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가을이 아쉽다면 낙엽차를 드셔 보세요
작년 가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원래 낙엽으로 차를 달이는 일은 우리에게도 있었던 일입니다.
울긋불긋한 상달의 나뭇잎들,
그 잎들이 떨어지면 조심스레 모아서 그것으로 달여내는 차,
그것을 우리말로는 '갈부리댓물'이라 불렀고, 한자어로는 홍엽전차(紅葉煎茶)라 불렀습니다.
'갈부리댓물'에서 '물'은 말 그대로' 물'이니 그 뜻을 떠나 일단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댓'인데, 'ㅅ'은 사이시옷이기에 '대'의 뜻만 살피면 됩니다. 소리바꿈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표준말의 정립과정에서 약간 다르게 되었지만, '불에 데다'나 '데치다' 나 '달이다' 등에서 용례를 찾을 수 있듯이, 그것은 '달이다'와 통하는 말로 댓물은 '달인 물'입니다.
그리고 '갈'은 '가다'와 통하는 말로서 '가랑잎'이나 방언으로 남아있는 '갈비'(낙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떨어지다'와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또 '부리'는 '불이'로서 '불'은 '검불'의 경우처럼 '풀'을 뜻하며, '이'는 댓물과 이어붙이기위해 넣은 연용어입니다.
즉 '갈부리댓물'은 '가랑잎을 달인 물'로서, '가랑잎차'라고 할수 있습니다.
서산대사가 이 차를 즐겼다 하며 매월당 김시습도 그랬다고 합니다. 허나 이름 없이 살다간 우리 옛사람들도 즐겨 이 갈부리댓물을 마셨음을 생각합니다. 두메에 살던 저도 어릴 때 허전하고 쌉쌀한 이 찻물을 마셨으니, 이것이 초겨울을 넘기는 대표적인 우리네 차 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올린 벼리글은 매월당 김시습이 읊었다는 차시(茶詩)를 조금 손질한 것인데, 여기에 나오는 차가 바로 갈부리댓물이요 홍엽전차입니다.
그런데 "님이여 아시는가, 누런 잎으로 차 달이는 뜻을"이라는 구절에 이르면, 갈부리댓물이 그가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에 이르기를 " 하늘은 살림이요 하늘은 죽임이시니"라고 했는데, 동짓달 갈부리댓물에서 이 구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봄이 되어 살리는 것도 하늘이요 가을이 되어 죽이는 것도 하늘이시니, 갈부리댓물을 마시면서 하늘이 나에게 삶을 주신 까닭을 생각하고, 하늘이 나에게 죽음을 주신 까닭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메에서 갈부리댓물을 마실 때, 스승께서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도적질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참으로 그렇습니다. 비록 하늘이 나에게 삶을 주셨건만, 나는 많은 것을 훔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빛과 흙과 물과 바람으로부터 그 기운을 훔쳤으며, 나무와 풀과 곡식으로부터 그 힘을 훔쳤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아비와 어미로부터 그 훔친 것을 또 훔쳤습니다.
훔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그런 생각은 크나큰 마구니요 더없는 죄악이었습니다. 우주가 생긴 이래 거래(去來)아닌 것이 없을진데, 훔치고 나서 아직까지 제대로 돌려준게 없으니, 어찌 이것을 받았다 여기겠습니까?
.... (아래 생략)
[ 한국학연구소 소장 박현 님이 쓰신 글을 빌려왔습니다.]