 원으로 되어 하늘을 품는다.
이배용 국가브랜드 위원장 세계적인 지도자들에게 설명할 때 한국인들보다 감동했다. 캠브리지총장과 스티븐슨대사도 궁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임금의 배려의 숭고함에 놀라워했다. 내일의 대한민국의 품격과 세계적인에 신뢰가 우리들의 자긍심이 높아진다. 세종임금을 비롯하여 앞서간 리더들이 전해주는 생활 정신과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다시 가슴에 품자고 이배용 국가브랜드 위원장은 두 시간에 걸친 긴 창덕궁을 안내하면서 내내 누구보다 힘차고 우리의 전통에 자부심으로 열띤 안내를 해주셨다.
빗방울의 영롱함처럼 창덕궁 돈화문을 시작으로 옥류천까지 산책하면서 느끼는 것은 맑음으로 영혼을 깨워 나, 대한민국 속의 나와 국가를 재인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창덕궁 산책을 마치며 단단한 바위에 젖어 흐르는 옥류천의 주변에 낮게 뒤덮은 초록의 돌이끼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 숲에서 조화로움이란 자연스러움이고 인위적이라도 자연에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탁월한 멋과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며 무엇보다 임금으로서 갖춰야 할 사회적 통합 곧 이해와 배려 화합과 소통과 교류의 원칙으로 창덕궁을 둘러보는 내내 감동과 반성을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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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미숙-자전거랑 사진여행[호미호미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호미숙 호미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